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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원순 서울시장이 8월 26일 오후 시청 브리핑룸에서 여의도ㆍ용산 여의도ㆍ용산 마스터플랜 보류, 공공주택 공급 대폭 확대, 공시가격 현실화 등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8월 26일 오후 시청 브리핑룸에서 여의도ㆍ용산 여의도ㆍ용산 마스터플랜 보류, 공공주택 공급 대폭 확대, 공시가격 현실화 등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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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이 일요일(8월 26일)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여의도·용산 개발 계획 발표와 추진을 주택 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보류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정리하면 이렇다.

박 시장은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받으러 싱가포르를 방문한 지난달 8일 동행 기자단 간담회에서 "여의도를 통째로(통으로) 재개발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달 10일 오전 11시 15분 박 시장의 발언이 일제히 보도된 후 서울의 부동산 시장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 기간 서울의 집값 상승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겠지만, 박 시장의 발언이 시장에 "서울에 집을 사라"는 신호를 준 것은 분명하다. 싱가포르발 부동산 바람을 조기에 잡을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국회 상임위에서 "여의도와 용산이 다른 지역에 비해 부동산 상승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며 여의도·용산 개발의 종합적인 검토를 주문했다(7월 23일). 그러나 박 시장은 3일 뒤 라디오 인터뷰에서 "도시계획수립권은 서울시가 갖고 있다"고 맞받았다.

8월 3일 서울시와 국토부가 부동산 시장관리협의기구를 출범시키면서 갈등을 봉합하려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양자의 이견이 근본적으로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박 시장은 여의도·용산 개발 계획을 철회할 생각이 없었다. 17일 강북구 옥탑방 살이를 끝내며 <오마이뉴스> 기자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아니라) 투기꾼들이 집값을 올리고 있다.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는 1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고, 서울시장은 여기에 협조하는 위치다. 그러면서도 서울시장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재개발할 의무가 있다. 가만 놔두면 난개발이 된다.

부동산을 잡으려면 정부가 1% 정도 되는 다주택자 상대로 보유세를 엄청나게 올려야 한다. 나라면 그렇게 정책을 펼 텐데, 정부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들 생각은 나보다 덜 근본적인 것같다. 자꾸 얘기하면 갈등으로 비칠까봐 말을 아끼는 거다."


박 시장은 옥탑방 살이를 끝내면서 '강남·북 균형 발전'이라는 새로운 이슈로 집값 논란을 정면돌파하려고 했다. 일요일의 기자회견은 박 시장이 스스로 문제를 풀지 않으면 훗날 '집값 폭등'의 오명을 뒤집어쓸 수 있다는 위기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여의도·용산 개발 추진하겠다던 박원순, 금요일부터 변화 기류

서울시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니 기자회견 이틀 전부터 박 시장의 입장에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시의 핵심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이 좀처럼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 (시장의 발언으로) 문제가 현실화된 부분은 인정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설득했다. 시장도 그 부분은 동의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생각해보니 올해 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초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대중교통 무료 정책을 내놓았다가 "하루 50억씩 150억 원의 세금을 낭비했다"는 비판이 일자 시행 6주 만에 폐기했다(2월 27일). 박 시장의 핵심참모는 "미세먼지 주의보 발령 횟수가 예상을 상회했다. 개학이 되면 대중교통 이용자수가 급증할 텐데 계속 하면 선거에도 부담이 될 수 있어서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박 시장의 입장에서는 두 사건 모두 선의로 시작한 일이 예상외의 변수를 만나면서 '씁쓸한 성적표'를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의 '싱가포르 발언'이 나온 과정도 매끄럽지는 못했다. 여의도·용산 개발 계획은 서울시 도시계획국이 실무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박 시장이 중간보고 받은 내용을 외유 중에 먼저 꺼낸 셈이다.

실무진이 발표했어도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을 구체적인 청사진이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시장이 선제적으로 발표할 필요가 있었을까? 시장의 행보를 정무적으로 판단하고 조언하는 위치에 있는 참모들이 싱가포르 현지에 동행하지 않은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 대목이다.

박 시장은 왜 그랬을까?

지방선거 후보자 인터뷰를 위해 임대식이 쓴 '박원순이 걷는 길'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경기고·서울대(중퇴)를 다닌 두뇌에 1980년대에는 인권변호사, 90년대에는 신문사 논설위원(한겨레)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가 쓴 '국가보안법 연구' 3부작은 20세기 진보진영을 괴롭혔던 '악법'에 대한 가장 체계적인 연구서로 꼽힌다. 변호사 일을 스스로 접은 뒤에는 참여연대와 아름다운가게 등을 국내 최대의 시민단체로 우뚝 세웠고, 정치인으로 변신한 뒤에는 선거 때마다 승승장구해 어렵지 않게 3번이나 서울시장이 됐다.

그가 가장 크게 낭패를 본 사건은 2017년 대선 경선의 중도포기 정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문재인 대통령과 끝까지 겨뤘던 다른 후보자들은 하나같이 비리나 추문, 낙천으로 차기 경쟁에서 멀찌감치 밀려나 있다.

성공신화가 낳은 박 시장의 자신감

서울시장 3선 고지에 오른 이후 "박원순에게 남은 건 대선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명시적으로 불출마를 얘기하지 않는 이상 그의 정치적 위상은 여전할 것이다. 그렇다면 더 신중하고 조심할 만한데, 그가 지금껏 써내려간 성공 신화에서 나온 지나친 자신감이 판단력을 흐리게 하는 건 아닐까?

박 시장이 2월에 최신 트렌드를 이해해보겠다며 젊은 전문가 9명의 인터뷰집을 펴냈다. 썩 많이 팔리지는 않았지만, 책 제목 만큼은 기가 막히다는 평이 많았다. 민선 3기를 마무리하고 더 크게 날고 싶은 박 시장에게는 책 제목처럼 그런 자세가 필요하다.

'몰라서 물어본다.'


태그:#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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