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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인천 부평 부원여중학생들이 성폭력 피해에 항의하는 포스트잇 시위를 벌인 모습.
 지난 11일 인천 부평 부원여중학생들이 성폭력 피해에 항의하는 포스트잇 시위를 벌인 모습.
ⓒ 학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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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전 7시. 인천 부평구 부원여자중학교 복도에 손바닥 만한 포스트잇이 하나둘 나붙기 시작했다. 등교시간 보다 훨씬 이른 시각, 은밀하게 부착된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녹색 게시판은 알록달록한 메모지로 덮였다. "Me too, With you" "Girls can do anything" "차별발언 OUT" 복도에는 더덕더덕 붙은 포스트잇이 긴 띠를 이루기도 했다. 이른바 '포스트잇 총공' 날이었다.

총공격을 뜻하는 '총공'은 전날 트위터에서 공지됐다. 이달 초 온라인에서 다시 번지기 시작한 '스쿨미투'(교내 성폭력 고발운동)의 일환이다. 지난 10일 개설된 '부원여중 공론화 계정'은 "트위터에서 이뤄지는 폭로를 보고 저희 또한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라면서 "저희의 목소리를 들어달라"라고 호소했다.
 
지난 11일 인천 부평 부원여중 학생들이 성폭력 피해에 항의하는 포스트잇 시위를 벌인 모습.
 지난 11일 인천 부평 부원여중 학생들이 성폭력 피해에 항의하는 포스트잇 시위를 벌인 모습.
ⓒ 학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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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드러낼 수 없는 학생들이 선택한 방법은 익명 고발이었다. 트위터 계정에 누구로부터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제보하면, 계정 관리자가 제보자의 신원은 제외하고 내용만 공개하는 방식이다. 여기서 학생들은 "OOO 선생님이 저희에게 '고등학교 올라가면 엉덩이가 커져서 안 예쁘다'라고 말씀하셨다" "OOO 선생님이 '네가 몸파는 애야? 걸레냐고, 어? 같은 발언을 했다"라고 주장했다.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았다"라는 졸업생들의 증언도 나왔다.

이러한 학생들의 분노는 트위터에서 결집돼 학교를 '총공'하기에 이르렀다. 학생들은 '부원여중 미투 공론화 포스트잇 총공' 계정을 별도로 개설하고 '총공 시작 시간'과 '총공 장소', '총공 문구' 등을 공유했다. 당일에는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라"라면서 "화력 통일을 위해 장소를 통일한다. 학생들은 3층 2학년 화장실쪽과 2층과 3층 사이 계단에 붙여달라"라는 실시간 공지도 올라왔다. 결국, 지난 13일 학교 정문에 '제자를 더욱 존경하겠습니다'는 내용의 플랜카드가 걸리는 등 일부 변화가 일어났다.

전국에서 동시다발... "사회 변하는 만큼 학교도 변해야" 
 
지난 4월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 학생들이 교사 성폭력 공론화를 위해 창문에 포스트잇으로 "ME TOO, WITH YOU"라고 쓴 모습.
 지난 4월 서울 노원구 용화여고 학생들이 교사 성폭력 공론화를 위해 창문에 포스트잇으로 "ME TOO, WITH YOU"라고 쓴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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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현재까지 스쿨미투가 터져 나온 학교는 40곳에 달한다. 범위도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 경기, 인천, 대전, 대구, 광주, 부산, 충청, 경남, 전북 등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났다. 지난 4월에 시작돼 교사 18명 징계를 이끌어낸 '용화여고 미투' 이후 잠시 소강상태였던 움직임에 다시 불이 붙은 것이다. (관련기사: "내게 다리 만져보라던 교감... 이런 세상 끝장내고 싶다")
 

'2차 스쿨미투'로 불리는 이번 운동은 '충북여중'에서 시작된 걸로 알려졌다. 이곳은 학교 축제에서 외부인 남성이 댄스동아리 학생들을 몰래 촬영한 일을 계기로 시작됐다. 분노는 '불법촬영'에서 그치지 않았다. 교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으로 확대됐다. '충북여중 공론화 계정'은 지난 7일 "학교에선 단순히 우리가 이번 불법촬영으로 이 계정을 만든 줄 안다"라면서 "사회가 변하는 만큼 학교도 변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스쿨미투'가 들불처럼 번져나가자 충격적인 제보가 쏟아졌다.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강간당할 것 같으면 오줌을 싸라, 그럼 더러워서 안 할거다" "여자가 야하게 입고 다니면 남자들은 성욕을 참을 수 없다"라는 특정 교사의 발언이 공개됐다. 대전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지금 당장 옷을 벗고 화장실에 가서 (날) 기다리면 수행평가 만점을 주겠다"라는 발언이 폭로돼 논란이 일었다.

학생들은 성희롱 발언 뿐 아니라 성소수자나 여성을 차별하는 발언도 규탄한다. "골치 아프게 국회의원 말고 국회의원 부인이 되어라, 그게 최고다" "게이는 한국말로 네 글자인데 미친게이를 줄여서 게이라고 하는 거다" 등이 그 예다. "포스트잇 지긋지긋하다" "나도 막 대자보 붙는 거 아냐?" 등 2차 가해 발언도 고발 대상이다. 동시에 학교 측의 반응과 교사가 사과한 내용 등이 실시간으로 공유된다. 거짓 폭로로 인한 피해를 우려한 듯 "허위 제보는 말아달라"라며 학생 스스로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청와대에 호소하는 학생들 "정부가 보호해달라"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지난 5월 3일 오전 서울 노원구 북부교육지원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쿨미투 운동 지지 선언을 하고 있다.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 회원들이 지난 5월 3일 오전 서울 노원구 북부교육지원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스쿨미투 운동 지지 선언을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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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미투는 의미 있는 변화도 이끌어 내고 있다. 충북여중에서는 학교로부터 교직원의 언행 개선, 학생 토론문화 활성화, 의견수렴함 설치, 항상 열려있는 상담실 운영 등을 약속받았다. 나아가 '교내 성폭력 공론화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재발방지책을 의논할 계획이다. 대구 혜화여자고등학교는 지난 12일 전교생을 상대로 익명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설문지 서두에는 "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피해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보고, 보다 나은 학교생활이 될 수 있도록 조치하기 위한 설문"이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학교가 제보자 색출을 시도하거나 미온적으로 대응하면서 갈등을 키우는 상황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정부와 청소년 관련 세 부처는 학생들의 SOS 에 응답하라'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들은 "가해교사들이 공론화 계정을 운영하는 학생들을 색출하거나, 학생들을 어르고 달래 공론화 계정의 운영을 중단하기를 요청하는 연락을 취하고 있다"라면서 "정부가 피해자를 지지하고 보호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정치권에서 호응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교사들의 성차별적 발언을 고발하는 '스쿨미투'가 SNS를 통해서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라면서 "학교나 해당 교육청에서는 제보자 색출이나 계정 삭제 등 학생들 입단속에 급급하기 보다는 성희롱에 대한 전수조사 실시와 2차 피해방지 등 조치들을 취하기를 당부 드린다"라고 말했다.

교육부에서도 이런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 김지연 교육부 성희롱성폭력근절지원팀장'은 지난 14일 <이범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SNS를 통해서 학생들이 제보 받는 사례가 확산되는 걸로 저희도 계속 파악하고 있다"라면서 "1차적으로 해당 교육청에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고 일부 교육청에서는 가해정도가 중한 교사에 대해서 이미 이제 직무배제 해제를 추진하고 수사 의뢰를 한 단계"라고 설명했다. 

또한 징계 권한이 학교법인에 있는 사립학교 교원과 관련해서는 "성폭력 사건에서 사립학교 교원도 국공립 교원과 동일한 징계기준을 적용할 수 있도록 사립학교법령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된 상태"라면서 "(해당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회와 협력하겠다"라고 밝혔다. 

태그:#스쿨미투, #부원여중, #혜화여고, #용화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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