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0.20 16:57최종 업데이트 21.10.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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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 계절 과일이란 말은 옛말이 되었다. 값싸게 팔리는 수입산 열대 과일 판매대에 국산 열대 과일이 올라올 날이 멀지 않았다. ⓒ 최수경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비싸서 못 먹었지만 열대지방 여행지에서는 배부른 줄 모르고 실컫 먹었던 과일들이 마트에 싼값에 진열되어 있다. 남아공, 칠레, 태국, 베트남, 멕시코, 뉴질랜드, 호주산 등이다. 그런데 이런 과일들을 우리나라에서도 재배한다는 것이 놀랍다.

우리나라에서 망고, 용과, 파파야, 구아바 등이 생산되고 있다는 것은 한반도 기후가 온대에서 아열대로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기후에 의존하던 우리 전통 농업 분야에 발 빠른 전환이 필요하다. 작물의 재배지가 북상하고, 시기도 변하며, 고온에서도 내성을 갖는 열대 품종으로 전환되고 있다. 아열대 농업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점차 북상하는 사과 재배지 기후 변화로 고온 현상이 이어져 사과 작황이 좋지않자 장수군의 한 사과 농장주는 "어서 빨리 통일이 되어 일본 아오모리 지역처럼 백두산과 위도가 같은 지역에서 사과 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다. ⓒ 최수경

 
기후대가 가장 빠르게 변하는 제주도는 이미 아열대 기후대로 접어들었다. 아열대란 월 평균기온이 섭씨 10도 이상인 달이 8개월 이상인 기후대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제주도, 전남 고흥, 경남 거제도 등 남부 도서 지역이 여기에 해당한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백년초 제주의 민가 돌담 어디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백년초는 이제 남해안 해안가 노지에서 재배되고 있다. ⓒ 최수경

 
20년 사이에 제주 바다 2도 상승

얼마 전 제주도 해양 다이빙 1만 회를 기록한 김병일 다이버(diver)를 제주에서 만났다. 다이버 계통에서는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가 제주 바다에서 다이빙을 시작하면서 1993년부터 기록한 일지를 찬찬히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1만 번의 다이빙도 대단하지만 다이빙을 할 때마다 일지에 해수 온도, 시야, 파고, 확인된 생물종, 생물종의 동태를 면밀히 기록했다. 수천 개의 슬라이드 필름은 말할 것도 없다.

본인이 좋아하는 일에 애정이 있다 보니 그 터전을 모니터링하게 되고, 한 걸음 나아가 자연보호와 환경감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 김병일님은 전형적인 시민 과학자였다.
 

1만 회 다이빙 일지를 기록한 김병일 대표. 30년간 제주 물속을 드나들며 제주의 해양 환경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 최수경

 
그의 일지에 2000년 3월 수온은 13도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시점에는 15도로 기록되었다. 그 사이에 해수 온도가 2도 상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병일 대표는 "해수 온도 2도 상승은 지상 온도 20도 상승한 것과 다름 없을 만큼 해양환경에는 엄청난 변화"라고 말했다. 수온 상승으로 해조류는 급격하게 감소했고 상대적으로 산호는 엄청나게 불어났다고 했다.

지난 40년간 한반도 주변 해역 해수면이 10cm 상승(출처: 국립해양조사원 해수면 변동 분석 및 예측 연구 보고서, 2015)한 근거를 김병일 대표의 일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온 상승으로 예전에 비해 해조류가 급격하게 감소하였고 상대적으로 산호는 엄청나게 불어났다. 가시수지맨드라미는 30년 전에는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지금은 제주 해역에 많이 분포하는 산호초이다. ⓒ 김병일

  

거품돌산호초는 외국에서는 보호종인데 현재 제주 해역에서는 흔하게 분포하는 종이다. 고라니가 국제적으로는 보호종인데 국내에서는 유해종이 되고 있는 것과 흡사하다. ⓒ 김병일

 
탄소 배출원 못지않게 탄소 흡수원에 주목

우리 정부는 최근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발표했다. 정부는 배출원을 줄이는 것 못지않게 탄소흡수원에 주목했다. 탄소중립에 있어서 온실가스 배출을 완전히 줄인다 하더라도 이미 방출된 온실가스는 수백 년간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대기에 배출된 온실가스 흡수원을 늘리는 노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탄소는 온실가스의 주원인인 블랙카본과 탄소 포집 역할을 하는 육상 생태계의 탄소흡수원인 그린카본, 해양생태계의 탄소흡수원인 블루카본으로 나뉜다.


우리나라는 육상생태계의 탄소흡수원으로 산림과 초지가 있다. 산림은 토양, 낙엽층, 고사목, 지하부에 탄소를 저장한다. 목재의 경우 한번 만들어진 가구는 썪어 없어질 때까지 탄소가 공기 중으로 나오지 않고 저장된 상태가 지속되기 때문에 탄소흡수원이기도 하다.

초지의 경우 농업에 있어 농사 기술의 혁신과 토지 이용으로 탄소를 저장하고 유실을 줄일 수 있다. 아열대로 농산물 품종이 바뀌는 현실이지만 여전히 벼 재배가 탄소 저장에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특히 화학비료 대신 가축분(糞)을 활용하고, 논에 물을 대거나 작물로 땅을 덮기, 토양 유실 방지, 농경지 경계에 관목이나 방풍림 식재 등 농경지 탄소 격리 방안이 제안되었다(탄소중립을 위한 농경지 탄소격리, 2021 최우정 외, 한국환경농학회).
  

장흥 천관산에서 바라본 들녘 정부는 화학비료 대신 가축분을 활용하고, 논에 물을 대거나 작물로 땅을 덮기, 토양 유실 방지, 농경지 경계에 관목이나 방풍림 식재 등 농업 부문에서 탄소를 흡수하는 탄소중립 계획을 세우고 있다. ⓒ 최수경

 
해양생태계의 블루카본으로 맹그로브(mangrove), 염습지, 해초대가 있다. 실제 해양은 지구 전체 이산화탄소 흡수원의 40%를 담당한다.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경우 탄소흡수원인 염습지와 갯벌로 둘러싸여 있어 블루카본의 잠재력이 높다.

연안의 염생식물, 해초숲, 패각도 탄소를 저장하니 연안을 막아 간척한 새만금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탄소중립을 예견하지 못한 구시대의 전유물인 셈이다. 과거와 다르게 연안 지역에서의 태풍과 해일의 빈도가 커지고 강도가 세지는 등 피해가 증가하는 것만 보아도 기후변화와 해양환경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해 난지도 갯벌 염습지와 갯벌, 해초대는 탄소흡수원으로 블루카본의 잠재력이 높다. ⓒ 최수경

   

남해 상주은모래해수욕장 기후변화와 해양환경의 관계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면서도 대중의 인식 속에 해안은 관광지에 더 가깝다. ⓒ 최수경

 
하늘만 보지 말고 바다도 보자

그러나 기후변화와 해양환경의 관계에 대한 일반 대중 인식은 멀기만 하다. 기후변화 정책 홍보가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는데 치중되어 있고 기후변화 관련 교육이 대부분 대기(기상) 위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해양에 특화된 기후변화 교육 홍보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갯벌을 포함한 해양 공간의 개발을 막기 위해 해양보호구역을 지정하는 것은 생태계 보전뿐만 아니라 탄소 격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해안사구의 방사림을 포함한 해안 옹벽, 도로, 관광지 개발 등을 억제해야 하는 이유는 해안사구의 지형이 지속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해안사구의 개발은 해안사구의 침식을 일으키고 이는 해안선의 후퇴를 야기한다. 탄소를 흡수하는 토양의 유실 뿐만 아니라 점차 잦아지는 태풍에 더 취약하게 만든다.
 

신두리사구 해안사구의 침식은 해안선의 후퇴를 가져온다. 토양 유실은 곧 탄소흡수원이 사라지는 것이다. ⓒ 최수경

 
목재가 탄소를 저장하듯 패각이 탄소를 저장하는데 수천 년 전에 형성되었을 패각층이 침식으로 사라질 수 있다. 조개를 잡고 물놀이를 하는 체험에서 모래포집기(바람에 의한 모래 이동이 주로 일어나는 지표면에 대나무나 그물 따위로 만든 인위적 구조물을 설치하여 모래를 집적하는 장치) 한 대 설치하고, 잘피(해수에 완전히 잠겨서 자라는 속씨식물) 한 모종 심는 체험으로 확대해야 한다. 나도 탄소 흡수원을 늘리는데 한몫할 수 있음을 알게 해야 한다.
 

모래포집기 태안국립공원의 모래포집기를 통해 모래 침식을 줄일 수 있다. ⓒ 최수경

 
예년 같으면 이맘때 설악부터 빠르게 단풍 전선이 내려와 가을 색에 취할 때다. 그러나 첫서리와 첫얼음이 얼었다. 대구 날씨가 31도까지 치솟았던 10월과 64년 만에 추위를 맞은 10월이 공존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재해의 연속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다.
 

진안 용담호의 가을단풍 예년과 비교해 같은 시월이라도 가장 덥고 가장 추운 시월을 보내고 있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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