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민주화 세력에게는 지금 확연히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한국정치사에서 민주화 세력과는 항시 대척점에 섰던 세력이 정권을 되찾아 갔을 뿐만 아니라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선에서 처참한 패배를 당하고도 여전히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도 못한 것을 보면 미래는 칠흑같이 어둡기만하다. 이러한 위기는 어디에서 연원하는 것일까?

 

한국정치의 척박한 토양

 

한국정치의 척박한 토양은 말 그대로 정치발전의 걸림돌이다. 그 척박한 토양의 가장 큰 책임은 정치인들에게 있다. 그러한 정치인들을 용인한 유권자와 국민일반의 책임도 적다고 할 수는 없다. 정치인은 미래를 위한 옳은 정치를 추구하지 않으며, 국민일반은 그리 선량을 분별하는 지혜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는 곧 우리의 불행한 근현대사에서 극복하기 어려운 한계로 작동하였다.

 

일제의 식민통치가 종결되던 시점에 우리는 역류하던 역사의 흐름을 정상으로 되돌려놓지 못하였다. 친일과 반민족 행위를 단죄하기는 커녕 그러한 행위자들이 사회의 기득권을 여전히 유지하는 데에서 불행은 잉태된 것이다. 미군정의 비호를 받는 가운데 이승만이 집권하였고, 그는 친일파를 자신의 통치기반으로 흡수하고 말았다. 역사적 가치관이 전도된 시발점이다.

 

친일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는 정권에 의하여 무력화됐다. 한국전쟁은 또 한번의 치유할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친일행위자들이 하루아침에 반공투쟁의 선봉에 서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친일은 기득권을 낳고, 반공은 통치의 기반을 만들었다. 반공을 무기로 마구 폭압을 가하면 자연히 집권의 기반이 강화되는 이상한 구조를 만들었다. 이 때 형성된 레드컴플렉스는 아직도 위력을 발휘한다.

 

정치군인들의 쿠데타는 국론통일과 반공을 명분삼아 강력한 지배권력을 형성시켰다. 그들의 통치를 위해 만들어진 또 하나의 무기가 바로 지역감정이다. 반공만으로는 영구집권의 무기로 부족함을 느낀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관주도의 경제개발이 일정한 성과를 내면서 독재는 국민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불가피한 것처럼 오도된 가치관을 심어준다. 박정희가 여전히 가장 훌륭한 통치자로 추앙받는 오늘날의 현상도 거기서 시작된 우리의 불행이다.

 

독재정권과의 투쟁속에 형성된 민주화 세력의 기득권도 걸림돌로 작동하고 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각기 대표적 세력을 형성하고 정치기득권을 일정부분 획득한 것도 독재권력의 그림자였다. 그들이 정당정치를 무력화하고 정치를 과점적으로 지배하는 과정에서 지역주의가 더욱 심화되고, 정당정치는 실종되었다. 특히 김영삼의 군사정권과의 야합은 통탄할 일이다. 게다가 그는 야합으로 얻은 정권을 잘못 운영하여 나라를 파탄지경으로 이끌고 말았다. 또 민주화 세력의 극심한 분열의 씨앗이 되기도 하였다.

 

정상과는 괴리가 있는 현대 정치사가 결국 민도에 영향을 미치고, 여전히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독재를 성과로 전도시켜서 추억하는 저열한 사고, 지역주의에 함몰되어 가치를 외면하는 더러운 투표행위, 다양성을 분열과 혼란으로 사고하는 비민주적 사고방식, 형평성이 무시되고 효율성만 요구하는 성장지상주의,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분별하지 못하고 휩쓸리는 얄팍함, 그리고 기득권의 거대한 카르텔에 함몰되어 자신의 이익에도 반하는 선택을 하는 어리석음이 만연하였다.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실패

 

척박한 토양이었다고 하더라도 금번의 정권교체는 매우 충격적인 결과이다. 사상 유례가 없이 큰 득표율 차이에서 확실히 민주화 세력은 위기를 직감하고 있다. 다시는 정권을 찾아오기 어려워보이는 것은 물론이고, 적정한 수준의 견제세력으로 존립할 근거조차 상실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게다가 스스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돌아보면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은 토양을 바꿀만한 큰 지향을 가지고 출범하였다. 모두가 그렇게 옳은 지향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민의 지지를 받아낼 의미있는 틀은 갖추고 있었다. 정권초 친일청산과 독재시절의 문제점을 정리하려고 노력한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 열린우리당이 창당되면서 지향한 가치들도 근본적으로 옳은 것이었다. 지역구도를 극복하려는 것이 그렇고, 일인지배정당을 벗어난 상향식 지배구조를 추구한 점도 그렇다. 부패정치를 일소하려는 노력도 매우 의미있는 발전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다. 시대적 소명에 충실하지 못하고, 참여한 정치인들이 비겁하게 퇴행을 거듭한 결과이다. 근저에는 이미 기득권을 확보한 계파들의 정치적 이익쟁탈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정권이 지지층의 요구와는 다르게 기득권층의 이익과 부합하는 정책을 편 점도 있었으나, 정당의 계파들이 벌인 기득권 쟁탈전이 지나치게 과열된 점은 결정적인 패퇴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말았다. 특히 정동영과 김근태의 계파운영은 마치 김영삼과 김대중의 흉내를 내는 것과 같았다. 시대는 나아가는 데 그들은 퇴행한 것이다.

 

양김의 카리스마와 그들이 지녔던 정치적 영향력은 이들에게 무척 매력있어 보이는 기득권이었다. 특히 김근태와 정동영이 가지고 싶었던 것은 김대중의 영향력과 같은 민주화 세력의 대표주자 자리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애당초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 내걸었던 지향점들과는 극심한 괴리를 보였다. 지역구도의 극복이 그렇고, 상향식 정치가 그렇다. 깨끗한 정치도 결과적으로 계파보스들에게는 얻을 것이 작아지는 요소일 뿐이다. 노무현이 고집하는 가치들이 그들에게는 오히려 불편한 장애물로 작용한 것이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장관자리에 대한 다툼이었다. 열심히 당을 도와준 기간당원들에 대한 비난이었다. 참여정부의 정책지향에 대한 반발이었다. 자신들이 스스로 내걸었던 원대한 지향점이 모두 그들의 정치적 행보에 걸림돌로 작동한 것이다. 계파를 거느리고, 지역에서의 몰표를 확고히 챙기며, 공천권을 가지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과거 양김을 흉내내기 위해서는 그들을 담고 있던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이라는 그릇이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스스로 만든 정당을 그렇게 허물려고 노력한 것이다.

 

야당과 주요언론은 참여정부를 실패로 규정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이었다. 그리고 노력한 것보다 훨씬 크게 효과를 보게 되었다. 이번 대선이 무조건 정권을 교체하자는 분위기로 흐른 것은 그들의 전략이 대성공을 거두었음을 의미한다. 거기에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낮아질 때마다 정동영계와 김근태계는 참여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참여정부 실정론이 확산됨을 감지하고 거기에 함께 실려가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럴수록 참여정부는 아마추어, 무능, 독선과 오만이라는 딱지가 선명하게 붙어갔다. 양 계파의 차별화에 몰두하면서 노무현 때리기는 국민스포츠가 되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국정당, 깨끗한 정치, 상향식 정치, 백년가는 정당을 지향하던 열린우리당은 사라지고 말았다. 참여정부는 철저하게 무능하면서 독선에 빠진 정권이 되고 말았다. 대통합민주신당이 생겨나는 과정에서는 아예 명분같은 거추장스런 것은 갖다붙일 생각도 없었다. 아무렇게나 정치공학적으로 연합하면 반한나라당 성향의 표들이 결집할 것으로 여겼다. 이 과정에서는 이미 흘러간 김대중의 영향력이 철저히 작용하고 현직인 노무현은 배제되었다.

 

그리고 대선을 치른 결과 명분도 모두 잃고, 실리도 전혀 챙기지 못한 허상이 되고 만 것이다. 이제 그들은 참여정부와는 상관이 없이 김대중을 추종하는 세력에 불과한 것이다. 이미 퇴임한 지 5년이 지난 전직이 현직을 지배하는 이상한 모습을 만들고 말았다. 그렇지만 그들이 참여정부에 대한 심판론을 피할 수는 없다. 스스로 참여정부의 실패론에 동의하였다고 해서 그들이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는 이른 바 '친노세력'을 희생재물로 바치면서 철저히 참여정부와의 선긋기를 시도할 모양이다.

 

그러나 국민은 진실을 희미하나마 눈치채고 있다. 그들이 부정하려 하더라도 참여정부의 실패가 있다면 그들도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 설혹 그들의 책임이 없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책임을 면하려고 노력하는 행위에는 동의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온국민이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욕해도 그들이 그 대열에 참여하는 것은 배신으로 보일 것이다. 별다른 탈출구는 없다. 진정한 참회만이 그들을 구원해줄 것이다.

 

국민의 내밀한 마음을 읽어야 산다

 

민주화 세력이 지금 국민의 외면을 받는 근본적인 이유는 시대정신을 거스르기 때문이다. 국민의 여론에 우왕좌왕할 뿐 자신들만의 주의주장이 사라진 까닭이다. 국민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없다. 그저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울 뿐 아무런 반성도 참회도 없다. 여전히 그 알량한 기득권을 누가 얼마나 가질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이래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는 불가능하다.

 

우선 참여정부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회피한 것에 대하여 반성해야 한다. 그들이 권력을 향유했지만 책임은 회피하려 했던 비겁한 퇴행을 진심으로 반성해야 국민의 관심을 다시 받을 수 있다. 권력을 향유할 때는 언제고, 책임은 모두 떠넘기려 하면 누가 그런 정치세력을 믿어줄 것인가? 책임은 노무현이 지고, 계파의 정치적 이익은 자신들이 얻으려고 술수를 부린 것부터 처절히 반성해야 한다.

 

지지세력을 비토세력으로 만든 과오를 뉘우쳐야 한다. 돈내고 시간쪼개서 열심히 도우려고 했던 당원들을 비난하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전당대회 투표권까지 빼앗아간 행위에 처절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돈은 열심히 받아가고, 선거운동은 도와달라고 읍소하면서, 공천은 자신들이 전략공천하더니 패배하면 당원들을 비난하던 작태를 반성해야 옳다.

 

그런 당원들을 떨어뜨리기 위하여 당을 아예 부숴버린 행위를 무엇으로 용서받을 것인가? 그리 훌륭하지는 않으나 그럭저럭 시대정신을 담았던 정당을 만들었다 불편하니 곧장 깨버린 행위에서 이반된 지지자들의 분노를 무엇으로 감당할 것인가?

 

국민은 확실히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을 외면하였다. 그러나 그 안에 속했던 자들까지 자기얼굴에 침밷고 돌아서는 것은 더더욱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지막 남은 유일한 길은 다시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동안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을 만들고 확대하기 위하여 저지른 패악을 직시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정신은 역시 정책정당의 건설이다. 또 정치공학을 벗어나는 일이다. 여전히 정치공학을 계산하며 지역주의를 만지작거리는 정치세력이 민주화 세력의 미래를 담당할 수는 없다.

 

이제 차라리 한나라당을 본받아라. 자신들의 잘못된 과거 자산을 고스란히 안고서도 당을 깨부수고, 이합집산을 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잘못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정당정치를 크게 훼손하지도 않았다. 탄핵으로 모두가 정치적으로 퇴출될 위기에서 그들은 이합집산이 아니라 자기혁신의 모습을 보였다. 설사 그러한 모습이 진실이 아니더라도 비겁하게 도망치는 이합집산이 아니라 정체성을 유지한 채로 반성하는 태도를 취한 것이 오늘날 다시 정권을 찾아간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미 잘못 짜인 대통합민주신당은 그대로 고수할 가치가 없다. 정책의 차이에 따라서 서로 갈리고 찢어지는 것이 옳다. 한나라당에 맞는 자들은 한나라당으로, 이회창 신당에 맞는 자들은 거기로, 호남 지역당에 맞는 자들은 새로운 호남지역당을 건설하고, 지역구도를 극복하고 진정한 정책정당을 만들 자들은 그들끼리 다시 정당을 만들어라.

 

그러고도 한동안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오랜 기간 인내하며 국민의 마음을 사려고 노력하면 어느 날인가 국민의 관심을 다시 모으게 될 것이다. 오합지졸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법이다. 이 시대에는 정책정당이 필요하다. 정당정치를 긴안목으로 안정되게 지향하는 정당이 필요하다. 어차피 곧 헤어질 자들끼리 모여서 힘을 모아봐야 아무도 지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하던 짓과 반대로 하면 다 잘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노사모에 함께 올립니다.


태그:#민주화세력의 위기, #참여정부, #열린우리당, #대통합 민주신당, #진정한 참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