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는 길고양이였습니다. 동네 철물점에서 매일 밥을 먹고 놀던 강호가 어느 하루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강호는 뒷다리가 심각하게 부러져 앞발로 기어 철물점 주인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분의 도움 요청으로 우리는 만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은 강호는 두 발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가족이 되었지요. 장애를 얻었지만 늘 씩씩하고 명랑한, 무엇보다 호기심 많은 강호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 기자 말강호와 나의 두 번째 여행지는 전라남도 해남, 그 중에서도 첩첩산중에 있어 세상과 접촉이 드물다 하여 옛 이름이 '미세(美世)', 지금은 만안리라 불리는 곳이다. 비행기보다 버스로 이동하니 강호도 나도 훨씬 편안하다. 추가 요금도 없다. 강호는 차에 올라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곧 졸기 시작했다.
이곳이 만안리다. 해남시외버스터미널에서 하루 네 번 있는 시내버스를 타고 들어왔다. 사방이 온통 푸른 논과 밭, 산 그리고 하늘이다. 드문드문 민가가 몇 채. 편의점이나 식당은 물론 작은 점방 하나도 없다. 붉은 벽돌을 쌓아 문과 이름표를 달고 꽃을 그려넣은 승강장 하나가 그림처럼 서 있을 뿐.
여기가 강호와 내가 한 달간 살 집이다. 이곳은 다섯 귀촌인들의 집이자 그들이 '미세마을 달학교'란 이름으로 운영하는 농촌학교이기도. 마침 달학교의 시작과 우리의 여행 일정이 딱 맞아 오기를 결심했다. 참가비 15만 원이면 한 달을 먹고 잘 수 있는데다 농사 일과 자연 공부까지 할 수 있다니 쾌재였다.
미리 붙인 고양이 밥과 모래 등을 담은 짐이 도착해 있어 곧바로 강호 화장실부터 만들어주고 간식과 물을 챙겨주었다. 강호는 출발 전 아침 식사와 배변 이후 이곳까지 오는 반나절 동안 계속 이동가방 안에 있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바람을 쑀지만 분명 힘든 여정이었을 거다.
반갑게도 이곳엔 동물가족도 여럿 살고 있는데 처음 만난 녀석의 이름은 '코미테'. 예상대로 코 밑에 점이 있다. 강호와 내가 올 줄 모르고 여느 때처럼 방에서 놀고 있었을 녀석이 우리의 방문에 놀라 침대 아래서 사납게 울어댄 것. 큰 짐승인가 싶어 놀랐는데 알고보니 깜찍하고 애교 많은 삼색냥이었다.
마침 고양이를 찾으러 온 이곳 사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2년 전 미세마을 달학교에 왔다가 귀촌을 결심했고 곧 인근 마을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실명 대신 '냐옹'이란 별칭으로 자신을 소개한 그녀 역시 미국에서 구조돼 무려 한국 해남 만안리까지 온 사연 많은 고양이 '아찌'의 가족이었다.
얼굴 본 지 두 번 만에 발라당 누워선 온몸으로 친밀감을 표시하는 이 녀석은 '복돌'. 갖가지 식물들이 심겨진 넓은 마당은 물론 동네 어디든 제 맘껏 돌아다닌다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개의 삶이 아닐런지. 하지만 복돌이도 제 발로 이 집을 찾아오기 전까진 어디서 왔는 지 모를 유기견이었다고.
복돌이와 달리 줄에 묶여 있는 이 녀석은 '별이'. 다가가도 전혀 반기는 기색 없이 쌓인 볏짚 위에 심드렁하게 누워 있었다. 녀석이 이리 지내는 까닭은 사냥 본능을 주체 못 하고 몇 해 전 함께 살던 아기 고양이를 물어 죽였기 때문이라고. 그 아기 고양이가 바로 앞서 만난 코미테의 자식이었다는……
이 덩치 큰 녀석은 '곰순'. 이름 그대로 곰처럼 체격이 크고 성격은 더없이 온순하다. 곰순은 이곳에 잠시 머물렀던 사람이 자신이 사는 도시의 집에선 더이상 곰순을 키울 수 없다며 부디 맡아달라 하며 떠났다고. 그래서인지 곰순의 표정은 체념과 슬픔이 뒤섞여 보였다.
부엌에서 다시 만난 코미테가 슬금슬금 다가와 몸을 부빈다. 주변의 순하고 아름다운 자연 만큼이나 이 안에 사는 사람과 동물들 모두 편안하고 정답다. 앞으로 한 달간 함께 지낼 사람들과 같이 밥을 지어먹고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무척 재밌을 것 같은 두 번째 여행 첫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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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와 제주 한 달 살기 끝……다음은 해남이다!
[영상] 만안리의 까만 밤 |
만안리에서 맞이한 첫 밤. 이런 까만 밤을, 내 발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하지만 주변에 가득한 자연의 소리를 듣는 밤을 너무도 오랜만에 경험했다. 감격스럽고 겸손해지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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