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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교를 없앨 수 있을까?"라는 제목에 깜짝 놀란 사람들이 꽤 많을 듯싶다. '여학교'에 다니고 있거나 '여학교'의 필요성을 인정한 사람들한테는 더욱 그랬을 듯싶다. 사실 여학생만 다니는 학교를 공학으로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여학교'라는 비대칭 성차별어를 없앨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물론 필자는 궁극적으로는 여학교뿐만 아니라 남학교 모두 공학으로 바꾸자는 쪽이지만 일단 언어 문제에 집중해 보자.

성차별어의 대부분은 여성 차별어에 집중되어 있어 '성차별어'가 아니라 사실은 '여성 차별어'라고 해야 할 정도이다. 여성 차별어는 "여의사, 여학교, 여류 시인, 여대생"과 같이 대부분 비대칭 차별어이다. 대칭이 되는 "남의사, 남학교, 남류 시인, 남대생"이라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남성 중심의 오랜 역사가 반영된 말이고 그런 역사가 아직 청산되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성차별어'가 아니라 '여성 차별어'

<한국 사회의 차별 언어>라는 역저(2014)로 차별어 논의를 학문 담론으로 끌어올린 이정복 교수(대구대 국어국문학과)도 이런 말들은 남성 기본형을 바탕으로 파생시킨 것이기 때문에 여성에게 불리한 말이고 결과적으로 여성차별 표현으로 보았다. '남의사, 남고'를 '여의사, 여고'처럼 대등하게 쓴다면 차별 문제는 적어지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차별어라는 것이다.

<이야기로 풀어가는 성평등 수업>(2020)으로 성평등 교육에 큰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변신원 교수(한국양성평등교육원)도 '남의사, 남고'를 일반화할 수 없다면, '여의사, 여고'라는 말은 당연히 차별어라고 했다. 대안을 묻자 남의사, 남고라는 말과 함께 쓰거나 의사, 학교로 통일하면 된다고 했다. 다양한 고려가 있어야겠지만 학교의 경우도 교육단계가 같다면 성별 표기를 안하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은가 반문했다.

비대칭 여성차별어 가운데 대안 마련이 더욱 어려운 유형으로 '친할아버지-외할아버지, 친손자-외손자, 친정-시댁'과 같은 말들이 있다. 이런 어휘들은 남성 중심의 문화가 반영된 차별적 요소가 있지만 '여고'와는 달리 구별어로서의 대칭성은 있기 때문이다.

최근 어느 국회의원이 '친정'이란 말을 써서 논란이 됐다. 정치적 논쟁을 떠나 이 말은 여성들 입장에서는 매우 정겹고 도타운 말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보면 성차별 의식이나 현실이 반영되어 있는 말이기도 하다. '친정'은 여성의 본집으로 '친가'라는 뜻인데, 이는 남편의 본집이라는 '시가'의 높임말인 '시댁'과 비대칭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명 방송인이자 한글학자이기도 한 정재환님은 '친정아버지'의 경우도 "그냥 아버지다. 아니면 우리 아버지든가. 그것도 아니면 내 아버지라고 하든가"라고 해야 한다고 굳이 비대칭 의미가 있는 '친정'이란 말을 굳이 쓸 필요가 없다고 페이스북에서 주장하였다.

물론 '친정'을 성차별어로 보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만식 시인은 그냥 아버지라 하면 자연스럽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친가, 친정은 본래의 가정을 일컫는 낱말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족 언어의 다양성은 형용사처럼 우리 의식과 문화의 특질을 반영한 것인데 구분의 의도 외에 불평등 언어 의식에서 온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래서 "이러한 언어가 차별을 의미하기에 순화 대상이 된다면 우리말의 상당수가 사장되어 스스로 언어의 폭을 좁히는 격"이 될 것이라고 보았다. 변신원 교수도 이런 말 자체를 없애기보다 사전 같은 데서 일부 차별어로 쓰이기도 한다는 설명을 덧붙여 균형있는 사용 맥락을 권장해야 한다고 보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남성 중심 문화가 강하다 보니 '친정-시댁'이라는 말이 차별어로 인식될 수 있고 따라서 그런 환경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이다. 아직도 명절 제사 문화에서 보듯 차별 맥락이 심하게 드러나고 많은 가정의 여성들이 '친정'에 가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의 '친정'은 그리운 본가의 의미가 아니라 갈 수 없는 안타까운 여성 차별의 의미가 강하기에 차별어로 작동된다. 당연히 우리 사회가 남녀 평등이 된다면 '친정-시댁'이 아무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니 문제가 된다.

성차별어 대안을 찾아서

서울시는 3년에 걸쳐 성차별 언어 순화 정책을 펴 많은 호응을 받았다. 이 가운데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변신원 교수는 '저출산<저출생, 미혼<비혼, 경력단절여성<고용중단여성'등을 들었다.

'저출산'은 출생의 문제가 단지 여성의 문제로 보이는데 반하여 '저출생'이라는 말은 태어날 아이에 집중하여 잘 바꾼 예라고 했다. '경력단절여성'이란 말도 여성 일자리의 경력이 쉽게 단절된다는 편견이 있는데 '고용중단여성'이라 하면 경력의 연계가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또한 주로 결혼 안 한 여성에게 "아직도 결혼을 안 했냐"라는 타박처럼 쓰이는 '미혼'을 대체한 '비혼'이 매우 바람직하다는 평가다. 이번 명절 때는 비혼 여성들이 어른들의 '미혼' 압박에 시달리지 않을 듯싶다는 말에 우리는 함께 쓴웃음을 지었다.

이정복 교수는 필자와의 문자 인터뷰에서 차별 언어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차별 언어를 쓰지 않아야 하겠다는 화자들의 의지"라고 보았다. "그런 의지가 생기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차별 표현인지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고 차별 언어를 썼을 때 상대방에게 어떤 피해가 생기는지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그런 지식과 인식을 기르기 위해서는 교육과 홍보가 중요합니다"라고 보았다.

변신원 교수는 지하철에서 낮은 손잡이도 만들어 키 작은 사람에 대한 차별을 없앴듯이 우리 사회 문화와 제도, 시스템 등을 평등 문화로 바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이런 면에서 2020년 11월 20일 유엔 지정 세계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서울시가 펼친 어린이 성평등 문화 정책은 매우 바람직한 사례다. 다음과 같이 어린이집·유치원·학교에서 어린이가 겪는 성차별 언어·행동에 총체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 언어: "엄마는 아빠다리 할 수 없나요?", "여아는 형님반 갈 수 없나요?"
· 수업·놀이: "여아는 발레·인형놀이, 남아는 태권도·공놀이 해야 하나요?"
· 차림·외모: "졸업식에서 여아는 드레스, 남아는 턱시도 입어야 하나요?"
· 성격·행동: "남자는 울면 안 되나요?", "여자는 얌전해야 하나요?"


차별어 없애기 수업으로 주목받는 신효은 교사(수원 구운중)도 수업을 통해 학생들이 차별어를 인식하고 나면 언어생활이 매우 달라진다고 말한다. 학생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단어에 차별과 혐오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는 문제 의식에서 시작한 차별어 없애기 수업을 통해 변화된 학생이 많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같은 남학생한테 욕할 때도 여성비하어를 사용할 정도로 이 성차별언어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신효은 교사는 차별어로 인식하지 못하는 역사적 용어도 다음과 같이 구체적인 자료 탐구를 통해 설명하면 아이들이 차별어 문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치려고 노력한다고 한다.    
[사진] 신효은 교사가 ‘미망인’의 차별 맥락을 교육하기 위해 사용한 자료들(김효은 교사 제공)
 [사진] 신효은 교사가 ‘미망인’의 차별 맥락을 교육하기 위해 사용한 자료들(김효은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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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문 같은 학생들의 설문지 답변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바꾸려고 노력한 교육 성과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보여준다. 단어를 하나 바꾼다고 세상이 다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잘못된 단어를 바꾸지 않고 세상을 바꾸지 못하는 것도 분명하다.
 
구운중 학생들의 설문지(신효은 교사 제공)
 구운중 학생들의 설문지(신효은 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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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성차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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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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