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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오전 공판을 끝마친후 법원을 떠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8.7.2
 수행비서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차 오전 공판을 끝마친후 법원을 떠나며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2018.7.2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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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인, 하실 말씀 많은 건 알지만 감정적 평가보다는 사실관계 위주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부인 민주원씨가 증인석에 앉은 지 채 5분이 안 됐을 때였다. 재판장인 조병구 부장판사(형사합의11부)가 답변을 가로막았다. 13일 오후 서울서부지방법원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안 전 지사의 다섯 번째 공판에서였다. 안 전 지사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재판중이다.

이날 민씨는 남편 측 증인으로 나왔다. 남편은 수행비서와의 성관계가 성폭행이 아니라 이성관계에 기반했다고 주장한다. 민씨를 상대로 한 남편 측 변호인 신문 또한 이 부분을 입증하는 데 집중됐다.

변호인은 우선 피고인과의 관계를 물은 뒤 곧바로 피해자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다. "피해자를 어떻게 처음 알게 됐나요?"라는 단순한 질문에도 민씨는 긴 한숨을 쉬고 나서야 답변을 시작했다.

공개법정에서 내밀한 이야기... 그럼에도 '이성관계' 입증 안 돼

피고인 측과 검찰 측이 공방을 벌인 쟁점은 민씨가 외국 대사 부부와 부부동반으로 '상화원'에서 하루를 묵었던 날 이야기였다. 양측 주장을 종합하면 그날 복층형 숙소에는 민씨 부부가 2층에, 수행비서인 피해자가 1층에 묵었다.

민씨는 첫날 만찬 일정을 마치고 잠든 새벽, 누군가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오는 소리에 잠에서 깼으며 피해자로 보이는 실루엣이 방 안까지 들어와 침대 발치에서 3~4분 정도를 내려다 봤다고 기억한다. 이날 이후로 민씨는 피해자를 "남편에게 위험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불안해했으며 피해자를 주시했다고 말했다.

반면 피해자 측은 민씨 부부 방에 들어간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다만 안 전 지사에게 온 문자가 수행비서 핸드폰으로 자동 착신됐는데, 그 내용을 보고 걱정이 돼서 2층으로 올라갔다는 입장이다.

안 전 지사와 평소 친하게 지낸 여성이 '옥상에서 2차를 기대한다'라고 보냈고, 다른 일이 일어나는 걸 막기 위해 옥상과 연결된 통로에서 대기했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불투명한 유리 너머로 방안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걸 보고 1층으로 내려왔을 뿐이라고 한다.

이날 안 전 지사 측 변호인은 민씨에게서 "평소 피해자가 안 전 지사를 일방적으로 좋아했다"는 취지의 답변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모두 주관적 기억에 의존한 내용이었다. 예컨대 "일정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공터에서 대기 중이었는데 피해자가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뭇가지로 땅바닥에 낙서를 했다.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귀여워 보이고 싶은 마음이라는 게 느껴졌다", "늦게 일정을 마치고 '수고했다'라고 인사를 건네면 피해자가 못들은 척하고 피고인의 옷과 가방만 챙겨 불쾌했다" 등이다.

재판부 신문 땐 혼란스러워 하기도

검사의 반대신문 과정에서는 민씨가 잠시 흥분하기도 했다. 검사는 상화원 사건 이후 그가 피해자와 안부 문자를 주고받거나 홍삼엑기스를 선물했던 일 등을 예로 들며 "둘 사이가 다정했다는 게 잘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추궁했다. 이에 민씨는 "다정했다는 건 검사님의 시각"이라며 "의례적인 행동이었다"라고 잘라 말했다. 앞서 변호인 신문 때는 "사적인 건 사적인 거고 공적인 건 공적인 거니까 홍삼엑기스도 주고 건강 잘 챙기라고 한 적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불분명한 기억 때문에 잠시 혼란스러워 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는 상화원 사건 관련 민씨의 기억을 구체적으로 따져 물었다. 조 재판장은 "피해자가 방에 들어와 3~4분 동안 내려다 봤다면 '무슨 일이냐'고 물어볼 법 한데 그렇게 말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라고 질문했다. 민씨는 "3~4분은 제 느낌이었고 그보다 좀 짧았던 거 같다"라면서 "실눈을 뜨고 지켜본 건 피해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라고 답했다.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증인신문에서 사건 당사자들이 이성관계라는 걸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증거는 단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취재진과 시민들로 방청석이 가득 찬 공개법정에서 증인 신문을 마친 민씨는 끝 무렵 지친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조 재판장이 어려운 발걸음을 해준 데 고마음을 표하며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라고 물었지만 민씨는 잠시 침묵한 뒤 "없습니다"라고만 했다. 그리고 법정 경위를 따라 퇴장했다.

결국, 이성관계였다고 주장하는 안 전 지사 측이 그에 맞는 증거를 제출했다면 이날 민씨는 공개법정에 서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검찰 수사 기록과 안 전 지사 측이 지금까지 제출한 증거 어디에도 두 사람이 사적 만남을 가졌거나 애정 표현을 주고받은 흔적은 없다.


태그:#안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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