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새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한 장면

tvN 새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한 장면 ⓒ tvN


tvN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막을 내렸다. 나르시시스트 부회장 이영준(박서준)과 완벽한 일처리를 하는 비서 김미소(박민영)의 로맨스를 매우 경쾌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는 청량제 같은 드라마였다.

하지만, 가볍고 유쾌한 느낌의 이 드라마를 심리학의 시선으로 꼼꼼히 들여다보니 웃어넘기기에는 아까운 메시지들을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남자주인공인 영준이 변화하는 과정은 어린 시절의 상처를 수용하고, 스스로를 통합하며 성장해가는 심리상담의 과정과 매우 유사했다. <김 비서가 왜 그럴까> 속 영준의 심리적 성장과정을 따라가 본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 : 의문갖기, 변화가 필요한 시점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한 장면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한 장면 ⓒ tvN


첫 회 드라마는 영준의 의문으로부터 시작한다. 자신을 9년 동안 완벽하게 보좌해왔던 김 비서 미소가 갑자기 퇴사를 선언한 것이다. 미소는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서 그만 둔다고 밝히지만, 영준은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여태까지 내가 모르는 건 하나도 없었는데 이건 정말 모르겠군. 답답해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야.(1회)"

이 후 영준은 미소의 퇴사를 막기 위해 절치부심한다. '소박한 결혼생활'을 꿈꾼다는 미소의 말에 대뜸 자신이 결혼해 주겠다고 해보기도 하고 갖가지 최고 대우를 약속하며 김 비서를 붙잡아 두려한다. 영준은 이런 자신의 행동에 대해 "김 비서가 없으면 불편하니까"라고 설명한다. 즉, 자신의 완벽성에 흠집이 나는 것이 싫어 미소를 떠나보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불일치가 발생한다. 자기중심적인 나르시시스트 영준이 의문을 품는 대상은 타인인 미소의 마음이다. 자기 위주로 생각하는 나르시시스트가 타인의 마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불일치가 발생했을 때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도식에 불일치를 맞춰서 해석해보려는 시도를 한다. 영준이 김 비서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애써 "김 비서가 없으면 불편하니까"라는 말로 포장한 것은 '나르시스트'라는 자신의 기존 정체감에 맞게 불일치를 줄여보려는 시도다. 하지만 이와 같은 합리화는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며 원하는 결과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드라마 초반 영준이 김 비서를 붙잡아두려는 시도들이 연이어 실패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안하다는 말 이젠 어렵지 않군" : 변화의 원동력이 되는 작은 성공 경험

다행히 영준 곁에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 유식(강기영)이 있었다. 영준은 유식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마음 안에 생긴 불일치가 의미하는 바를 깨닫는다. 자신이 정말로 원했던 건 김 비서와의 친밀한 관계이며,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기중심성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간다. 물론 형과의 관계 등 주변 환경도 이와 같은 성찰을 자극했을 것이다.

마침내, 영준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벽처럼 쌓아왔던 자기의 경계를 허무는 중요한 진전을 한다.

5회 방송분에서 영준은 형에 대한 감정문제로 김 비서에게 화를 내고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못해 문자를 썼다 지웠다 한다. 박 사장을 찾아가 "미안하다고 써 본 적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 하던 영준은 6회 방송분에서 드디어 미소에게 '김 비서 미안해'라고 문자를 보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미안하다는 말 이젠 어렵지 않군.' 

이 작은 성공경험 덕분에 영준은 휴가를 쓴 미소에게 "말했잖아 내가 오늘 다 맞춘다고.(6회)" 말할 용기도 내게 된다. 진솔해진 영준에게 미소 역시 마음을 활짝 열어준다.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 상처의 수용 그리고 치유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한 장면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한 장면 ⓒ tvN


이제 두 사람은 부회장과 김 비서가 아닌 영준과 미소. 즉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서로를 알아가기를 원한다. 미소는 주변 사람들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영준과 자신이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영준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던진다. 미소의 이런 질문은 영준에게도 보다 온전한 한 사람으로 미소와 교제하고 싶은 마음을 자극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친밀한 관계를 통해 자신의 자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며, 나의 다양한 모습을 수용하고 통합해 성장하고픈 경향성 가지고 있다.

미소의 진솔한 태도, 현실에서 부인해왔던 자신의 다른 면('미안하다'고도 말 할 수 있게 된 점)을 수용하게 된 점들은 영준이 더욱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끈다. 영준은 자신이 기억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유괴된 기억을 애써 숨기며 살아왔음을 털어 놓는다.

12회 영준이 자신의 상처를 말하는 장면은 그가 '없던 것으로 여기고 싶었던' 아픈 과거를 수용하고, 자신 안에 통합해내는 진정한 치유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영준의 과거 수용은 가족간의 화해도 이끌어 낸다.

영준은 이제 겉으로만 '완벽한' 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까지 수용할 수 있는 보다 '온전한' 한 사람이 된 것이다. 때문에 영준은 과거를 이야기한 후 미소에게 "모든 사실이 밝혀지고 나면 불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개운하군(12회)"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노력하잖아 김 비서 챙겨주려고" : 변화의 실천

영준은 김 비서의 퇴사 선언으로 인해 생겨난 내면의 불일치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포장하지 않고  솔직히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또한, 친밀한 관계 속에서 과거의 상처를 조우하고 수용하며 보다 통합된 자아를 갖게 됐다. 다음 단계는 이 성장이 계속될 수 있도록 일상에서 연습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영준의 과거가 밝혀진 후 미소와 영준의 연애장면들은 이런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14회에 자신이 챙겨주는 것을 마다하는 미소에게 영준은 "나한테도 직업병이 있어. 어딜 가나 다른 사람한테 챙김을 받는데 익숙한. 그래도 이렇게 노력하잖아. 김 비서 챙겨주려고"라고 말한다.

이는 영준이 일상 속에서 자신이 잘 쓰지 않던 내면 속 다른 면을 표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영준의 이런 노력은 그토록 곁에 두고자 노력했던 김 비서를 떠나보내고 미소를 '김미소'로 살도록 배려해주는 장면에서 빛을 발한다. 영준은 진정한 사랑은 곁에 두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성장을 돕는 것임을 깨닫고 이를 실천한 것이다.

이런 영준의 변화에 미소 역시 달라진다. '나를 찾기 위해서' 회사를 그만 두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미소는 영준과의 관계를 통해 진심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나의 일상 속에 이미 있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영준에게 "누군가를 보좌하고, 발생된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일이 끝난 다음 느끼는 성취감이 좋아요.(14회)"라고 화답한다.

"김미소가 왜 그럴까" : 계속되는 질문 그리고 성장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한 장면

<김비서가 왜 그럴까>의 한 장면 ⓒ tvN


영준과 미소는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의 상처를 수용하고 자기 안에 통합해 보다 온전한 나로 성장했다. 그리고 드라마는 '결혼'이라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결혼이 해피엔딩의 상징처럼 마무리된 부분은 조금 진부하긴 하지만, 이 커플의 결혼준비 과정을 보면 이들의 결혼생활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듯하다.

먼저 영준은 "시월드는 용납 못해 내가(16회)"라며 가부장적 결혼문화에 분명히 선을 긋는다. 미소 역시 시어머니에게 "저 이렇게는 결혼 못하겠습니다. 저를 아껴주시는 마음 너무나 잘 알고 감사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에 넘치는 선물들을 받기만 하는 건 좀 어려울 것 같아요.(16회)"라고 솔직히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당당함을 지녔다. 여기에 "내가 실수했구나. 우리 미소가 너무 예뻐서 마음이 앞섰나봐"라고 답하는 쿨한 시부모님이 함께 한다. 아마도 어떤 문제가 생겨도 솔직하게 의사소통하며 해결해갈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회를 시작하면서 영준은 박 사장에게 다시 이렇게 묻는다. "김미소가 왜 그럴까?"라고. "김 비서가 왜 그럴까?"에 대한 답을 찾으며 성장해온 영준은 아마 결혼 후에도 이 질문을 계속할지도 모르겠다. 기껏 답을 찾아왔는데 결혼을 앞 둔 마지막회에도 여전히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게 의아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질문이야말로 커플 혹은 부부사이에서 절대 놓치 말아야 할 것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상대방을 이해해보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이 물음은 상대방의 새로움을 발견하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 줄 테니 말이다. 어쩌면 이런 질문이 멈추는 순간, 우리는 서로 이해하기를, 관계를 통해 성장하기를 포기하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이 "왜 그럴까" 궁금하십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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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상담심리사. 심리학, 여성주의, 비거니즘의 시선으로 일상과 문화를 바라봅니다. 모든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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