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30 07:02최종 업데이트 21.01.07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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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기가 끝나도 기록은 남습니다. '전직'이 된 국회의원들은 정치자금의 마지막 한 푼까지 "의혹 없이", "공명정대하게"(정치자금법 2조) 잘 활용했을까요? 유튜브의 시대, 코로나19 팬데믹은 영향이 없었을까요? 오마이뉴스는 20대 국회 마지막 해의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를 분석해봤습니다. [편집자말]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이고, 아무리 의정활동을 잘해도 유권자가 모르면 말짱 도루묵이다. 모든 국회의원은 자신의 의정활동을 국민에게 홍보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사용한다. 시대가 바뀌면서 페이스북과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 활용에 적극 나서고, 유튜브를 통해 영상으로 의정활동을 보고하는 의원실도 늘어났다. 하지만 종이로 된 의정보고서는 2020년 현재까지도 전통적인 의정홍보 방법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오마이뉴스>가 제20대 국회 마지막인 2019~2020년 정치자금 내역을 분석한 결과, 여전히 여러 국회의원들이 다양한 종류의 의정보고서를 제작 및 출판하면서 수천만 원가량의 정치자금을 사용하고 있었다. 현직뿐만 아니라 전직도 마찬가지였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20대 국회의원 재직 당시 의정보고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추미애의 99心'. ⓒ 안홍기

  
20대 국회 '출판왕'은 추미애 법무부장관이었다. '도서출판'이라는 명목 1건으로 7920만 원을 썼다. 관련 단일 항목으로는 최대지출이었다. 

관련 지출을 의원별로 합산할 경우, 2019~2020년도 의정보고서 제작에 가장 많은 돈을 지출(발송료 및 인건비 등은 제외)한 이는 정동영 전 민생당 의원과 나경원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었다. 정 전 의원은 '의정보고서' 비용으로 3468만8000원을 쓴 것을 포함해 총 7차례 반도기획인쇄에 지출했다. 싸인아트에도 '의정보고서 패트 출력물 등'이라는 명목으로 299만9000원을 사용했다. 총액은 9850만9667원이다.


나 전 의원은 '의정보고서 제작대(용지대)' 명목으로 3857만7000원, '2020년 의정보고서 제작비 미결분'으로 3952만9460원과 471만4740원을 지출했다. 2019년에도 의정보고서 인쇄비 407만1000원, 의정보고서 제작비 184만2500원을 사용했다. 그 외에도 '편지형 의정보고서 제작비'로 902만2200원 등에 썼다. 총 9775만6900원.

추미애 의정보고서 보니... 풀컬러 200쪽, 24년 의정활동 총정리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20대 국회의원 재직 당시 의정보고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추미애의 99心'. ⓒ 안홍기

 
통상적으로 의정보고서는 짧게는 월간이나 분기별로 혹은 연간으로 만든다. 임기를 마칠 즈음 4년의 의정활동을 그러모은 종합 의정보고서를 제작하는 경우도 흔하다. 통상 지역구 민원을 어떻게 해결했다거나 진척 상황을 보고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런데 단일 의정보고서로는 가장 많은 비용이 지출된 추미애 장관의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추미애의 99心>은 여느 의정보고서와는 성격이 달랐다. 추 장관의 의정보고서는 정치 입문부터 정치 역정을 정리하고 법무부장관으로서 검찰개혁의 의지까지 담고 있었다. 부제는 '국회의원 24년 종합 의정보고'다. 

추 장관은 의정보고서 인사말에 "제게는 하나하나 쉼표 없는 도전의 기록들"이라며 "좌고우면하지 않고 숨 가쁘게 달려온 그 길, 이제 되짚어본다"라고 적었다. 그는 "그 길을 묵묵히 함께 걸어주신 여러분들께 이 기록을 바친다"라며 "검찰개혁이라는 시대 사명을 위하여 제게 기대와 용기, 소명이라는 생기를 불어넣어 주신 분들께도 이 책을 드린다"라고 덧붙였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20대 국회의원 재직 당시 의정보고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추미애의 99心'. ⓒ 안홍기

  
국회의원 시절부터 지금까지 추 장관과 함께 일하는 이규진 법무부장관 정책보좌관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추미애 장관이 의원 활동한 게 24년이다. 다시 국회의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라며 "1년, 4년이 아니라 지난 24년의 내용을 모두 담아서 종합의정보고서 개념으로 내자는 취지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추미애라는 정치인이 초선 때부터 의정활동 어떻게 했는지를 다 담는 기획이었다"라면서 "단순히 추미애라는 개인을 넘어서, 한국정치사에서도 기록으로서의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해 살펴본 이 의정보고서는 이 보좌관의 말대로 '정치인 추미애의 24년'을 충실히 담고 있다. 1996년 서울 광진을에서 처음 당선된 추 장관은 2020년 1월 법무부장관으로 임명됐고, 지난 5월 29일 국회의원 임기를 마쳤다. 그의 의정보고서는 지난 24년 간의 연설, 언론인터뷰, 의정활동 전반을 진심·충심·초심이라는 테마에 맞춰 섹션별로 33개씩 총 99가지로 정리했다. 분량도 내지 포함 총 218쪽에 달하며 전부 컬러인쇄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20대 국회의원 재직 당시 의정보고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나가는 추미애의 99心'. ⓒ 안홍기

  
전반적으로 지역구민에게 의정활동을 보고하는 내용이라기보다 '사진과 함께 보는 추미애 자서전'에 가까웠다. 이 같은 내용으로는 지역구민을 대상으로 한 의정활동보고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추 장관을 성원하는 팬층에 대한 '팬북' 혹은 '답례품' 정도의 명칭이 어울린다.

이 같은 정치자금 지출 역시 규제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의정보고서가 아니라 자서전 출판에 정치자금을 썼더라도 위법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 정치인의 개인홍보와 정치활동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개별적으로 내용을 확인해서 정치활동으로 볼 수 있으면 정치자금을 사용해도 되고, 개인홍보라든가 그런 쪽이면... (어려울 것 같다)"며 "그게 애매해서 법적으로도 명확히 규제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의정보고서 제작, 비용은 상당한데...

그런데 의정보고서 발간에는 대체로 제작부터 우편 배송까지 수천만 원이 들어간다. 의원 1인당 1000만 원으로 계산해도, 300명이면 약 30억 원이다. 하지만 국회의원 대부분은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에 몇 페이지짜리 의정보고서를 몇 부 정도 인쇄했고, 단가는 어느 정도였는지를 기록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의정활동을 알리기 위해 의정보고서를 제작하면서도, 정작 여기에 쓰인 정치자금 내역은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셈이다.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오마이뉴스>는 19대 국회의원 정치자금을 분석할 때도, 2012년 6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의정보고서 관련 지출이 약 56억 원에 달하지만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에 발행부수조차 제대로 남기지 않는다고 지적했다(관련 기사: "원내 의원만의 특권" 의정보고서에 부은 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주)디오메이커스에 '의정보고서 제작 및 인쇄대' 명목으로 2609만8000원을 지출하며 '8p, 6만2000부'라고 쓴 유재중 전 의원, 태영인쇄 도서출판누리에 '2020년도 의정보고서 제작'으로 2288만 원을 쓰면서 부수(8만 부)를 명시한 이춘석 전 의원의 경우가 '희귀 사례'였다.

추미애 장관 역시 정치자금 수입·지출보고서만으로는 어떤 분량으로, 몇 부나 인쇄했는지 등을 전혀 알 수 없었다. 서울 광진구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추미애 의원실이 출판 관련 계약서와 영수증을 제출한 건 맞다"라면서도 "영수증에 계약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아서 우리도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또 "실제로 이게(계약 내용) 집행된 건지, 몇 부를 뽑았는지까지 저희가 감독할 권한은 없다"라며 "우리도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제도적인 문제"라고 설명했다. 

의정보고서 발간 자체를 두고도 여의도 기류는 엇갈린다. 온라인 플랫폼이 점점 강력해지는 시대인만큼 의원실들도 계속 거액의 비용을 의정보고서 제작과 출판, 배송에 써야 할지 고민이다. 한 야당의 보좌진은 "기후위기를 맞아 페이퍼 프리(Paper Free, 종이 쓰지 않기)를 실천해야 할 시대에 매년 종이가 상당히 낭비되고 있다"라며 "국민 세금으로 만드는 의정보고서인만큼, 기존의 방식은 조속히 폐지하는 방향을 고민해봐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반면 또 다른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전자 의정보고서는 꽤 오래 전부터 많은 국회의원들이 시도한 방법이지만, 아직은 '성의' 차원에서 종이로 받아야 한다는 인식도 남아있다"라고 짚었다. 이어 "소셜미디어 등이 익숙하지 않은 유권자도 고려해야 한다"라며 "어떠한 계층도 소외되지 않고 쉽게 의정활동을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가 계속 됐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는 19~20대 국회의원 504명이 9년간 지출한 정치자금 4091억 7158만 6508원의 수입·지출보고서를 공개합니다(선거비용 제외). 상세한 내역은 '정치자금 공개 페이지'(http://omn.kr/187rv)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데이터 저장소(https://github.com/OhmyNews/KA-money)에서 데이터파일로 다운로드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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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국회의원 정치자금 공개(2012-2022)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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