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당 순나 의원과의 대담
두 사람의 공통점, 두 나라의 다른 점

아이슬란드 34세 의원이 말했다 "장혜영, 더 헤엄쳐라"

2021년 10월 26일, 아이슬란드 의회 알싱키 회의실에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과 토르힐두르 순나 해적당 의원이 마주 앉았다. 두 사람 모두 1987년생으로 동갑내기다.

대한민국의 장혜영 정의당 의원, 아이슬란드의 토르힐두르 순나 아이바르도띠르(Þorhildur Sunna Ævarsdottir, 이하 순나) 해적당 의원. 비행거리 1만km 만큼 떨어져있는 한국과 아이슬란드, 이역만리 나라의 두 의원은 닮았다.

모두 1987년생이다. 여성 정치인이며 각각 6석 정당 대변인이다. 두 사람 모두 선거를 앞두고 당에서 영입한 인물로, 영입된 후 당에 가입해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도 같다. 두 의원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들의 만남은 지난 10월 26일(현지 시간), 아이슬란드 의회 알싱키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장 의원은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아이슬란드 정치에 대해 듣기 위해 19시간 걸려 왔는데, 특히 저와 동갑내기인 여성 정치인 순나 의원을 꼭 만나고 싶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2021년 성격차지수에서 한국은 0.687(1에 가까울수록 평등함을 의미)로 156개국 중 102위를 기록했다. 아이슬란드의 성격차지수는 0.892로 12년 연속 성평등 1위 국가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이런 순위는 두 사람에게 크게 의미가 없는 듯 했다. "전 세계 어디에도 여성을 위한 파라다이스같은 나라는 없다"는 말에 그들은 함께 고개를 주억거렸다. "도대체 회의를 왜 밤에 하는지 모르겠다, 의회 활동이라는 게 40대 이상의 남성, 가족을 돌봐주는 누군가가 필수적으로 따로 존재하는 이들을 위한 시스템"이라는 말에도 두 사람은 맞장구를 쳤다. "여당은 야당에서 올라오는 좋은 아이디어나 의견들을 모두 거부하고, 야당 역시 여당(연립정당)이 내는 의견을 무조건 배척한다"는 고질적인 정치문화에도 함께 고개를 가로 저었다.

두 사람은 통하는 게 많았다. 하지만 두 나라 사이에는 '다름'도 분명 있었다. 그들은 2시간 동안 여성 정치인으로서 과제를 짚어내며 함께 나아갈 방향을 더듬었다.

"여성을 위한 파라다이스? 없습니다"

토르힐두르 순나 아이바르도띠르(Þorhildur Sunna Ævarsdottir) 아이슬란드 해적당 의원

순나 의원은 말했다.

순나

"아직도 여성 의원이 옷을 어떻게 입는지, 말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동료 의원 세금 지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의회 도덕성 평가기관(우리나라에서는 국회 윤리위원회, 기자 주)에서 제가 제기한 법적 문제에 대해 '순나 의원이 흥분한 상태 아니냐'고 하더군요. 저는 변호사입니다. 법적 용어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도 그걸 두고 감정적이라고 치부하는 거죠."

보라색 드레스 차림에 타투 스티커를 등에 붙이고 '타투업 제정 촉구' 기자회견을 했던 류호정 정의당 의원을 향해 '쇼 정치, 그만 하라'는 비판이 쏟아진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던 장 의원이다. 그로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공통점이다. '여성이 어떤 정치를 하는가'가 아니라 '여성이 어떤 옷을 입느냐'를 두고 왈가왈부한다.

장혜영

"50대 엘리트 남성 의원들은 성평등 의제에 대해 말하는 걸 '여성에 대한 배려'라고 이해하는 것 같아요."

순나

"국가 발전을 위해 성평등을 이루는 게 최고의 방법이지만, 60대 남성에게 그런 얘기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죠. 동료 여성 의원 중에는 남성 의원에게 가서 의정활동 잘한다고 폭풍 칭찬을 하고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네가 발표할래?'라고 해서 사안을 관철시키기도 하는데, 이게 잘 먹히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안 맞아서 그런 방법을 쓴 적이 없어요. 의회 내 60대 남성 의원들이 저를 싫어하는 이유가 그게 아닐까 싶어요(웃음). 2016년부터 의회 활동을 한 제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자면, '너는 남자니까 봐준다'는 식으로 남성 의원에게 부담을 덜어주지 마세요. 다만 유머 감각은 잊으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2020년 9월 대정부질문에서 민주화 주역 486 남성 정치인들을 앉혀두고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위해서라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싸우겠다던 그 뜨거운 심장이 어째서 이렇게 차갑게 식어버렸냐"고 따져 물었던, 장 의원은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분위기는 이내 심각해졌다. '여성을 위한 파라다이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성폭력, 아이슬란드도 직면하고 있는 문제라고 했다.

순나

"아이슬란드 정치권에서도 '미투'가 나왔어요. 대다수 여성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제대로 존중받지 못했다는 것, 성차별을 겪었다는 것에 공감했고요. 또 온라인 상에서 여성 의원을 대상으로 성폭력 위협을 가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혜영

"한국에서도 온라인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게 불거지고 있습니다."

순나

"세계적으로 아주 큰 문제라고 봅니다. 영향력 있는 여성을 공격하는 현상이 유럽에서도 아주 흔하게 발생하고 있고요."

장혜영

"이 문제는 우리가 함께 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순나

"아주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두 나라의 '시차'... 19와 48의 차이

원정대에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동행했다. 앞서 장 의원은 국회 절차에 따라 국회의장에게 보고했지만, 항공료나 숙박비 등 일체 경비는 본인이 부담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1975년 '데이 오프(Women's day off, 모든 여성들의 월차 투쟁)' 기념 행사 참가자들과 함께 걸었다. 비그룬드손 전 사회평등부 장관, 드리바 스나이달 노동연합 회장, 브린힐두르 여성권리협회 사무총장도 함께 만났다. 그때마다 장 의원이 던진 질문은 'How(한국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장 의원은 아이슬란드 해적당 순나 의원과 마주앉았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였다.

19%와 48%. 한국 여성의원 비율과 아이슬란드 여성의원 비율이다. 2020년 4월 총선에서 한국 여성 의원 57명(전체 300명)이 당선됐다. 2021년 9월 치러진 아이슬란드 총선 결과, 전체 63석 중 30석을 여성이 차지했다. 두 나라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시차'다.

우리나라 남녀 성비는 남자 50.1%(25,961,532명. 2021년 통계청 추계인구), 여자 49.9%(25,860,137명)이다. 절반에 다다른 성비가 국회로만 옮겨가면 81 대 19로 급격히 기울어진다. 19% 중 한 사람으로서 여성을 대변하는 것이 쉽지 않은 구조다. 장 의원이 순나 의원에게 물었다.

장혜영

"성평등 의제를 이야기하면 '쟤는 여성 의제만 얘기한다'고 하고, 여성 의제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하면 '여성인데 다른 이야기만 한다'고 지적합니다. 혹시 이런 상황을 아이슬란드에서도 겪나요."

순나

"아니요, 그런 적은 없습니다. 여성 의원 비율이 50% 가까이 되는 호화스러운 삶을 살고 있어서(웃음), 성평등 의제보다는 내 관심과 지식을 쌓아온 분야와 관련해 의정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성평등이 중요하다는 게 일반적으로 인지돼있기 때문에 (여성이라서 해야 하는) 특별한 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성평등? 중요하지 않잖아'라고 말하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볼 테니까요."

'호화스러운 의정 활동'은 강력한 여성할당제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순나

"각 당에서 선거를 준비할 때 후보 목록을 만드는데 성비를 맞춰야 합니다. 아름답게 표현하자면 머리를 땋는 것처럼 남성, 여성을 번갈아 후보로 세우는 거죠."

촘촘하게 머리를 땋는 자체가 정교한 행위다. 아이슬란드의 여성할당제는 정치 뿐 아니라 기업에도 적용된다. 50인 이상 기업은 여성이 최소 40% 이상인 이사진을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아이슬란드 의회 여성의원 비율은 48%다. 여성이 어떤 조직에서 절반 정도의 대표성을 갖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경우의 차이는 무엇일까. 순나 의원은 말한다.

순나

"숫자는 중요하죠. 소수면 목소리를 내기 힘드니까요.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소수였던 이들의 주장이) 당연시됩니다. 처음에는 '뭘 하겠다는 거야' 물음표가 있겠지만, 여성 의원이 늘어날수록 그 질문이 없어지는 거죠."

여성 의원 비율 48%... 그 보다 더 중요한 것

오마이뉴스 X 시사인 X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로 구성된 ‘아이슬란드 원정대’에 동행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 장 의원은 일체 경비를 자비로 부담했다.

하지만 순나 의원은 "더 중요한 게 있다"고 했다.

순나

"그렇지만 숫자보다 더 중요한 건, '사회에서 여성들의 투쟁이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가'입니다. 여성이 정치활동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던 큰 이유는 여성들의 요구, 투쟁, 시위 덕분입니다. 여성 총파업이 있는지, 여성들이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여성을 대표하는 정당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1975년 10월 24일 아이슬란드 여성의 90%가 참여한 '데이 오프(단체 월차, Day Off)'를 통해, 여성이 일을 그만두니 사회가 굴러가지 않는 게 입증된 겁니다. 이 사건으로 여성들이 요구하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영감을 얻었죠. 이후 여성들은 많은 일을 이뤄냈는데 이 여성들은 '시키는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뒤집어 엎고 소란을 피우고 남성에게 부탁해 '그 방에 들어가게 해줘'라고 하지 않고 쳐들어갔죠.

다수의 여성들이 '너는 이래야 해'라는 목소리를 듣지 않고, 성평등을 위해 투쟁해 왔기 때문에 지금 상태를 이뤄낸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장 아름답고 영향력 있는 건 '여성과 여성이 함께 선다'는 겁니다. 우리가 뭉치면 함께 이뤄낼 수 있다는 거죠. 일단은 장혜영 의원처럼 강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 헤엄치는 사람이 있어야 이런 움직임도 생기겠죠. 롤모델이 앞에 서 싸워 나가야 할 테니까요."

장 의원은 대담을 마치고 우리에게 소감을 전했다.

장혜영

"세상에서 가장 성평등한 나라라고 하지만 이곳 역시 파라다이스는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뭉쳐서 싸운 역사가 있으면 그 다음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전 사람들이 올려놓은 성과 위에서 무언가를 시작하는구나'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이슬란드에서 유의미한 성평등을 달성했을 때, 그 앞에는 언제나 조직되어 있는 시민들의 힘이 있었더군요. 우리가 무언가를 원한다면, 뭉쳐서 목소리로 만들어내고, 요구사항으로 정리해 정치에 관철시키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의 권리니까요. 그래서, 지금의 싸움에서 절대 지지 말아야겠다 다짐해 봅니다."

장혜영 의원과 순나 의원이 1851년 아이슬란드 의회를 소개하는 그림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당시 의회에는 여성 의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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