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4.20 11:56최종 업데이트 21.04.20 11:56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7년이 지났지만 진상규명은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이런 가운데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과 이들을 지키려는 가족들조차 아직도 매일 악몽을 꾸며 고통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월호 생존자 중 '파란바지 의인'으로 알려진 김동수씨 가족 인터뷰를 통해 세월호 생존자와 그 가족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생히 전해드립니다. 이번 글은 큰딸 김예람씨의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아빠는 정말 사소한 걸로 화를 냈어요. 정말 너무 사소한 일로 화를 내서 무슨 일로 화냈는지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예요. 그렇게 예민했던 아빠가 요즘은 너무 관대해요. 그렇게 화를 덜 내니 저희는 좋죠. 그런데 아빠가 진짜 괜찮아서 그러는 건지 억지로 마음을 누르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전에도 이런 기간이 있었어요. 이렇게 아무 일 없다가 한순간에 확 폭발할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방심을 할 수가 없어요. 최근에는 이렇게 아무 일 없는 기간이 전보다 좀 길게 가는 것 같아요. 약을 먹으면서 누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아빠가 그전에는 기댈 곳이 없었어요. 뭔가 답답해도 하소연을 하거나 해결할 방법이나 사람이 없었는데, 다행히 '수상한집' 대표님 같은 분 만나면서 믿고 맡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2019년 고대 안산병원에서 의사와 문제가 생겨서 소송을 했을 때도 저희 가족들끼리였다면 지금까지도 일이 계속 커졌을 거예요. 그리고 뭔가 아빠가 해야 할 일을 만드니까 나쁜 생각을 할 틈이 없는 것 같아요. 최근 입원하는 주기만 봐도 다른 때와는 조금 달라요. 물론 전에도 아빠와 우리 가족을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았죠. 기억공간리본 황용운 대표, 선이 이모, 강정훈 선생님 같은 분들. 그 외에도 많이 계셨어요. 아빠에게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옆에서 지켜주시는 분들이라 너무 든든하죠.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빠가 고민하는 것을 해결하고 함께 풀어가는 분도 필요해요. 옆에서 도와주는 것보다는 아빠 대신 뭔가 해주는 사람이요. 아빠도 이제 많이 지쳤거든요. 전에는 아빠가 힘들어하는 부분을 공감하는 사람은 있어도 함께 해결해주려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런 사람이 없고, 방법을 모르니 자해 같은 일을 벌였던 것 같아요. 정작 아빠에게는 함께 행동하고 움직여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아빠는 말보다 행동이에요. 바로 지금 당장, 이런 거예요.

갈수록 사람 만나기가 힘들어요

요즘은 사람 관계도 좀 힘들어요. 좀 지치다 보니 먼저 연락하기도 귀찮고 그래요. 세월호 사고 이후 굉장히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됐어요. 아빠 따라다니다 보면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많이 만나요. 전부터 낯선 사람 만나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세월호 관련된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분명 나와 맞지 않는 사람도 있고, 내가 편하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야 할 때 마치 제가 가면을 쓰고 대하는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거든요. 내가 굳이 편하지도 않은 이런 관계를 맺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아빠는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데 저는 아니거든요. 제가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었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 상처가 누적되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이 이해가지 않는 순간이 많거든요. 그리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스스로 위축되는 점도 있어요. 뭔가 직장이 있고 이러면 떳떳할 것 같은데 몇 년째 시험공부를 하고 직장이 없다 보니까 더 그런 거 같아요. 직장은 어디 다니냐, 결혼은 안 하냐 그런 소리 듣는 것도 싫고. 특히 제주도에선 결혼을 안 하거나 늦게 하면 얘가 성격에 문제가 있나 이런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어서 사람을 만나는 게 편하지 않아요. 하필 작년에 친한 친구나 친척들이 결혼을 많이 했어요. 사촌이나 친구들이 다 결혼해 버리니까 주변에서 더 그래요. 명절에 친척들 다 모이면 누구는 가는데 왜 안 가냐 하는 이야기를 들어야 해요. 친구들 사이에서도 원래 제가 먼저 연락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오랜만에 연락해도 아무렇지 않은 친구들도 있지만 또 그런 친구들만 만나는 건 아니니까요. 세월호 관련된 사람을 만나거나 아빠 일 관련된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때문에 밖에서 내가 뭔가 실수를 해버리면 아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조심스럽게 되는 거고, 그러다 보니 결국 사람을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사실 그래서 아빠하고 사람들 많은 곳에 가는 게 이제는 싫어요. 뭔가 아빠를 좀 잘 알고 이런 사람들이면 좋지만, 간혹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그런 곳에 가면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함부로 하고 그러니까 불편하죠. 특히 육지에서 왔다 하면 신경 쓰여요. 세월호 관련된 육지 사람들이 오면 신경 쓰여요.

소방관 꿈 여전하지만

제 꿈은 변함없어요. 어쨌든 소방이란 일을 하고 싶은 것도 있고. 사실 소방이라는 꿈은 놓지 않고 싶어요. 그런데 요즘은 옷가게 같은 것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평소 옷 같은데 관심이 많거든요. 소방시험으로 지쳐있을 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었어요. 사실 소방 일도 그렇고 사람일이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소방도 쉽게 포기하고 싶은 꿈은 아니에요. 나는 내 길이라고 해서 소방 일을 준비해 왔지만 이 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른 길도 생각하고 싶어요. 옷가게 하고 싶어서 많이 알아보기도 했어요. 아기자기한 소품 가게도 해보고 싶어요. 소방관 꿈을 접을 건 아니지만, 엄마 아빠도 제가 워낙 옷 좋아하는 걸 알고 있어서 대충 짐작은 하고 있을 거예요. 옷가게를 한다면 제주에서 하고 싶어요. 엄마 아빠는 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지지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 엄마 아빠는 딸이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면 걱정하지 어떻게든 하고 싶다는 건 무조건 지지해 주는 사람들이에요. 혼자서 독립하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결혼을 하면 물론 나가서 살겠지만 그전까지는 엄마 아빠와 지내는 것이 너무 좋아요. 제가 집에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엄마 아빠와 있으면 좋기도 해요. 엄마 아빠와 관계가 나쁘지도 않고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 하고, 가끔 아빠 방에 들어가서 아빠와 장난치는 것이 너무 좋아요. 뭐라고 하기 어렵지만 제가 집에 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아빠가 말이 적은 편이라 엄마가 이야기할 사람이 없기도 하고, 엄마에게는 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족들과 여행을 많이 다녔는데도 여전히 여행을 다니고 싶어요. 가족들하고 해외여행을 딱 한번 갔는데 저희도 어릴 때였고 패키지로 갔다 와서 그다지 좋았던 기억은 없어요. 세월호 참사 나고 몇 해 지나 자유여행으로 동생과 3박 4일간 블라디보스토크를 다녀왔어요. 너무 좋더라고요. 다녀오고 나서 너무 좋아서 엄마 아빠에게 가자고 했는데 코로나가 터져서 가질 못했죠. 엄마 아빠와 여행을 많이 다녀서 추억을 만들고 싶어요. 제주에만 있다가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예전에는 우리 가족 상황이 더 좋아지리라 생각하고 지내왔어요. 그런데 지금은 지금보다 더 나빠지지만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세월호 이후 7년간의 시간이 아마 최악이었던 거 같아요. 그때보다 상황이 더 아래로 내려갈 것 같지는 않아요. 그때는 괜찮아지겠지 했다가 점점 바닥으로 내려가서 힘들었거든요. 그래서 더 나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고 싶은 것을 할 것이 아니라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하자고 생각해요. 사람들에게 별로 큰 기대를 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우리 가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중요하지 않아요. 엄마나 아빠는 굉장히 많이 신경을 쓰거든요. 엄마 아빠 생각하면 당연히 좋은 시선으로만 봐줬으면 좋겠죠. 하지만 이제는 우리 가족에게 나쁜 의도나 나쁜 생각을 하는 사람들 때문에 굳이 마음 쓰고 싶지 않아요.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우리 집을 가지게 된다면 주변에 아무도 살지 않고 오로지 우리만 있는 곳, 세를 살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 그런 공간이 있었으면 한다고요. 아빠가 지금은 괜찮다고 하지만 언제 분노가 터질지 모르니까 사람들하고 부딪히지 않는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최대한 아빠가 신경을 쓰지 않고 그럴 수 있는 곳에 살면 좋겠어요.

사람들이 아파하는 것을 알았으면 해요

대형 재난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은데 꼭 그럴 수만은 없잖아요. 대형 사고가 나면 정부나 기관들이 그 당사자들만이 아니라 가족들까지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보면 이런 트라우마 문제는 시간 싸움인 것 같거든요. 일이 터졌을 때 제대로 조치하지 않으면 오래가더라고요.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겪었어도 세월호 터졌을 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때뿐인 것 같고 보여주기 식인 것 같아요. 트라우마는 당사자만 겪는 것이 아니라 주변 가족과 목격자들까지 겪기 때문에 이런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할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어요. 어릴 때 개에 물리면 커서도 그 기억이 남고, 사소한 문제도 커가면서 트라우마로 남잖아요. 물론 어느 한 곳이 잘한다고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죠. 정부·언론·사회를 싹 다 갈아엎지 않는 이상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아요. 바꿔달라기보다는 그런 사람들이 아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는 거죠. 그리고 엄마가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월호 참사 나고서 화물기사 분들 중에 이혼한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데도 잘 이겨내는 엄마를 보면 정말 걱정이 많아요. 지금은 많이 괜찮아 보이는데 누구보다 굉장히 지치고 힘들어했어요. 정신도 그렇고 체력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다 힘들어해요. 자신을 돌볼 상황이 되지 않다 보니까 엄마는 항상 긴장 속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요. 간혹 엄마가 정신을 놓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할 정도로 고마워요. 아빠 몰래 엄마가 진짜 많이 울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제발 더 이상 엄마 아빠가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세월호 생존자들에게 힘이 되어주세요. 여러분이 주시는 '좋은기사원고료'는 전액 피해생존자와 그 가족들의 구술 채록 작업에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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