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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획기사는 환경정의 먹거리정의센터가 진행하고 있는 ‘마을부엌에서 함께 나누고 더불어 성장하기’사업에서 발굴한 마을부엌의 다양한 사례를 알리기 위해 연재하고 있습니다. 먹거리정의센터는 보다 많은 마을부엌이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하고 건강한 먹거리 체계를 만드는데 함께하고, 변화하는 먹거리 문화의 새로운 대안으로 성장하기를 희망합니다. [편집자말]
 / 다문화 음식강연
▲ (주)마을무지개 타파스 / 다문화 음식강연
ⓒ 환경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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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정, 결혼이주여성들은 대부분 시부모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있다. 요즈음 보기 드문 대가족 문화다. 서툰 언어와 낯선 이 땅의 문화는 그들에겐 걱정 가득한 두려움이다. 모국에서 그들은 자신이 설 수 있는 자리가 있었고 인정도 받았던 젊은 여성이었다.

20여 년 전 나는 부산에서 3년 정도 살았던 적이 있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엉뚱하고 낯선 식재료 이름이나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 적응이 만만치 않았다. 자주 이용하던 부산역은 생선 비린내가 배어있고, 사람들의 억센 억양은 싸우는 소리로 느껴져 놀라기 일쑤였다. 타지는 바로 그런 곳이다.

그럼에도 그 시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부산아지매, 동료들의 밥상 초대였다. 친근해진 이웃들은 퇴근길 회사 근처 시장에서 장을 보는 내게 팔을 잡아가며 저녁 먹고 가라고 했었다. 그런 문화가 그때는 가능했다. 그때 느꼈던 따뜻한 그 감정들을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다른 우리'가 어울리는 마을부엌

결혼이주여성들은 내가 겪은 타지 생활보다 문화의 차이, 생각의 차이를 훨씬 더 크게 경험할 것이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도 버거운 전통적 사고방식, 가부장적인 가족문화도 한몫할 것이다. 의사소통의 어려움, 정서적 차이는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집에서 풀리지 않는 문제가 사회에서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될까? 차이를 극복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 차이를 다름으로 받아들이면 어떨까?

서울 은평구 역촌초등학교 부근에 자리한 다문화음식점 ㈜마을무지개 '타파스'가 있다. 이들은 10여 년 전 도서관 꿈지기 봉사활동을 하는 동네 엄마들과 한국어 교실에 온 결혼이주여성들이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시작된 소모임이다. 마을기업, 예비 사회적 기업, 그리고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 받기까지 어려운 일들이 많았어도, 동병상련의 간절함 때문일까 더 용기를 내서 활동을 할 수 있었단다.

 / 타파스 토탈푸드 프로젝트 사업
▲ 지역과 함께 하는 토탈푸드 프로젝트 / 타파스 토탈푸드 프로젝트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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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파스는 함께하는 운영자들의 가정생활을 고려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의 운영시간을 오전 11시에서 오후 5시까지로 하며, 금요일 하루만 저녁 8시까지 운영한다. 이런 배려는 살림·육아의 중심역할을 하며 일을 병행하는 결혼이주여성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다문화강사로 근무하고 있는 베트남에서 온 드엉티 바오 짠(29)은 어린 아들도 있고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출퇴근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아서 일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음식 강연을 시작한 그는 처음엔 모국 음식으로 다문화를 알린다고 생각하니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다시 공부하고 발음 연습을 하며 애간장을 태웠단다. 짠은 지금은 모국 음식을 알리는 곳곳에서 음식 강연과 시연 활동들을 활발히 하고 있다.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곳

타파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또 다른 이주여성 량쥔리(중국·34)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생활에 익숙해지기 전까지 우리는 아이들을 학교나 유치원에 보내놓고도 마음먹은 대로 외출하기 어려워요. 막상 나가도 낯설고, 집에서도 모국 음식의 향신료 냄새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해먹고 싶은데 그러기 쉽지 않아요. 혼자 먹겠다고 온갖 재료 사기도 부담이고요.

친구를 만나 고향 이야기, 사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집에 놀러오라고 하면, 우리 시어머님이 맘이 좋으셔서 괜찮다 해도 친구들이 불편한지 주로 전화만 주고받아요. 한국에서 제가 좋아하는 요리를 하고 싶어서 독하게 맘먹고 한식·중식·일식 자격을 취득했지만 일할 곳이 마땅치 않았어요. 그런데 여기 타파스는 일하면서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니 제가 대단해 보이고, 아이도 엄마를 자랑스러워해서 정말 뿌듯해요."

이곳에서 활동하는 베트남, 중국,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은 초·중학교 학생들에게 다문화를 알려주는 선생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외 다른 활동으로는 올해 5월부터 9월까지 「지역과 함께 하는 토탈 푸드 프로젝트」와 「이주여성들에게 들어보는 모국의 음식이야기」를 진행한다. 서로의 나라를 이해하고, 음식을 조리하는 이런 프로그램들에는 한국인은 물론 결혼이주여성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진다고 한다. 타파스는 서울혁신파크 내에 있는 맛동에서 열리는 가나다 밥상(가치를 나누는 다양한 밥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스토리가 있는 음식문화 확산에도 힘쓰고 있다.

이렇게 결혼이주여성들은 마을부엌에 함께 모여 재료를 다듬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마을 농번기 때 품앗이처럼, 이웃집 잔칫날이면 자기 일처럼 물고기 잡고, 돼지 잡아 동네 사람들이 음식 만들고 나누던 서로의 애틋한 고향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이런 마을부엌 활동을 통해 차이보다는 다름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꿈을 꿔요

  / 다문화 음식시연
▲ (주)마을무지개 타파스 / 다문화 음식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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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마을부엌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은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고유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장(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벤트 같은 일회적인 행사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려면 지속적이고 안정감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 마을부엌이야말로 다문화가정·결혼이주여성들이 받는 차별을 해결하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타파스를) 특별한 형태의 마을 부엌이라고 여길 수 있지만,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다양한 나라의 여성들이 함께 만들어서 나누는 것이 특징이기는 하지만, 운영자나 손님이나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부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편안하고 쉼이 있는 공간에서 건강하고 안전한 관계망이 형성된다고 믿어요. 또 정성으로 차려진 한 끼의 식탁은 좌절한 사람을 일으켜 세울만한 힘이 있다는 말을 믿고 있습니다. 그렇게 음식을 나누며 다양한 나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 넓힐 수 있다면 금상첨화죠(타파스 전명순 대표)."

하루하루 한국생활에 적응하고 있는 짠과 량진리의 소박한 바람처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일을 하면서 사회적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아주 큰 힘이 된다며 힘주어 말하던 다문화 여성들의 건강한 미소가 이들의 마을부엌에서 끊이지 않길 바란다.

 / 맛동 음식강연
▲ 미니강의를 진행중인 살레자 로레나 / 맛동 음식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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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현(다음을지키는사람들 환경강사)결혼 24년차. 어린 아이 둘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직장을 다녔다. 손수 밥상 차린다고 애써왔는데, 간단히 빠르게 만들어진 식탁의 문제가 어느 날 눈에 들어온다. 잔병을 앓는 식구를 보면서 모든 집밥이 건강한 밥상은 아님을 깨달았다. 서툴고 귀찮아 쉽게 타협해버린 부엌의 일상에 근력을 키우고자 현재 건강한 환경과 먹거리를 지키는 강사활동을 하고 있다.



태그:##먹거리정의센터, ##환경정의, ##마을부엌, ##타파스, ##결혼이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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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여성, 어린이, 저소득층 및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나타나는 환경불평등문제를 다룹니다. 더불어 국가간 인종간 환경불평등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정의(justice)의 시각에서 환경문제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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