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20회 정동진독립영화제 개막식 풍경

지난 3일 20회 정동진독립영화제 개막식 풍경 ⓒ 성하훈


 레드카펫으로 입장한 관객들이 정동진독립영화제의 상징 우산살소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레드카펫으로 입장한 관객들이 정동진독립영화제의 상징 우산살소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성하훈


지난 3일 전국 대부분의 지역은 폭염이 지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정동진의 폭염은 다른 도시만큼은 아니었다. 선선한 바닷바람이 불어왔고 영화는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식혀주고 있었다.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라는 슬로건은 정동진에 온 사람들을 하나로 모았다. 모두가 슬로건을 함께 외치는 순간은 영화가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였다.

20회를 맞는 정동진독립영화제가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 속에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의 짧고 굵은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무더위 속에서도 영화제를 찾은 관객은 지난해 6000명에서 올해는 7600명에 이르며 성장세를 보였다. 주말에는 늘 가장 많은 관객이 몰리는 편인데, 올해도 각지에서 몰려든 관객들로 상영장인 정동초등학교 운동장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짧고 굵은'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독립영화에 대한 재미를 한껏 느끼게 만들었고, 참석한 관객들에게 강렬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입구 레드카펫을 밟고 입장한 관객들은 포토월에 있던 '우산살 소녀' 인형과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촬영하며 영화제의 주인이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20회 정동진독립영화제의 사회를 맡은 변영주 감독과 이상희 배우

20회 정동진독립영화제의 사회를 맡은 변영주 감독과 이상희 배우 ⓒ 성하훈


변영주 감독과 이상희 배우의 사회로 시작한 3일 개막식에서는 밴드 '새소년'의 축하공연이 돋보였다. 개막 축하 공연이었음에도 연주가 끝난 후 앵콜을 원하는 관객들의 함성이 드높을 정도였다.

짧고 굵지만 강렬한 여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은 개막일부터 적극 참여해 20회 영화제를 축하했다. 개막식이 열리는 순간 500여 좌석은 모두 들어찼고, 운동장 곳곳은 모기장 텐트와 함께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은 관객들로 가득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영화제 기간인 3일 내내 이어졌다. 토요일인 4일에는 텐트촌이 연상될 정도로 수십 개의 텐트가 운동장 곳곳에서 자리를 잡았다. 영화제를 한번이라도 찾은 관객들에게 모기장 텐트와 야외 의자 등은 이제 필수품이 됐을 정도다. 많은 관객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마시거나 다양한 음식을 맛보며 가장 편한 자세로 영화를 보는 자유스러움을 만끽했다.

 첫날 상영이 끝난 후 정동진독립영화제 개막을 축하하며 격려의 인사를 전하고 있는 오석근 영진위원장

첫날 상영이 끝난 후 정동진독립영화제 개막을 축하하며 격려의 인사를 전하고 있는 오석근 영진위원장 ⓒ 성하훈


영화제 20회를 맞아 영화진흥위원회 오석근 위원장과 최인국 지원사업운영본부장이 현장을 찾은 것도 눈에 띄었다. 영진위원장 참석은 그동안 없었던 일인데, 오 위원장은 개막일 밤늦게까지 자리를 함께했다. 뒤풀이 자리에서는 오 위원장이 정동진독립영화제의 발전을 기원하며 건배를 제의하기도 했다.

감독과 배우, 제작자 등 영화계 인사들의 참석도 두드러졌다. 인천영상위원장을 역임한 권칠인 감독과 이현승 그랑블루페스티발 총감독, 안정숙 인디스페이스 관장, 홍형숙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집행위원장, 엣나인필름 정상진 대표 등이 영화제를 찾았다. 한국 다큐멘터리 대부라 불리는 김동원 감독은 <송환>에 출연했던 장기수 어른을 모시고 1회부터 줄곧 정동진영화제를 지키고 있는 산 역사의 증인이다.

둘째 날에는 조민수 배우가 등장했고, 정동진영화제의 열혈 지지자인 김꽃비 배우는 지인들과 함께 영화는 물론 오후의 바닷가 물놀이에도 적극 참여하며 정동진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사회를 본 이상희 배우와 공민정 배우, 김예은 배우 등등 독립영화에서 뜨는 배우들도 첫날부터 관객들과 호흡하며 영화제를 지켰다.

감독과 배우가 관객과 직접 만나는 현장, '독립영화가 너무 재밌다'

 영화 상영 직후 관객들의 잘의 응답을 받고 있는 감독과 배우들

영화 상영 직후 관객들의 잘의 응답을 받고 있는 감독과 배우들 ⓒ 정동진독립영화제


상영작으로 초청된 감독과 배우들은 커다란 스크린에서 자기 영화가 상영되고 관객들의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에 고무된 표정이었다.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단편영화가 수많은 관객들 앞에서 상영되는 것 자체만으로도 벅찬 표정이었다.

2016년에 초청됐던 한 여성 배우는 올해는 두 편의 영화가 초청돼 2년 만에 다시 관객들 앞에 섰다. 그는 "영화를 보면서 관객이 하는 이야기가 다 들리는데 너무 좋다"며 "내년에는 작품이 없더라도 초청해 달라"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다.

관객들 반응도 비슷했다. 한 관객은 영화 상영 후 질의 응답시간에 "지난해 영화들이 너무 좋아서 올해도 또 왔는데, 이번 역시도 영화들이 너무 좋다"며 정동진영화제에서 상영된 수준 높은 독립영화의 매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정동진독립영화제 둘째날 땡그랑 동전상 수상작인 <어른도감>김인선 감독. 역대 최고 상금을 기록했다.

정동진독립영화제 둘째날 땡그랑 동전상 수상작인 <어른도감>김인선 감독. 역대 최고 상금을 기록했다. ⓒ 정동진독립영화제


관객들의 반응은 '땡그랑 동전상'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땡그랑 동전상은 동전 액수가 아니라 모인 동전의 개수로 당일 상영작 중 인기작을 선정해 모든 동전을 상금으로 주는 방식이다. 승자독식제로 20회 동안 이어져 왔다.

개막일 '땡그랑 동전상' 수상작은 김도영 감독의 영화 <자유연기>였다. 아이를 키우는 가난한 여성 배우가 영화 오디션 제안을 받고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하는 내용으로, 올해 미장센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번 정동진 영화제에서 관객들의 선택을 받으면서 또 한 번 영화의 힘을 입증했다. 첫날 동전 개수는 2337개였고, 총 31만6358원의 금액이었다. 그동안 최고 상금이 20만 원대에 불과했는데, 처음으로 30만 원을 넘어선 것이다.

 관객들이 낸 수북한 상금이 담긴 땡그랑 동전상

관객들이 낸 수북한 상금이 담긴 땡그랑 동전상 ⓒ 성하훈


하지만 이 기록도 다음날 바로 깨졌다. 두 번째 날 수상작인 김인선 감독의 <어른도감>은 총 동전 수 4051개에 52만7100원의 금액을 기록하며 역대 정동진영화제 최고 신기록을 세웠다. 특히 이날은 <신과 함께-인과 연>이 일일 최다관객을 동원한 날이다. 한국영화 흥행과 정동진영화제 상금에서 두 개의 신기록이 나온 셈이다. 5일에는 오지수 감독의 <어른이 되어>가 23만8640원을 상금으로 받으며 마지막 날 승자가 됐다.

한국독립영화의 성과

정동진독립영화제는 1998년 한국독립영화협회와 인디스토리가 생긴 지 1년 후인 1999년 지역 영화단체인 강릉씨네마떼끄와 함께 조직됐고 이 시기를 대표하는 독립영화계의 성과로 평가받는다. 개막식 사회를 본 변영주 감독은 "영화제를 시작했던 조영각(현 영진위원)과 박광수 집행위원장도 20년간 이어질지 몰랐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2박 3일의 짧은 영화제가 20회를 맞이하며 국내 대표 여름영화제로 우뚝 선 것은 영화 불모지와 같았던 강릉에서 씨네마떼끄 운동을 벌인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박광수 집행위원장은 20년간 영화제를 뒤에서 챙기며 안정적이고 재미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강릉씨네마떼끄 권정삼 대표는 개막 선언 때만 무대에 오를 뿐 올해도 내내 기념품을 팔며 뒤에서 영화제를 챙겼다. 강릉 씨네마떼끄 출신인 김동현 서울독립영화제 집행위원장도 해마다 영화제 때가 되면 힘을 보태고 있다.

 점심식사 '기분 좋은 밥상'을 준비하고 있는 이마리오 감독(왼쪽)과 윤영호 감독

점심식사 '기분 좋은 밥상'을 준비하고 있는 이마리오 감독(왼쪽)과 윤영호 감독 ⓒ 성하훈


여름마다 정동진을 챙기는 독립영화 감독들의 헌신도 영화제 성공에 일조한 밑바탕이다. 윤영호 감독과 이마리오 감독, 박배일 감독은 강릉씨네마떼크 회원들과 함께 해마다 점심식사인 '기분 좋은 밥상'을 책임지고 있다. 매년 영화제 기간 중 점심시간에는 이들이 직접 만든 식사가 제공되는데, 식사를 제공받은 관객들은 내고 싶은 만큼 돈을 낸다. 올해는 1회 영화제 때 메뉴였던 비빔국수와 닭계장 등이 제공돼 영화제에 온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영화제 때면 카페를 열어 커피 등 각종 음료를 판매하는 '상수동카페'는 정동진영화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명사가 됐다. 또한 독립영화를 지원하고 있는 커피전문점 '빈스로드' 정윤재 대표는 영화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에서 질문을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원두커피 1봉지씩을 선물하며 영화제를 후원했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부족하고 적은 예산으로 운영되지만 항상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해마다 성장하는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앞서 언급한 사람들의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한 편의 멋진 작품인 것이다. 원승환 부관장은 "오래 전에는 정동진 하면 <모래시계>였지만 19년이 지난 지금 살아남은 것은 정동진독립영화제"라며 "이 영화제는 독립영화가 지역에 남긴 긍정적인 성과로 오래 지속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20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둘째날인 4일 토요일 상영 전 관객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있다.

20회 정동진독립영화제 둘째날인 4일 토요일 상영 전 관객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고 있다. ⓒ 정동진독립영화제



정동진독립영화제 땡그랑 동전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