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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오후 서울시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모습. 정부는 이날 2021년도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 시험 시작을 하루 앞두고 1주일 연기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9월 1일 오후 서울시 광진구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모습. 정부는 이날 2021년도 제85회 의사국가시험 실기 시험 시작을 하루 앞두고 1주일 연기 방침을 전격 발표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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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31일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거부했던 의대생들에게 2021년 1월 추가 시험 기회를 주기로 했다. 이는 집단행동을 벌인 의대생에게 추가 시험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공정성에 어긋나고 국민 여론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입장에서 크게 벗어난 결정이다. 추가 시험으로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 도입으로 인한 정부와 의사들 사이의 갈등이 종결되지도 않을 것이며, 그 어떤 결과도 도출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갈등의 회피일 뿐이다.

결국 의사들의 이해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국민을 굴복 시켜 승리를 쟁취하였다. 그러나 그 대가는 크다. 우리는 공평한 사회로 한 걸음 더 다가가고, 의사들은 잃어버린 우리의 신뢰를 다시 얻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이다.

다양한 이해가 서로 충돌하는 사회에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존재하며, 갈등은 우리 삶의 일부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갈등해결 능력이 필요하다. 갈등은 그 자체로 나쁘지 않다. 우리를 발전시켜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이 심화되면 모두에게 위협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대화로 해결할 수 없으며, 상대방이 상처를 입고, 협의나 협상이 아닌 싸움이 되고 나면, 갈등이 끝났을 때 당사자 모두 패배자가 된다. 그래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충돌할 때 상반되는 이해관계가 어떻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 어떻게 쌍방 모두 이겼다는 느낌을 가지며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지 하는 물음에 관심이 많다.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 도입으로 의료 취약지역을 해소하겠다는 정부의 주장은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반면에 의협에서 주장하는 반대논리는 명확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 주장을 정리해보면 의대정원 증원으로 인해 의사의 지위가 하락할 거라는 의사들의 이해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

이 두 이해의 상충을 조정하기 위해 관련 당사자인 정부와 의협은 몇 가지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먼저 당사자 사이의 직접적인 대화로 갈등의 해결을 시도할 수 있었다. 왜 의사들이 공공의대 설립과 지역의사 도입 정책에 당사자가 돼야 하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의협과 정부 간의 대화일 것이다. 하지만 말이 쉽지 대화로 이런 분쟁을 해결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의사들이 대화도 하지 않고 바로 파업을 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다음으로 법정에서 판사의 결정을 구하는 방법이 있다. 이번 경우 이러한 법적 다툼이 가능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삶의 영역 모든 것을 제어하고자 하는 법과 법령의 범람으로 개인의 삶의 반경은 축소되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 삶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나는 우리 자신의 이익에 미치는 이러한 영향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이기든 사법적 결정은 상황의 진정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바로 갈등의 심화로 이어진다. 분쟁 당사자 간의 관계 지속은 어려워지고 사회적 공존은 매우 어려워진다. 법정에서의 결정은 갈등을 실제로 끝내는 것이 아니다.

다음은 중재이다. 중재는 갈등을 성공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이다. 전통적인 사법 절차에 대한 대안으로 분쟁 당사자가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기회이다. 분쟁당사자들이 중립적이고 공정한 제 3자가 협의에 개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중재자는 당사자들이 분쟁을 독립적이고 책임을 지고 처리하고, 해결책을 개발하고 조정능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번 경우에도 합의안이 나오기 전에 의료계 원로 혹은 시민단체 원로들의 이러한 시도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중재는 없었다. 이 과정에서 의대생들이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 정부 정책에 반발해 실기시험 응시를 거부하였다.

이번 의대정원 증원 문제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갈등관리를 위한 제대로 된 어떤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정부와 의협의 합의는 합의가 아닌 정부의 굴복임이 분명하다. 잘못된 합의, 합의라는 이름의 갈등회피이다. 갈등의 해결이 아니다. 우리도 의사도 패배자가 됐다. 의사는 이기적인 집단이 됐고, 우리는 불공평한 사회에서 또 오랜 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왜 합의가 해결이 아닌가.

"'해결'은 '결과'와 '일치' 그리고 '종결'의 세 가지 의미범주를 포함한다. '해결'이라는 말은 '갈등'이라는 말과의 연관에서 서로 반목하는 두 진영 사이의 긴장이 종결될 경우 성공적인 갈등해결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 그 전에 결과가 구해져야 하며, 이 결과는 이 두 진영에게 계속해서 그들의 이해를 완전하거나 제한된 범위에서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한다. 즉, 상호 간의 일치가 있어야 하며, 이 일치는 계약에 의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이는 양자의 이해가 서로 상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들의 이해를 일정 부분 줄이려는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김갑년, 고대신문 탁류세평 2016.12.4.)

이번 추가 시험 역시 갈등의 해결이 아니라 회피이다.

태그:#민주시민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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