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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인권변호사 시절 성남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의 변호를 맡는 등 조직폭력배 측과 연루·유착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지사는 이들이 조폭인 것을 알지 못했다며 연루·유착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21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인권변호사 시절 성남 국제마피아파 조직원의 변호를 맡는 등 조직폭력배 측과 연루·유착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지사는 이들이 조폭인 것을 알지 못했다며 연루·유착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 SBS 그것이알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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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경기도지사와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이하 <그알>) 간에 진실 공방이 전개되고 있다. 7월 21일자 <그알> 방송이 이재명 지사와 국제마피아파(성남시 조폭)의 유착 의혹을 다루자, 이 지사는 방송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반론을 제기하다가 8월 3일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재명과 <그알> 중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고 있던 간에, 비교적 확실한 게 하나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정치인과 조폭의 유착설을 좀 더 빈번하게 접촉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조폭이란 말은 많이 들리지만, 또 이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도 적지 않지만, 정작 체계적 지식이 별로 쌓여 있지 않다. 이에 대한 우려가 사회학 학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이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 현상인데도 아직 체계적 접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공유식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사회의 조직폭력과 조직범죄'란 논문에서 이렇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회학은 그동안 한국사회의 발전과 함께 성장해온 조직범죄와 조직폭력에 관한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특히 지난 몇 년간 '조폭 예찬'이라 할 정도의 높은 대중적 관심에도 불구하고 연구가 부족했던 것을 자료 접근에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돌리기에는 매우 궁색하다." - 2004년 <한국사회학회 심포지움 논문집> 중에서.

조폭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학계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학계에서 제대로 정보가 생산되지 않다 보니, <친구><조폭 마누라><달마야 놀자><범죄와의 전쟁> 같은 조폭 영화나 <야인시대> 같은 조폭 드라마에 대해 대중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 논문에서는 연구 활성화 방안으로 "조직폭력에 대한 참여관찰적 심층 연구가 시도될 만도 하다"고 제안했다. 학자들이 조폭 세계와 접촉해 관찰 연구를 수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책을 가까이하는 사람들한테는 정서적으로 쉽지 않은 방안이다.

그런 방안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사회학 학자들은 물론이고 조폭 세계에 호기심이 많은 사람들한테 '다행'스러운 현상이 하나 있다. 합법적 영역에 대한 조폭조직들의 진출이 점차 많아지고 있어서, 앞으로는 훨씬 더 용이하게 이 문제에 대한 정보를 획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앞으로 정치와 조폭의 유착설을 더 자주 접하게 될 거라고 언급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조폭의 활동이 음성적으로뿐 아니라 양성적으로도 점차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등장한 정치 깡패

해방 직후와 이승만 정권 때는 정치와 조폭의 유착이 훨씬 강했다. 정치 깡패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시기의 유착은 지금과 판이했다. 이 시대 조폭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방성수 조선일보 기자가 쓴 <조폭의 계보>에 묘사된 장면이다.

"1957년 5월 25일,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발생한 '5·25 장충단 민주당 시국강연회 방해 사건'도 이정재와 김두한이 정면충돌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봄기운이 완연한 5월 하순, 서울 장충단공원에 20여만 관중이 모였다. 이승만 독재정권을 규탄하는 시국강연회를 듣기 위해서였다.

강연이 막 시작될 무렵, 50여 명의 폭력배들이 각목을 들고 야유를 퍼부으며 단상으로 돌진했다. 강연회는 난입한 깡패들과 그들을 제지하는 사람들이 뒤엉켜 난장판이 됐다. 주최 측 경비 책임자는 김두한 씨였다. 난동의 배후로는 자유당 전 감찰부 차장이던 이정재 씨가 지목됐다. 현장 난동의 책임자로는 유지광 씨가 지목됐다."

장충단 사건을 보도한 1957년 5월 27일자 <동아일보>.
 장충단 사건을 보도한 1957년 5월 27일자 <동아일보>.
ⓒ 출처: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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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두한은 국회의원이었다. 민주당 경비 책임자인 그도 '주먹' 출신이고, 자유당 전 감찰부장 이정재도 조폭이었다. 이들이 대중 정치집회에서 맞붙는 장면은 정치와 조폭의 유착이 얼마나 흔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위 장면에서 추출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조폭이 정치보다 하위에 있다는 점이다. 이승만 정권 때의 조폭은 정당의 행동부대 역할을 했다. 또 하나는 조폭의 재정 구조가 비독립적이라는 점이다. 당시의 조폭은 상인들에 대한 지배력을 통해, 혹은 정치권과의 유착을 통해 자금을 확보하거나 이권을 얻어냈다. 기본적으로 남에 의존해서 자금을 충원했던 것이다.

이런 양상은 박정희 쿠데타를 계기로 일변한다. 박정희는 권력을 잡자마자 깡패들을 체포해 시가행진을 시키거나 국토건설단에 투입시켰다. 이 때문에 조폭이 정치권 행동부대 역할을 하거나 정치권과의 유착을 통해 이권을 챙기는 게 힘들어졌다.

정치권력과 조폭의 불화는 전두환 정권 때로도 이어졌다. 전두환 대통령 역시 조폭들을 삼청교육대에 가두었다. 전두환 정권은 집권 후반에는 조폭에 대해 느슨한 태도를 취했지만, 초반에는 박 정권처럼 강경한 태도를 견지했다.

박정희 쿠데타 5일 뒤인 1961년 5월 21일, 군경의 감시 속에 진행된 정치 깡패들의 시가행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의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찍은 사진.
 박정희 쿠데타 5일 뒤인 1961년 5월 21일, 군경의 감시 속에 진행된 정치 깡패들의 시가행진.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의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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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처럼 살 수 없게 된 한국 조폭은 이 상황을 자생력을 키우는 계기로 활용했다. 박 정권 때는 주류 공급권을 확보해 독자적 자금원을 형성하는 데 주력했다. 1980년대에는 유흥업소나 파친코 경영, 부동산 투기 등으로도 진출했다.

이런 자금력을 발판으로 1980년대 후반에는 조폭이 부활하는 듯한 조짐이 보였다. 이승만 정권 때 같은 전성기를 구가하지는 못했지만, '전국구' 조직들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승완의 호국청년회, 김태촌의 신우회, 이강환의 화랑신우회 등이 대표적이다.

범죄와의 전쟁 이후 면역력 생긴 조폭

자금과 조직을 확보하게 되자, 조폭은 다시 정치무대에 눈을 돌렸다. 민주화 투쟁과 야당의 공세로 위기를 느낀 전두환 정권도 조폭의 유용성에 눈길을 돌렸다. 양측의 이해관계가 합쳐진 결과로 생긴 사건이 1987년 통일민주당 창당방해사건, 이른바 용팔이 사건이다. 1957년 장충단 사건을 연상케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조폭은 다시 된서리를 맞았다. 최민식·하정우 주연의 2012년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와 똑같은 타이틀로 전개된 1990년 노태우 정권의 '범죄와의 전쟁'으로 일대 타격을 받았다. 이에 맞서 조폭 조직들도 대응에 나섰다. 위의 공유식 논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러한 조직들은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전국 폭력조직 294개 파의 조폭 7112명이 검거되면서 잠시 전면에서 사라지나, 이후 합법적인 기업형 조폭으로 변신하여 주식투자와 벤처기업, 창투사, 건설사를 운영하는 등 미국에서 나타난 초기 수준의 마피아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고 ······."
 
영화 <범죄와의 전쟁>.
 영화 <범죄와의 전쟁>.
ⓒ (주)팔레트픽쳐스·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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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와의 전쟁 이후로 조폭 조직들이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 전쟁에 대한 조폭의 면역력이 생긴 뒤의 지하경제 규모를 통해 대략적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세무사 정연태의 <지하경제와 죄악세>에 따르면, 1999~2007년 국내총생산(GDP)에서 지하경제가 차지하는 비율은 25.3~28.3%로 추정된다. 국내에서 1년간 생산된 경제력의 4분의 1 정도가 지하경제로 들어갔다는 의미다. 지하경제의 비율에 대해서는 정확한 추산이 어렵고 또 여러 가지 견해가 엇갈리므로, 이 수치는 그저 참고용으로만 활용해야 한다.

정치와 조폭 유착설을 더 자주 접할 가능성

종교 영역으로 유입된 돈, 정치권으로 은밀히 흘러간 돈, 재벌들이 비자금으로 사용하는 돈, 현금 부자들이 보유한 5만원권 다발 등도 지하경제를 구성하므로, GDP의 4분의 1에서 이런 돈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조폭 세계에 들어갔을 수 있다고 대략적이나마 추론해볼 수 있다. 이승만 때는 정치깡패가 대세였다면 이제는 경제깡패가 대세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금 조폭들은 자체적으로 돈을 잘 벌어들이고 있다.

하지만 범죄와의 전쟁을 계기로 대규모 조직들이 와해됐기 때문에, 조폭 세계로 들어간 음성 자금이 수많은 조직으로 쪼개진 채 분배될 수밖에 없었다. 강력한 전국 조직이 등장하면 그 돈들을 흡수해 지금보다 훨씬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아직 그 단계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많은 돈이 그 세계로 들어갔을 수 있다는 것은, 조폭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설명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강력한 전국 조직이 없어 조폭 세계의 자금이 여러 갈래로 분산돼 있다는 점은, 지금 단계에서는 조폭이 중앙정부 차원의 정치에는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지방정부 차원의 정치에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조폭이 경제력을 확대하게 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합법성 확보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또 조폭조직의 몸집이 커지면 국가권력과의 충돌이 불가피하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합법성이라는 외피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단계에서 조폭이 손쉽게 합법성을 확보하는 길은 지방정부와의 유착밖에 없다. 이를 위해 조폭들은 자금과 조직에 갈증을 느끼는 지방 정치인들에게 눈길을 보내고 있다. 예전처럼 정치권을 도와주고 떡고물을 챙기는 수준이 아니라, 독자적인 자금원을 바탕으로 정치인들을 지원하고 그들을 조종하는 방도를 강구하고 있는 것이다. 위의 공유식 논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조폭의 변화상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과거 대도시의 중심지역에서 활동하던 폭력조직들이 점차 지방 소도시 등으로 흩어져서 건설업 등을 통해 고유한 활동 영역을 확보하고 있다."
"정치권에의 종속관계에서 벗어나 경제 영역에서 독립적인 위치를 점유하고 있으며, 활동 공간도 지방자치·지방분권 시대에 맞추어 중앙에서 지방으로 확대하여 가고 있다."

이승만 정권 때와 달리 지금의 조폭은 이처럼 독자적 자금원을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만만한 지방정부의 유착을 도모하고 있다. 경제력이 커지는 만큼 합법성을 신속히 확대하기 위해 이들은 유착의 정도를 점차 강화할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우리 국민들이 정치와 조폭의 유착설을 더 자주 접할 가능성이 있다. 상황이 이러므로 조폭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처법도 그에 맞춰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태그:#조폭, #조직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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