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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인지불협화)란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면 그것에 압도 당해 자기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을 뜻한다.

쉽게 생각해보자. 담배를 피우게 되면 폐암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 흡연자들은 이를 두고 이렇게 변명 한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90 평생을 담배와 함께 살아오셨지만 아직도 정정하게 활동을 하신다'라며 끽연의 정당성을 찾고 거기에 나를 꿰어 맞춘다.

인지부조화가 잘못된 신앙과 짝을 맞추면 교주를 따라 자살하는 참극이 발생하기도 한다. 말세론과 휴거를 떠올려보라. 이 경우 모순되는 상황이 극단적일수록 그 부조화의 정도는 커진다. 1954년 도로시 마틴(Dorothy Martin)은 '클라리온 행성의 우월한 존재로 부터 대홍수가 일어나 세계가 파괴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주장한다.

종말론을 믿었던 신자들은 직장을 그만 두고 전 재산을 처분하여 배우자에게 이혼 위자료로 주었다. 사이비 교주 마틴이 강조한 대로 UFO를 타고 오는 외계인이 자신들을 구원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방송 취재진까지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 예언의 그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광신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교주가 틀렸음을 인정하면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시작해야 하므로 앞이 보이지를 않는다. 광신도들은 마틴을 탓하기 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신념을 바꿨다. "우리의 열렬한 기도가 세상을 구했다"라며 더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다. 심리학자 리온 페스팅어(Leon Festinger)는 이 광신도 집단을 연구하여 <예언이 실패할 때, When Prophecy Fails>를 펴냈다.

창피함이 자기파괴를 가져온다
 
신념을 바꾸는 것보다 합리화가 더 쉽다.
▲ 인지부조화 신념을 바꾸는 것보다 합리화가 더 쉽다.
ⓒ Jesus Roch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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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팅어는 대학생 파트 타이머를 모아서 약 한 시간 동안 필름 버리는 일을 시켰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 단순 노동이다. 이후 그는 "다음 교대자들이 오면, 이 일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거짓말을 하라"는 주문을 내렸다. 이 대가로 두 그룹에게 각각 20불과 1달러를 주기로 했다.

실험이 끝난 후에 인터뷰가 이어진다. 20불을 받은 그룹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사실 필름 버리는 일은 되게 재미가 없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1불을 받은 그룹은 실험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고 공격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왜 그럴까? 겨우 1달러를 받으려고 내가 거짓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몹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겨우 1000원 밖에 안 되는 푼돈 때문에!

이렇듯 부조화의 간극이 클 수록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쉽게 속인다. 수치심은 때때로 우리를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나쁜 방향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투자에서 인지부조화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손실의 굴욕감은 매각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만든다. 심각한 재무정보에 눈을 감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컨대 계속되는 적자 행진과 급격히 늘어나는 부채, 경영진의 부도덕한 행위 등을 애써 무시한다. 언젠가는 상황이 나아질거라고 자기자신을 기만한다. 투자가 실패했음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모순의 격차가 커질 수록 인지불협화의 늪에 빠지기 쉽다. 특히나 학식이 높은 사람이거나 고위직에 있는 인물,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명인, 고소득 전문직종에 속한 이들이 그러하다.

'내가 얼마나 잘 나가는 사람인데 고작 이 땡전 몇 푼에...', '내 사회적 위치가 어느 정도인데 진짜 쪽팔리게...' 이와 같은 창피함,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생각이 부조화를 키운다. 당연히 투자 포트폴리오는 박살이 난다. 인지부조화는 새로운 정보를 자기가 유리한 쪽으로 편집하여 저장케 한다. 그래서 사실을 사실대로 보지 못하고 눈 뜬 장님이 되어 버린다. 
 
중앙박물관 소재의 신라시대 보물.
▲ 금장식한 말 안장. 중앙박물관 소재의 신라시대 보물.
ⓒ 이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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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기억 속에서는 힘들었던 과거의 일도 추억으로 남는다. 인지부조화는 지난 날의 초라했던 실적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자기 자신은 꽤 괜찮은 수익을 낸 것으로 기억을 바꿔버린다. 투자에 실패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돈을 잃는다. 반성적인 두뇌의 작동을 애써 눈감아 버리므로 어리석은 행동을 바꾸지 못한다. 속 된 말을 쓰자면 호구인 셈이다.

2000년 초 IT 버블이 터지면서 갑작스레 보물선 인양 소식이 증시에 돌았다. 러일전쟁 때 울릉도 해역에 침몰한 함선에 150조원 규모의 금괴가 묻혀있다는 뉴스였다. 당시 보물선의 위치를 확인한 동아건설의 주가는 10배 가까이 폭등했다. 어리석은 투기꾼들이 몰려들었지만 '인양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고 이듬해 2001년 3월에 상장폐지 되었다.

일확천금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사그러들지 않는다. 2001년 1월에는 삼애인더스트리가 또다시 보물선 인양을 들고 나왔다. 이번에는 전남 죽도 해저에 침몰한 일본 군함의 금괴였다. 역시 주가는 속등하여 7배나 뛰었으나 회장의 구속과 더불어 2002년 상장폐지로 끝났다.

이 다단계 사기극에 빠져든 개인들은 거짓이 밝혀졌음에도 그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보물선을 믿고 있으며 언젠가 금의환향하게 될 것이라 여긴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존재다. 2018년에는 싱가포르의 신일그룹이라는 탈을 쓰고 재등장했다.

태그:#인지부조화, #보물선 테마, #레온 페스팅거, #투자 심리, #단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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