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4년의 정규과정을 모두 마쳤다. 졸업 작품에 논문까지 해야 할 것들을 모두 했지만 아직 대학을 떠날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취업이 성사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취업시장에서는 여전히 졸업자보다 졸업예정자의 신분이 나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추가로 돈을 내고 졸업을 유예했다.

취업시장에 바로 뛰어들 수도 없었다. 적어도 기본적인 자격증은 있어야 했다. 그렇게 생활비를 벌기 위한 아르바이트와 자격증 공부의 병행이 시작됐다. 요즘 기업들은 구인난으로 어렵다던데 이상하게도 청년들의 취업을 위한 여정도 만만치 않다. 아니 심각하다.

그래서 < SBS 스페셜 > '취준진담 역지사지 면접 프로젝트'에서는 구인난이 심각한 중소기업 임원진들과 취준생들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했다. 바로 취준생들이 면접관이 되고 기업의 임원진들의 면접자로서 역으로 선택받도록 하는 것이다. 구인난과 취직난의 간극. 과연 메울 수 있었을까.

'열정 타령'하는 회사 대표, '연봉이 중요하다'는 취준생

 면접관들의 표정을 살핀 항공사의 상무가 신입사원들의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어필했으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현재까지는 항공사가 가장 점수가 낮아보였다.

면접관들의 표정을 살핀 항공사의 상무가 신입사원들의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어필했으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현재까지는 항공사가 가장 점수가 낮아보였다. ⓒ SBS


프로젝트에는 저가 항공사의 상무, 카페 프랜차이즈 대표이사, 여행 플랫폼 인사총괄 이사가 참여했다. 이들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승무원의 헤어스타일의 제한을 없애는 등 직원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의 항공사나 월요병을 없애자는 취지로 오후 1시 출근과 6시 칼퇴근을 권장하는 카페 프랜차이즈의 모습 등이 나왔다. 왠지 기대가 됐다. 직원들에게 '헝그리 정신'이나 노력, 열정을 탓하는 '흔한 꼰대'는 아닐 것 같았다.

면접관으로는 155개의 자기소개서를 작성 중인 취준생, 졸업을 아직 유예 중인 11학번 학생, 정치학을 복수전공 중인 성악과 학생, 회사를 나온 뒤 취직을 준비 중인 중고신입 등 6명의 지원자가 참가했다. 이미 회사를 들어가 경험을 하고 나온 사람들, 수많은 면접 경험이 있는 지원자 등이었기에 날카로운 질문이 나올 것 같았다. 게다가 이들은 체계적인 면접과정을 위해 면접관으로서의 교육도 받았다.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됐다. 첫 질문은 연차 사용에 대해서였다. 여행 플랫폼과 프랜차이즈의 경우에는 오히려 휴가일보다 많은 연차를 사용하거나 제대로 지켜지고 있었다. 반면, 저가 항공사의 경우에는 연차 사용일이 10일 정도로 낮은 모습을 보여 면접관들에게 점수를 깎아 먹었다. 상무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회사를 위한 직원들의 자발적인 모습이라고 변명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강제적으로라도 연차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 면접관인 취준생들의 생각이었다.

다음 질문에서도 저가 항공사는 위태로웠다. 신입사원들의 조기 퇴사에 대한 질문이었다. 항공사의 상무는 '직원들의 열정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답변했다. 회사가 좋은 복지나 처우를 통해 잡아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열정으로 현장의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이와 다르게 여행 플랫폼 이사는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은 회사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면접관들의 표정을 살핀 항공사의 상무가 신입사원들의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어필했으나 효과는 별로 없었다. 현재까지는 항공사가 가장 점수가 낮아보였다.

진지하지 못하게 느껴진 태도들, 달라진 건 없어보였다

 항공사의 대표는 개별면접 자리에서 오히려 면접관들에게 조언을 했다.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의 정보를 인터넷 등을 통해서 많이 파악하고 이를 면접에서 활용하라는 것이었다.

항공사의 대표는 개별면접 자리에서 오히려 면접관들에게 조언을 했다.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의 정보를 인터넷 등을 통해서 많이 파악하고 이를 면접에서 활용하라는 것이었다. ⓒ SBS


개별면접과 술자리 면접 등이 이어졌다. 회사 임원들의 모습은 사실 실망스러웠다. 항공사의 대표는 개별면접 자리에서 오히려 면접관들에게 조언을 했다.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의 정보를 인터넷 등을 통해서 많이 파악하고 이를 면접에서 활용하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여러 가지 스펙을 쌓는 지원자들을 향해 제대로 된 꿈이나 방향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HSK(중국어능력시험)에 대해서는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간단하게 시험 한 번 보면 되는 것이라는 말을 했다가 면접관에게 호되게 정정받기도 했다.

카페 프랜차이즈의 경우나 여행 플랫폼의 경우에도 좋은 답변이 되지는 못했다. 회사의 성장을 함께 만들어가는 낭만을 이야기하는 모습이나 야근 수당 없는 야근을 당연시하는 모습 등이 나왔다. 게다가 낮은 연봉은 치명적인 약점으로 면접관들에게 다가갔다.

술자리 면접은 어땠을까. 면접관들의 질문이 쉬웠다고 말하며 답변 요령을 이야기하는 이사의 모습. 높은 연봉을 원하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맞다 주장하는 대표. 사원이지만 대리, 과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중소기업의 장점을 어필하는 상무까지. 편해보였다. 면접관들과 술을 마시는 모습이라기에는 긴장감이 없었다. 자신들의 생각이 거침없이 나왔다. 과연 진짜 면접관들에게 선택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면 이럴 수 있었을까. 단순히 청년들의 생각을 알아볼 수 있는 재밌는 자리라고 생각했기에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에 선택받지 못한 회사 임원의 눈물이 나오기는 했지만 크게 와 닿지 않았다.

결과는 연봉이 비교적 높았던 항공사가 제일 많은 선택을 받았다. 면접 내내 면접관들로부터 '꼰대'라는 인상을 풍기기는 했지만 낭만과 발전 가능성 등 눈으로 볼 수 없는 수치보다 숫자로 확인할 수 있는 연봉 등이 높은 점수로 작용한 결과였다. 어차피 모두가 '꼰대' 같아서 그나마 가장 성장할 수 있고 대우가 좋은 곳을 선택했다는 말도 나왔다.

결국은 돈. 이렇게 생각하고 끝날까 아쉬웠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도, 면접을 경험하고 돌아간 회사 대표들도. 과연 연봉이 전부였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연봉이란 '꼰대'들과 어려운 취직난에 지칠 대로 지친 취준생에게 그나마 참고 버틸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이지 않을까. 결론이 '돈이 있으면 다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열심히 노력하지만 아직은 열악한 조건을 가진 중소기업, 일한 만큼 제대로 대우받고 싶은 취준생들. 이들의 간격은 제대로 좁혀지지 못한 것 같지만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156번째의 자기소개서를 쓰는 이도, 자신의 무대를 찾고 있는 성악과 학생도, 진짜 행복을 찾는 이도. 다시 면접관이 아닌 취준생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그리고 나와 같은 많은 이들에게 나은 내일이 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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