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12 07:28최종 업데이트 21.07.12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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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다주 서프사이드에서 부분적으로 붕괴된 12층 챔플레인 타워 사우스 콘도 건물의 나머지 부분이 4일 철거 작업으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아침 뉴스를 켰다. 막 시작한 뉴스 첫 화면에 처참하게 무너진 건물 더미가 보인다. 사람이 있었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곳은 마치 '폭격' 현장 같다. 전쟁 중인 중동 어느 도시인가? '붕괴'라는 말에 다시 생각한다. 아, 중국에서 또 날림 공사를 한 모양이군. 아님 멕시코? 브라질? 내 짐작은 다 틀렸다. 

지난 6월 24일 미국 플로리다 서프사이드 지역의 고급 콘도 건물이 붕괴됐다. 새벽 1시 반께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콘도는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가 있는 그 타운에서도 가장 비싼 12층짜리 고급 콘도였다. 뉴스 진행자도, 현장을 찾은 기자도, 구조 책임자도 화면 속에서 당황한 빛이 역력하다. 그날 아침 뉴스 속 미국인들의 얼굴에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30여 년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후진국형" 붕괴 사고

"선진국에선 건물들이 이렇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건 후진국에서나 발생하는 일입니다."
"미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제3세계에서나 들을 수 있었던 뉴스를 미국 가장 부유한 지역 플로리다 해변 콘도에서 전합니다."



처음 이 소식을 보도하는 미국 뉴스들은 한결 같이 되물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미국에서? 플로리다 고급 콘도가?' 새벽 1시 25분, 134 유닛의 12층 고급 콘도 절반이 폭삭 무너져 내렸다. 지진이 일어난 듯, 폭발물을 설치한 듯 순식간에 주저앉아버린 사실에 모든 미국인들이 경악했다.

무너진 첫날 구조된 35명이 생존자의 전부였다. 구조 책임자인 지역 소방서장은 124톤 이상의 잔해를 제거했지만 누군가 '살 수 있을 만한 공간'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조심스럽게 수색 작업을 벌이던 구조팀은 허리케인 북상 소식에 나머지 건물의 붕괴를 걱정했다. 그래서 나머지 건물도 폭발물을 설치해 무너뜨렸다.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는 7월 4일 일요일이었다. 그건 상처 받은 미국인들에게 희망을 얘기할 수 있었던 생존자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7월 6일엔 콘도 사망자 첫 장례식이 있었다. 사고 지점에서 멀지 않은 교회에 차려진 장례식장엔 세 개의 관이 입장했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11살, 4살 두 딸은 하나의 관에 입관시켰다. 희생자 중 가장 어린 이 두 자매의 관은 핑크와 보라색 리본으로 장식됐다. 가족들의 시신이 모두 발견돼 장례를 치를 수 있었던 이들은 그래도 다행인 편에 속했다.   

"숨진 이들에게 예를 표하기 위해 우리 구조대는 붕괴 건물 인근에서 잠시 침묵의 기도를 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나머지 수색 및 복구에 모든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7월 7일 자정을 기점으로 마이애미-데이드 소방 구조대는 수색 목표를 구조에서 복구로 전환한다. 이날 추가 수습된 6명의 시신을 포함해 사망 60명, 미수습자 80명이라고 구조대는 전했다. 

탈세, 유착, 외면... 하인리히 법칙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아파트 붕괴 사고를 보도하는 <마이애미해럴드> 갈무리. ⓒ 마이애미해럴드

 
<워싱턴 포스트>는 플로리다 콘도 붕괴에서 느슨한 규제로 인해 매번 큰 참사가 발생하던 브라질, 인도, 이집트, 콜롬비아, 중국의 비극이 연상된다고 말한다. 서프사이드 시에서 발생한 붕괴 뉴스는 이런 사건에 익숙하지 않았던 미국인들에게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콘도가 위치한 서프사이드 시 시장도 <폭스뉴스>에 나와 개도국에서나 벌어질 일이 어떻게 우리한테 발생하게 됐는지 원인을 찾고 있다고 인터뷰했다.

'후진국'의 느슨한 규제와 땜질 처방은 미국 부자들의 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역 신문인 <마이애미헤럴드>는 1981년 완공된 이 빌딩 개발자로 2014년 사망한 네이선 라이버씨를 찾아냈다. 폴란드 태생으로 캐나다 온타리오 주 변호사였던 그는 70년대 캐나다에서 탈세 혐의로 기소된 기록이 있다. 

플로리다로 거처를 옮긴 직후 캐나다 정부는 다시 탈세 혐의로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제2의 고향이 된 플로리다에서 그는 부동산 개발 사업에 뛰어들어 이번에 무너진 콘도 건설을 시작했다. 완공 후 하수도 등에 문제가 생겨 모라토리엄(채무이행유예)에 직면하기도 했던 그는 경쟁자들로부터 특혜라는 비난을 받으며 사업을 진행했고, 시 공무원과의 유착 논란도 있었다. 기자들은 더 자세한 얘기를 알고 싶어 하지만 그는 사망했고, 가족들은 답변을 거부중이다.

관련해서 <유에스에이투데이>는 고층 건물 건설이 적합하지 않은 지형 위에 지어진 이 콘도가 1990년대부터 침식되고 있었다는 학술 연구 결과를 보도한다. 더불어 <워싱턴 포스트>는 건물 주변 지역의 침하가 강조된 위성사진을 포함한 2017년도에 발행된 학위 논문도 찾아냈다. 12층 건물에 적합지 않은 지형 위에 조닝(건축에서 사용 용도와 법적 규제에 따라 공간을 기능별로 나누어 배치하는 일)을 변경하며 무리한 공사를 강행했다는 내용이다. 관련해 <워싱턴 포스트>는 사고 대책위와 시 고위 관계자에게 지형 침하 관련한 조사 결과를 알고 있었는지 묻는다. 신문은 그들은 말을 아꼈다고 적고 있다. 

2015년 콘도 입주자가 부식된 파이프로 인해 피해를 입어 콘도 측에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당시 변호사가 건물 주변을 조사해 부식의 징후들을 콘도 이사회에 편지로 보고했지만 신문은 이 건은 비밀리에 해결되었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보도했다. 

2018년 엔지니어링 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37년 된 이 건물에서 지붕 노후, 방수 결함, 콘크리트 기둥 붕괴, 지하 철근 부식 등의 중대한 구조적 손상이 언급되었지만 근본적인 처치는 되지 않았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 그와 관련된 수십 개의 작은 사고와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여기 플로리다 콘도에서도 적용되는 순간이다. 

기후위기의 경고
 

미국 플로리다주 서프사이드의 12층 아파트 붕괴 참사 현장에서 5일(현지시간) 구조대가 잔해더미 속에서 발견한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 연합뉴스

 
실종자 포함 최소 140명의 사망자를 낸 플로리다 콘도 붕괴 사고의 원인에 대한 공식 발표는 적어도 몇 달이 걸릴 듯하다. 몇몇 전문가는 위에 언급된 콘도 자체의 문제와 더불어 기후위기의 경고라고 이야기한다. 기후 위기와 관련된 해수면 상승과 조수 간만의 차로 인한 홍수 등이 재난을 불러온다는 것. 

플로리다의 경우 지구 온난화가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그 바닷물이 플로리다 남동부 건물들을 지탱하고 있는 다공성 석회암에 침투하면서 건물의 지반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고 과학자들은 설명한다.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미래자원'은 마이애미 지역이 1990년대 중반과 비교해 해수면이 15cm 상승하고 홍수는 320% 급증했다고 한다. 이 지역을 홍수와 폭풍으로 인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 하나라고 부르는 이유다.

지금 미국은 오리건 주를 비롯한 서북부와 태평양 연안 지역에 이상 고온이 계속되고 있다. 6월 말부터 섭씨 38~45도에 이르는 찜통더위가 일주일 넘게 지속 중이다. 1000년에 한 번이라는 지금의 폭염이 앞으론 5~10년마다 반복될 거라고 과학자들은 예측한다.
  
미국인들을 멘붕에 빠뜨린 플로리다 콘도 붕괴 사고는 총체적인 문제를 드러냈다. 단절되지 못한 불법과 부정, 부패가 기후 변화라는 새로운 문제를 만나 불꽃을 내며 무너져 내린 것이다. 사고는 부자와 가난한 자를 가리지 않는다. 바이든 대통령의 고민과 결단이 시급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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