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포스터

<휘트니> 포스터 ⓒ (주)판시네마


변영주 감독은 최근 한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나에게 1980년대는 데이비드 보위였다. 그가 사망했을 당시, 20세기가 완전히 문을 닫은 기분이었다"라고 말했다. 뛰어난 아티스트가 우리 곁을 떠날 때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떤 이에게는 마이클 잭슨이, 또는 장국영, 히스 레저가 그런 느낌이었으리라. 그리고 전설적인 디바 휘트니 휴스턴이 있다.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뉴저지 주 뉴어크에서 태어났다. 흑인 인권에 대한 사회문제가 남아있던 시기였다. 영화 <디트로이트>의 시점과 그리 멀지 않은 시기이다. 어머니 씨시 휴스턴과 아버지 존 휴스턴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족 사이에서 그녀의 애칭은 니피였다. 그녀는 여러 친인척 가족과 함께 유년 시절을 보냈다. 어머니의 잦은 공연 투어와 아버지의 외도 등으로 부모가 가장 필요했을 시기에 큰 부재를 느꼈을 것이다.

후에 그녀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을지 모르는 안타까운 사건도 이 시기에 발생했다. 일찌감치 그녀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본 씨시 휴스턴은 그녀를 지나치리만 치 혹독하게 훈련시켰다. 씨시 휴스턴은 솔로 가수로서는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고, 자신의 딸인 휘트니 휴스턴을 통해서 꿈을 대리 실현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휘트니 휴스턴은 이미 데뷔 전부터 여러 레코드사로부터 제안을 받았다. 1983년 <머브 그리핀 쇼>를 통해 TV 데뷔 공연을 펼쳤다. 이후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신데렐라 동화 같은 성공적인 이야기이다. <휘트니>에서는 그 성공의 이면에 있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그녀가 집에서 쉴 때면, 가족들의 니피로서 수수하게 있었고 공연을 할 때만 대중의 휘트니 휴스턴이 되곤 했다.

겉으로 보기에 그럴싸 했던 가족의 울타리는 그녀가 약물에 손대는 계기가 됐다. 아버지 존 휴스턴, 남편인 바비 브라운은 진심으로 그녀를 보살피기보다 파워 게임을 하는 데 열중한 것 같다. 그나마 가장 그녀의 입장을 고려했던 사람은 절친인 로빈 크로프트였으나 결국 밀려나고 말았다. 아리스타 레코드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다음 앨범을 위해 거액의 계약금으로 계약을 성사시켰지만, 그녀를 제대로 매니지먼트하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사생활 존중이란 미명 하에 그녀가 너무 방치된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노래하는 법을 알 뿐이다" 그의 외침

 <휘트니> 스틸컷

<휘트니> 스틸컷 ⓒ (주)판시네마


케빈 맥도널드 감독은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다큐멘터리를 이끌어 가지 않는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매우 사적인 영상 자료와 다큐멘터리 제작 중에 새로 촬영한 인터뷰를 퍼즐 조각처럼 나열해놓았다. 어떠한 비판도 섣부르게 하지 않고 가능한 객관적 사실만을 다루려 한 것 같다. 그 판단의 몫은 관객에게 전적으로 남겨놓았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전 세계 역사와 미국 역사의 타임라인 속에 휘트니 휴스턴의 목소리가 잔향으로 남아있다. 그녀는 코카콜라, 맥도날드, MTV 같은 거대 브랜드와 함께 팝 컬처를 대표하기도 했고, 마틴 루터 킹 목사, 넬슨 만델라 대통령처럼 흑인에게 강한 유대감을 일으키는 인물이기도 했다.

때로는 그녀를 두고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흑인 음악의 정체성을 버렸다는 비판이 있기도 했다.

"나는 노래하는 법을 알 뿐이다. 내게 음악은 피부색과 상관 없다."

휘트니 휴스턴은 1990년 12월 대중 음악잡지 <에센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녀는 슈퍼볼 공연에서 미국 국가 'The Star Spangled Banner'를 불렀다. 3/4 박자의 곡을 흑인의 소울이 담긴 4/4 박자로 편곡했고 무려 원테이크로 불렀다고 한다. 이 공연을 시청하고 있던 모든 이에게는 물론이고 관객에게도 큰 감동을 전달했다. 그 감정은 단지 피부색으로 나눌 수 있는 성격이 아니었다(훗날 이 공연은 현장 상황을 고려해 사전 녹음한 것을 바탕으로 했다고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 전해졌다. 같은 해 다른 공연에서 라이브로 훌륭하게 소화했다).

다큐멘터리의 마지막에는 'I Have Nothing'이 흐른다. 그녀의 굴곡 있는 삶을 조명하듯 애절한 가사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팝아트에는 에디션 넘버가 붙는다. 판화와 사진 등에 오리지널리티를 부여하기 위해 작가의 서명과 번호를 넣는 것이다. 휘트니 휴스턴은 많은 동시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줬다. 많은 아티스트가 그녀의 명곡을 커버하고 큰 행사에서 헌정 공연을 하기도 한다. 물론 훌륭한 공연이긴 하지만, 그건 휘트니 휴스턴의 에디션이 아니니까. 우리는 휘트니 휴스턴의 새로운 팝아트를 다시 만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대현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브런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휘트니 휘트니 휴스턴 다큐멘터리 케빈 맥도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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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를 씁니다. 블로그에 동시에 기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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