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월화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JTBC 월화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 JTBC


2017년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 대한민국 콘텐츠 대상, 2018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2017 뉴욕타임즈 국제 TV 드라마 탑 10 등. 수상실적을 줄줄이 나열하지 않아도 tvN <비밀의 숲>은 2017년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비밀의 숲> 이수연 작가의 후속작인 JTBC 드라마 <라이프>는 2018년 최고의 기대작이 되었다. 더구나 <비밀의 숲>을 함께 했던 조승우를 비롯해 유재명, 이규형 등 내로라 하는 배우들이 합류한 만큼 기대치는 더욱 높아졌다.

검찰 내부 비리를 하나의 살인사건으로 풀어내기 시작했던 <비밀의 숲>이 그러했듯, <라이프> 역시 상국대학교 병원장 이보훈(천호진 분)의 죽음으로 하루 아침에 자본주의 경쟁에 내몰린 병원의 이야기로 전개를 시작했다. 그 서막은 기대감을 만족시켰다. 상국대학병원의 사장으로 새로 부임한 구승효(조승우 분) 캐릭터에는 사회부적응자였던 황시목(조승우 분)의 그림자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구승효가 의사들을 향해 "인종, 종교, 사회적 지위를 떠나서, 오직 환자에 대한 의무를 지키겠노라 선서하신 우리 의사 선생님들께서"라고 서늘하게 말문을 열기 시작했을 때는 또 한 명의 괴물 캐릭터가 탄생하는 느낌이 들었다.

의료 산업에 대한 의미 있는 비판... 그러나

 JTBC 월화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JTBC 월화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 JTBC


여전히 조승우의 존재감은 탁월하다. 조승우 뿐인가? <비밀의 숲>의 실질적 주인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창준 역을 맡았던 유재명은 <라이프>에서 흉부외과 주경문 교수 역을 맡았다. 그가 "우리는 오늘도 수술장에 들어갑니다. 1만분의 1의 사고 위험도로 환자를 죽인 의사란 말을 들어도"라고 담담한 대사를 읊었을 때, 지방대 출신 교수로 피로에 찌들었지만 사명감만은 놓치지 않은 또 한 명의 의사 캐릭터가 불쑥 들어왔다.

흥미로운 소재와 좋은 이야기, 멋진 캐릭터들이 어울렸는데 왜 시청률은 답보상태일까? <라이프>는 2회 시청률 5.0%를 찍은 이후 6일 방송에서 4.3%까지 하락했다(닐슨코리아 유료가구 플랫폼 기준). 시청자의 이장에서 <라이프>의 이야기는 훌륭하지만, 어쩐지 방송을 보며 자꾸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

<비밀의 숲>이 놀라웠던 건, 검찰 내부의 전문적인 이야기를 시청자가 보기에 무리 없을 만큼 친절하게, 드라마적 재미를 더해 구성했다는 점이었다. 그에 반해 <라이프>는 드라마의 전개와 의료 산업에 대한 의미 있는 비판이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 대표적인 예는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교훈 전달' 식 대사다. <라이프>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장면은 바로 '강당' 신이었다. 구승효 신임 사장으로부터 갑자기 지방으로 파견가라는 통보를 받은 의사들은 강당에 모여 대책을 논의한다. 이 자리에 등장한 구승효는 날카롭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말로 의사들의 논리를 무너뜨린다.

의사와 사장의 입장이 서로 대립될 때, 이들의 대사에는 이수연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나열된다. '강원도에서 아이를 낳는 산모는 중국에서 아이를 낳는 것보다 더 사망률이 높다. 여러분이 지방으로 가면 그 산모들 죽지 않을 수 있다'고 꼬집는 구승효의 일갈이 그랬고, '연간 30~40억 원의 적자 때문에 공공의료원이었던 김해의료원이 폐쇄됐다. 그런데 경상남도의 연간 예산은 12조 원이었다. 30~40억 원이 그렇게 아까운 돈이었냐'고 토로했던 주경문의 대사도 그랬다.

물론 우리 사회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 이 대사들은 <라이프>를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요소들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사로 나열하지 않고 '드라마로 풀어내기는 버거웠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라이프>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이상의, 드라마적 흡인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작가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저 나열하는 것 이상으로 풀어낼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강당 신의 묵직한 존재감이 낳은 아이러니

 JTBC 월화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JTBC 월화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 JTBC


 JTBC 월화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JTBC 월화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 JTBC


강당 신이 <라이프>에서 가장 흥미진진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강당 신을 제외한 다른 장면들은 덜 재밌다는 뜻도 된다. <비밀의 숲>에서 그랬듯이, 이수연 작가는 기존 한국 드라마의 작법과 다르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캐릭터가 선과 악으로 나뉘어 있지 않다. 언뜻 보면, 자본주의의 선봉장 구승효 사장과 환자와 병원을 지키려는 의사들의 대결처럼 보인다. 그러나 다른 장면에서 구승효는 의료사고로 억울하게 죽은 환자에 분노하고, 일부 의사들은 숨기기에 급급해 보인다.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없이 각자 자신의 입장에 따라 행동하는 이들의 대치는 신선하지만,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 둘 곳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게 마음 둘 곳을 잃은 시청자들을 위해 작가가 마련한 캐릭터가 바로 예진우(이동욱 분)로 보인다. 장애인 동생 예선우(이규형 분)로 인해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이며 그래서 인간의 고통과 아픔에 민감하다. 그래서 구승효가 자본주의의 수중에 병원을 던져주려 할 때 당연히 본능적으로 반발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다. 항상 적자가 나는 응급의학과 소속 전문의인 예진우는 병원 자본주의의 희생양이 될 처지이기에 더욱 절실하다. 그러나 사장인 구승효에 비해 병원장도 아니고 학과장도 아닌, 전문의 예진우의 존재감은 조금 아쉽게 느껴진다.

드라마 전개상 구승효는 결국 생명을 다루는 병원에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각성에는 아마 소아과 전문의 이노을(원진아 분)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5회에서 이노을은 총괄 사장실에 찾아가 구승효와 함께 소아과 병동을 '산책'했다. 이는 구승효에게 병원의 순리를 깨닫게 하는 장면 중 하나였지만 그간 구승효의 캐릭터의 일관성을 흐려지게 하는, 상투적인 장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JTBC 월화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JTBC 월화 드라마 <라이프>의 한 장면. ⓒ JTBC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비밀의 숲>을 통해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했던 조승우와 유재명의 탓도 있다. 자본을 앞세워 병원을 '개악'하려는 구승효와 그에 맞서려 하지만 정작 병원 내에서는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왕따 당하는 주경문. 두 사람은 묵직하게 드라마의 두 개의 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립을 통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이외에도 곁가지 에피소드들로 인해 전개가 흐려지는 느낌이 든다.

<라이프>는 <비밀의 숲>처럼 각자 정체를 알 길 없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일'을 하다, 하나의 거대한 모순의 파고에 휩쓸려 들며 한 줄기의 흐름으로 만나는 방식을 다시 한번 취한다. 안타깝게도 이제 5회를 맞이한 드라마는 전작에 비해 엔진의 흐름이 약해 보인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비밀의 숲>을 추동한 '누가 죽였는가'라는 강력한 살인사건의 흡인력이 <라이프>에는 없다.

<라이프>가 제기하는 이야기는 소중하다. 인명을 다루는 '공공재'인 병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과연 어떤 포지션을 취해야 할 것인가? 5회 주경문 교수의 대사처럼 "해마다 수십억 원 씩 적자를 내는 공공의료원"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과연 병원은, 의료 사업은 영리 사업이어도 되나? 이 엄정한 질문의 가치는 드라마를 잘 풀어내는 것과 별개로 의미 있다. 부디 이 가치있는 질문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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