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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개인전>을 준비한 프로젝트팀 '서울-사람'이 직접 서울시장실에 보낸 전시 초청 공문. '서울-사람'은 3월 23일 오후 2시에 열린 '작가와의 대화' 프로그램에 박원순 서울시장을 초청했다. 그러나 박 시장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 최철림

3월 8일부터 24일까지 을지로에 위치한 비영리 전시공간 '상업화랑'에서 <박원순 개인전>이 열렸습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작가로 데뷔한 것은 아닙니다. 최근 을지로·청계천으로 대표되는 세운지구 재개발 사업을 비롯해 박 시장의 시정 운영과 정책에서 '이상 징후'를 감지한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기획전이었습니다.

심승욱, 오세린, 일상의실천, 정용택, 차지량, 최황, 한정림, CMYK 등 총 11명의 작가들은 1월 5일 처음 모여 '서울-사람'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팀을 만들고 <박원순 개인전>을 기획하자고 입을 모았습니다. 두 달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기획 회의를 하고 어떤 매무새로 전시를 만들 것인지 논의하며 준비했습니다.

우리가 <박원순 개인전>을 개최한 이유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7년 7월 강북구 삼양동의 2층 옥탑방에서 '한 달 살이'를 시작했다. 당시 박 시장은 조립식 건축물 2층 옥탑방(방 2개, 9평(30.24㎡))에서 한달을 기거하면서 지역 문제의 해법을 찾고 강남·북 균형발전을 방안을 모색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왜 하필 <박원순 개인전>이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박 시장은 어떤 행정가 혹은 정치인보다 공공미술, 공공디자인, 공공건축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2018년엔 서울시의 모든 지하철역을 예술역으로 바꾸겠다는 포부를 밝힌 적도 있고 같은 해 여름엔 삼양동의 옥탑방에서 한 달 동안 생활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2017년엔 광화문에 대형 미끄럼틀을 설치하기도 했고, 같은 해에 서울로7017을 개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장 임기 첫날부터 올해 1월까지 '예술'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뉴스를 약 2700여 개 생산했습니다. 당시 박 시장의 임기는 약 2700일 정도 지나고 있었습니다.

정치인은 대중을 향해 어느 정도 쇼잉(showing)을 해야 합니다. 퍼포먼스를 할 수도 있고 전시행정으로 보일 법한 일도 해야 합니다. 다만 그 중심에는 사회와 사회 구성원을 향한 자신만의 소신과 정치 철학이 있어야 합니다. 옳은 길 앞에서 자신의 이익과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임할 때 대중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와 사회 구성원을 향한 소신과 철학이 오락가락하면 대중은 지지를 철회하거나 실망합니다.

여기서 괴리가 발생하고, 정치와 행정은 방향을 잃고 맙니다. 프로젝트팀 '서울-사람'이 감지한 '이상 징후'는 바로 그런 괴리와 모호한 방향성이었습니다.
 
<박원순 개인전>에 참여한 작가 CMYK의 작품 <겨울나기 이벤트>. 시민 100 명에게 겨울을 나기 위한 종합 선물세트를 나눠주는 이벤트를 준비했다. ⓒ 최철림
 
<박원순 개인전>에 참여한 오세린 작가의 작품 <귤쨈, 마그마>. 상품가치가 없는 귤 '파치'에 새로운 쓸모와 가치를 부여했다. ⓒ 최철림

<박원순 개인전>은 박 시장을 직접 호출해 위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자 기획됐습니다. 전시는 을지로와 청계천에 관한 이야기를 비롯해 박 시장의 옥탑방 체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 소통의 실패와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관한 이야기, '시민'의 범주에서 밀려난 철거민들의 이야기, 박 시장이 남긴 흔적들을 모아둔 작품들로 구성됐습니다. '박원순'만을 호출하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와 도시 담론의 문제에 관해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박원순 개인전>은 박 시장 개인에 대한 조롱이나 분노 혹은 부정적 감정을 표출하지 않았습니다. 발칙한 전시의 제목과는 달리 진지한 태도로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행정 수장인 박 시장에 대해, 기대했던 정치인의 현재 모습에 대해, 진보를 외치던 사람에 대해, 시민과의 소통을 중요하게 여기던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전시를 관람한 많은 관객은 을지로와 청계천의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을지로'라는 지역의 특수한 사정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작가와의 대화에 끝내 나타나지 않은 박원순 시장 
 
<박원순 개인전>에 참여한 한정림 작가의 작품 < I.Remember.U > 을지로의 공장과 상점 간판, 상인과 장인들의 편지를 연필로 옮긴 후 전시 기간 내내 지우개로 지우는 작품. 지우개 가루를 모아 을지로의 기념비를 만드는 것으로 작품이 완성된다. ⓒ 최철림
 
<박원순 개인전>에 참여한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의 작품 < UN-KNOWN.XYZ(미지수) >. 관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작품이다. ⓒ 최철림
 
'서울-사람'팀은 23일 열린 '작가와의 대화'에 이 전시의 주인공이자 전시의 콘셉트 상 작가로 데뷔한 박 시장을 초대하기 위해 두 번에 걸쳐 공문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서울-사람'팀과 관객들은 물론 을지로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장인들은 박 시장이 부재한 그 자리에서 '소통'을 했습니다. '서울-사람'팀이 관객이자 시민인 또 다른 서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 셈입니다.

전시에 참여한 심승욱 작가는 "박원순 시장이 다시는 이렇게 호출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변화를 요구했습니다. 아마 '서울-사람'팀원 모두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겁니다.
 
<박원순 개인전>에 참여한 심승욱 작가의 작품 <누군가 떠난 자리-공간을 구성하던 것들의 변형> 중 일부. 이사 후 뜯어낸 벽지 혹은 대형 미술전시가 막 끝난 장소에 모아둔 폐기물 더미를 촬영한 사진. ⓒ 최철림

관객들은 전시를 통해 을지로라는 지역에 대해 재해석하기도 했고 철거 당사자인 상인과 장인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본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예술계 곳곳, 사회 곳곳에 퍼져있던 사람들이 모여 각자의 생각을 나누던 작가와의 대화 현장을 주최자로서 경험하며, 박 시장의 부재가 만든 그 자리의 광경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박 시장을 포함한 모든 정치인은 물론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있어야 할 자리'에 대해 고민해보자고 제안하고 싶었습니다. 

이 전시는 예술이라는 언어를 통해 이 사회에 말을 걸어본 것입니다. 전시가 끝났으니, 어떤 대답들이 돌아올지 기다려볼 참입니다. 작가와의 대화 시간에 박 시장이 불참한 이유에 대해 여러 방면으로 추측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불참한 이유에 대해 박 시장이 직접 대답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관객이 <박원순 개인전>에 참여한 정용택 작가의 <봉산개도 우수가교>를 관람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도시재생에 관한 철학이 담긴 목소리와 철거를 겪는 을지로의 상인과 장인들의 증언이 서로 충돌하는 영상. ⓒ 최철림
 
<박원순 개인전>에 참여한 최황 작가의 작품 <사건 지평선>. 포털사이트의 거리뷰-로드뷰 화면을 이용해 2010년부터 기록된 을지로 재개발 구역의 변천사를 보여준 영상. ⓒ 최철림

<박원순 개인전>을 찾아주신 많은 관객 여러분과 이 전시에 관심을 두신 많은 시민께 이 자리를 빌려 당부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전시는 끝났지만, 앞으로도 을지로와 청계천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그곳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널리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전시에 쏟아주신 관심과 시선을 '청계천 을지로 보존연대'라는 단체에도 부탁드겠습니다.

그리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더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도록 이상 징후를 감지하면 언제든 정확히 지적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전시 기간 중 박 시장의 대답을 듣진 못했지만, 그가 변화할 수 있기를, 그가 사회 곳곳에서 발현되는 중요한 가치들을 새로 업데이트 받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봅니다.
 
<박원순 개인전>의 코디네이터를 맡은 차지량 작가의 글 <개인의 절망과 희망>.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느낀 소회와 전시의 목적이 담긴 전시 서문. ⓒ 일상의실천, 차지량
태그:#박원순, #상업화랑, #재개발, #을지로, #박원순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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