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14 10:42최종 업데이트 18.10.14 10:42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오연호 지음)를 읽은 다양한 독자들이 '행복한 나', '행복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합니다. 이 글은 우수상 수상작입니다. 우리 안의 덴마크, 우리 안의 꿈틀거림을 응원합니다.[편집자말]
"우리 딸이 딱 아가씨 또래인데 얼마 전에 회사를 관뒀어. 항상 작곡을 하고 싶었다는데, 엄마인 내가 그걸 20년이 넘도록 몰랐던 거야. 늦은 거 알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해주면 좋을까?"

2년 전, 잠깐 다니던 컴퓨터 학원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내게 한 질문이다. 친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마주칠 때마다 장난스럽게 "짝꿍!" 하며 인사하던 쾌활한 분이었다. 그런 아주머니의 물음에 대답하려는 순간, 나는 갑자기 온몸이 굳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음속에서 누군가 이렇게 외쳤기 때문이다.


'네가 뭐라고 답할 건데? 네가 뭔데!'

나는 아주머니에게 당황스러운 표정만 지어보였고, 결국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학원 마지막 수업이었고, 내 생각을 아주머니에게 전할 수 있는 기회는 영영 날아가버렸다.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일이 왜 이렇게 어려워진 걸까? 스스로에게 느꼈던 그 안타까운 감정은 한동안 잊히지 않았다.

'현실을 봐. 이런 현실 속에서 영원히 살기 싫어. 진짜 시궁창 같아.'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현실'이다. 대체 우리가 그토록 원망하는 우리나라 현실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이 현실로부터 도망쳐야 하는가? 아니면 함께해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적이 되어 싸워야 하는가?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는 이런 혼란과 두려움의 시간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을, 평범하고 나약한 우리가 조금씩 주인공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솔직히 '덴마크'라는 이름만 들어도 슬퍼지는 사람이 많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눈 감는 그 나라의 삶은 우리와 다른 세계의 이야기 같으니까.

나 역시 덴마크는 우리가 갈 수도, 닿을 수도 없는 나라라고 확실하게 선을 그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책을 읽고 나면 상대적 박탈감만 더 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했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 책 표지 ⓒ 오마이북

 
그런 독자들의 마음을 미리 알았던 것인지,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는 과감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여러 방향을 소개하지만 답을 정하지는 않았고, 한 유럽 국가인 덴마크의 국민성, 가치관, 마을, 이웃, 학교, 감옥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을 모두 방문하고 느끼고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면서도 중간 중간 저자의 솔직한 내적 고민과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함께 담아냈다. 평범한 '인간'으로서, 연대를 통해, 독자들과의 연결 고리를 놓지 않은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도 "한번 해볼 만하다.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온몸으로 응원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왔다. '1년에 겨우 50일 남짓 해가 뜨고 나머지는 우중충하고 흐린 날이 계속되는 덴마크가 해내는데, 셀 수도 없이 맑은 날들 속에서 사는 우리나라가 왜 못한단 말인가.' 그렇게 주눅 든 독자들의 마음을 세차게 두드린다.

덴마크의 '이상적인 선례'들은 비단 사회의 교육, 복지 등 우리가 중요시 여기는 굵직한 부분들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투명한 물에 떨어뜨린 물감 한 방울이 빠르고 강렬한 색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그들은 일상의 작은 변화를 통해 '패배자'가 없는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11명이 모여야 한 팀이 된다는 축구 공식에 굴하지 않고 몇 명이 모이든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운동장 크기를 모두 다르게 만든 코펜하겐 시내의 축구 단지부터, 덴마크 정부의 당연한 권위를 거부하고 스스로 규칙과 울타리를 만든 파격적인 공동체 '크리스티아니아' 공동체까지.

덴마크는 낙오자 없이, '같이'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누구에게나 자유를 보장하고 있었다. 스스로 주도하면 변화가 시작되고, 함께 즐겁다면 승리한다는 것을 보여준 덴마크는 개인의 따뜻한 선택이 모여 하나의 국가를 이뤄냈다.

우리나라 역시 이런 따스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매일 접하지만 알아채지 못했던, 일상의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에서 우리는 '행복한 국가'로 나아가는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우리 주변의 '이웃들'이 만들어내는 소소한 감동들에 미소 짓는 연습부터 시작하자. 걸음마를 연습하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아기의 모습, 한 승객의 휠체어 바퀴가 열차 승강장 사이에 걸리자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달려가 돕는 지하철 안 시민들의 모습, 노화로 거동조차 하지 못하는 아내를 여전히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 이 모든 것이 바로 덴마크에 뒤처지지 않는 우리의 '희망'이다.

그리고 이 희망을 더욱 강렬히 타오르게 하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에서 저자가 책의 모든 페이지를 통해, 있는 힘을 다해서 강조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자기애(愛)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책을 읽고 나의 삶을 비교해가며 내린 해답은 이것이다.

'위험한 선택을 피하지 말고, 후회를 사랑하라.'

나는 5년 전, 다니고 있던 대학교를 자퇴했다. 내 인생 설계도에서 '학교'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학교 밖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가고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이런 나의 선택에 주변은 난리가 났다. 깜짝 놀라며 이유를 묻는 사람, 말리고 다그치는 사람, 심지어 '앞으로 어떻게 될지 보자'며 비아냥거리는 사람까지 있었다.

내가 가깝게 느꼈던 이들조차 한순간에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것을 보며 정말 많은 상처를 받아 울기도 했다. 자퇴 후에 벌어진 예상 밖의 힘든 상황에 너무 마음이 아파 내 선택을 후회했던 날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5년이 흐른 후 지금의 나는 당당히 말하고자 한다. 후회는 우리가 부끄러워 할 대상이 아니라고. 삶의 '후회'는 세상의 규칙과 편견으로부터 내가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웠다는 치열한 증거이자 평생 나를 다시 일으켜줄 디딤돌이다.

후회 없이는 사랑도 행복도 없다. <우리도 사랑할 수 있을까>는 내 이런 삶의 방식에 확신을 줬다. 멀게만 느껴졌던 덴마크의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내가 살고 있는 이 한국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깨닫게 해주어 더욱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우리, 두려워하지 말고 다시 한번 행복을 꿈꿔보자. 부족하고 나약했기에 사랑스러웠던 나와 이 세상을 믿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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