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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확장 때문에 제주 비자림로의 삼나무가 베어진 것을 두고 논란이 많습니다. 김민수 시민기자가 이를 비판하는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반론을 포함한 다양한 논쟁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지난 9일 오후 제주시 비자림로 삼나무숲이 도로 확장·포장 공사로 나무가 잘려져 나가 속살을 벌겋게 드러내 있다.
▲ '찢겨진' 제주 삼나무숲 지난 9일 오후 제주시 비자림로 삼나무숲이 도로 확장·포장 공사로 나무가 잘려져 나가 속살을 벌겋게 드러내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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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에 선정되기도 한 '제주 비자림로'의 삼나무가 도로 확장 때문에 베어내졌다는 보도를 지난 8일 접했다(관련기사: [포토]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의 '비극').

한때 제주도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았으며, 은퇴 후 삶을 제주도에서 보낼 생각을 하던 나는 그 보도에 분노했다. 이 '분노'는 직감적이었고 감정적이었지만,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제주도의 개발방식이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단지 감정적인 분노만은 아니었다.

제주도 비자림로는 언제든 아름다웠지만, 바오는 날이면 내겐 최상의 드라이브 코스였다.
▲ 제주도 비자림로 제주도 비자림로는 언제든 아름다웠지만, 바오는 날이면 내겐 최상의 드라이브 코스였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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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보도 후 몇몇 반론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반론은 도로 확장이 지역 주민의 숙원사업이었다는 점, 도로가 좁아서 교통사고가 잦아 불편하다는 류의 주장이었다.

이어 '삼나무'에 관한 혐오(?)적인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비자림로가 일제 강점기에 심어진 인공림으로 이 때문에 제주 본래 생태계가 교란됐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삼나무가 꽃가루 알레르기의 주범이며 목재로서 활용 가치도 없다는 지적이 더해졌다.

이런 삼나무 무용론의 결론은 '도로확장공사'로 귀결됐다. 비자림로 도로확장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은 아래의 링크(참고 : http://m.slrclub.com/v/free/36530441?&page=686418)에서 확인할 수 있다.

느닷없는 삼나무 논쟁, 어이없다

절물휴양림 삼나무 산책길로 참으로 아름 다운 길 중의 하나다. 그 길을 걸으면 피톤치드 향이 온 몸을 감싸곤 했다.
▲ 절물휴양림 절물휴양림 삼나무 산책길로 참으로 아름 다운 길 중의 하나다. 그 길을 걸으면 피톤치드 향이 온 몸을 감싸곤 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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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톤치드가 나오는 침엽수림의 대표적인 나무는 잣나무, 소나무, 측백나무, 솔송나무, 가문비나무, 주목, 메콰세쿼이아, 향나무, 구상나무 등이다. 우리나라에는 14속 44종의 침엽수림이 있으며, 삼나무도 이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삼나무는 이파리가 토양을 산성화해 다른 식물들이 자라지 못하게 한다. 아마도 이런 점 때문에 삼나무가 인공 식재된 곳의 생태계가 교란됐을 것이다.

실제로 삼나무 숲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보이는 지표식물들이 거의 없다. 또 삼나무가 너무 빽빽하면 태양광이 적게 들어와 지표식물들이 잘 자라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도로확장을 주장하는 분들의 말처럼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된 것은 아니다. 삼나무와 더불어 조화로운 식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삼나무가 너무 밀집한 곳은 간벌 작업 등을 통해 제주도 토종식물이 자라나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를 근거로 삼나무를 베어내고 도로를 확장하는 게 아무 문제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빠르게 지나치는 만큼 제주도는 소비될 뿐

도로 확장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도로확장이 지역 주민의 숙원사업이며, 교통정체와 교통사고 때문에 확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그런 면들이 없는 바는 아니지만, 그곳 도로만 넓힌다고 교통체증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이어지는 도로는 그대로 2차선인데 그곳만 4차선이라면 병목현상으로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다. 게다가 운전 속도가 빨라지면 교통사고 위험성이 더 높아질 수 있다.

삼나무가 있는 한라산의 숲, 마치 삼나무가 제주의 모든 식생을 파괴하는 주범인 것처럼 몰아부치지 말라. 그들은 더불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 삼나무와 숲 삼나무가 있는 한라산의 숲, 마치 삼나무가 제주의 모든 식생을 파괴하는 주범인 것처럼 몰아부치지 말라. 그들은 더불어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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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거주할 때 나는 수년간 자동차로 그 길을 오갔다. 하지만, '아름답다'는 생각은 했을지언정 '막힌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 어쩌다 막힐 때도 정체는 오래가지 않았다. 겨울철 눈 때문에 빙판길이 되었을 때만 상황이 달랐을 뿐이다(물론 4차선 도로라고 해서 빙판길에서 안전한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제주도가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생태관광도시라는 점이다. 관광도시가 성공하려면 관광객들이 오래 머물러야 한다. 볼거리나 먹을거리도 많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볼거리와 먹을거리 등은 그 지역의 특색을 살린 것이어야 한다.

제주도는 제주도만의 볼거리와 먹을거리와 문화를 가지고 관광객들의 발을 오래 묶어두어야 경제적으로 이익이 될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이익 측면에서만 보면 안 되겠지만 '비자림로 확장'을 주장하시는 분들이 하도 경제 경제하니까 예로 든 것뿐이다.

제주도는 '슬로 아일랜드'가 되어야 산다

삼나무 숲에 피어난 새우란, 인적이 뜸한 삼나무 숲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제주도의 특산식물들과 다양한 야생화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어떻게 가꾸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 새우란 삼나무 숲에 피어난 새우란, 인적이 뜸한 삼나무 숲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제주도의 특산식물들과 다양한 야생화들을 수도 없이 만났다. 어떻게 가꾸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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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걸어야 더 많이 보인다. 구불구불 천천히 불편하게 가는 길, 거기서 제주의 속살을 볼 수 있다.

만일, 사람들이 주장하듯 삼나무가 그렇게 혐오스럽고 생태계를 교란한다면 삼나무만 없애면 될 일이다. 다 베어내고 4차선 도로를 확장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인공 식재된 삼나무 때문에 제주도의 자연환경이 교란됐다면, 간벌을 하면서 잘 관리하면 다시 숲은 회복될 것이다. 그러나 이때에도 삼나무를 무참히 베어내는 지금의 방식대로 한다면 본래의 숲은 회복될 수 없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제주도로 소비하게 할 것인가, 천천히 그 속살까지 바라보게 하여 제주도의 아름다움을 함께 지켜가며 나아갈 것인가'의 근본적인 문제가 이번 사안에 있다.

제주도는 '슬로 아일랜드'기 되어야 산다. 온갖 도시의 빠름으로 무장하면 할수록 제주도의 매력과 자생력은 감소할 것이다. 누가, 도시와 똑같은 제주도를 비싼 항공료를 들여가면서 갈 것인가?

제주만의 매력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이번 '비자림로 확장공사'는 지극히 근시안적인 탁상행정의 표본이다. 개인적으로 이번 일을 보면서, 제2의 고향 제주도에서 은퇴 후 노년의 삶을 꾸리려던 계획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이런 식이라면, 제주도 정말 매력 없는 곳이 될 것이다.

이미 제주도의 도로는 너무 빠르다

제주도의 도로는 이미 너무 빠르다. 도로의 너비에 따라 속도도 빨라지고, 빨라지는 만큼 덜 보게 되고, 덜 느끼게 되고, 덜 머물게 된다. 그만큼 제주도의 매력도 삭감될 것이다. 이는 제주도의 관광객 감소를 가져와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손해를 가져올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히기도 했던 '비자림로'가 훼손되는 과정에서 나온 삼나무의 유해성 논란. 왜 하필이면 이 시점에 마치 삼나무를 '대역죄인'으로 호도하는 것인가? 알레르기를 유발하고, 목재 가치도 없고, 생태계를 교란한 죄를 묻는 방식이 삼나무를 깡그리 베어내고 도로를 확장하는 것인가?

한발 더 양보해서, 삼나무 숲을 무조건 보전하자고 주장하지는 않겠다. 그렇게 문제가 많다면, 적정 규모만 남겨두고 나머지 삼나무들은 정리하자. 단, 지금같은 방식이 아니라 천천히 제주의 본래 생태계를 복원하는 장기 계획을 세우자.

삼나무 유해론은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태그:#비자림로, #제주도, #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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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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