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6.09 12:42최종 업데이트 21.06.09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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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 강남센터 시세 현황판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 등이 표시돼 있다. ⓒ 연합뉴스


어떤 왕이 이가 빠지는 꿈을 꾸고 해몽가를 불렀다. 해몽가는 "폐하는 사랑하는 모든 가족이 죽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화가 난 왕은 해몽가를 채찍으로 때리고 가두었다.

두 번째 해몽가를 불렀다. 두 번째 해몽가는 "폐하께서는 어떤 가족들보다 더 오래 사시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기분이 좋아진 왕은 큰 상을 내리고 첫 번째 해몽가까지 풀어주었다고 한다. 사실 두 해몽가는 동일한 얘기를 했다. 다만 표현이 다를 뿐이다. 


'은성수의 난'으로 청년들이 화가 났다고 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가상자산(가상화폐) 거래소를 폐쇄할 수 있다는 발언을 내놓자 이 발언을 '은성수의 난'으로 명명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은 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청원이 등장했다. 10만명 이상의 가상자산 투자자 등이 청원에 동참했다.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기성세대가 가상자산을 투기로 몰아 규제를 쏟아내면 안 된다"는 주장도 내놨다. 투자자 보호는 하지 않으면서 규제만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반면 가상자산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하루에 20%씩 오르내리는 자산에 투자하는 사람을 보호해줄 수는 없다"고 한다. 가상자산은 어디까지 규제를 해야 하고 어디까지 보호를 해주어야 할까? 그런데 사실 규제와 보호는 같은 말이다. 다만 표현이 다를 뿐이다. 

규제와 보호는 같은 말

투자자 보호가 무엇일까? 나의 투자 손실을 국가가 보전해 주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투자자 보호란, 거래소가 예수금을 들고 튀는 일은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코인(가상화폐)을 발행하는 회사가 거짓 정보를 통해 시장을 교란하는 행위는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 손실 보전이 아니다.

그러면 '은성수의 난'을 촉발한 규제는 무엇일까? 은 위원장의 당시 발언은 가상자산을 거래하는 모든 거래소를 폐쇄하겠다는 게 아니었다. 실명 인증 등 투자자 보호를 할 수 없는 거래소를 폐쇄하겠다는 의미였다. 금융감독원이 가상자산 거래소 심사를 거쳐 투자자 보호 조치가 미비하거나 자금세탁 우려가 있는 거래소를 폐쇄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먹튀' 할 수 있는 거래소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하는 일이나, 가상 자산 거래소를 규제하는 일이나, 사실 같은 말이다. 표현이 다를 뿐이다. 

나는 가상자산을 투자 목적으로 거래해 본 적은 없다. 다만 가상자산이 어떻게 거래되는지를 공부할 목적으로 비트코인을 구매한 적은 있다. 당시 두 개 거래소에서 각각 1비트를 구매했다. 그때가 2013년도다. 안타깝게도 구매 직후 며칠 안 되어서 매도했다. 당시 돈 1만원 정도를 벌고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팔지 않았다면 1억원 가량 되었겠지만 큰 후회는 없다. 어차피 투자 목적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이번 '은성수의 난' 직후 가상자산이 폭락할 때는 처음으로 투자 목적으로 '가상자산을 좀 사볼까'란 생각이 들었다. 투자자를 보호할 수 없는 일부 거래소 폐쇄는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가상자산 시장에 호재다. 그런데 실제로는 가상자산 가치가 떨어졌다. 가상자산 시장의 경제적 실질과 현재 가격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면 매수 타이밍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가상자산 시장의 가격 변동요인은 이보다 더 복잡하기에 구매하지는 않았다.

'은성수의 난' 이후 새롭게 도입된 규제는 없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지난 5월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부동산 현황 관계부처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은성수의 난'을 거치며 어떤 새로운 규제, 또는 어떤 보호조치가 새롭게 시장에 선보였을까? 놀랍게도 어떠한 새로운 규제 또는 보호 조치도 발표 되지 않았다. 은 위원장이 언급한 9월 이후 일부 거래소를 폐쇄할 수 있다는 얘기는 전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 금감원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규제조차 아니다.

우리나라는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에 가입되어 있다.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는 마약·테러 등 국제 범죄의 수익원을 자금세탁하지 못하도록 하는 국제기구다. 이 국제기구는 국제범죄에 사용되는 자금세탁을 막을 수 있는 국제 협약을 수시로 업데이트한다. 2018년 업데이트에는 가상자산이 국제범죄에 이용되지 않게 입출금 거래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을 권고하였다. 우리나라도 회원국인 이상 그 국제 권고를 따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청년들이 청와대 게시판에 하소연을 해도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를 탈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우리나라도 국제협약 권고를 담은 돈세탁방지법(특정금융정보법)이 2019년 11월에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고 2020년 3월에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미 2020년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통과된 법이 계도기간을 충분히 거치고 2021년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2020년 11월에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 예고된 상태다).

올해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유일한 규제 또는 보호 조치는 금융회사와 협약을 맺지 못해 실명 확인을 할 수 없는 영세하거나 투명하지 못한 거래소가 가상자산 거래를 못하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이 또한 이미 재작년인 2019년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에 있는 내용이며, 국제협약에 따라 어쩔 수 없는 조치에 불과하다.

또한, 내년부터 가상자산 양도차익에 세금을 부여하는 조치도 이미 지난해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의결된 소득세법에 따른 조치일뿐이다. 당시 본회의에서 단 한마디 반대하지 않았던 국회의원들이 법 시행을 앞두고 이제 와서 법 시행에 우려를 표하는 것은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결국, 한마디로 말해 우리나라 정부의 가상자산 관련 규제, 또는 보호조치는 국제협약에 따른 의무적 조치 말고는 전무한 실정이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세법은 규제도 보호도 아닌 조세 원칙일뿐이다. 세법과 행정법은 그 체제 자체가 다르다. 

시장이 커지면 '규제 전환'이 필요하다
 

도지코인 ⓒ 고정미


상거래 시장에서 소비자를 보호하고자 만들어진 최소한의 법은 민법이다. 그런데 일반적 상거래 시장에서 기업이라는 강자가 출연한다. 기업은 일반 민법으로만 규제하기에는 너무 크고 강하다. 기업은 민법 외에도 상법이라는 규제를 추가로 받게 된다. 상법이라는 규제는 회사 내외의 각종 이해관계자를 보호 할 수 있는 법이기도 하다.

회사가 더 커지면 민법과 상법 외에 외부감사법이라는 규제를 추가로 받게 된다. 외부감사가 재무제표를 감사하고 이를 공시하게 된다. 외부감사 회사와 거래하는 이해관계자의 보호 범위가 넓어진다. 규모가 더 커져서 상장 등을 하게 되면 여기에 추가로 자본시장법 규제도 받게 되고, 재벌 그룹까지 성장하면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규제까지 추가된다. 경제 주체가 힘이 세질 수록 규제의 강도도 점점 증가하게 된다는 의미다. 크고 사나운 개에는 목줄 외에도 입마개도 추가로 필요한 법이다. 이러한 규제는 주변 사람을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다. 

'규제 철폐'라는 말은 마치 규제는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경제환경이 변하면 과거의 규제는 불합리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그런데 규제를 없애면 그 규제를 통해 보호받는 사람들의 보호막도 사라지게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규제 철폐'보다는 '규제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의 낡은 규제를 통해 보호받는 법익을 대체 할 수 있는 보다 효율적인 규제 혹은 보호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 가상자산 시장을 건전하게 하고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청년을 보호하고자 한다면 적절한 규제 정책이 필요하다. 가상자산 거래소가 '먹튀'를 하고 가상자산을 발행하는 회사가 내놓은 불완전 정보만으로도 거래소에 상장한다. 소수의 대주주가 시세조종 행위를 해도 처벌의 근거조차 없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조롱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도지코인이 있다. 발행량도 무제한으로 투자가치도 의심스럽다. 그러나 도지코인도 가격이 급증하고 도지코인의 국내 하루 거래대금이 코스닥·코스피 전체 거래대금을 초과하는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관련 규제와 투자자 보호 조치가 전무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가상자산은 너무 규모가 커져서 무시할 수 없게(too big to ignore) 됐다. 정치인들이 코인으로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의 표를 잃을까봐, 혹은 그들의 표를 얻겠다고, 가상자산 시장을 방치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코인에 묻지마 투기를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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