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18 19:46최종 업데이트 21.12.18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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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아침, 경기도 시흥에 있는 사회적 기업 '하나더하기'의 안덕희 대표를 찾아갈 때 두 가지 궁금점이 있었다. 첫째는 체육학과를 나와 스포츠 유치원을 운영하던 그가 어떻게 사회적 기업에 몸 담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고, 둘째는 그 많은 사회적 기업이 정부지원이 끝나면 시나브로 없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10여 년을 버텨내고 꾸준히 성장한 비결은 뭘까? 하는 것이었다. 

발달장애인 아이에게 수영을 가르치다
 

사회적 기업 하나더하기의 안덕희 대표 그는 밝고 힘찬 기운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 민병래

 
운명 같았던 첫날을 안덕희 대표는 담담하게 얘기했다.

"제가 운영하던 '어린이 청소년 체육문화연대'에 수영을 배우겠다고 발달장애인 인수(가명)가 엄마 손을 잡고 찾아왔어요. 상담 중에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뭔가 혼자 소리를 내더라구요.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받아들였지요."


문제는 며칠 후부터! 학부모들이 '우리 애가 집에 와서 인수 흉내를 내며 소리 지르고 난리예요. 그 아이를 내보냈으면 좋겠어요'라고 전화를 걸어왔다. 한두 통이 아니었다.

"고민이 많았죠. 할 수 없이 인수 어머니하고 상의를 했는데 '얼마 전에도 태권도장에서 쫒겨났다. 아이가 운동을 너무 좋아하니 꼭 좀 배웠으면 좋겠다'며 사정을 하더라구요. 차마 내칠 수가 없었어요."

안 대표가 2001년 시흥시 정왕동에 200여 평 규모로 스포츠 유치원을 차렸을 때 제법 재미가 좋았다. 미니풀과 인라인스케이트장을 갖춘 특별한 시설이라 정원을 채우고 대기순번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인수가 왔던 2011년 무렵은 사정이 달랐다.

시흥시의 여러 공공 체육시설에서 '어린이 스포츠' 프로그램이 많아지고 공립 유치원이 무상교육이 되면서 운영이 매우 어려웠다. 수영 과목만 배우는 아이들 30~40명 정도만 겨우 붙잡고 있었는데 이 아이들이 그만 둔다면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안 대표는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영을 좋아하는 인수를 내 보낼 수 없다"며 아이를 껴안았다.

"인수를 품고 있으니 다른 학생들이 거의 다 빠져나가 버렸어요. 그런데 인수 어머니가 발달장애인 아이들을 데려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여기저기 소문이 났어요."

발달장애인 아이들은 안 대표에게 수영을 배우며 날개를 폈다. 얼떨결에 만들어진 시흥시 최초의 발달장애인 수영교실이 되었다. 조금씩 인원이 늘었지만 임대료와 직원 월급, 생활비가 나올 정도는 아니었다.

그때 주변에서 조언을 들은 게 '사회적 기업'이었다. 직원 월급을 포함한 여러 지원 정책이 안 대표의 눈에 들어왔다. 그는 고민 끝에 발달장애인의 체육 활동을 위한 사회적 기업 '하나 더하기'를 만들었다. 경기도 최초였고, 전국적으로도 드문 사례였다.

안 대표가 담담하게 지난 세월을 들려주는데 어느새 점심 시간이 되었는지 '주간보호시설'과 '보호작업장'의 아이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면서 분위기가 왁자지껄했다. 열린 문틈으로 북어국과 어묵조림 냄새가 슬그머니 들어왔다.

어떻게든 우리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간절함
 

사회적 기업 하나더하기가 만든 공동작업장 이곳에서 장애인 비장애인이 어울려 일하고 있다. ⓒ 민병래

 
"제가 가르쳤던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갈 데가 없었어요. 취업도 못 하고 집에 데리고 있으려면 부모들이 묶이니 경제활동을 못하고. 그래서 학부모들이 또 부탁을 해요. 성인이 되었지만 운동을 좀 시키면서 계속 데리고 있어 달라고... 이 아이들이 집에만 있으니 살도 많이 찌거든요.

할 수 없이 방안을 찾아보다가 2016년 1월에 '발달 장애인 주간보호시설'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또 다른 학부모들이 부탁을 하죠. 우리 애들은 월급을 못 받아도 좋으니 아침에 출근해서 일을 좀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래서 발달장애인들이 노동하는 작업장,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는 공동작업장을 만들었어요."


인수에게 수영을 가르치며 시작한 일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졌다. 문제는 운영이었다. '주간보호시설'은 2017년 4월부터 시흥시 위탁사업이 되어 시설장과 직원 둘의 월급이 시에서 나와 그럭저럭 꾸려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공동작업장이 문제였다. 막상 사람을 모아놨는데 일감이 없었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처음 받은 일이 일회용 밴드의 포장작업.

"밴드를 곽에 넣어주면 한 개 당 5원을 받았어요. 하청에 하청으로 일을 받으니 다섯명이 거의 하루종일 한 달을 일해도 고작 몇십만 원이었어요. 이걸로는 도저히 안되겠더라구요. 그래서 우리 자체 상품이 될 수 있는 걸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많은 연구 끝에 눈에 띄인 게 양말, 양말은 누구나 신지만 성인 제품 대부분이 무채색이거나 단색인 점을 보고 안 대표는 패션 양말을 떠올렸다. 디자인은 중소기업이나 사회적 기업을 도와주는 '경기도주식회사'에서 지원받았다.

제품을 내니 소비자들 반응이 그런 대로 괜찮았다. 롯데카드에서는 "품질도 디자인도 좋아 사회공헌도 할 겸 '하나더하기' 제품을 사겠다"며 5천만 원이나 주문을 해줬다. 그게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으로 찾아낸 상품이 '가마솥 볶음 건빵', 간식이나 맥주 안주로 좋을 것 같았다. 박스로 구매해서 조금씩 덜어 비닐포장을 하고 '하나더하기' 상표를 붙였다. 역시 '경기도 주식회사'가 판매를 도와주면서 '신세계 프리미엄 아울렛 시흥' 매장에 진열이 되었고 쏠쏠하게 팔렸다. 그후 자색고구마칩·고구마스틱·누네띠네 등 새로운 과자를 더 찾아내 지금은 4종의 과자 꾸러미가 '하나더하기'의 으뜸 상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요즘도 계속 상품을 발굴하고 있는데 손세정제하고 두루마리 휴지도 작년부터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생활공작소'라고 생활용품 만드는 회사랑 계약이 되어 그 회사의 제품 포장을 저희가 전부 다 하고 있어요. 어떻게든 우리 상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마구 뛰어다녔죠."

그렇게 한 걸음씩 성장해 온 '하나더하기'는 2017년 시흥시 미산동에 200여 평이나 되는 작업장을 마련했다. 현재 28명이나 되는 노인, 여성, 청년들이 어울려 일을 하고 있다. 매출도 꾸준히 성장해 2020년에는 무려 13억 원이나 달성했다. '하나더하기' 사업은 계속 늘어나 현재 공동작업장과는 별개로 발달장애인들만 모여 일하는 보호작업장 '다가치'를 만들었고 '방과후 돌봄서비스'까지 진행하고 있다.

매출이 늘어나고 자활기반이 갖추어지자 안 대표는 몇 해 전부터 비로소 월급을 가져가기 시작했다. 인수를 만나고 안덕희의 10여 년은 힘든 세월이었다. "당신이 나라를 구할 거냐?"는 아내의 구박, 학원비가 몇 달이나 밀려 창피하다는 딸아이의 원망을 감내해야만 했다.

"성장하는 사회적 기업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사회적 기업 하나더하기의 안덕희대표 그는 밝고 힘찬 기운을 전달하는 사람이다 ⓒ 민병래

 
그가 2017년 4월 주간보호시설의 시설장을 맡았을 때 잠시 고정 월급을 받았다. 사회적 기업의 대표가 주간보호시설의 시설장을 맡는 게 법적으론 문제가 없지만 시샘어린 주변의 눈초리에 투서도 많아 몇 달 만에 다른 직원에게 양보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사회적기업의 매출이 신통치 않아 대표 월급을 받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아내와 갈등은 더욱 커졌다. 그는 공동작업장에서 반드시 수익을 만들어내겠다며 아내를 설득했다.

당진 합덕이 고향인 안 대표는 90학번으로 한양대 체육과에 들어갔다. 그는 대학 시절 내내 YMCA 올림픽 수영장에서 자원봉사로 수영강습을 했다. 1993년인가 시흥(금천구 시흥동으로 알았다)에 YMCA가 만들어질 예정이고 창립 멤버를 구한다는 말에 그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때부터 시민단체 활동이 좋고, 수영을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겨우 월급 50만 원을 받고 7년 동안이나 일을 했다.

그런데 함께 했던 대표가 YMCA 경력을 갖고 시의원에 출마를 하자 회의가 들었다. 결국 안 대표는 살 길을 찾아 나섰다. 부모님과 처가의 도움을 받아 '스포츠유치원'을 만들었다가, 2011년 인수와 만난 이래 '발달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것이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며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다. 지금은 오랫동안 아이들과 부대끼다 보니 부모의 마음처럼 되어 버렸다.
  
안 대표는 지금 사업을 더 벌이려고 한다. 주변에선 "제발 현재 하는 일만 잘 추스리고 가자"라고 말리지만 안 대표에겐 발달장애인을 위한 평생교육시설과 연수원을 만들고픈 꿈이 있다.

비장애인도 급변하는 세상에 적응하려면 재교육이 필요하듯,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에게도 재교육은 절실하기 때문이다. 기왕이면 번듯한 시설에서 여러 날 묵으며 연수도 받으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안 대표는 2020년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또 사고를 쳤다. 은행빚을 내 대부도에 땅을 사서 조그만 단독주택을 지었다. 일단 쉼터 같은 느낌으로 출발하고 때가 되면 평생교육시설과 연수원을 짓겠다는 구상이다.

시흥시 하중동의 주간보호시설을 거쳐, 미산동의 공동작업장까지 '하나더하기'의 사업장과 관련 시설을 둘러보고 나올 때 안 대표는 "3년간의 정부지원이 끝난 이후에도 사회적 기업이 우뚝 설 수 있다는 걸,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공동사업장도 성장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힘차게 말했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박스 포장재를 가득 실은 4톤 트럭이 '하나더하기'의 하차장에 들어섰다. 이를 내려 작업장으로 옮기는 지게차의 움직임이 부산했고 어느새 다가간 안 대표는 "조심해서 내리세요"라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화물엘레베이터에서 바라본 공동작업장의 모습 장애인 비장애인이 어울려 함께 일하고 있다. ⓒ 민병래

  
<못다한 이야기>

① 안덕희 대표는 지난 12월 7일 '제36회 전국지적발달장애인 복지대회'에서 발달장애인 복지증진 및 권익옹호에 기여한 점이 평가되어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② 오랫동안 딸을 안덕희 대표에게 맡겼던 이OO의 어머니는 "주간보호시설은 아이들이 10명까지만 받게 되어 있으므로 안덕희 대표에게 아이를 맡기려고 2년이나 기다리다 들어왔다. 다른 부모들도 이런 경우가 많다. 아이들을 시설 운영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가족의 마음으로 대해준다. 주간보호시설의 급식 상황이나 운영비 내역도 공개한다. 다른 시설에선 볼 수 없는 태도다. 그래서 나는 안덕희 대표를 신뢰한다"라고 말했다.

③ 여기서 '공동작업장'과 '보호작업장' 두 용어가 나오는데 공동작업장은 사회적 기업 '하나더하기'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기 위해 만든 작업장이다. 이곳은 사회적기업이 벌어서(지원을 졸업한 이후에는)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하고 '보호작업장'은 법정시설이어서 정부에서 인건비와 운영비의 일부를 지원한다. '하나더하기'는 공동작업장을 만든 이후 발달장애인 보호작업장 '다가치'를 만들었다.

④ 사회적기업 '하나더하기'는 매출이 늘어남에 따라 '주간보호시설'의 부족한 운영비를 지원하고 있다. '주간보호시설'은 시흥시위탁사업이 되어 직원들 월급은 나오지만 월세를 비롯한 나머지 운영비는 자체 해결을 해야 한다. 그래서 아이를 맡긴 부모들에게 비용을 받는다. '하나더하기'는 학부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수익의 일부를 '주간보호시설'에 기부하고 있다. 아울러 보호작업장 '다가치'의 모자라는 운영비 또한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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