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광주>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편의대'로 불리는 특수부대가 투입됐다는 주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신군부에서 시민으로 위장한 특수군을 보내, 무력진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 영화 <택시운전사>가 서울에서 온 택시기사의 시선을 따라 관객에게 당시 광주를 보여주었다면, 뮤지컬 <광주>는 광주 출신 편의대원 박한수의 시선을 따라 관객에게 광주를 돌아보게끔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끼인 박한수처럼, 광주 밖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5월 광주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광주로 돌아온 그의 앞에 펼쳐진 건 편의대의 선동에 쉬이 넘어가는 순박한 사람들이 아니었다. 무장이 필요하다고 갈등을 부추길 때는 오히려 거부하고, 자칫 죽을지 모르니 무장을 포기하자고 할 때는 도리어 총을 드는 이들이었다. 재연으로 돌아온 <광주>는 초연보다 광주 시민들의 주체성에 더 힘을 주었다. 동시에 '시민들'로 뭉뚱그리지 않고, 각 시민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조금이나마 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광주' 그 날이 올 때까지!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뮤지컬 <광주>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시연되고 있다. 뮤지컬 <광주>는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기념,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치열한 항쟁을 벌인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이다.

지난 4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뮤지컬 <광주>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을 시연하고 있는 배우 장은아 ⓒ 이정민


 
그 시민 중 한 명이 정화인이다. 작품의 프로그램북은 그를 "최후의 항전까지 광주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인물"이자 "항쟁 내내 광주 시민의 눈과 귀가 되어준 상황실 '황사음악사'의 주인"이라고 설명한다. "청솔부인회 회원들과 함께 항쟁을 지원하는 한편 시민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이도록 이끈다"라고도 소개한다. 마지막 가두방송의 주인공인 고 전옥주씨 그리고 항쟁의 중심지 중 하나였던 녹두서점의 정현애씨 등으로부터 모티브를 따온 인물이다.
 
언뜻 생각하면, 배우 장은아에게 정화인은 처음부터 잘 어울리는 옷이었을 것만 같다. 이집트의 압제에 신음하던 누비아의 마지막 공주부터 프랑스 대혁명의 주역이었던 투사까지… 그가 맡아온 인물은 대체로 외압에 굴하지 않고 저항하는, 강인하고 적극적인 인물들이었다. 본래 그런 인물이 아니었던 배역까지, 이 배우는 자기 스타일대로 재해석하고 표현해 생명력을 불어넣어왔다.
 
지난 4월 말 <광주> 서울 공연 폐막에 맞추어 공연장 로비에서 만났던 그는, 정작 자신이 생각보다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라고 이야기했다. 초연에 이어 재연까지 이 역할을 맡으면서, 정화인이라는 광주 시민을 대변하는 게 그에게는 무척 어려웠다고 한다.
 
'강인하다'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 이유
  
'광주' 그 날이 올 때까지!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뮤지컬 <광주>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시연되고 있다. 뮤지컬 <광주>는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기념,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치열한 항쟁을 벌인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이다.

▲ '광주' 그 날이 올 때까지! 지난 4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뮤지컬 <광주>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시연되고 있다. 뮤지컬 <광주>는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기념,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치열한 항쟁을 벌인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이다. ⓒ 이정민


 
"저는 내면이 엄청 예민하고, 많이 흔들리는 스타일이에요. 그런데 그걸 밖으로 드러내지를 않아서, 사람들이 저를 강하게 보죠. 외형적으로도 강해 보이니까 그런 역들이 많이 들어오고는 하는데, 사실 저는 제가 하는 행동에 대해서 후회를 안 하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지, 사실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저를 '강인하다'라고 표현하지 않거든요. 오히려 굉장히 여리다고 많이 이야기를 해요. 갈등도 많이 하고, 고민도 많이 하는 편이죠."
 
장은아는 광주 시민들이 그리고 정화인이 "원래부터 용감했던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화인도 처음부터 선두에 서는 그런 성격은 아니었을 것"이지만, 이 평범한 사람이 5.18광주민주화운동의 격랑 속에서 변화를 겪어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자신이 실제로 그렇게 강인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 정화인 역시 "강인한 인물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라고 전했다.
 
"정화인이 극 자체에서 서사가 많지는 않지만, 시민들 중에서도 중추가 되어 있던 주도적인 사람이에요. 하지만 정화인도 처음부터 강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이 사람들의 평범하고 평온했던 한때가 초반에 '그날이 올 때까지' 노래까지만 딱 그렇게 비쳐지고 마는데, 사실 그 사람들도 아주 평범하고, 그냥 배고프면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이랬던 사람들이었을 거잖아요. 그런데 상황이나 배경이 광주 시민들을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그 중에 하나가 정화인이었을 거고요.
 
정화인 같은 경우도 남편이 붙잡혀 가고, 당장 내 옆에 가족들, 같이 맨날 황사음악사에 드나들던, 내가 맨날 보고 거두던 아이들이 진짜 앞에서 나선다고 하면 자기도 마음이 되게 아리겠죠. 이 사람도 굉장히 두렵지만, 마지막에 가두방송을 하게 되기까지의 여정이 정말 두렵고 계속 갈등을 하고 그렇지만, 결국에는 가두방송에 올라가는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이거라면, 이거라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평범한 사람이 그렇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인 것 같아요."

 
<광주>의 특징 중 하나는 앙상블 역할 "모두가 이름이 붙여져 있고, 모두가 다 시민들"이라는 점이다. 장은아는 "그래서 정화인을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 이름이 붙여졌지만, 그 사람의 각 캐릭터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서 그 당시에 어떤 일을 이뤄 냈는지에 대해서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정화인도 그 중에 하나이고, 다만 방법이 좀 달랐을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작품의 후반부에 들어서, 작품의 주요 여성 인물 두 사람은 다른 길에 서게 된다. 문수경은 전남도청 밖에 남아 산 자의 길을 가게 된다. 반면, 정화인은 전남도청 안으로 들어가 산 자가 따르게 될, 앞서서 나가는 인물 중 하나가 된다. 그 갈림길에서 정화인은 왜 전남도청 안으로 들어갔을까? 그 선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책을 보고 자료를 보면서도, 저는 '사실 저라면 이랬을 것 같다'라고 빗대어서 이야기를 못할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하신 분들의 그 상황에 들어가 본 것도 아니고, 그 상황이 되지 않는 이상 제가 어떻게 행동할지 저도 모르겠거든요. 당장 누가 내 앞에 총을 겨눈다든가 같은 급박한 상황을 겪어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래서 함부로 이야기를 못하겠어요.
 
정화인도 똑같이 두렵고, 평범한 인간이지만, 내 눈앞에서 내 동료들, 친구들이 총에 쏘여서 죽는 것을 보잖아요, 그리고 시체 태우는 '검은 연기' 노래를 부르면서 저는 저희 가족들을 생각하거든요. '내 가족이 이렇게 됐다면?'하고 생각해서 매일 울컥울컥 하는데, 내 눈 앞에서 같이 짜장면 먹고 놀던 사람이 그런다면, 저도 결단을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 혼자 살 수는 없다'라고요.
 
처음에는 저(화인)도 윤이건이 총을 들고 싸운다고 할 때 말려요. 말리고 울고, 살아남아서 승리를 만끽하자고 노래까지 막 부르는데, 사람들이 도청에 다들 들어가잖아요. 남편도 갔는데, 남편의 친한 동생이었던 윤이건마저도 저기 들어간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라고 생각하죠. 사람들한테 이걸 널리널리 알리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 아닌가라는 마음으로 마지막 가두방송을 했던 것 같아요."

 
현실 앞에 마주하다
  
'광주' 그 날이 올 때까지!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뮤지컬 <광주> 프레스콜에서 하이라이트 장면이 시연되고 있다. 뮤지컬 <광주>는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기념,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치열한 항쟁을 벌인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이다.

▲ '광주' 그 날이 올 때까지! ⓒ 이정민


장은아는 이 작품을 하면서 <녹두서점의 오월>을 열독 중이라고 밝혔다. 녹두서점은 실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주요 근거지 중 하나였고, 작품 속 황사음악사는 이 서점에서 모티브를 따온 공간이다. 아무리 '픽션'이 가미된 작품이어도, 역사적 사건을 극화한 이상 이 작품은 현실과 겹쳐 보일 수밖에 없다.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를 차용해 만들어진 정화인 역시 마찬가지이고, 그 정화인을 연기하는 장은아의 고민도 이 지점에 있다.
 
"초연 때 정현애님이 광주에서 보시고 '너무 잘 봤다'라며 사진을 막 찍고 가셨어요. 제가 그분이랑 이야기를 하는데, '이분이 모티브가 되신 그 분'이라고 듣는 순간 제가 막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 그분이 '너무 잘 봤어요. 저 그때 되게 생각이 많이 났고, 은아씨가 그때를 너무 떠올리게 해줬어요' 이러시는데 그 순간 엄청 울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동료들이 다 알아요. 그 분 앞에서 은아 언니·누나가 울었다고… (웃음) 엄청 울었던 기억밖에 없어요.
 
저는 사실 정치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바보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냥 평화주의자예요. (웃음)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어떻게 보면 멍청한 말이죠. 그런데 그 분을 딱 뵙는 순간, 그 분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살아계셔서 우리가 그걸 기념하기 위해 하는 작품을 봐주시고, 제 앞에 제 배역의 모티브가 되었던 분이 서 계시니까… 그 산 증인이 앞에서 제가 함부로 그걸 연기한답시고 연기를 함부로 했는데… (웃음) 쑥스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걸 또 잘 봐주셨다고 하니까 막 눈물이 나더라고요. 제가 진짜 고민을 많이 하고 했던 작품을 진짜로 그 당시 겪으셨던 분이 잘 보셨다고 손 잡아주시니까, 감사해서 엄청 울었던 것 같아요.
 

제가 <녹두서점의 오월> 책을 보면서, '아, 여기에 모든 게 담겨 있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되게 와 닿은 부분들이 많았어요. 거기의 기록들을 보면 이 분들이 보통 사람들이랑 진짜 다르지가 않아요. 그냥 다 그들도 두렵고, 그들도 너무 무섭고…. '그런데 어떡해? 우리가 살려면 뭐라도 해야지'라는 마음으로 임했더라고요.
 
실제로 뵙지 못했지만, 얼마 전에 돌아가신 고 전옥주씨의 기록도 그렇더라고요. 당장 자신의 가족이 옆에서 그렇게 되니까, 가장 친한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되니까 그냥 내가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하신 것이었어요. 저도 그래서 극 중에서 똑같은 마음인 것 같아요. 진짜 똑같은 인간의 마음이요. '그 당시에는 누구나 그렇게 했을 것'이라고는 감히 이야기할 수 없지만, '나도 뛰어들어서 뭐라도 하겠다'라고요. 극 중에는 제가 죽는 장면이 나오지 않지만, 그 뒤에 총에 맞아 죽은 이들과 무리를 지어 같이 나오거든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언은 역사학만이 아니라 그 역사를 재현하는 예술에도 적용된다. 문화가 현실을 '재현'할 때, 창작자는 언제나 그 재현의 범위와 정도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재현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만'의 재현은 의미가 없기도 하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2021년도 무대 위로 옮긴 1980년 광주는 어때야만 하는 것일까.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초연 때 '분명히 여자들도 나가서 최루탄을 던지고 싸웠을 텐데, 왜 우리 뮤지컬 작품에서는 남자들만 앞서서 싸우고, 여자들은 주먹밥 만들고, 회비를 걷고, 거리청소를 하느냐'라는 지적이 있었어요. 어느 정도 공감해요. 다만, 저는 그 당시 여성들이 했던 일도 되게 위대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나가서 싸웠지만, 나이 드신 할머니나, 아이가 있는 엄마 같은 경우에는 그럴 수 없었잖아요. 그런데도 나가서 싸우는 사람들을 위해서 소금 넣은 주먹밥이라도 만들었던 것처럼, 화인도 상황일지라도 써서 도움이 될까 하고 광주를 기록하죠.
 
고선웅 연출께서 프레스콜 때 '위대한'이라고 말했다가, 끝나고 그 표현이 계속 마음에 걸리셨나봐요. 신경을 많이 쓰시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연출께 '위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라고 했거든요. 진짜 모두 다 평범한 사람들이, 상황에 의해 진짜 너무 간절해지고 힘들었을 때 어떻게 변화하는지 그 모습들을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어떤 모습이든지, 광주에서의 보여준 그 모든 게 다 위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광주'를 재현하는 <광주>의 고민
    
새삼스러울지 모르지만, 2014년 5.18 광주민주항쟁을 배경으로 한 연극 <푸르른 날에>를 연출하기도 했던 고선웅은 다시 광주의 이야기를 무대 위로 올렸다. 이번에는 대극장 뮤지컬이었다. 혹자는 5.18광주를 쇼 비즈니스인 뮤지컬로, 큰 자본이 들어간 상업작품으로 올리는 것이 온당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귀담아 들어야 할 지적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을 통해 위로 받는 이도 있고, 이 작품 위에 재현된 현실 덕분에 역사를 되돌아보는 이도 있다는 점이다. 고선웅 연출은 <아리랑>에서 그랬듯이, 단죄보다는 대동과 해원으로 무대를 마무리한다. 무대 위에서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힘은 5.18영령들에게 바치는 송가이다. 노래를 하는 배우에게도 의미가 가볍지만은 않을 것이다. 초연에 이어 재연으로 짧게나마 관객을 만난 이 작품, 계속해서 기억되고 반복될 만한 이유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광주>를 '어마어마한 업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저는 정말로 제가 해온 작품을 다 사랑했고, 또 제가 선택한 것은 후회하지 않으려고 엄청 노력해요. 제가 선택하는 작품은 모두 제 인생의 일부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광주>도 이제는 제 인생의 일부가 된 작품이죠. 제가 치열하게 고민하고 임했던 작품 중에 하나, 저는 그냥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웃음)
 
저는 마지막에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라고 하면서 많이 울거든요. 그 대사가 제일 와닿아요. 잊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우리가 겪은 일인 거잖아요. 저희가 이렇게 아프게 가신 분들을 위해서, 이 역사를 잊지 않고 마음 안에 간직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공연을 하는 저희 모두도 이 작품을 기억하려고 하는 것 같고요.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딱 이 대사가, 제 정화인의 이야기인 것 같아요.
 
이 작품을 보러 와주시는 분들께 얼굴을 뵙고 '너무너무 고맙다'라고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못 드려서 너무 아쉬워요. 특히 <광주>는 더요. 어려운 작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어떤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오신 후기를 제가 인스타그램에서 봤어요. 그런 분들한테 되게 감사하다는 말씀밖에는 제가 드릴 게 없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 절대 여러분이 오시는 게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한 회 한 회 무대로 보답해드리는 것밖에는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보시는 분들이 꼭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광주' 장은아 장은아 배우가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뮤지컬 <광주> 프레스콜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뮤지컬 <광주>는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기념,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치열한 항쟁을 벌인 시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창작 뮤지컬이다.

▲ '광주' 장은아 장은아 배우가 지난 4월 15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뮤지컬 <광주> 프레스콜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 이정민

뮤지컬 광주 정화인 장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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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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