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9 07:47최종 업데이트 20.09.09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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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언제나 내게 겁을 줬다. 교회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가거나 신이 복을 주지 않아서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거라며. ⓒ unsplash

 
학창 시절, 교회는 내게 늘 협박하는 기관이었다. '예수 안 믿으면 지옥 간다', '주일 성수(일요일마다 성실하게 교회에 가는 일) 안 하면 지옥 간다', '동성애하면 지옥 간다', '주일(일요일)은 하나님이 안식하신 날이므로 공부하면 안 되고 일해서도 안 된다' 등 이렇게 교회는 언제나 내게 겁을 줬다. 교회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지옥에 가거나 신이 복을 주지 않아서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거라며.

성인이 된 후 내 의지로 종교를 선택할 수 있게 됐을 때 알았다. 교회의 협박은 그리 무서운 게 아니었다는 걸. 교회에 가거나 안 가거나 인생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사후의 지옥은 이야기하면서 생의 지옥, 마음의 지옥을 이야기하는 개신교인은 없었다. 그래도 이따금 청춘의 언덕을 오르는 게 너무 힘들 때면 비틀비틀 교회에 찾아갔다. 교회에서 내가 제일 먼저 마주한 건 새 신자 등록 카드였다. 마음이 지쳐 쉬러 왔는데 개인정보부터 쓰라고 하니 가슴이 턱 막혔다. 그 길로 교회를 나왔다. 신은 없다고 생각했다.

남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  
 

옥바라지골목의 보존을 요구하는 주민대책위와 시민들이 9일 오전 철거작업이 진행중인 옥바라지골목에서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옥바라지선교센터는 2016년 옥바라지 골목을 시작으로, 아현포차·궁중족발 등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 대처해 왔다. ⓒ 대책위제공

   
협박하지 않는 교회를 만난 건 옥바라지선교센터(이하 옥선)가 처음이었다. 옥선은 '도시 빈민 기독 운동 단체'다. 재개발과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그로 인한 강제 철거로 집과 가게를 잃은 사람 곁에 십자가를 세우고 예배했다. '남을 위해 기도를 한다고?' 2016년, 옥선에서 활동하는 신학생을 보고 처음 한 생각이었다. 태어나 남을 위해 기도하는 개신교인은 정말 처음 봤다.

옥선은 강제 철거를 당했거나 당할 위기에 놓인 곳에 가서 예배를 했다. 그걸 '현장 예배'라 불렀다. 현장 예배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예배와 달랐다. 일단 예배 장소가 교회가 아니었다. 강제 철거로 부서진 건물 옆이었다. "믿으시면 아멘" 같은 말도 하지 않았다. 지옥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설명하며 겁주지도 않았다.


대신에 신을 불렀다. 여기에 당신의 빈자리가 있으니 오시라고, 오셔서 이웃이 쫓겨나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라고. 그렇게 기도하고선 쫓겨난 이의 손을 꼭 잡았다. 예배마다 성찬도 했다. 성찬은 동그란 전병을 포도주에 찍어 나눠 먹는 일이다. 신의 몸과 피를 나눈다는 의미인데, 성찬을 한 우리는 신 앞에서 평등한 연대체가 된다는 뜻을 담고 있었다.

현장 예배가 열리는 곳엔 늘 쫓겨난 이웃이 있었다. 이웃이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현장 예배 시간에는 자신이 따르는 신이나 초월적 존재에게 기도했다. 간절하게 기도하는 이웃과 연대인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신은 없어", "천국과 지옥 같은 건 없어"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됐다. 일터와 집을 잃은 채 모든 걸 걸고 투쟁하며 기도하는 이웃 앞에서 그렇게 냉소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

2017년 어느 날, 국가 폭력으로 인한 참사로 아이를 잃은 유가족과 함께 예배했다. 그날 설교하던 목사는 천국에선 누구나 아픔도, 상처도 없이 건강한 모습으로 뛰어논다고 말했다. 그 사건으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가 물었다. "우리 아이는 많이 다친 채로 발견됐는데 천국에선 우리 아이가 온전한 모습으로 밝게 지내는 건가요?" 목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머니는 울었다.

나는 그 일이 있고 난 후 다시는 신 같은 건 없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니, 오히려 간절히 신을 불렀다. 신이 있어야 한다고. 무능하고 원망스러운 존재지만, 가난하고 억울한 이웃 곁에 제발 있어 달라고. 이 목소리들을 제발 들어달라고. 이렇게 현장 예배는 내게 종교의 이름으로 이웃과 연대하고 함께하는 법을 알려줬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화한다는 방역 당국의 지침에 따라 옥선은 노량진수산시장과 함께하는 현장 예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을 향한 저항이기도 하고 쫓겨난 이웃을 섬기는 시간이기도 한 현장 예배가 멈춰지니 아쉽고 노량진수산시장 상인 언니들이 보고 싶다. 

예배 없는 긴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옥선 활동가의 글에서 힌트를 찾았다. 옥선 활동가 강세희는 'NCCK 사건과 신학' 4월호에 "지금을 다시 모일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으로 여기지 말고, 흩어져보니까 비로소 흩어진 사람들이 보이더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썼다.

강세희의 말처럼, 많은 교회가 이 시간을 '빈자리를 느끼는 시간'으로 보내면 어떨까. 교회에 가지 못하는 시간에 교회가 놓치고 소외시키며 배제한 이웃을 떠올려 보자. 예배의 빈자리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자. 교회 계단을 올라갈 수 없는 휠체어 탄 장애인, 신을 믿고 따라도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성소수자, 주말에도 일해야 하는 노동자, 투쟁 현장을 지키느라 교회에 갈 수 없는 이웃들. 교회가 이 얼굴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긴 시간을 보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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