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국제다큐영화제의 홍형숙 집행위원장

DMZ국제다큐영화제의 홍형숙 집행위원장 ⓒ DMZ국제다큐영화제


홍형숙 집행위원장은 현재 DMZ국제다큐영화제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카드 아닐까.

30년차의 '1세대 여성 다큐멘터리 감독'인 홍형숙 집행위원장은 '한국 다큐의 대모'라 불릴 정도로 오랜 현장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북한과의 평화'라는 화두를 <경계도시>(2002)라는 영화를 통해 10년간 집요하게 좇기도 했다.

여기에 시대 정신이 더해졌다. 조재현 전 집행위원장이 불명예 사퇴한 후 '최초의 여성 감독 집행위원장'으로서 DMZ영화제 집행위원장 임기를 시작한 홍형숙 위원장은 "이런 소명을 맡게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고 나도 최선을 다해 증명해내야 한다"라고 말했다.

홍형숙 집행위원장이 임기를 시작한 건 제10회 DMZ영화제를 한 달 남겨둔 지난 8월 6일이었다.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된 이후에 그는 주변 영화인들에게 단순한 축하 인사가 아닌 "축하드린다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축하드린다"거나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중책을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같은 말로 시작하는 문자를 받았다고 한다.

보통 영화제는 1년 정도 충분한 준비 기간을 거치기에, 한 달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 때문에 홍형숙 위원장은 최근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그는 "10회 영화제의 경우 내 색깔을 욕심껏 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아쉬움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DMZ 영화제 와주세요'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한다.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10주년 영화제... 소수자들에 귀 기울이는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 포스터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 포스터 ⓒ DMZ국제다큐영화제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DMZ영화제에선 39개국에서 온 영화 144편을 상영한다. 작년에 비해 30편이나 늘어났다. 소재 역시 다양하다. 성소수자, 세월호 잠수사, 일제 광산 강제 징용 피해자, 지뢰 피해자, 노조 파괴 유성기업 노동자 등 정권 교체 이후에도 바뀌지 않는 사회 문제를 담았다.

특히 개막작은 2009년 추방된 네팔 이주노동자 마누의 목소리를 담은 지혜원 감독의 신작 <안녕, 마누>로, 최근 뜨겁게 부상한 한국 사회 내의 난민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한편, 올해 DMZ영화제에서는 심상정, 진중권, 황교익, 장강명 등 '우리 사회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인사 10명'이 추천하는 '내 생애 최고의 다큐멘터리'가 상영될 예정이다. 또 VR다큐 체험관을 설치해 쇼베 동굴 벽화나 퐁텐블로성, 샤를마뉴 대성당 같은 경관이 유려한 세계 유적들을 대리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지난 22일 오후 일산에 있는 DMZ영화제 사무국에서 홍형숙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DMZ영화제의 비전, 북한과의 영화 산업 교류 등 향후 DMZ영화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털어놓았다. 홍형숙 위원장의 말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10주년_영화제

"10회 영화제에 거장이라고 호명하고 존경해왔던 감독님들을 대거 모셨다. 그 중에 올해 영화제 방문을 계획했으나 7월 초 작고하신 클로드 란츠만 감독도 있었다. 어떡하지, 하면서 하루 정도 망연자실해 있다가 그 분을 기리는 특별 상영전을 개최하기로 했다. (란츠만 감독은 한국전쟁 직후 유럽 방북 대표단의 일원으로서 북한에 가 다큐멘터리 <네이팜>을 만든 세계 다큐멘터리 영화사의 거장이다. - 기자 말) 올해는 또 제3세계 영화 운동사의 획을 그은 <불타는 시간의 연대기>의 페르난도 솔라나스 감독과 이스라엘 영토 분쟁 문제를 영화를 통해 제기했던 아비 모그라비 감독이 영화제를 찾는다."

올해 10주년 영화제에는 세계 다큐멘터리사의 거장 감독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홍형숙 위원장은 그동안 영화인, 관객들과의 친화성 문제를 놓친 것 같아 아쉬웠다면서 DMZ영화제가 열리는 기간 동안 'DMZ영화제의 현안과 비전'을 주제로 한 DMZ 10주년 포럼을 열어 영화인들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밝혔다.

홍형숙 위원장은 기존에 다른 영화제들이 했던 포럼을 짚으며 "세 시간짜리 포럼을 한다고 하면 두 시간은 발제자들이 발제하는데 할애를 하는 등 다소 겉핥기식으로 진행된다"라며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밀도도 있고 내실 있게 준비해 의미 있는 이야기들이 나올 수 있도록 진행할 생각이다. 그리고 바로 후속 조치를 해 이날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가 바로 현실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홍형숙 위원장이 준비하고 있는 다른 프로젝트는 '미래비전TF'다. 9월부터 운영될 이 TF에서 홍형숙 위원장은 DMZ영화제의 20회, 30회를 위한 구상과 영화제 발전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11회 영화제부터는 "색깔이 확실한 영화제"를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조재현_집행위원장

 DMZ국제다큐영화제의 홍형숙 집행위원장이 지난 23일 오후 인터뷰에 응하고 DMZ국제다큐영화제를 둘러싼 과업들을 말했다.

DMZ국제다큐영화제의 홍형숙 집행위원장이 지난 23일 오후 인터뷰에 응하고 DMZ국제다큐영화제를 둘러싼 과업들을 말했다. ⓒ DMZ국제다큐영화제


최근 '미투 운동'과 함께 조재현 전 DMZ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저지른 성폭력들이 연이어 밝혀졌다. 조재현 전 집행위원장은 이후 DMZ영화제 집행위원장 직을 사퇴했다. 오랫동안 DMZ영화제 집행위원장 직을 맡았던 조재현 집행위원장이 불명예 사퇴를 하면서 영화인들이나 관객들에게 DMZ영화제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황이다.

이에 대한 신뢰 회복 방안을 묻자 홍형숙 위원장은 고민을 하다가 "굉장히 조심스럽고 조심스러운 입장을 이해해주실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입을 열었다.

"홍형숙이라는 개인으로서는 분명한 판단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집행위원장으로서 신중함이 필요하다. 일단 영화인으로서 리스펙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집행위원장으로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부분이 분명히 있고 그 부분에 대해 사퇴를 함으로 일단락을 지었다고 본다.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조사의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난 다큐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추이를 충분히 판단하기 전까지 지켜봐야 하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DMZ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서 유감스러운 부분이 있다. 경기도나 영화제가 폭로 이후 어떤 입장도 표명하기 않아서 영화인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분명 관객들에게 실망시켜드린 부분이 있고 그 이슈 자체에 대해 내가 언급하기 보다 이를 뛰어넘는 어떤 영화제의 에너지를 보여드리면 신뢰를 회복될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제가 빠르게 회복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모든 스태프들과 노력할 생각이다. 이를 잘 전달해주시면 좋겠다."


#북한

DMZ국제다큐영화제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재명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아주개홀에서 열린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기자회견에 조직위원장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참석하고 있다.

▲ DMZ국제다큐영화제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재명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아주개홀에서 열린 제10회 DMZ국제다큐영화제 기자회견에 조직위원장인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DMZ영화제는 현재 한국에 있는 영화제 중 남한 가장 최북단에서 열리고 있는 영화제다. 게다가 'DMZ 비무장지대'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북한과 평화에 대한 어젠다를 갖고 가야 한다.

"남북한 평화 이슈에서 DMZ영화제만큼 뭔가를 실현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은 없다고 본다. 꿈꾸지 않으면 아무 것도 시작될 수 없기 때문에 내가 하는 구상을 말씀드리려고 한다. 남북한 감독들이 모여서 공동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 하나가 있을 것이다. 또 애써보고 있는 것 중에 영화제 기간 동안 개성공단에서도 상영작을 상영하는 것도 있다. 멋지지 않나. 가을날 개성공단과 경기도 고양, 파주에서 영화제가 동시에 열리는 것이다. 크지 않아도 좋으니 지속적으로 상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를 기사에 써주시면 이재명 도지사님이나 도의원님들이나 문체부 장관님이나 문재인 대통령께서 봐주실 수 있지 않을까. 난 어렵지 않다고 본다. 남북이 교류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혹은 평양에서 DMZ영화제에서 상영된 좋은 작품들이 상영되고 북한에서 상영된 영화들이 교류 상영되고 한국 감독들이 북한에 가고 북한 감독들이 이쪽으로 온다면? 그런 인적 교류가 문화가 해야 할 일이라고 본다. DMZ영화제가 틀을 깨는 용기를 내고 문화적인 거점으로서 실제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 늘 이야기하는 무색무취한 평화가 아니라 정확한 이름으로서의 평화 말이다.

또 한 가지가 있다면 DMZ 영화제 기간 동안에 남북한 청소년 영상 캠프를 하고 싶다. 남북의 청소년들은 다음 세대를 이어가는 이들이고 그만큼 시야가 확장되어야 하는 세대다. 지금 청소년들이 남북한 함께 공통의 기억을 만들어간다는 건 중요하다. 영화에 대해 각자의 영역에 관해 주고 받는 것이 있을 것이고 그 안에서 영상으로도 나올만한 게 무궁무진할 것이라 생각한다.

어제를 규명하고 오늘을 질문하고 내일을 상상하는 것, 그것이 다큐멘터리가 해야 할 역할이자 본질이라고 본다. 이 영화제가 다큐의 본질을 잘 살리고 제대로 추진만 된다면 결국엔 국내만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 나아가 세계적인 영화제로서 자기 정체성을 가져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막연한 확신이 아니라 분명히 실현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로드맵을 갖고 함께 가야 한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에라도 이런 안을 함께 논의할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헛된 희망이 아닐 것이다."


한편, 홍형숙 위원장은 '레드 콤플렉스'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경계도시1>(2002)과 <경계도시2>(2009)를 10년에 걸쳐 작업한 베테랑 감독이기도 하다. <경계도시>는 한국 정부로부터 간첩 혐의를 받고 입국금지상태가 된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를 다룬 문제작이다. 그는 "<경계도시2>로부터 근 10년 가까이 됐는데 그 사이에 굉장히 많은 변화들이 있었다. 감독으로서도 당연히 내가 이 시기에 DMZ영화제에 들어오게 된 것이 남다르다"며 "더 이상 <경계도시>가 다큐 작품으로서 남는 것이 아니라 (평화의) 지렛대가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남겼다.

#다큐_감독

한국 다큐멘터리계의 대모로 자주 호명되지만 홍형숙 위원장은 사실 대모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웃으면서 "대체 누구의 엄마인지 잘 모르겠다"면서 "대모는 가족주의적인 표현의 소산"이라고 밝혔다.

또 '여성 감독'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으로 명명될 때 '여성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과...' 같은 방식의 표현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필요한 경우에는 적절하게 써야한다고 본다. 그 정도의 융통성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호명해주기를 바라느냐'는 질문에 "다큐 감독 홍형숙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하지만 불러주는 분들이 어떤 시선으로 호명해주느냐에 따라서 내 이름이 달라질 것이라 본다"고 덧붙였다.

자연스럽게 인터뷰에서는 1세대 다큐 감독으로서 다큐멘터리신에 대한 현실도 드러났다. 홍형숙 '감독'은 "기성세대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겪었던 시행착오와 여건을 좀 더 낫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세계 어딜 가나 다큐는 '어두운 터널 속으로 스스로 걸어들어가기를 선택한 자들'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외롭기도 하고 한편으로 의미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선택이기도 하다. 여건이 그렇다. 그러나 좀 더 나아져야 하지 않겠나. 이 의미 있는 선택들이 의미 있는 작업이 되고 현실적인 문제인 생존에 있어 동력이 되려면, 정책적인 측면에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박환성 피디님, 박종필 감독님 모두 비슷한 시기에 돌아가셨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돌아가셨기에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남의 일이라고 할 수 없는 바로 옆의 동료가 겪었던 상황이었고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풀어가자'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다. 무척 긴급하고 시급한 문제다. 다큐 영화제 역시 독립 영화인들의 삶에 최대한 주목해야 할 것이다.

늘 GV(관객과의 대화)를 하면 질문을 받는다. 무슨 작품이든 간에 '다 좋고 너무 감동적인데 어떻게 먹고 사시나요' 같은 질문을 객석에서 한다. 그러면 말씀을 드린다. 늘 어렵다고.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하지만 문제의식을 분명하게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많아져야 하고 '우린 가난해'가 아니라 후배들은 달라져야 한다. 우리와 똑같은 시간을 보내게 할 수는 없다."


DMZ영화제 홍형숙 위원장 조재현 전 집행위원장 이재명 조직위원장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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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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