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류기산은 떨고 있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눈을 둘 곳을 몰라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기자와 눈이 마주치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한참 대답을 하다가도 "그런데 질문이 뭐였지?"라고 되물어보기도 했다. 류기산은 인터뷰를 처음 경험해본다고 했다.

그는 처음인 것이 많았다. 그는 상업 영화 단역, 독립 영화 등에 출연하다가 JTBC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아래 <강남미인>)으로 드라마에 데뷔했다. 류기산은 <강남미인>을 통해 처음으로 '러브라인'이 있는 캐릭터를 만나게 됐다.

그는 <강남미인>에서 화학과 학생회장 구태영 역할을 맡아 배우 이예림(태희 역)과의 러브라인을 보여주고 있다. 류기산은 <강남미인> 6회에서 선배들의 외모 지적에 상처를 받은 태희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전하며 자신의 마음도 함께 전했다. 류기산이 시청자들의 눈에 처음으로 들어온 순간이었다.

"누군가와 사랑하는, 그런 류의 연기를 해본 적이 없다. 연기는 처음이지만 사랑은 해봤으니까, 사랑했던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진짜 느꼈던 걸 녹여내려 했다. 작가님께서 원작에서는 다소 비호감인 캐릭터지만 드라마에서는 호감으로 그려질 거라고 말씀을 해주셨다. 다행이다. 극 중에서 태희도 '그나마 오빠가 제일 낫다'고 하지 않나." (웃음)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배우 류기산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태영 역의 배우 류기산이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배우 류기산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태영 역의 배우 류기산이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배우 류기산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태영 역의 배우 류기산이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배우 류기산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태영 역의 배우 류기산이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잠시 <강남미인> 촬영을 쉬는 틈을 타 배우 류기산을 지난 16일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났다. "사실 촬영장에서도 떨려 어떻게 연기를 하는 줄도 잘 모르겠다"는 그는 "화면으로는 (떠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기자의 반응에 다행이라는듯 가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사실 드라마가 큰 무대이지 않나. 처음이라 그런지 몰라도 아직 내 그릇이 좀 작구나, 느껴진다. '큐' 소리 나면 내가 뭘 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빨리 경험이 쌓여서 내가 할 수 있는 연기를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촬영은 9회분 정도 진행됐지만 이예림과의 러브라인은 아직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한다. 류기산은 "극 중에서 수아(조우리 분)가 태영과 태희가 사귄다는 걸 알고 방해를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걸 잘 이겨내고 태희와 계속 만났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바라고 있다"며 밝게 웃었다.

<강남미인>을 통해 류기산이 처음 느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류기산은 한국 사회에 짙게 깔린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는 <강남미인>의 주제 의식에 대해서도 인상적인 한 마디를 남겼다.

"외모에 대해 비하하는 대사를 보면서 '다들 참 나쁘다'고 느끼면서도 사실은 내 안에도 그런 편협한 시선이 있더라. '나도 사실 이 정도의 사람이었구나' 싶어 실망이 컸고 반성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청자들에게도 이 드라마를 통해 그런 메시지가 잘 전달됐으면 좋겠다."

미술 전공하다가 연기로 전향 "후회 안 해"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배우 류기산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태영 역의 배우 류기산이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배우 류기산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태영 역의 배우 류기산이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배우 류기산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태영 역의 배우 류기산이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배우 류기산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태영 역의 배우 류기산이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배우 류기산은 2009년 캐나다 한 대학에서 애니메이션과를 다니던 중 갑자기 배우가 되고 싶어 비행기 표를 끊고 한국에 들어왔다. 그가 23살 때였다. 미술에 소질이 있어 픽사나 디즈니에 들어가는 게 꿈이었다던 그는 막상 전공이 정해지니 '이제 이걸로 평생 먹고 살아야 하네'라는 자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 일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인가' 아니면 '그저 잘 하는 일인가'에 대해 류기산은 9년 전 생각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힐끗힐끗 곁눈질하던 연기를 업으로 삼아야 겠다고 결심하고 몇 달만에 가족들에게 말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왔다. 놀란 가족들에게 그는 "한 해만 연기과 입시를 준비해보고 안 되면 다시 캐나다로 돌아가겠다"고 장담하고 그 해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다. 한예종은 연기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선망의 대학으로 꼽힌다.

"지나가다가 한 선생님께 '저 왜 뽑았어요?'라고 물었다. '캐나다 양아치 같은 느낌이 좋아서 뽑았어'라고 농담을 하셨다. (웃음) 내가 어떤 면 때문에 뽑혔을까. 잘 모르겠다. 진지하게 (교수님들과)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류기산은 "운이 좋았다"면서 "지금 다시 입시 준비를 했으면 분명히 떨어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류기산은 현재 한 연기 학원에서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고 싶어하는 고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이제 연기 선생님이지 않느냐'는 반문에 민망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학생들도 <강남미인> 잘 봤다고 말하곤 하는데 애들이 내 연기를 봤다고 생각하니 애들을 가르칠 때 자신감이 좀 떨어지기도 하더라. '선생님은 왜 그렇게 연기 못 해요?' 이럴까봐"라며 웃었다.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배우 류기산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태영 역의 배우 류기산이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배우 류기산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태영 역의 배우 류기산이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류기산은 <나가요> <주왕> 등 독립 영화에서도 연기했지만, 상업 영화 <게이트> <불한당> 등에도 단역으로 출연한 바 있다. 그는 <게이트>에 단역으로 나왔을 때를 회상했다. "원래 대사가 한 마디 있었는데 갑자기 현장에서 두세 마디로 늘었다. 영화에서는 화면이 안 나오고 목소리만 나왔는데 짧은 시간 안에 연기를 더 해야 해서 땀을 많이 흘렸던 기억이 난다."

이제 막 매체 연기를 시작한 류기산은 하고 싶은 게 많다. "처음에는 왜 나라고 할리우드 배우를 못 하겠어"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는 그다. 류기산은 이제 시트콤 같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연기를 꿈꾸고 있다. 그는 "나는 스스로 관객들을 웃길 줄 아는 배우라고 생각한다"며 "웃길 줄 알아야 또 관객들을 울릴 줄도 안다고 한다. 그런 역할을 맡아서 피곤하고 지친 사람에게 웃음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 막 연기에 발을 뗀 신인 배우는 마지막으로 출사표를 이렇게 덧붙였다.

"주연 배우를 꿈꾸고 나아가서 할리우드 배우도 할 거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지금은 조금 막막하다. 이제 첫 계단에 발을 올린 것 같은데, 난 32살이고 좀 첫 걸음을 느리게 뗀 것도 같다.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구나 싶어 막막하다. 그런데 또 그냥 좋다. 고민이 있어도 희망도 있지 않나. 꿈을 포기해버리면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없어지는 것 같은데, 꿈을 쟁취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꿈을 향해 나아가는 데 의미가 있는 거니까."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배우 류기산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태영 역의 배우 류기산이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 배우 류기산 JTBC 금토드라마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에서 태영 역의 배우 류기산이 16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류기산 내아이디는강남미인 배우 한예종 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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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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