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01 13:03최종 업데이트 21.12.01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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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농장 밭에서 가을 김장 배추가 실하게 크고 있다. 배추 몇 포기 하느냐는 김장의 규모와 일하는 사람의 노고를 말하는 척도다. ⓒ 최수경

 
결혼하고 김장철인 11월이 가까울수록 명절과 제사 못지않은 김장 대사에 주부들은 부담이 크다. 이때가 되면 김장 몇 포기 하느냐가 그 대사의 규모와 노고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어디 김장 당일만 고되겠는가. 늦여름부터 이미 고추를 장만하고 젓갈을 사서 김장 시즌을 대비해야 하니 말이다. 
   
아파트 생활을 하던 내가 결혼 후 마당이 있는 시댁에서 겪은 김장 문화는 놀라웠다. 우선 밭에서 배추를 직접 뽑아갖고 와야 했다. 시골 친척들의 밭에서 김장 배추가 조달되었다. 승용차 몇 대가 트렁크에 싣고 온 배추가 마당에 산처럼 쌓였다.

쌓인 배추를 반으로 갈라 소금물에 담갔고, 무와 갓을 씻어 썰어놓고, 마늘과 생강을 빻는 등 배추 속 양념 재료를 준비했다. 자정 무렵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두터운 파카와 고무장갑으로 무장한 채 물이 가득 담긴 고무 대야를 한 개씩 맡아 순서대로 배추를 헹구었다. 염분기가 어지간히 빠진 배추는 등나무 채반에 차곡차곡 쌓아 얹어놓았다. 이튿날 아침이면 물기가 거의 빠져 있었다. 
 

남녀노소 온 가족이 함께하는 절임배추 헹구기 다음날 김장을 하기 위해 전날 낮에 소금에 절인 배추를 자정에 씻고 있다. ⓒ 최수경

 
이튿날 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김장을 하러 동네 아주머니들이 들이닥친다. 커다란 고무 대야에 고춧가루, 젓갈, 무채 등 그간 준비한 양념을 넣고 버무리는 일은 손맛보다는 힘이 필요한 일이다. 속이 완성되면 배추 속 채울 분들이 둘러앉아 자리를 잡는다. 시누이는 밖에서 절인 배추를 연신 나르고, 또 김치통이 채워지면 바깥에 날라놓았다.

장독대 대신 김치냉장고가 생기고 대형화되다 보니 집집마다 갖고 온 빈 김치통이 탑처럼 쌓였다. 형제자매들이 십시일반 김장비를 분담해 한꺼번에 하니 김장의 양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소금물을 헹궈 물기를 빼고있는 절임배추 배추를 다듬고 소금에 절이는 일은 온전히 밖에서 해야 할 일이라 수고가 만만치 않다. 그러나 최근 절임배추 유통시장이 커지면서 김장이 간소화되었다. ⓒ 최수경

 
분업화된 김장이 일사천리로 행해지면 12시도 채 안되어 정리까지 끝난다. 이제 점심상을 받을 차례다. 며느리는 일찌감치 주방에서 잔치음식과 같은 식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김장은 동네 품앗이인지라, 기본인 수육 외에도 잡채와 소고깃국만 더 곁들여 내도 어머니는 기가 살았다. 
    

김치 냉장고에 들어갈 김치통들 김치냉장고가 커지면서 김치통이 커졌다. 김장시기에 이를 채워야 하므로 김치냉장고가 있는 집은 김장김치의 양이 많아졌다. ⓒ 최수경

   
시댁과 달리 친정은 아파트였다. 마당 대신 베란다에서, 샘 대신 욕실에서 김장배추를 준비했다. 마당집에서 아파트로 주거 형태가 간편화 되면서 김장의 양도 축소됐다. 김장 양도 줄었지만 단절된 아파트 문화로 품앗이 자체가 사라졌다. 시장에 절임배추가 등장했으며 아예 김장김치를 사 먹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아파트 욕실에서 배추 절이기 주택에서 아파트로 주거형태가 변하면서 김장하는 모습도 변했다. ⓒ 최수경

 
중국과 일본에서 김치를 자기네 음식으로 표방해 잡음이 많지만, 김장문화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우리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표한다. 어쩌면 김치 자체보다도 김치를 담그는 공동체 문화 곧, 품앗이 문화가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함께 모여 김장체험 함께 모여 김장하는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있는 요즘, 마을 단위 대도시 가족을 대상으로 한 김장체험이 인기다. 사진은 장수군 수분마을 김장체험 ⓒ 최수경

   
손맛으로 결정되는 김치는 집집마다 지방마다 맛이 다르다. 아무리 맛과 조리법이 표준화되었다 해도 소금 산지와 보관 기간과 정도, 고춧가루 산지와 품종, 젓갈 종류와 깊이에 따라 맛이 다를 수밖에 없다.

김장김치는 고구려 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당시는 배추나 고추를 재배하지 않고 무와 산나물 등을 소금에 절인 것이었다. 이 시기의 김치는 남새를 소금에 절인 것이라 침채 또는 침장이라 불렀다. 배추와 고추가 전래된 것은 17세기 중엽 조선시대로, 17세기 자료에는 이미 34종의 김치 만드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고, 18세기에는 김치 종류가 60여 가지로 늘어났다.

김치냉장고의 보급으로 오늘날은 1년 양식이 되었지만 과거 김치는 겨울철 반년 양식이었다. 특히 겨울철 구황 식품이던 고구마와 김치는 찰떡궁합이었다. 김치가 나트륨을 상당 부분 섭취하는 단점이 있는데 반해 고구마에 함유된 칼륨은 김치의 나트륨을 몸 밖으로 배출하는 것을 돕는다고 하니 말이다.
  

김장김치 1년 먹을 김장김치가 김치통에 꽉 차 있는 모습에 든든하지 않을 주부는 없다. 익어가는 정도에 따라 김치를 재료로 한 다양한 요리로 1년 식탁이 풍성해지기 때문이다. ⓒ 최수경

 
김치를 먹고 식중독에 걸렸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는 숙성 과정에서 다량 생성되는 유산균 때문인데 유산균이 많은 이유는 소금에 절여서 한번, 젓갈을 넣어 버무려 항아리에서 또 한 번 발효되는 이중 발효 과정을 거치기 때문이다. 매끼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발효식품 특유의 감칠맛은 젓갈에 있다.

음식은 이제 배고픔을 해결하는 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젊어서 패스트푸드와 친했다면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어갈수록 손맛을 찾아가려 한다. 김치는 손맛의 대표 음식으로 속도와 건강성에서 다름 음식과 다르다. 더욱이 시래기와 같은 재료는 버려지는 것들, 선택되지 못한 겉잎들로 이루어진 식재료로 전통적 순화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이런 환경 중심의 자연 회귀가 음식 문화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 무청과 배춧잎을 삶아 말려 먹으면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영양도 풍부하다. 여기에 손맛이 더해질 때 음식 향수를 자극한다.
  

저장식품 시래기 김장 후 버려진 겉잎이나 무청은 섬유질과 영양이 풍부한 식재료다. 버려지는 것들, 선택되지 못한 겉잎들로 이루어진 식재료로 전통적 순화방식이라 할 수 있다. ⓒ 최수경

 
오늘날 핵가족화와 개인화 경향은 음식에 대한 향수의 연령을 낮추고 있다. 손맛은 상대적인 맛이라 어머니 음식이 꼭 맛있지 않더라도 어머니의 절대적 사랑을 연상하게 한다.

손맛을 전수받고 전수하는 일은 문화의 계승이다. 11월 고된 대사이지만 김치가 식탁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사람 한 입 만족에서 나아가 김치문화 전승의 한 축을 맡고 있는 것이니 이 어찌 대단하지 않겠는가.
  

마을 김장체험 절인배추를 사와 김장을 하던 친정어머니는 연세가 들면서 집에서 김장하기보다는 밖에서 김장체험을 통해 해결하자고 하셨다. 나와 두 동생들은 장수 수분리 마을에서 공급한 배추속과 절임배추로 직접 김장을 해오는 방식을 택했다. ⓒ 최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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