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06 08:59최종 업데이트 21.07.06 22:55
  • 본문듣기
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난지도 어언 3년이 흘렀다. 그의 3주기에 즈음하여 노회찬 재단은 오마이뉴스와 함께 공동기획으로, 4월 16일부터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우리시대 '6411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의 정치실천: 기록으로 기억하다] 기록 연재를 시작한다.[편집자말]
(*이전 기사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 노동자와 노회찬 ②에서 이어집니다)
 

2007년 7월 5일 홈에버 상암점에 방문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힌 노회찬. ⓒ 노회찬재단

 
손해배상(손배)·가압류 : "정신 똑똑히 박힌 정부라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해야"

노태우 정부 때인 1991년 10월 4일 최병렬(노동부장관)이 국정감사에 출석해 한 말은 이른바 '손배 폭탄'의 신호탄이었다.


"노사분규 중 폭력 행위에 대해서는 불법·합법 파업을 가리지 않고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토록 강력 지도하겠다." 

이후 사용자 측이 요구한 손해배상 청구액을 모두 인정한 1994년 대법원 판결이 확정되며 손배·가압류는 노조를 무력화하는 '핵심 매뉴얼'로 자리 잡았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는 국가(경찰)가 당사자가 돼 노동조합을 상대로 직접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사실상 '합법' 파업이 불가능한 현실을 차치하더라도, 불법과 합법을 따져보기도 전에 날아오는 손배·가압류 청구서 앞에 노동자만 죽어나갔다(장일호 기자, 손배·가압류 소송은 어떻게 희망을 빼앗나, <시사IN>, 594호, 2019.02.01.).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은 법전에만 머물렀다. 앙상한 글자로만 남은 이 기본권은 업무방해죄(형법)나 손해배상 청구소송(민법) 같은 하위법에 속수무책이었다. 천문학적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뒤따른 재산 가압류. 2004년경만 해도 '신종 노조탄압 무기'로 불리던 것이 세월이 흘러 언제부턴가 노조탄압의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다. 

2007년 법원은 전국 이랜드 32개 매장에서 시위, 현수막 부착, 유인물 배포 등을 금지했고, 이를 어길 경우 조합원은 100만 원, 노조는 1000만 원을 사측에 지급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이랜드 사측이 조합원 49명에게 1억100만 원씩 손배가압류를 걸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조합원 49명의 개인통장을 가압류했다. 

7월 5일 비정규직 집단해고에 반대하며 이랜드일반노조가 7일째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동당 대선주자인 권영길과 노회찬이 함께 홈에버 상암점 농성장을 방문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2007년 7월 5일 홈에버 상암점에 방문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고 밝힌 노회찬. ⓒ 노회찬재단

 
8월 10일 노회찬(민주노동당 대선 예비후보)은 '노동3권 제한하는 손배 가압류 금지돼야'라는 논평을 내고 노조 활동 방해를 목적으로 하는 이랜드 비정규직에 대한 손배 가압류는 부당노동행위라고 지적했다. 노회찬은 "하루 종일 계산대에 서서 화장실도 못 가면서 고통스럽게 일해야 겨우 80만 원 받는 여성 비정규직에게 한 번 시위에 100만 원을 물리는 나라가 과연 제정신이 박힌 나라인가?"라고 반문하며, "헌법에 규정된 노동3권을 짓밟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노회찬은 "노무현 정부는 '03.11.20. 노동조합 지도자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 붙임에서 노조활동 저해를 목적으로 가압류를 하는 경우 부당노동행위로 사법처리 한다고 밝힌 바 있다"고 지적하면서 "대통령의 침묵은 결국 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학살 용인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덧붙여 "노조활동 저해를 목적으로 손배 가압류를 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 정부와 사법부가 나서서 비호하고 있다"며 "정신이 똑똑히 박힌 정부라면 부당노동행위로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이지폴뉴스>, 2007.8.10.).

2007년 6월 이랜드의 비정규직 대량해고로 시작된 이랜드일반노조 투쟁은 2008년 11월 13일 노사 합의 때까지 약 510여 일 동안 진행됐다. 2014년에 개봉된 영화 <카트>(감독 부지영)는 2007~2008년 이랜드그룹의 계열 마트 홈에버에서 일했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바탕으로 한 실화이며, 한국 상업영화 사상 최초로 비정규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영화다.

이랜드 투쟁 당시 노조 수석부위원장이자 영화 <카트>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이남신은 2008년 총선을 앞두고 진보신당 비례명부 2번 노동부문 비정규직 후보로 공식 추천됐다.
 

2008년 3월 19일, 진보신당 비례후보 추천자 토론회가 오마이뉴스 스튜디오에서 시사평론가 진중권씨의 사회로 진행됐었다. 이날 토론에는 박영희 진보신당 공동대표, 이남신 이랜드 일반노조 수석부위원장(사진 가운데), 피우진 전 중령, 유의선 전국빈민연합 정책위원장, 이선근 민생경제본부장, 김상봉 학벌없는사회 정책위원장이 참석했다. ⓒ 권우성


노회찬(진보신당 상임공동대표)은 추천사를 통해 "이랜드 사태는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이 강행통과시킨 비정규직악법의 대표적 희생자"라며 "이남신 후보를 진보신당의 상징으로 비정규직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은 출마의 변을 통해 "저는 현재 9개월 동안 피눈물 나는 파업투쟁을 힘겹게 이어온 이랜드 여성노동자들의 간절한 염원을 안고 진보신당 비례후보로 출마했다"며 "반드시 이 투쟁을 이겨야 한다는 각오로 조합원 총의를 안아 열심히 투쟁하는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이어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섬기는 정부가 되려면 이랜드-뉴코아를 비롯해 코스콤·기륭전자·지엠대우·KTX·르네상스호텔 등 길거리에서 싸우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제가 당선된다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혼신의 힘을 쏟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받은 정당득표율과 득표수는 2.94%(50만4466표)로 3% 비례의석 봉쇄조항을 넘기지 못함으로써 노회찬의 바람과 이남신의 염원은 이뤄지지 못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 최강서와 노회찬 : "더 이상 지켜만 보지 마십시오."

18대 대선(2012.12.19.)이 끝난 뒤 이틀이 지난 12월 21일 노동자 최강서(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0년 대규모 정리 해고로 촉발된 한진중공업 노사 양측의 대립은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치권 등이 나선 끝에 노사는 해고자 복직 등에 합의했지만, 158억 원의 손배소 문제 등에 대해서는 노사 양측이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12월 26일 노회찬은 정진후·김제남 의원 등과 함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대책위 관계자들과 면담했다. 12월 31일 노회찬(진보정의당 공동대표)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트친소(트위터 친구를 소개합니다)'를 했다.
 

2012년 12월 31일 노회찬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띄운 공개서한 관련 트위터. ⓒ 노회찬재단

 
링크된 웹페이지의 <박근혜 당선인께 드리는 공개서한>에는 "대통령직 인수보다 더 시급한 것은 생사의 기로에 내몰린 국민들을 돌보는 것" "불의가 만든 절망 앞에서 무릎 꿇고 항복하는 국민이 있는 한 당선인이 약속한 '국민행복시대'는 오지 않을 것"이라며 158억 손배소 유서를 남기고 떠난 35세 노동자 최강서가 전태일과 함께 등장한다. '국민행복시대'가 조속히 실현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로 시작되는 공개서한의 몇 가지 내용을 추리면 이렇다. 
"고 최강서씨와 그의 동료들이 원한 것은 부당한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복직하는 일뿐이었습니다. 국회청문회까지 열리는 사회적 압박 속에서 한진중공업이 정리해고를 철회하고 복직을 결정했을 때 이들은 그것으로 모든 일이 끝나는 줄 알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들을 기다린 것은 즉각적인 무기한 휴업과 158억 손해배상청구 그리고 악랄한 노조말살정책이었습니다. 고 최강서씨의 유서에 나오듯이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은 이같은 '회사의 횡포'였습니다. 지금도 회사 경영진들이 유가족의 위임을 받은 노동조합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노조간부들의 회사출입마저 무단으로 가로막는 한진중공업의 현장에서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은 효력을 상실한지 오래입니다." 

"최강서씨 이후 며칠 사이에 4명의 노동자가 잇따라 목숨을 잃었고 울산 현대차에서 평택 쌍용차에서 대전 유성기업에서 죽음의 벼랑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이 혹한의 철탑 위에서 절규하고 있습니다. 오늘로 76일째 철탑 위에서 농성하고 있는 현대차비정규직 노동자 최병승, 천의봉씨의 요구는 '대법원 판결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몸을 불사른 것이 당선인이 대학 1학년생이었던 1970년 11월의 일입니다. 그런데 42년이나 지난 지금, '법을 지키라'는 말을 하기 위해 두 달째 철탑 위에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지켜만 보지 마십시오. 일부 힘센 자들이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하며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가장 약한 사람들을 짓밟는 현실이 더 이상 용인되어선 안 됩니다. 이번 대선 결과가 그들을 더욱 기고만장하게 하는 신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대통령직 인수에 여념이 없으시겠지만 당선인께서 더 시급히 인수해야할 중요한 것은 바로 '생사의 기로에 내몰린 국민들'입니다."

기록연재 | 조현연 노회찬재단 특임이사

(*[6411 투명인간과 약자들의 벗 노회찬] 노동자와 노회찬 ④, ⑤, ⑥편은 7월 9일(금)에 게재됩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