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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벽에 빨강 입술. 옆 방의 하늘색 벽지등이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노랑 벽에 빨강 입술. 옆 방의 하늘색 벽지등이 강렬한 대조를 이룬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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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스스로를 힙하다고 생각하는가? 토일렛페이퍼를 알고 있다면 아마 그게 맞을 것이다. 만약 이 글을 읽고 얼른 인터넷 검색으로 토일렛페이퍼를 검색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화장지 광고다.

여기서 말하는 <토일렛페이퍼>는 이탈리아 밀리노에 기반을 둔 일종의 잡지를 말한다. 2010년부터 1년에 2번씩 발행된 이 잡지에는 기사가 없다. 사진만 실린다. 잡지라기 보다는 정기적 사진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진집에 실리는 사진들이 너무나 매혹적이고, 발칙하고, 선정적이고, 논쟁적이었고 하나의 스타일이 되었다.

이 잡지는 마오리치오 카텔란과 피에르파올로 페라리가 만든다. 마오리치오 카텔란은 이탈리아 행위 예술가이자 조각가다. 1960년생으로 정식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다가 작가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시각적으로도 흥미롭지만 정치적 사회적 풍자로도 유명하다. 그는 또 이들 작품을 매우 선정적으로 표현해서 늘 논란을 몰고 다니기도 한다. 카텔란을 보면서 약간 부러운 점은 이탈리아 사회가 그런 논란을 수용해 준다는 사실이다.

피에르파올로 페라리는 상업 사진 작가다. 90년대 중반부터 나이키, 모토로라, BMW 등 대기업 광고 사진을 담당한 잘 나가는 사진 작가였는데, 전적으로 자율성을 보장 받아야 작업을 한다. 모든 상업 작가들의 꿈을 이미 실현한 사람이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토일렛페이퍼'라는 위악적(僞惡的) 타이틀을 가진 잡지를 만들었다. 이 잡지의 사진은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여 광고 사진 같기도 하고 포르노 잡지 사진 같기도 하다. 터무니 없는 이미지의 조합과 과장된 상황 설정이 보는 이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 이 잡지에서 카텔란은 정치적 풍자보다 성적 유희를 더 즐기는 듯하다.

토일렛페이퍼는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자본주의를 조롱하는 사람,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작가가 만든 이미지에 자본이 열광한다. 패션, 제품, 가구 등 수많은 브랜드가 협업을 요청했다.

이탈리아 가구업체 셀레티가 토일렛페이퍼 사진을 이용해서 소품과 가구를 만든다. 사실 나도 토일렛페이퍼 거울을 사면서 이 잡지를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도 수입사가 있는데, 문제는 항상 있는 제품보다 없는 제품이 많다는 것. 토일렛페이퍼 제품을 소장하려면 입고에 맞춰서 서둘러야 한다. 올해 토일렛페이퍼 달력이 나왔는데, 미리부터 대기하다가 겨우 구입했다.

토일렛페이퍼는 다른 업체와 협업도 참 편하게 한다. 이 잡지사는 협력 업체를 위해 특별히 새로운 것을 만들거나 기존 사진을 변형하지 않는다. 협력 업체가 그냥 잡지의 사진을 갖다 쓰는 것이다. 

작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 기간 동안 토일렛페이퍼의 본사 스튜디오가 대중에게 처음 공개되었는데, 마치 놀이공원에 줄을 서 듯 긴 줄이 이어지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현대카드사는 서울 이태원에서 운영 중인 전시 공간 '스토리지'(창고 혹은 저장소라는 뜻이다)에서 밀라노의 토일렛페이퍼 본사를 그대로 옮겨오는 컨셉트로 전시를 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TOILETPAPER:The Studio>. 사전 예약자만 입장가능하며, 전시는 3월 20일까지 계속된다.

전시장에 들어가면 각종 뱀 사진이 있는 까만 방이 나온다. 토일렛페이퍼의 대표적 이미지다. 그 방을 지나가면 밀라노 사무실은 재현해 놓은 공간이 나온다. 과장되고 현란하다. 이 전시 티켓이 5000원이고 예약을 하면 4000원에 해준다. 나는 티켓값이 매우 싸다고 생각했는데 전시를 보니 왜 티켓값이 싼지 이해가 간다(전시에 실망했다는 뜻은 아니다).

보통 이런 대규모 전시를 하면 작품 원본을 가져오는데 엄청난 돈이 든다. 그런데 이 전시의 작품 원본은 잡지다. 사무실을 구성하는 의자며 책상이며 카펫 등은 모두 셀레티 제품으로 이미 만들어서 파는 제품이다.

일반인이 사기에는 다소 부담 가는 가격이지만, 유명한 원화를 조달해 오는 비용과는 비교가 안 된다. 심지어 벽을 가득 매운 액자나 출구 쪽에 있는 덩굴 식물이 있는 방도 실재를 재현해 놓은 것이 아니고 사진으로 찍어서 프린트해 놓은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방식이다.
 
<토일렛페이퍼:더 스튜디오> 전시. 밀라노 본사 사무실을 재현했다.
 <토일렛페이퍼:더 스튜디오> 전시. 밀라노 본사 사무실을 재현했다.
ⓒ 오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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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좁고 현장에서 그림 그리기 어려울 곳 같다는 말을 들었지만, 화구를 다 챙겨왔다. 그래도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무엇보다 관람객이 너무 많고 다들 사진을 찍고 있어서 여기서 그리다가는 민폐가 되겠다.

이번에는 사진을 찍어서 집에서 그렸다. 토일렛페이퍼의 대표적 이미지인 'sHIT' 사진이 있는 방을 그렸다. 복사기와 세탁기는 밀라노 사무실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세탁기 안에는 마네킹 머리가 두 개가 있다. 이 그림의 중심에 있는 입술 그리는 것 보다 일정한 간격으로 그려야 하는 검은 원 그리기가 더 어려웠다.

태그:#토일렛페이퍼, #스토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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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반스케쳐 <오늘도 그리러 갑니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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