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3.10 11:16최종 업데이트 21.03.10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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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9일 열린 경제민주화의 날 선포 기자회견' ⓒ 권우성

 
한국이 일제 식민지, 분단과 6·25를 겪으면서도 지금까지 이룬 경제적 성과는 대단하다. 많은 사람의 희생과 노력이 쌓인 결과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꽤 오래 전부터 괜찮은 일자리 부족, 불평등 심화, 성장세 위축,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 등 많은 문제가 누적되고 있다.

젊은이들은 헬조선·탈조선을 넘어 이번 생은 망했다는 '이생망'이라는 말까지 쓰고 있다. 한국경제가 선진국의 문턱에서 주저앉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한국경제의 문제는 어디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다양한 지적과 주장이 있다.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경제민주화가 안돼서 그렇다, 규제가 많고 혁신이 안돼서 그렇다, 젊은이들의 눈높이가 높고 노력이 부족해서 그렇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문제가 해결된다 등의 주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대부분 시류에 편승한 주장이거나 문제의 한쪽만 보는 단편적 분석에 불과하다.

하나하나 따져보자

첫째 신자유주의, 즉 과도한 시장원리와 경쟁 때문이라는 주장은 소상공인·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와 농민 등 취약계층에게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재벌뿐 아니라 임대사업자·성공한 정치인·의사 등 전문직·교수와 관료·공공부문 정규직 등 한국의 기득권층은 과보호 속에서 특혜를 누리고 있다. 이들에게는 오히려 경쟁과 시장 원리가 더 필요하다. 기득권층의 특혜 축소 없이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만 늘리는 것은 효과적이지 못하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신자유주의 논리는 한쪽만 보는 단편적 분석의 대표적 사례이다.

다음으로 한때 유행했던 경제민주화는 의미가 모호할 뿐 아니라, 지금은 이야기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경제민주화의 아이콘이었던 사람마저 경제민주화보다 새로운 유행인 기본소득에 주로 관심을 갖는 것 같다.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변한 것도 아닌데 주장과 관심이 쉽게 바뀐 것을 보아 문제의 뿌리는 아닌 듯하다.

그러면 기본소득은 대안일까? 기본소득은 세계 어느 나라도 국가 단위로 시행해보지 않아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큰 문제이다. 기본소득은 기본적 내용부터 제대로 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하다. 한국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하면서 국민 모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 얼마인지, 이 금액으로 기본 생활이 가능한지, 기본소득제도 도입 후 다른 복지는 어떻게 할지, 자본주의를 포기할지 등에 대한 연구부터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규제가 많고 혁신이 안돼서 그렇다는 주장은 선진국을 포함 거의 모든 현대 국가가 직면하고 있는 공통 문제이다. 규제는 주로 관료와 시민단체 쪽에서 많은 요구가 나오고, 혁신의 가장 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규제 개혁과 혁신은 정부가 민간의 창의력을 바탕으로 항상 추진해야 할 일상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의 눈높이는 높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의 국민소득이 1000달러일 때와 3만 달러일 때의 눈높이가 다를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현재 한국 젊은이들은 어학능력과 학력 스펙 등에 너무 많은 노력을 들여 자질이 과도할 정도이다. 젊은이들의 능력과 눈높이에 걸맞는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문제이다.

진짜 구조적 문제는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 ⓒ 연합뉴스


한국경제의 진짜 구조적 문제는 무엇일까? 하나는 직업 간 과도하고 불공정한 보상 격차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싼 집값·집세이다.

먼저 보상 격차를 살펴보자. 의사와 교수·공무원, 공기업과 금융기관 대기업의 정규직 등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직업은 보수가 높을 뿐 아니라 명예와 권한도 크다. 반면 비정규직 중소기업 근무자 등은 보수가 작고 직업 안정성도 떨어진다.

한국은 소수의 좋은 일자리와 다수의 나쁜 일자리로 양극화되어 있다. 한국은 일자리 전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나 중간 정도의 괜찮은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문제다. 좋은 일자리에는 구직자가 몰려 대학 졸업 후에도 몇 년씩 취업준비를 한다. 반면 나쁜 일자리는 찾는 사람이 없어 외국인 노동자를 써야 한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불균형은 노동의 질과 양을 떨어뜨려 성장의 큰 제약 요인이 되고 있다. 여기에다 좋은 직업의 보수는 국민경제의 부담 능력에 비해 과도하게 높기 때문에 불공정하다. 이는 사회의 신뢰수준도 저하시켜 바로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킨다. 의사와 교수, 공무원 등의 좋은 일자리는 경기가 좋아도 거의 늘어나지 않는다. 불공정하고 과도한 보상 격차가 한국의 성장세 위축과 괜찮은 일자리 부족의 근본 원인이다.

다음 비싼 집값·집세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경제를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국민의 큰 기대를 받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집값·집세 문제로 헛발질하면서 임기 초기부터 지금까지 4년을 허비해 버렸다. 비싼 집값과 집세는 유주택자의 무주택자 소득 약탈, 소득불평등, 부의 부당한 대물림, 노동 의욕 저하와 국가경쟁력 약화, 소비 부진과 자영업자의 어려움, 젊은이의 결혼과 출산의 기피 등 가히 만악의 근원이다. 비싼 집값 문제도 근본적으로는 부동산 투자가 금융자산이나 생산적 투자에 비해 특혜가 많아 돈이 부동산 쪽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불공정하고 과도한 보상격차는 이것의 혜택을 받는 강력한 기득권층이 있고, 부동산은 이들 기득권층의 공통 이익이다. 정권의 명운을 걸지 않으면 개혁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어둡고 괜찮은 일자리 창출도 어렵다.

2021년 봄이다.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는 차기 권력 준비생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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