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7.28 18:23최종 업데이트 21.07.2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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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바지를 입고 경기한 노르웨이 여성 선수들에게 벌금을 부과한 유럽 비치 핸드볼 연맹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 CBS뉴스 화면캡처

 
"잘 하셨습니다, 여성분들. 내가 당신들에게 부과된 벌금을 기꺼이 대납하겠습니다. 계속 전진하세요." 

24일 밤, 미국 팝가수 핑크(Pink)가 올린 트윗이다. 노르웨이 여자 비치 핸드볼팀에게 부과된 벌금을 자신이 내겠다고 나선 것. 올림픽 개막 다음 날이었던 이날, 미국 뉴스에선 한 장의 사진이 분노를 일으켰다. 비키니 스타일의 유니폼을 입은 여성 선수들과 민소매 셔츠에 헐렁한 반바지 차림의 남성 선수들이 있는 노르웨이 비치 핸드볼팀 단체 사진이었다.


한 주 전(18일) 유럽 비치 핸드볼 선수권대회에서 여성 선수들은 불편함을 이유로 비키니 팬츠 대신 반바지를 착용했다. 그러자 유럽핸드볼연맹이 "의복 규정 위반"이라며 이들에게 1500유로의 벌금을 부과했던 것. 사람들의 분노를 산 이 조치에 대해 벌금 대납을 자임한 팝가수는 말했다. 

"유니폼에 대한 성차별적 규칙에 항의하는 노르웨이 여성팀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유럽핸드볼연맹도 성차별에 대한 벌금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요?!!"

27일 현재, 핑크의 트윗은 좋아요 20만, 리트윗 5만 회를 기록 중이다. 

노르웨이, 독일, 영국... 선수들의 반란

독일 체조팀을 이끄는 엘리자베스 단장은 17일 도쿄올림픽 훈련장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독일 선수 유니폼을 공개했다. 진홍색과 흰색 소매를 따라 크리스털이 반짝이는 독일 체조팀 올림픽 슈트는 노출이 적은 전신 스타일이다. 유니타드라고 불리는 이 옷은 기존 수영복 스타일의 레오타드와 달리 어깨부터 발목까지 커버해 선수들을 보호하고 움직임의 편안함을 유지한다.

"모든 여성들과 모든 이들에게 무엇을 입을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독일 여성 체조팀은 선수의 몸을 보호하고 편안한 움직임을 위해 유니타드 유니폼을 입고 있다. ⓒ 야후 기사화면

 
독일 대표팀은 이미 지난 4월 스위스 세계대회 때부터 이 유니타드를 입고 출전 중이다. 당시 대회 직후, 독일 여자 체조의 사라 보스 선수는 <비비시>(BBC)와 한 인터뷰에서 새 유니폼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모든 상황들이 안전하다 느끼지 못하는 어린 체조 선수들에게 모델이 되었으면 합니다. 레오타드를 입을지 유니타드를 입을 지의 결정은 (협회가 아니라) 선수 개개인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국 국가대표도 유니폼 논란에 가세했다. 대회 관계자로부터 자신의 유니폼이 부적절하다고 지적받은 사실을 공개한 것. 달리기와 멀리뛰기 영국 국가 대표인 올리비아 브린은 25일 열린 잉글랜드 선수권대회에서 한 관계자로부터 자신이 착용한 팬츠가 너무 짧고 노출이 심하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했다. 세계 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인 그녀는 BBC 라디오에 나와 자신이 받은 지적이 왜 부당한지 설명했다.

"우린 편안한 걸 원합니다. 최대한 가볍고 활동적으로 말이죠.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은 입고 싶은 옷을 입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요?" 

유니폼 이슈는 여성 선수들을 '선수'가 아닌 '여성'의 관점에서 보는 것에 대한 문제로 번졌다. 도쿄 올림픽 조직위도 민감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26일 올림픽 방송 서비스팀의 CEO 엑사스초스가 관련해 언론에 답변했다. 여성 선수들을 향한 지나친 성적 이미지 추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이번 올림픽에선 과거 있었던 선수 신체 부위를 자세히 찍거나 클로즈업하는 화면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여성 선수들은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기록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됐다는 얘기다. 

달라진 위상, 달라진 파장 

"인종차별적인 발언은 우리 방송에 설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 ERT 방송과 카르미리스의 협업은 오늘 아침 쇼가 끝난 직후 종료되었습니다."

27일 AP통신은 그리스 국영방송 ERT가 베테랑 스포츠 기자 카르미리스의 해설자 계약을 끝냈다고 전한다. 도쿄 올림픽 탁구 16강전에서 한국의 정영식 선수가 그리스 선수에 역전승하자 한국 선수의 작은 눈으로 공을 어떻게 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고 한 발언이 문제가 된 것. 문제 발언 후 몇 시간도 안 돼 ERT는 웹사이트에 사과 성명서를 올리고 기자를 해고했다.

지난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NBC 해설위원 조슈아 쿠퍼 라모는 일본 선수단 입장에 맞춰 식민지 시대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 

"일본은 1910년부터 45년까지 한국을 식민 지배했습니다. 모든 한국인은 발전 과정에서 일본이 매우 중요한 문화와 기술, 경제적 모델이 되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뉴라이트적 관점의 설명에 대해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는 NBC에 항의했고 방송사는 사과 성명과 함께 해설자를 해고 조치했다. 중국어에 능통해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해설을 담당한 아시아 전문가였지만 그 사고 이후 나는 그를 방송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요 며칠 미국 메인 언론에 등장한 한국발 뉴스가 안타깝다.
 
- "이탈리아 피자, 루마니아 드라큘라" 한국 방송사, 올림픽 '용서할 수 없는 실수' 사과 (시엔엔)
- "선수단 입장 중 방송된 부적절한 이미지에 대한 방송사의 사과" (뉴욕타임스)
- "노르웨이는 연어, 우크라이나는 체르노빌: 변명의 여지없는 실수를 사과한 한국 방송사" (워싱턴포스트)
 

올림픽 개막식 때 부적절한 자막과 자료화면을 넣어 국제적 비난을 받은 MBC 관련 소식을 전하는 기사. ⓒ Fox Sports 화면

 
<이에스피엔>(ESPN)은 한국 방송국이 고정관념적이고 모욕적인 이미지를 사용 후 사과했다고 보도했고, <폭스>(FOX)나 <시비에스>(CBS)도 관련 내용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시비에스는 모든 나라의 이미지가 모욕적인 것은 아니었다며 영국을 위해서는 여왕과 버킹검 궁전, 타워 브리지 사진을 한국은 방탄소년단 이미지를 사용했다고 말한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엔 우리끼리 징계하고 사과하면 괜찮았다. 하지만 13년 사이 달라진 한국의 위상에 파장도 그만큼 비례하는 느낌이다. 

위태로운 한국
 

양궁 국가대표 안산이 24일 일본 도쿄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도쿄올림픽 혼성 결승전에서 활 시위를 당기고 있다. 2021.7.24 ⓒ 연합뉴스

 
이런 까닭에 대한민국에 소중한 금메달을 두 개나 안겨준 양궁선수 안산의 숏컷 논란도 조마조마하다. 한국 페미니스트가 어떻게 짧은 머리, 여대 재학 등과 연관되어서 '믿고 거르게 되는지' 외국인들이 알게 될까봐 말이다. 

58세 현역의 다른 나라 국가대표 여성 탁구 선수에게 "여우같다" "동네 고수 같다" 표현하는 진행자들의 멘트에 간담이 서늘하다. "나이는 장애가 될 수 없다"는 스포츠 정신에 대한 존경은커녕, 그 말속에 숨겨진 무시와 비하를 보게 될까봐 말이다. 

선수들이 10대라는 이유로 귀엽고 깜찍하게만 보려는 시각도 불편하다. 그들 모두 당당히 국가대표로 대회에 출전한 선수로서 최고의 기량을 가진 전문가인데 말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가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선진국 지위를 인정받았다고 한다. 회원국 모두의 만장일치였다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 된 최초의 나라란다. 선진국이 된 나라 국민으로서 그만큼 준비할 것도 많아 보인다. 우리의 모든 것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번 올림픽이 그 시작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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