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21 13:48최종 업데이트 19.08.22 11:54
사법농단이란 초유의 사태 이후 사법개혁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독일 현지에서 약 1700km를 누비며 그 해법을 고민했습니다. 이 연속보도를 통해 '서초산성'이 되어버린 한국 법원이 나아갈 방향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독일 카를스루에에 위치한 연방일반법원에 전시된 정의의 여신상. 한 손엔 저울, 다른 한 손엔 '정의(Gerechtigkeit)'가 새겨진 검을 들고 있다(왼쪽).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한 손엔 저울을, 다른 한 손엔 법전을 들고 있다. ⓒ 남소연 권우성


[서초산성 ①] 서초동의 엘리트들, 그리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http://omn.kr/1kear

독일로 떠나기 전 이런저런 자료를 뒤지다가 뜻밖의 기사를 보게 됐다. 2013년 5월 서기석 당시 헌법재판관이 독일을 "2권분립 국가"라고 말한 내용이 담긴 기사였다. 독일을 사법 선진국이라고 생각해 취재지로 선택했는데, 그곳이 2권분립 국가라니.


2권분립이란 진단은 사법행정권을 독일 행정부가 갖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경우 민·형사 사건을 담당하는 일반법원뿐만 아니라 행정법원, 노동법원, 사회법원, 재정법원 등의 전문법원들이 설치돼 있다. 그리고 법무부(일반법원·행정법원·재정법원), 노동사회부(노동법원), 보건부(사회법원) 등이 각 법원의 사법행정권을 갖고 있다(연방국가인 독일은 연방과 각 주별로 행정부·입법부·법원이 존재하며, 사법 시스템 역시 대체로 비슷한 구조를 띠고 있다).

반면 한국의 경우 사법행정권을 사법부(대법원)가 독점한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사실상 사법부가 없는 독일보다 한국이 더 나은 사법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사법권 = 재판

한국에서는 '사법부 독립'이란 말을 매우 자연스럽게 쓴다. 뿐만 아니라 이 말은 사법개혁 논의 과정에서 사법부 권력을 지키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돼왔다. 하지만 '사법부'는 헌법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단어다. 헌법 5장의 제목은 '법원'이고, 101조 1항에 '사법권'이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나와 있을 뿐이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문 <독일의 사법제도에 관한 소고>를 통해 "사법부라는 명칭은 입법부와 마찬가지로 법적 개념이 아니라 그저 통용되는 용례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언어는 사고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때론 사고를 지배하기도 한다. 3'권'분립이란 말은 행정부·입법부·사법부의 분립이 아니라 행정권·입법권·사법권의 분립으로 봐야 맞다. 때문에 독립돼야 할 것은 사법부가 아니라 사법권이다. 한국에 필요한 건 '사법권 독립'이며, '사법부 독립'이란 말은 그저 허상이다.

그렇다면 사법권은 무엇일까. 긴 생각할 필요 없이 바로 재판을 의미한다. 즉 독립의 최우선 대상은 사법부라는 조직이 아니라 재판인 것이다. 재판 독립 앞에서 다른 모든 것은 수단일 뿐이다. 때문에 사법행정권을 행정부가 갖고 있든(독일), 사법부가 갖고 있든(한국)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구조 안에서 '얼마나 재판권이 독립돼있느냐'가 중요하다. 사법농단을 떠올려보면 한국은 그러지 못했다.
 

독일 베를린주 대법원 언론담당 라파엘 네프(Raphael Neef) 판사. 그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독일의 사법체계에서 판사와 재판의 독립은 매우 중요한 점이고 이는 매우 넓은 범위로 확대 해석한다"라고 말했다. ⓒ 남소연

 
베를린주 대법원(Kammergericht) 언론담당 라파엘 네프(Raphael Neef) 판사는 "독일의 사법체계에서 판사와 재판의 독립은 매우 중요한 점이고 이는 매우 넓은 범위로 확대 해석한다"라며 "만약 어떤 판사가 현 정부와 반대되는 입장의 판결을 내렸다는 이유로 부당한 처우를 받았다면 독일에선 엄청나게 큰 이슈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네프 판사의 말처럼 독립의 최우선 대상은 판사와 재판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네프 판사를 포함한 독일인 누구도 자신의 나라를 2권분립 국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최악을 대비하라

때문에 사법행정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법행정권이 행정부에 있는, 그래서 누군가는 2권분립 국가라고 주장하는 독일은 공히 사법 선진국으로 불린다. 반면 대법원이 사법행정권을 갖고 있어 3권분립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는 한국은 사법농단 사태를 마주하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악마도 천사도 모두 '디테일(detail)'에 있었다.

독일의 사법 시스템의 핵심 키워드는 '견제와 균형'이다. 단순히 '사법행정권이 행정부에 있다'는 것만으로 독일의 사법시스템을 다 설명할 수 없다. 물론 독일 법원의 시설·회계·예산·재무 등과 관련된 권한은 행정부가 쥐고 있다. 하지만 법관의 인사나 법원의 조직·구성 등과 관련해선 행정부·입법부·법원 사이에 견제와 균형의 장치가 촘촘히 마련돼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은 법관 임용의 권한을 행정부와 입법부가 나눠 갖고 법원이 자문을 보태는 구조다. 이렇게만 보면 법원의 힘이 매우 약해 보인다. 하지만 법관들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무분담의 권한의 경우 전적으로 각 법원에 있다. 물론 이 권한은 법원장이 독점적으로 갖는 게 아니라, 법원조직법에 따라 법원 내에 설치된 법원운영위원회(Präsidium, 법관이 위원을 직접 선출)에 의해 행사된다.
 

독일 카를스루에에 위치한 연방일반법원 팔레(Palais) 법정. ⓒ 남소연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 권우성

   
한국의 경우 대법원장이 전국 법관 약 3000명의 인사권한을 쥐고 있다. 더구나 한국 법원 특유의 승진제도 때문에 대법원장이 독점하고 있는 인사권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김도현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는 논문 <법관에 의한 사법행정의 식민지화>를 통해 "법관들 사이에는 헌법과 법률이 예정하지 않은 사실상의 엄격한 위계적 계층구조가 존재하는바, 지방법원 합의부 좌배석 판사로부터 출발해 10여 단계의 가파른 '승진'의 사다리를 오르면서 대법원장에까지 이르게 돼 있다"라고 설명했다(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후 폐해가 심하다고 평가됐던 고등부장 승진제는 없어졌다).

독일 법원에도 승진 개념이 없진 않다. 공무원봉급법에 따라 R그룹에 속한 법관들은 최초 R1에서 R2로 넘어갈 때 일정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같은 시기 임용된 법관인데 R1이냐, R2이냐에 따라 월급이 400유로(약 55만 원) 정도 차이가 난다. 대부분의 법관은 평생 R1 혹은 R2에서 직을 마무리한다.

R3 이상은 연방판사, 법원장 등 발탁돼야만 오를 수 있는 자리다. 한국의 법관들이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하길 바라듯, R3 이상을 바라는 법관들은 법무부에 파견되거나 연방헌법재판소·연방법원에서 재판연구관으로 일하길 희망한다. 하지만 독일의 법관들은 눈치가 아닌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법행정권, 특히 인사권을 한국처럼 대법원장 한 명이 독점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베른트 하인리히(Bernd Heinrich) 튀빙겐대학교 법대 교수는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라며 "즉 여러 단계의 협의체가 있어서 서로 견제하고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 이는 특별히 판사 임명과 승진에 있어서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추기, 드러내기

한국의 대법원장은 각 법원의 법원장 임명권도 갖고 있다. 그리고 법원장은 해당 법원에 속한 법관의 사무분담 권한을 독점해왔다. 반면 앞서 소개했듯, 독일은 각 법원에 있는 법관운영위원회에서 사무분담을 결정한다. 사법농단 사태 이후, 한국도 각 법원별로 법관사무분담위원회를 운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독일의 법관운영위원회는 법원조직법이 보장하는 기구고, 한국의 법관사무분담위원회는 아직 각 법원의 내규로 정한 것에 그쳐 있다는 점이다.

한편 지역분권 강국인 독일은 사법행정권도 각 주별로 분산돼 있다. 각 주별로 법관을 임용하기 때문에 한국처럼 피라미드 구조의 상급자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특히 한국의 특징 중 하나가 잦은 전보인데, 독일의 경우 자신이 원하지 않는 한 원칙적으로 전보의 개념이 없다. 한국 법관들은 평균 2~3년에 한 번 근무지를 옮긴다. 이를 결정할 권한 역시 대법원장이 쥐고 있다. 전국을 대상으로 전보가 이뤄지므로 대법원 수뇌부에 밉보이면 일종의 '귀양'을 가게 될 수도 있는 구조다.

권력의 집중은 자연스레 정보의 격차를 불러오고, 이는 투명하지 않은 제도로 드러난다. 한국의 경우 징계와 평정 제도가 매우 불투명하다. 독일의 경우 견책 이상의 징계는 직무법원(Dienstgericht)에서 다루도록 돼 있다. 판사의 징계를 위해 재판을 여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징계 과정은 물론 징계를 결정하는 징계위원회의 구성원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대법원은 사법농단 수사를 마친 검찰이 비위 대상자 66명 명단을 전달하자 그중 10명에게만 징계를 청구했다. 징계 대상자 숫자와 수위를 향한 비판만큼이나 징계 당사자가 누군지, 징계위원이 누군지, 어떤 논의가 진행됐는지 전혀 공개되지 않은 것에도 지적이 쏟아졌다.

한국의 평정 제도 역시 비슷하다. 법원장 등 상급 법관들이 법관을 평가한 내용은 당사자에게조차 공개되지 않는다. 법관은 자신이 어떤 이유로 그러한 평가를 받았는지 알지 못한 채 그냥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법원 내 강한 위계질서를 구축하도록 만든다. 반면 독일은 평정 결과가 공개되며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법정에서 가장 높은 곳

물론 독일의 제도를 그대로 들여오는 것은 무리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법무부가 사법행정권을 주도해서 갖는 건 한국의 사정에 맞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강조하고 싶은 건, 제도 그 자체가 아니라 견제와 균형이라는 독일 사법 시스템의 원리다. 독일은 그 원리에 따라 사법행정의 권한이 세 차원(▲ 행정부-입법부-법원 ▲ 상급 법관-개별 법관 ▲ 중앙 권력-지역 권력)으로 분산돼 있다. 반면 한국은 법원행정처를 위시한 대법원이 사법행정권을 독점하고 있다.

법관에겐 법원 외부로부터의 독립만큼이나, 법원 내부로부터의 독립도 필요하다. 사법농단은 내부로부터의 독립이 무너지면 외부로부터의 독립도 무너지고 만다는 교훈을 남겼다. 어떤 견제도 받지 않던 제왕적 대법원장 체제는 법원 내 강한 위계질서와 승진 우선주의 등의 제도 및 문화를 만들었고, 이는 결국 외부로부터의 독립도 무너뜨리고 말았다(한국의 엘리트 법관들은 청와대와 전범기업 측을 서슴없이 만났다).

결과는 법원 최우선 목적인 사법권(재판) 독립도 허물어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법부 독립을 외치며 사실은 사법행정권을 독점해왔던 한국의 사법 역사는 결국 사법농단이라는 사법권 독립의 붕괴로 이어졌다.

디르크 쿠퍼나겔(Dirk Kupfernagel) 베를린주 법무부 제1부(인사 및 공무법) 대표는 "독일은 판사 임명에 있어서 많은 관계자와 기관들이 참여하고 서로 간에 견제한다"라며 "이는 한 사람에 의한 매우 큰 영향력 행사를 방지하기 위함이다"라고 설명했다.
 

독일 베를린주 법무부 제1부(인사 및 공무법) 디르크 쿠퍼나겔(Dirk Kupfernagel) 대표. 그는 <오마이뉴스>와 만나 "독일은 판사 임명에 있어서 많은 관계자와 기관들이 참여하고 서로 간에 견제한다, 이는 한 사람에 의한 매우 큰 영향력 행사를 방지하기 위함이다"라고 강조했다. ⓒ 남소연

 
카를스루에(karlsruhe)에 위치한 독일 연방일반법원을 찾았을 때, 적잖이 놀랐다. 한국으로 치면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대법원 법정을 길거리에서 유리창을 통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법원 울타리 안에서가 아닌, 자전거가 다니고 상인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말 그대로 진짜 길거리에서 말이다(물론 소리를 들을 순 없다).

베를린주 대법원의 형사재판 법정에서도 법정의 가장 높은 곳에 방청석이 있는 걸 보고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법관의 자리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했다. 아주 예전에 지어진 일부 법원을 빼곤, 대부분 법정이 이와 같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돌아가는 독일의 사법 시스템을 상징하는 듯했다. 법원의 권위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최소한 독일의 경우를 보면 높은 법대와 독점 권력이 권위를 담보하진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법행정권을 법원이 독점하고 있지 않은, 그래서 한국의 한 헌법재판관으로부터 '2권분립'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 나라 독일에서 사법농단이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독일 카를스루에에 위치한 연방일반법원 법정.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이 밖에서도 법정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판사석 양 옆에 통유리 창문벽을 설치, 투명성을 강조한 컨셉으로 설계되어 있다. ⓒ 남소연

 

독일 카를스루에에 위치한 연방일반법원 법정.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이 밖에서도 법정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판사석 양 옆에 통유리 창문벽을 설치, 투명성을 강조한 컨셉으로 설계되어 있다. ⓒ 남소연

  

독일 베를린주 대법원 법정 내부. 방청석이 법대 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 남소연

       
연방일반법원 전시관에서 1495년에 만든 나무로 된 정의의 여신상과 마주했다. 한 손엔 저울, 다른 한 손엔 '정의(Gerechtigkeit)'가 새겨진 적힌 검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눈가리개가 보이지 않았다. 보통 정의의 여신상의 눈은 가려져 있고 이는 공평함을 상징한다. 하지만 독일에선 눈을 가리지 않은 정의의 여신상도 종종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안을 똑바로 목도한다는 의미다.

사실 한국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도 눈을 가리고 있지 않다. 독일 정의의 여신과 한국 정의의 여신은 그동안 무엇을 바라보고 있었던 걸까.

[서초산성 ③] 사법농단에 놀란 독일인의 한 마디 "그래서 우리가..." http://omn.kr/1kf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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