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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 기사 1883년 뉴욕 헤럴드지에 대서특필 된 한글에서 이어집니다.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조선 사절단은 1883년 9월 18일 11시 경 뉴욕에서 미국 대통령을 만난 다음에 숙소로 돌아갔는데 미국 언론들이 취재 경쟁을 벌였습니다. 뉴욕 해럴드New York Herald 지는 조선 사절단에서 유일한 미국인인 로웰Lowel과 인터뷰를 하였습니다(다음 날 보도됨). 앞서 말했지만 로웰은 동생이 하바드대학 총장을 하고 있는 명문가 출신이어서 그의 발언은 영향이 컸지요.

로웰은 인터뷰에서 문호가 활짝 열린 이 나라로 진출할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하면서 조선의 가치는 대단히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조선에는 금은의 매장량이 풍부하고 광물자원 이외에도 쌀, 면화, 삼, 견직물 등이 해외로 수출되고 있는데 그 질도 우수하다. 지금까지 조선의 대외무역은 전적으로 청일 양국에만 국한되어 있었지만 미국이 한미조약의 이 점을 살린다면 통상교역에서 높은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라면서 조선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려 애를 썼습니다.

우리는 점심을 마친 후 마차에 올라 시내로 나갔습니다. 뉴욕 시민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 속에서 조선인들은 센트럴 파크를 둘러 보았습니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센트럴 파크는 인공으로 산과 호수를 만들고 호수 한가운데에는 반달모양의 섬과 분수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분수대 근처에는 돌로 만든 작은 정자를 설치하여 술과 차를 마시는 장소로 제공하였고 또 우리 안에는 각종 진기한 동물과 곤충을 들여 놓아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조선인들은 감명을 받은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감정 표출을 애써 자제하려 했지만 그들의 입에서는 신음 같은 탄성이 새어 나오곤 했지요. 공원 구경을 끝으로 우리는 뉴욕을 떠나 매사추세츠주의 보스톤으로 향발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5시 반에 브리스톨Bristol 호에 올랐습니다. 배 위에서 하룻밤을 지낸 후 다음날 새벽에 Fall River(매사추세츠주)에 도착한 후 거기에서 하선하여 기차로 갈아타고 보스톤으로 가는 노선이었죠. 그땐 뉴욕-보스톤간 열차가 없었어요.

브리스톨 호 선상 여행은 몹시 인상적이었고 조선 사절단에 문화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2900톤급의 증기선인 이 배는 승객 1000명을 태우는 호화 선박인데 "떠다니는 궁floating Palace"이라 불리기도 했지요.
 
보빙사 선상 여행
▲ 선상 무도회 보빙사 선상 여행
ⓒ 공개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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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 오르자 청색 유니폼을 입고 하얀 글로브를 낀 흑인들이 짐을 받아 객실로 운반하였습니다. 짐을 푼 다음 우리는 바람을 쐬러 갑판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석양이 마지막 잔광을 강물 위에 뿌리고 있는 광경도 잠깐, 곧 어둠이 내렸습니다.

우리는 식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식당은 고급 호텔의 연회장 같았어요. 조선사절단이 들어서자 주위의 시선이 쏠렸습니다. 특히 조선인들은 식사 중에도 갓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시선을 끌었습니다. 다가와 인사를 거는 사람들도 있었지요. 굿 이브닝 정도의 간단한 인사말이 오갔는데 의사가 통하지 않으면 나와 로웰이 도왔습니다.

식사가 끝난 후 밤 8시에 갑판 위에서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성장을 한 남녀들이 악단의 연주 속에서 껴안고 춤을 추는 모습은 조선인들을 놀라게 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우리가 뉴욕에서 보스톤으로 직행한 것은 그곳에서 마침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죠. 보스톤역에 도착한 것은 아침 6시, 아직 해가 뜨기 전이었는데 박람회 사무총장 노튼C.H.Norton 장군과 벤덤Vendome 호텔 소유주 월코트J.W.Walcott가 마중 나와 있더군요. 벤덤 호텔은 보스턴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호텔이었습니다.

조선 사절단이 호텔에 도착하자 월코트 사장은 혹시 조선의 국기를 가져 왔으면 그걸 줄 수 있겠느냐고 요청했습니다. 호텔에 게양하고 싶다는 거였어요. 뜻밖이었습니다. 천만 다행으로 사절단은 태극기를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미국 땅에서 아니 서양에서 최초로 태극기가 나부끼게 됩니다. 이 사건은 현지 언론에 다음과 같이 보도되었습니다.
 
"조선 사절단이 벤덤 호텔에 도착하자 곧 월코트씨는 조선 국기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리하여 9시에 최초로 그 나라의 상징이 미국의 도시에 게양되었다Soon after the arrival of tr embassy at the Vendome, Mr. Walcott sent for a Corean flag, and at 9 O'clock the ensign of that nationality for the first time, floated in an American city."(Boston Daily Globe, September 19, 1883)
 
이처럼 한국의 태극기가 미국, 즉 서양 땅에서 처음으로 나부낀 사건은 1883년 9월 19일 오전 정각 9시 보스턴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 사절단은 웅장한 호텔에서 태극기가 펄럭이는 모습을 감동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어서 사절단은 11시에 박람회를 참관했습니다. 박람회의 공식 명칭은 'The American Exhibition of the Products, Arts, and Manufactures of Foregin nations'(외국산품, 예술품, 제조품의 미국 전시회)라는 긴 이름이지만 외국의 산물을 미국에서 전시하는 박람회입니다. 그 해 9월 3일 개장하였는데 6개월간의 전시를 예정하고 있었지요.

놀랍게도 이 박람회에 조선 물품이 전시되었습니다. 도자기pocelain, 화병china vases, 주전자jugs등이 출품된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조선 사절단은 방미 시에 선물용을 사용하기 위하여 도자기류를 가져 왔는데 그걸 급히 박람회 측에 제공한 것으로 기억됩니다. 정부 출품FROM THE GOVERNMENT으로 분류된 조선 물품은 박람회 3층의 왼쪽 부스에 전시되었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하여 소규모였지만 조선의 아름다운 도자기가 처음으로 미국에 소개된 것은 그 의의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보스톤 박람회는 미국인들로 하여금 조선 도자기에 눈을 뜨게 한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다음 해인 1884년 미국인 두 명이 조선으로 건너가 도자기 수집에 몰입하였고 상당한 분량을 미국으로 반출하였는데, 이 또한 보스톤 박람회와 무관치 않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태그:#조지 포크, #보빙사 , #브리스톨호, #태극기, #도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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