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드 파리> 윤형렬

<노트르담 드 파리> 윤형렬 ⓒ 키이스트


<두 도시 이야기>시드니 칼튼, <마리 앙투아네트> 악센 폰 페르젠 백작, <아가사> 로이,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유다 이스카리옷 등 역할로 '짝사랑 전문'으로, <두 도시 이야기> <페스트> <애드거 앨런 포>, 최근엔 <바넘:위대한 쇼맨> 출연 소식으로 '초연 전문' 배우가 됐다. 매 작품 도전을 감행하는 모습으로 걱정을 하게 하다가도, 무대 위만 올라가면 '역시'라는 감탄사를 불러일으키는 배우.

그 시초엔 2007년 <노트르담 드 파리>(아래 <노담>) 한국어 공연 초연이 있다. 이 무대를 데뷔로 콰지모도가 돼, 지금까지 쉼 없이 무대를 달려온 배우.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독보적인 목소리를 가진 배우, 바로 윤형렬이다.

<노담>이 한국어 공연 10주년을 맞은 올해, 당연히 그래야 하듯 다시 콰지모도가 된 윤형렬을 지난 12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노담>에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 윤형렬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 윤형렬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 윤형렬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초연에 이어 2009년·2013년 공연에 꾸준히 오른 뒤, 다시 오른 무대. (2016년에는 스케줄 상 오를 수 없었지만) 윤형렬은 한국에서 <노담>에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다.

"오랜만에 하면서 이런 대작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노담>에 가장 많이 출연한 배우 아닌가! 그것만으로 뿌듯하다. 자부심이 생기고 주인의식도 든다."

소감에도 애정이 묻어났다. 지난 시즌, 윤형렬을 만날 수 없었던 뮤지컬 관객들에게 이번 그의 출연은 더 없이 반가운 소식이었을 터. 게다가 한국어 공연 10년을 맞았으니 더더욱 감회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초연 당시 뮤지컬 무대에 처음 올랐던 윤형렬과 다수의 작품으로 내공이 쌓인 윤형렬. 감성도 많이 달라졌을 법하다.

"조금 더 다층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 표현된다고 느낄 때 짜릿하다. 10년 전에는 미숙해서 표현하지 못했던 점을, 이제는 자유자재로 구사할 때. 한 인물로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듯해 기분이 좋다.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는 센스를 관객들도 느끼고 피드백이 올 때, 이제 뭔가 날개를 단 듯하다."

새로운 언어를 막 배우기 시작할 때 마음 속 감정을 표현하기에 어려워 입이 떼어지지 않아 답답했던 마음이었는데, 자유자재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또 그 표현에 많은 이의 마음이 동요하고 그 마음까지 느낄 수 있다니. <노담>을 시작으로 얼마나 많은 작품에서 그가 얼마나 고민을 했고, 또 감정의 싸움으로 이 자리에 올 수 있었는지 여실히 전해졌다.

사랑하는 여인 에스메랄다에 대한 감정 역시 조금은 달라졌다고.

"초연 때는 모성애에 대한 감정을 풀고 싶었다. 이번 역시 그 감정을 버리지 않고 내재돼 있지만, 반대로 내가 지켜주고 싶은 에스메랄다로 표현하고 싶었다. 가슴이 아프다."

인물을 철저하게 분석해 목소리 구현하기도

특히 윤형렬의 콰지모도는 다른 작품에서의 모습과 다르다. 외적인 모습뿐 아니라, 목을 긁는 듯한 허스키한 목소리는 안타까운 그의 모습을 더욱 더 애절하게 느끼게 한다. 하지만 행여나 목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많은 이의 걱정을 사기도 했다.

"연달아서 공연을 하면 조금 무리가 오긴 하지만, 목을 긁는 게 아니다. (가슴을 어루만지며) 가슴이 긁혀서 나는 소리다. 음역 등 상황에 따라 다르게 부르는데, 허스키하게 부르는 건 초연 때부터 해서(표현하는 데 어렵지 않다)."

목을 긁는 게 아니라 가슴이 긁혀서 나오는 소리.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지만, 윤형렬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라는 점은 분명했다.

"성당의 종지기니 귀가 멍멍할 것 아닌가. 그러니 말을 할 때 크게 할 것이고, 목이 갈 수밖에 없을 거고, 목소리가 허스키할 거라고 생각했다. 신체도 한쪽으로 굽어져 있어서 건강한 목소리를 나올 수 없을 거고, 그래서 그릉그릉한 소리를 더했다."

인물에 대한 철저한 분석 끝에 구현해낼 수 있던 목소리였다. 덕분에 많은 이의 오해도 샀다고.

"작품을 본 많은 분이 원래 그런 목소리인줄 알았다고 하신다. 함께 작품을 하는 배우 고은성도 신기해하더라(웃음). 잘 안 쓰는 소리니까."

 콰지모도 윤형렬

콰지모도 윤형렬 ⓒ 키이스트


콰지모도 분장을 가까이 보니 정말 무서운 마음이 든다. 의상의 무게도 무게일 뿐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친 코, 새카맣게 칠해진 치아는 윤형렬의 얼굴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오죽하면 윤형렬을 기다리던 관객들 역시 목소리로 그를 알아봤다고 할까. 많은 이가 인정한 훈훈한 외모를 감추려니 억울(?)하진 않을까.

"10년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좀 억울하긴 하다(장난기 섞인 웃음). 외모 때문에 그의 내면이 더 아름답게 보이지 않나."

"이제 요령이 제법 생겨 아프지는 않은데, 등이 배긴다. 한 쪽 발로 걸으니까 자연스럽게 스쿼트 자세가 돼 양쪽 허벅지 굵기가 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 오른쪽 다리를 잘 안 써서 아픈데, 계속 써줘야 한다고 하더라."

"나이 들수록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을 것 같다"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를 사랑하는 감정은 사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는 것. 누구나 놀랄 정도로 무서운 외모에 꼽추인 콰지모도의 모습은,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그 앞에서 주눅이 든 감정의 극대화라는 것이다.

"콰지모도의 심정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날 좋아하는 사람이 날 안 좋아하는, 그 감정의 극대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해주고 싶은데, 그들은 날 사랑하지 않는 상황. 콰지모도는 그것마저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오히려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숨지 않나."

"콰지모도가 에스메랄다에게 호각을 주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그대에게 호각을 줄게요>)을 연습하는데, 어느 날 유지가 울더라. 너무 불쌍하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소중한 것을 주는 마음이 너무나 예쁘고 안타깝다고."

과연 에스메랄다가 사랑한 사람은 정말 페뷔스일까. 가사에도 콰지모도에게는 '친구'라는 표현으로 선을 긋기도 한다.

"16세 어린 마음에 페뷔스는 백마 탄 왕자이지 않았을까. 페뷔스의 갈등의 깊이는 원초적이고 얕았을 거 같다. 프롤로가 가장 깊고.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린 것 아닌가. 프롤로는 표현할 게 정말 많은 인물이다. 저항하고 더 처절하고, <신부가 되어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 <파멸의 길로 나를> 두 곡에 자신의 죄책감과 혼란, 인간적인 면모가 더해져 더 슬프지 않나!"

윤형렬은 앞서 <에드거 앨런 포> 초연에서는 목사 그리스월드를 분하더니 재연 때는 포  역으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노담>에서도 콰지모도 외에 맡고 싶은 역할이 있을까.

"나이가 들면 프롤로를 하고 싶다. 나이 들수록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많을 거 같다. 40대 전에는 정반대로 그랭구와르를 하고 싶다. 다른 창법으로, 멋있는 척도 할 수 있고(웃음)."

의도한 것도 아닌데(?) 세 남자에게 사랑을 받는 집시 에스메랄다, 에스메랄다에게 사랑에 빠졌지만 정혼자가 있는 페뷔스, 신부지만 에스메랄다를 사랑하게 된 프롤로. 그리고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에 빠진 콰지모도. 모두 안타까운 인물이다.

"다 안타깝다. 그래도 역시 콰지모도 아닐까.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 않나. 선택권이 없는 사람이다. 에스메랄다를 보면 정말 미인박명. 그 시대 얼마나 많은 집시가 춤을 췄을까. 실제로 살다 보면 외적인 것만으로 곡해를 받지 않나 싶다. 그들의 순수한 행동도 우리가 느껴지는 대로 생각하고. 그런 감정이 현시대까지 남아있는 거 같다. 외적인 것이 주는 오해들. 콰지모도와 에스메랄다는 외적으로 정반대이지 않나. 그런데도 곡해를 받는다." 

"<노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 인생의 전환점"

<노담>을 보고 나면 잊히지 않는 단어가 있다. 바로 '숙명'이다. 원작자 빅토르 위고는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구석에 쓰여 있는 숙명이란 뜻의 '아나키아'(ANÁΓKH)라는 문구를 보고 소설을 썼다는 일화가 전해지기도 한다. 윤형렬은 '숙명'이라는 물음에 "무대"라는 답을 내놨다. 고생은커녕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물 흐르듯 여기까지 온 듯한 귀공자 이미지지만, 윤형렬은 무대에 오르기 위해 부모님의 반대도 무릅쓰고 마이크를 잡았다.

"원하는 게 있으면 해내야 한다. 그런 과정(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KMTV 가요제에 나가 은상 수상, 자작곡으로 유재하 가요제에서 수상 등)이 있기 때문에 콰지모도의 감성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거 같기도 하고. 그 당시 록까지 했기 때문에 더 도움도 되고(웃음)."

"10년 전 <노담>을 못했더라도 무대에 섰을 것이다. 가수로 앨범이 나왔을 때고, 가수를 하다가 잘 됐을 수도 있고. 만약 안 됐다면 배우를 했을 수도 있고, 뮤지컬에도 오르고 있지 않을까."

뿐만 아니라 윤형렬은 올해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다. 현장(무대)에 있으면서 이렇게 꾸준히 공부를 하는 배우는 정말 드물다.

"이왕하는 거 열심히 하고 싶다. 후배들이랑 교류도 하고. 필드에 있는 사람들이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내가 학교에 있으면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작품도 꾸준히 하고 싶다."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 윤형렬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 윤형렬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이번 무대에 오르면서 작품이 더 다층적으로 느껴진다고 한 윤형렬. 어느 부분일까.

"연출적인, 테크닉적인 부분인데 표면적으로 < BELL 벨 >을 부를 때 에스메랄다의 모습이 각자 자신이 기억하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프롤로는 <파멸의 길로>를 부를 때 에스메랄다가 우물가에서 씻는 모습, 페뷔스는 에스메랄다가 춤을 추며 <보헤미안>을 부르는 모습으로."

"감정적인 부분에서는 <불공평한 이 세상> 부를 때 '난 불공평해!'라고 불렀다면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누가 날 사랑하겠어...'라는 감정이다. 누군가에 사랑을 받아본 적 없기 때문에, 그렇게만 살았기 때문에 그 감정을 모르는 것이다. 분노, 체념보다 상대방의 그런 행동까지 받아들이는, 인정하는 마음."

원곡과 번역 사이를 더 알고 싶어,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덕분에 곡을 부르는 마음도 달라졌다고.

"주체와 객체가 바뀐 게 있는데 <불공평한 이 세상>에서 '무정한 이 세상 이토록 추한 내가 어떻게 원하나요'라는 대사를 직역하면 '이 추한 나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나요'라고 하더라. 느낌이 완전히 다르더라. 나라도 이런 사람을 싫겠다, 라는 거잖나. 내가 슬프지 않고 담담하게 불러야 관객들도 더 슬퍼질 거 같았다.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부르려고 한다. 받아들이는 것. 그럼으로써 콰지모도를 더 안아주고 싶게 말이다."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를 부르는 마음도 마찬가지.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예전에는 감정 표출을 다 했다. 이번에는 안 터트리려고, 꾹꾹 감정을 누르려고 한다. 관객들은 '콰지모도가 미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프롤로까지 밀어버리지 않았나."

"공기가 멈추는 느낌이다. 세상을 떠난 에스메랄다를 보고 관객들이 얼마나 숨이 막힐까. 디렉션은 시신을 정리하는 것인데, 콰지모도라면 어떤 마음이 들까..생각했다. 원래 가진 게 없었던 인물이고, 에스메랄다의 사랑을 바란 것도 아니다. 근데 그 마저도 잃었다. 그런 사람의 공간, 시간의 멈춤을 표현하고 싶었다. 살았을 때, 내게 물을 주던 그 손을 잡았는데 또 감정이 다르더라. 너무나도 다른 거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 윤형렬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콰지모도 윤형렬 ⓒ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윤형렬처럼 <노담>에 대해 깊숙하게 고민한 이가 또 있을까. 작품뿐 아니라 콰지모도란 인물에 대한 애정이 <노담>이 초연임에도 또, 데뷔작임에도 윤형렬을 빛날 수 있게 만들었고, 그 빛은 다른 작품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지금의 윤형렬을 있게 한 힘이 됐다.

"<노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작품이다. 결국은 하게 되는, 해야 하는 작품. 제 인생의 전환점이자 좋은 기회다."

마지막으로 콰지모도에게 해주고 싶은 말에 대한 질문. 수많은 감정이 담긴, 함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네 잘못이 아냐."

한편, <노담>은 다음달 5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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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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