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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급식비 지원 시행을 알리는 성남시 한 고등학교 교직원 대상 메신지 내용
▲ 고교급식비 지원 시행을 알리는 성남시 한 고등학교 교직원 대상 메신지 내용 고교급식비 지원 시행을 알리는 성남시 한 고등학교 교직원 대상 메신지 내용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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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우리 학교(나는 고등학교 교사다)에서 업무용 메신저로 급식 담당자의 성남시 고교 급식비지원금(매월 6만 5000원)메시지를 받고 반가움을 금할 길이 없었다.

중학교 때 우리 집은 가난의 절정기를 맞이했다. 아버지는 병약하여 장기 입원치료를 받았고 엄마는 투잡, 쓰리잡을 해야만 5남매를 겨우겨우 먹여 살릴 수 있는 저임금 노동자였다.

어떤 때는 쌀이 똑 떨어져 생활보호대상자에게 지급되는 밀가루로 상당기간 수제비를 해 먹으며 버텨야 했다. 어른의 도움 없이 적잖이 손이 가는 수제비를 제때 챙겨 먹기 어려우니 굶거나 불규칙한 식사를 피할 길이 없었다. 조금 여유가 있을 때, 밀가루를 방앗간에 맡겨 국수를 빼오면 그나마 끼니를 덜 거를 수 있었다. 재료는 오로지 묵은 김치와 화학조미료 조금 뿐이었다. 물에 묵은지를 넣고 수제비나 국수를 넣어 끓이다가 소금과 화학조미료로 간을 해서 먹었다.

형편이 그러하니, 학교에 도시락을 싸갈 수는 없었다. 6교시, 7교시까지 기나긴 학교 일과 동안 굉음 같은 뱃고동 소리가 배에서 들려오면 친구들이 들을까봐 숨을 참기도 해야 했다.
같은 시기 중고교시절을 보낸 언니나 나는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 편인데, 다른 형제들은 키가 훤칠한 것을 보면 어쩌면 가장 중요한 성장기의 영양 결핍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저녁 식사 직후 말고는 배고 고프지 않은 순간이 거의 없었으니까...

게다가 사춘기에 학비지원금이나 저소득자녀 장학금 후보에 들어 상담과 신청서를 쓰는 일은 정서적 위축을 부추겼다. 신학기가 되어 담임교사가 학비지원신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올 때면 '난 누가 봐도 궁기가 가득한가보네...'라는 자괴감에 고개를 떳떳이 들고 다니는 게 힘들었다. 친구들이 한 줌씩 모은 쌀이 반장과 임원들에 의해 우리집으로 전달되었을 때, 사는 꼴을 보며 수군거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더 이상 급우들을 친구로 여기지도 못하게 되었었다.

가난한 사람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품위를 유지하고 싶다.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미 가지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먹고나 살면 됐지, 뭐 그딴 것까지 신경을 써' 하는 바로 그것을 말이다.

그래서 성남시의 고교급식비 지원이 너무나 반갑다. 지금 시대에는 핸드폰이나 괜찮은 옷으로 끼니와 바꾼 품위를 유지하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기에 눈으로 보고 잘 가려내어 돌봐주기에 어려움이 많다. 아무리 어려워도 다 해어진 신발을 신고 다니지는 않는다. 겉보기에는 다 똑같이 괜찮다. 그러나 정서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여전히 배고픈 사각지대는 허다하다.

그래서 내 교실속 모든 아이들을 다 사랑하는 학교 선생은 사회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다.
적어도 아이들이 성장하는 기간 만큼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함께 기르겠다는 마음가짐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첨부파일
고교급식지원.jpg


태그:#보편복지, #성남시 복지정책, #무상급식, #급식비 지원, #무상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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