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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위계에 의한 성폭력 혐의로 재판을 받던 안희정씨가 무죄판결을 받았다. 어렵게 용기를 낸 피해자는 물론 많은 이들이 불공정한 판결에 분노했고 여성들은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며 항의집회를 열었다.

무죄 판결이 아직 남은 성폭력 가해자들 판결에 미칠 영향은 크다. 실제로 미투운동으로 드러난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소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미투 가해자로 활동을 접었던 이들이 슬금슬금 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눈치다. 남성이 사회 전반의 기득권을 움켜쥐고 있는 한국사회다. 비정규직이 대부분인 여성의 생존권을 쥔 것은 남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성중심으로 단단하게 굳어진 사회, 경제 노동 시장 등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여성은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 생존전략서
▲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 생존전략서
ⓒ 챕터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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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사회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는 여성 앞에 놓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달리는 경주에서 어떻게 넘어지지 않고 꿋꿋하게 생의 경주를 이어나갈 것인지, 신자유주의로 더욱 치열해진 경쟁사회에서 여성에게 쏟아지는 근거 없는 혐오나 비난을 어떻게 극복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여성인 저자 자신을 포함한 여성 모두에게 건네는 격려이자 다짐이라는 생각에 울컥했다.

남녀 평등 고용, 살기 좋아졌을까?

조혼이 유행하던 일본에 만혼과 비혼, 황혼 이혼이 늘고 있다. 만혼이나 비혼, 출산율 저하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는 오랫동안 여성을 종속적인 존재로 만들었던 경제적 수단이 여성에게도 주어졌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결혼이 여성에게 'MUST'의 아이템이 아니라 선택지의 하나가 된 것은 결혼에서 벗어나도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가능성이 열렸기 때문이다.-191쪽

경제적인 문제는 남녀 모두의 결혼 조건이 됐다. 남성이 정규직에 고정수입이 있으면 결혼율이 높다. 여성도 마찬가지여서 미혼 여성들 중에서 정규직 여성들은 무직이나 비정규직 여성들에 비해서 결혼율과 출산율이 높단다. 이십대에 안정적인 직장을 갖지 못한 경우 만혼과 비혼의 비율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 양육의 문제는 여성에게 더 큰 무게로 다가온 셈이다.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결과다.

책은 1985년 일본에서 형식적으로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 만들어진 이후 30년 간 여성들의 실질적인 사회적 지위와 균등의 기회가 보장되었는지, 삶의 질이 높아졌는지를 고용과 노동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고용균등법으로 여성의 삶이 좀 나아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히려 더 나빠졌다고 봐야 한다. 여성의 1%에게만 기회가 주어졌고 신자유주의 경제는 정규직 남성과 여성의 일자리를 줄이고 남성보다 임금이 낮은 여성 비정규직으로 일자리를 채웠다.

균등법이라는 명목 하에 가사 노동까지 책임져야 하는 여성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은 더욱 열악해 졌다. 남성과 여성 모두 신자유주의의 희생물이 되고 일자리가 줄었다. 하지만 그 책임은 오로지 여성에게 돌아왔고 그것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비난, 차별을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현실적으로는 기업의 리스크를 줄인다는 명목 하에 여성은 여전히 상대적 차별을 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기업은 신입사원 한 명당 대략 3백만 엔 정도의 채용비용을 들인다고 한다. 한 번 고용하면 정년까지는 해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위험부담을 떠안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결과 퇴직 리스크가 높은 여성을 기업은 더욱 꺼리게 되었다.

결국 채용에서의 여성차별은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인사 담당자의 말을 들어보면 성적에서도 면접에서도 여성 쪽이 훨씬 더 수행능력이 높다고 한다. 7대 3 정도로 여성이 우위를 차지하지만 최종결과로 채용되는 쪽은 3대 7로 남성이 더 많다고 한다. -78쪽


위험한 건 항상 여성이었다

하루를 살아도 사람으로 살려거든 부당함과 맞서 싸우라.
 하루를 살아도 사람으로 살려거든 부당함과 맞서 싸우라.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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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성차별만이 아닌 성폭력과 성희롱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한 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더욱 치열해진 생존의 벽을 올라야만 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사회적 변동이 커질 때마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진 기득권 집단들이 '여성공격'을 일삼았다고 한다. '여성들과 청년들은 누구보다 재빠르게 사회의 변동을 감지하고 다른 사회집단보다 한 발 앞서가는 변화를 체험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일본에서의 여성해방운동은 미국물이 든 경박한 여자들의 집단적 히스테리라는 식의 공격과 비아냥 세례를 받았다. 내셔널리스트들은 일본에 문제가 되는 것들은 모두 외국에서 들어왔고, 그런 것들에 쉽게 영향을 받는 이들은 무지하고 어리석은 여자들이며, 그 여자들이 일본 고유의 전통을 파괴하고 있다는 식의 참으로 단순하고 억지스러운 스토리를 체화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여성에 대한 반발은 역사적으로 자주 되풀이된다. -245쪽

어디서 들어 본 말 아닌가? 그렇다 지금 성폭력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사람들이 피해자들을 미투에 편승해 악의적으로 사적 앙갚음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한국의 현주소 역시 억지스러운 스토리의 재현을 보여준다. 여성들도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고 고등 교육을 받은 지성인이니 위계에 의한 성폭력은 있을 수 없다는 궤변, 어제든 일자리를 빼앗을 위치에 있는데 그것이 위계가 아니라는 식의 궤변이 통하는 사회니 말이다.

균등법을 만들며 성평등(Gender Equality)이라는 말조차 쓰지 못하고 '남녀고용기회균등법'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는 일본, 차별 금지를 말하면서 여전히 공공연한 차별이 이뤄지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일은 두 배의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는 살아내야 할 시간들이 많기에 생존의 시대를 도망침이 아닌 당당한 맞섬으로 꿋꿋하게 살아내야만 할 것이다. 비굴하게 살려거든 도망쳐라. 하루를 살아도 사람으로 살려거든 부당함과 맞서 싸우라. '그 때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라는 질문에 부끄러움으로 고개 숙이지 않기를 바란다면.

세상이 어떻든 여성들은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 지속가능보다는 생존이다. 시대가 거기까지 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배와 함께 침몰할 사람은 선장만으로 충분하다, 당신들의 책임은 없다. 국가란 그런 것이다. 그저 세상 어디라도 좋으니 도망쳐서 살아남아주길 바란다. 어떻게라도 좋으니 세상 어딘가에서 꿋꿋하게 살아가길 바란다...

그러나 만일 이것을 떠날 수 없는, 혹은 떠날 생각이 없는 당신이 있다면... 한 번 더 힘없는 사람들의 싸움을 떠올려주길 바란다. 총리 관저 앞의 시위든 온갖 욕을 먹는 페미니즘이든 아주 조금은 세상을 바꾸는데 힘을 보탤 수 있을지 모른다. 패배를 알고도 전쟁에 뛰어든 어른들처럼 "그때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가?" 라는 다음 세대들의 비난을 부디 받지 않기를. 그리고 당신의 서바이벌을 빌 뿐이다. - 361쪽

덧붙이는 글 |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우에노 지즈코/ 챕터하우스/ 16,000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우에노 지즈코 지음, 박미옥 옮김, 챕터하우스(2018)


태그:#젠더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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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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