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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공간을 마련하고, 그곳에서 소박하게나마 하고 싶은 일을 꾸려가며 사는 것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80년이 넘은 한옥과의 첫만남부터 고치고, 수선하는 과정을 담아갈 이 연재는 앞으로 공간의 완성, 그 이후 공간에서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 기자말  
마치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을 것 같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수많은 사람이 매달려 하나하나 다듬고 매만지고 내리고 올리고 만들어 완성한 것이다. 한옥은 사람이 짓는 집이다.
 마치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을 것 같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수많은 사람이 매달려 하나하나 다듬고 매만지고 내리고 올리고 만들어 완성한 것이다. 한옥은 사람이 짓는 집이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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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할머니댁에 가면 동네에 옹기종기 크고 작은 집들이 모여 있었다. 집성촌이었던 할머니네 동네는 옆집, 윗집, 아랫집 모두 건너건너 대부분 같은 성을 쓰는 친척집이었다. 하긴 굳이 같은 성을 쓰지 않아도, 한 동네에서 수십 년 같이 살아온 터라 '그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다 아는' 그런 마을이었다.



아파트 단지는 평수 크기에 따라 단지를 구획하고, 도시는 언제부터인지 부자는 부자끼리, 서민은 서민끼리 따로 사는 게 자연스러워졌지만, 어릴 적 할머니네 동네에 가면 고래등 같은 기와집과 쓰러져가는 초가집이 한동네에 같이 있었다.


나름 중소도시에 살고 있던 나는 할머니댁에 가면 '도시에서 온 얼굴 하얀애'가 되어 고래등 같은 기와집 손주나 쓰러져가는 초가집 손주나 할 것 없이 한동네 얼굴 시커먼 애들과 어울려 놀았다.



함께 감자도 구워먹고, 다슬기도 잡으면서 놀았는데, 한여름 해질 무렵이 되면 약속이라도 한 듯 이 집 저 집의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고, 어디선가 밥 짓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같이 놀던 우리들은 주섬주섬 벗어놓은 신발을 찾아 신으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문득 가만히 서서 동네를 바라보곤 했다. 냇가에서 소슬한 바람을 맞으며 바라보던 동네의 풍경은 어린 내 눈에  무척이나 푸근해보였다. 그때 그 장면은 내게 평화로운 시간의 상징 같은 것으로 남았다.



그 상징과도 같은 장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고색이 창연한 기와지붕을 머리에 이고 선 크고 작은 집들이었다. 나는 그때부터 그 기와색이 좋았다. 색은 흐려지고, 군데군데 깨져나가 이가 빠지기도 한 그 기와들이 어쩐 일인지 초라하거나 허름해 보이지 않고, 멋스러워 보였다.



80여 년 된 한옥을 처음 보고 마음에 들었던 것도, 이 집을 사야겠다고 마음 먹은 결정적 이유도 다름 아닌 기와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지붕 때문이었다. 이 집은 지은 지 8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이렇다 할 수선을 거치지는 않았으나, 벽도, 천장도, 마당도 사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조금씩 변형이 되어 왔다.


 
새로 올린 지붕 위에는 세 겹의 시간이 흐른다. 애초에 이 집과 더불어 살았던 옛기와, 다른 곳에서 터전을 옮겨온 옛기와, 그리고 적절히 섞여 들어간 새 기와. 이 기와들과 더불어 이 집에서의 나의 시간도 흘러갈 것이다.
 새로 올린 지붕 위에는 세 겹의 시간이 흐른다. 애초에 이 집과 더불어 살았던 옛기와, 다른 곳에서 터전을 옮겨온 옛기와, 그리고 적절히 섞여 들어간 새 기와. 이 기와들과 더불어 이 집에서의 나의 시간도 흘러갈 것이다.
ⓒ 황우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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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의 서까래는 천장에 막혀 가려지고, 방과 방 사이는 없던 벽이 생기고, 외벽은 타일이 덧붙여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붕을 개량하지는 않은 덕분에, 이 집의 기와는 처음 지어졌던 1930년대 그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자연스럽게 세월에 순응한 듯 저마다의 빛깔로 곱게 나이 들어간 흔적들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그 빛깔도 좋았고, 차곡차곡 물 흘러가듯 쌓아올린 기와가 만들어낸 지붕의 선도 참 좋았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했다. 한옥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이 직접 짓는 집이다. 저렇게 고운 지붕 선을 가지고 있는 집이라면, 저런 눈썰미를 가지고 있는 집주인이 다른 곳에도 정성을 기울였을 것이라 여겼다. 집을 다 헐고 보니, 이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집을 둘러싼 관계자들의 총평은 요약하자면 이랬다. 


'이 집을 지은 양반은 눈썰미는 있었으나 돈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구조와 형태는 작은 집에 과할 정도로 예뻤다. 심지어 남들이 신경 쓰지 않는 곳까지 공을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그런데, 그 자재들은 참으로 볼품이 없었다. 서까래에 쓰인 나무들은 매우 가냘펐고, 들보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할 것


매우 흔한 말이지만, 이것이 관련자 모두의 심정이었다. 그렇게 살려야 할 것 중 하나가 있었으니 바로 기와였다. 애초에 지붕 위에 어떤 기와를 올릴 것인가를 두고 논의한 바가 있다. 크게 보아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공장에서 새로 찍어낸 기와를 올릴 것이냐, 옛 기와를 다시 올릴 것이냐. 나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옛 기와를 쓰는 쪽을 택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낡고 오래된 기와는 다시 쓸 수 있지만 깨지고 금이 간 것을 다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옛기와를 다시 쓴다는 건 수백, 수천 장의 기와를 내리면서 쓸 것과 못 쓸 것을 골라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낡고 오래된 기와는 다시 쓸 수 있지만 깨지고 금이 간 것을 다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옛기와를 다시 쓴다는 건 수백, 수천 장의 기와를 내리면서 쓸 것과 못 쓸 것을 골라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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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기와를 쓰기로 하면 어떻게 될까. 철거할 때 옛 기와는 무조건 지붕에서 다 내린 뒤, 어디론가 싣고 떠나면 간단하다. 그 다음은? 지붕에 기와를 올릴 때에 맞춰 공장에 주문한 기와를 착착착 지붕 위에 올리면 된다.  


옛 기와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철거할 때 일단 기와를 내리긴 하는데, 다시 쓸 수 있는 것과 못 쓸 것을 구분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못 쓸 것은 치우더라도 쓸 수 있는 건 따로 어딘가에 쌓아둬야 한다. 그 따로가 어디인가. 바로 현장 근처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한옥 공사 현장에 몇 달 후 사용할 기와를 쌓아둘 공간이란 존재할 리 만무다. 그러자니 이 집 지붕에서 이 집과 더불어 몇 십 년 세월을 함께 쌓아간 기와를 다시 쓰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철모르는 낭만과 다를 바가 없는 말이었다.
 
80여 년 동안 이 집 지붕을 지탱해준 서까래들은 너무 가냘펴서 당장에라도 뚝 부러질 것 같았다. 그대로 둘 수 없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이 튼실한 것으로 바꿔야 했다. 하지만 이 서까래들은 다른 곳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될 것이다.
 80여 년 동안 이 집 지붕을 지탱해준 서까래들은 너무 가냘펴서 당장에라도 뚝 부러질 것 같았다. 그대로 둘 수 없는 것들은 어쩔 수 없이 튼실한 것으로 바꿔야 했다. 하지만 이 서까래들은 다른 곳에서 다른 용도로 사용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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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한 번 지붕에서 내려온 기와를 다시 쓸 수 있는 비율은 그리 크지 않다. 지붕 위의 기와를 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이 올라가야 한다. 공중부양을 할 능력이 없는 한 지붕 위에 사람이 올라가서 딛고 설 것은 바로 그 기와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람의 발에 밟히는 기와가 모두 온전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래서 보기에는 멀쩡해도 금이 간 것, 깨진 것, 이가 빠진 것 등등이 나올 수밖에 없다. 원래 있던 기와를 못 쓰게 되면, 나머지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그 자리에 새 기와를 올릴 수는 없다. 비슷한 시절에 만들어진 옛 기와를 찾아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서 사다 채워야 한다.



목수님은 조곤조곤 새 기와와 옛 기와를 쓰는 일의 차이를 말씀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내가 짓는 집에 이제 막 공장에서 뽑아나온 매끈한 새 기와를 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새 기와는 훨씬 가볍고, 훨씬 단단하다는 장점이 있다. 기와 회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원하는 색을 고르면 지붕 전체를 같은 기와의 균일한 색으로 깔끔하게 마무리를 할 수 있다. 이런 느낌을 선호하는 분들도 많다. 


 
군데군데 이가 빠지고, 보는 사람에 따라 얼룩덜룩해보일지언정, 나는 고색의 창연함을 품은 이 지붕의 기와색이 좋았다.
 군데군데 이가 빠지고, 보는 사람에 따라 얼룩덜룩해보일지언정, 나는 고색의 창연함을 품은 이 지붕의 기와색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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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와는 기능적으로 볼 때는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멀쩡해 보이지만 금이 가 있을 수도 있고, 새 기와에 비해 아무래도 약해서 살면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 사람이 만든 거라 기와의 색도 각각 다 달라서, 마무리 후에 오히려 얼룩덜룩해서 지저분해 보인다는 분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기와를 고집했던 건 거기에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기와를 만들 때 사람이 일일이 손과 발로 흙을 치대고, 짚으로 엮어 만들었다. 그래서 기와 겉면에는 바로 짚으로 만든 흔적이 무늬처럼 새겨 있다. 기와마다에 마치 빗살무늬 토기처럼 제각각 서로 다른 무늬들이 아로새겨진 것이 나는 참 좋았다.



물론, 지붕 위로 올라가면 그뿐, 멀리서 그런 무늬가 보일 리 없다. 하지만 내 집 지붕 위에 올라간 기와가 옛날옛날 와공들이 직접 만든 것이려니, 생각하며 살고 싶었다. 해놓고 나면 남들 눈에는 얼룩덜룩해서 지저분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 한결같지 않은 기와의 물결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좋아보였다. 
 
한옥에 산다는 건 지붕의 선 위로 펼쳐진 하늘을 내 집 마당에 두고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한옥에 산다는 건 지붕의 선 위로 펼쳐진 하늘을 내 집 마당에 두고 산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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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와를 고집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망와(望瓦)였다. 망와는 지붕 끝에 세우는 암막새를 뜻하는데, 망와에는 흔히 무늬를 만들어 넣곤 한다. 새기와의 망와는 대부분 무궁화나 용그림 또는 연꽃을 만들어 넣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마땅치가 않았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동네마다 기와를 만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망와의 무늬가 다 달랐다.



어느 집은 꽃이기도 하고, 또 어느 집은 용이기도 하고, 또 어떤 집은 기복의 의미를 담은 문자이기도 했다. 사람이 손으로 만들어 넣은 것이니 비슷할 수는 있어도 온전히 같을 수는 없었다. 서울, 대전, 부산, 광주, 어디를 가나 새로 지은 사찰이나 전통문화재 가옥마다 한결같은 망와를 볼 때마다 뭔가 좀 아쉬웠는데, 내 집 지붕 위에 그것을 올리고 싶지는 않았다. 뉘신지는 모르오나 이 집 기와를 만든 분이 만든 그 망와를 다시 올려두고 싶은 마음이 나는 컸다.


 
지붕을 만든다는 건 눈에 보이는 일이 전부가 아니다. 지붕을 지붕답게 하기 위해 속속들이 거쳐야 할 과정이 참으로 많다.
 지붕을 만든다는 건 눈에 보이는 일이 전부가 아니다. 지붕을 지붕답게 하기 위해 속속들이 거쳐야 할 과정이 참으로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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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님은 두 말도 하지 않으셨다. 나의 '철모르는 낭만'을 어떻게든 구현해주시겠노라 약속하셨다.


철거가 이루어지고, 목공사를 진행하느라 현장이 부산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부터 이미 목수님은 지붕 위에 올라갈 옛 기와들을 수소문해서 구하느라 바쁘셨을 게다. 하지만 이렇다 저렇다 푸념 또는 생색 또는 고단함을 품은 어떤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지붕은 보이는 기와가 전부가 아니다. 추울 때 춥지 않게, 더울 때 덥지 않게 하는 것도 지붕의 일이다. 단열을 위한 여러 장치는 필수다. 처마 끝에 부연을 달아 집 안에 들어오는 빛을 조절하는 기능과 장식효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도 지붕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4월이 끝나갈 무렵. 문자를 받았다. 지붕이 모두 마무리 되었습니다. 마치,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은 것처럼, 내가 이 집을 처음 살 때 내 마음을 잡았던 그 지붕의 곡선이, 고색의 창연함으로 빛나는 그 지붕이 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릴 적, 다슬기를 따다가 해질 무렵 바라보던 할머니댁 마을의 기와지붕이 떠올랐다. 그때는 몰랐다. 수십 년 뒤 내가 그런 기와지붕 아래 살게 될 줄은. 하긴 수십 년이 웬말인가. 1년 전에도 몰랐던 일이다. 이 아름다운 지붕을 이고 살 수 있게 될 줄은.


 
서로 다른 형태의 나무와 나무가 이어져 하나의 지붕을 이루는 것. 각자의 힘을 주장하지 않고 서로의 힘에 기대 버티고 지탱하는 것. 그것이 이 나무들의 할 일이다.
 서로 다른 형태의 나무와 나무가 이어져 하나의 지붕을 이루는 것. 각자의 힘을 주장하지 않고 서로의 힘에 기대 버티고 지탱하는 것. 그것이 이 나무들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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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부터 이 지붕 위에 자리잡았던 기와들은 한 번 땅으로 내려온 뒤 다시 지붕 위에 터를 잡았다. 다른 집 지붕 위에 있던 기와들과 더불어 새로운 시간을 쌓아갈 것이다. 여기에 지붕이 지붕으로서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곳에 자리잡은 새 기와까지 몇 겹의 시간들이 하나가 되어 흐를 것이다.



완성된 지붕 앞에서 나는, 새삼 마음이 조급해졌다. 나도 얼른 이 집에서 나의 새로운 시간을 쌓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끝은 멀기만 했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을 찍은 황우섭은 주로 인물과 건축물을 찍는다. 사람도 건물도 기교와 치장 대신 있는 그대로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는 걸 좋아한다. 오래된 것에 집착하고, 동적인 것보다 정적인 것에 주로 관심을 갖는다. 산티아고 순례와 나오시마 여행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긴 단행본이 국내에 출간되었고, '조병수 건축사무소' 전속 사진작가로 활동하면서 찍은 사진이 영국 'Thames&Hudson'에서 펴낸 조병수 건축가의 작품집 『BYOUNG CHO』의 표지 및 본문에 실렸다.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되었다.(https://blog.naver.com/hyehwa11-17)


태그:#작은한옥수선기, #도시형한옥, #한옥, #황우섭, #혜화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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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만드는 일을 오래 했다. 지금은 혜화동 인근 낡고 오래된 한옥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 그곳에서 책을 만들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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