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3.23 05:59최종 업데이트 22.03.23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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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한탄강 큰고니 사람 몸집보다 큰 덩치의 날아다니는 동물인 새들을 겨울철 그 곳에 가면 언제나 눈 앞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자연은 이들이 살아야 인간이 살 수 있다는 환경을 베푼다. 이 순간도 지구상 수 많은 종들이 절멸하고 있는 가운데, 비록 인간이 비극의 시작을 장식했지만 그 끝의 주인공은 되지말아야 하지 않을까. ⓒ 윤순태

 
나는 겨울마다 연례행사처럼 DMZ를 찾는다. 두루미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두루미 먹이주기가 주된 방문 목적이지만 사실 두루미 탐조는 생태관광의 백미이기도 하다.
 

철원 한탄강의 두루미들 두루미를 관찰하는 동안 이들의 구애행동, 먹이활동, 새끼를 보호하는 모습 등 새들의 생태적 습성을 파악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윤순태

  
DMZ는 비무장지대를 말한다. 북한과 맞닿아있음에도 군사적 시설과 행동이 금지된 중립지역이다.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각 2km에 해당하는 지역이 경기도 파주시 정동리부터 동해안 고성군 명호리까지 총 248km에 걸쳐 이어진다. 민통선(민간인통제선)과 군사분계선 사이의 10km 구역을 민북지역이라 말하는데, 이곳에선 허가를 받은 주민들만 영농이 가능하다. 나 같은 민간인은 출입이 통제되어 엄격한 출입절차를 밟아야 한다. 
  

자동차 창 밖의 민북지역 풍경 자동차를 이용해 민북지역 두루미를 관찰할 수 있다 ⓒ 최수경

 
달리는 차창 밖에선 두루미들이 평화롭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한 쌍 혹은 새끼를 가운데 둔 가족, 장마당에 짝을 찾으러 나온 듯한 두루미 등 무리를 진 모습은 감탄을 자아낸다. 놀이공원의 사파리와 비교할 수 없는 야생 사파리의 진면목을 철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철원 평야에서 무리를 지어 먹이활동을 하는 두루미들 자동차가 검문소를 벗어나자 마자 엄청난 개체수의 두루미들이 한데 어울려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를 발견한 방문자들은 일제히 차 안에서 탄성이 터진다. 철원만이 가능한 사파리여행인 것이다. ⓒ 윤순태

 
철원 평야가 한 눈에 들어오는 아이스크림고지 두루미생태탐조대에 올랐다. 한국전쟁 시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밤낮 없이 전투가 이어졌던 곳으로 삽슬봉의 다른 말이다. 스코프를 통해 보는 두루미들은 군사지대의 긴장감과 무관하게 평화롭기만 하다.
  

철원평야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아이스크림고지로 오르는 방문객들 평야에 해발 219M의 삽슬봉에 위치한 아이스크림고지는 한국전쟁시 고지 탈환을 위한 밤낮없는 극심한 폭격으로 산이 아이스크림처럼 흘러내렸다 해서 지어진 이름. ⓒ 최수경

 
두루미 서식지

내가 두루미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자연환경국민신탁법인이 한국램리서치 기금으로 두루미 서식지 목적의 논 5천여m²를 매입하면서부터다. 철원 두루미네 땅이라 명명하고 매년 회원들과 두루미 먹이주기 행사를 하고 있다. 유치원생으로 처음 왔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어서도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이 아이들이야말로 환경감수성을 함양한 생태시민으로 성장하고 있는 듯하다.
 

두루미네논에 먹이주기를 하는 자연환경국민신탁 회원들 매년 겨울 한두차례씩 찾아와 땅 한평사기에 참여한 회원들이 두루미네 논에 먹이주기를 하고 있다 ⓒ 최수경

 

두루미의 먹이 철원 두루미네 땅에서 땅 한평 사기에 참여한 회원들과 매년 두루미 먹이주기 행사를 한다. ⓒ 최수경

  
내가 간 날, 마침 주민들이 팀을 이뤄 두루미 개체 수 조사를 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매년 수차례에 걸쳐 DMZ 지역 두루미 개체 수 조사를 한다. 이 날도 두루미 1180마리, 재두루미 6714마리, 흑두루미 9마리, 검은목두루미 2마리, 캐나다두루미 3마리 등 총 7908마리가 관찰되었다.

한탄강과 넓은 철원평야는 풍부한 먹이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두루미와 재두루미는 국제적 멸종위기 보호종으로 11월에 강화, 파주, 연천, 철원 등을 찾아 겨울을 보내고 이듬해 3월 시베리아와 중국 북동부, 몽골 초원으로 돌아간다.
 

철원 아이스크림고지에서 두루미모니터링을 하고 있는 이기섭박사 저자가 방문한 날도 한국두루미보호협회 철원군지회에서 주관한 두루미개체수 조사가 진행중이었다. 주민 40여 명이 14팀으로 나뉘어 하루 종일 맡은 구역을 조사했다. ⓒ 전재경

  
철원 두루미는 주로 농경지 나락을 먹이 원으로 한다. 두루미 서식지 보전을 위해 주민들은 겨울무논 조성, 볏짚존치사업, 겨울철 먹이주기 등을 하고 있다.
 

농경지에서 자유롭게 먹이활동을 하는 두루미들 농로를 따라 자동차가 지나는 것에 크게 동요를 하지 않지만, 자동차가 멈추거나 차에서 내리는 행위 등은 두루미에게 극도로 민감한 간섭행위이다. ⓒ 윤순태

 
연천 두루미는 임진강의 아름다운 습지와 산간 율무 밭을 먹이 터로 한다. 연천은 전국 율무 생산량의 60%를 차지하는 곳으로 율무 낙곡이 두루미들의 먹이원이 된다. 철원두루미를 논 두루미, 연천두루미를 산 두루미라 부르는 이유다. 
  

연천의 산두루미 율무밭에서 나락을 먹고있는 연천의 산두루미 ⓒ 윤순태

 
두루미 서식지 주변에는 탐조대를 두어 두루미의 생태를 감상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짝짓기 하는 특유의 구애음 등은 탐조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다. 
 

철원 한탄강 두루미 서식지 모습 탐조대에서 두루미류를 비롯한 고니류, 오리류 등 다양한 겨울철새를 관찰할 수 있다 ⓒ 윤순태

 

새 관찰은 시각적 청각적 경험이다 탐조활동은 새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이들의 소리 경험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다. ⓒ 최수경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국방부는 22년 1월 14일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및 완화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905만m²의 군사시설보호구역을 해제한다고 밝혔다. 접경지역에는 행안부의 '접경지역발전종합계획' 변경계획에 따라 13조 2천억 원이 투자되고 있다. 이에 따라 민통선 초소가 북쪽으로 2km 올라갔고, 연천 민북지역 1할이 해제된다.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와 접경지역발전종합계획은 우리나라 DMZ에 오는 두루미들에게 위협요인이 되었다.
  

연천 임진강의 철새 도래지 인근 빙애여울과 임진강 주변의 율무밭은 두루미의 좋은 서식처이자 먹이터이다. ⓒ 최수경

 

연천 임진강 빙애여울 주변의 철새들 민통선 초소 상향 조정으로 민북지역이 다수 해제되면서, 개발과 이로인한 방문객 증가는 철새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 ⓒ 윤순태

 
민통선 북상에 따라 외지인들의 토지소유는 늘었다. 경작지에 가축농장이 늘어나 악취와 비닐하우스 등 빛 반사가 심해졌다. 연천은 두루미서식지에 친수공원인 연천 임진강 평화습지원(중면 횡산리 186번지)을 만들었다. 시설을 이용하는 것 자체가 인근 두루미의 활동을 방해할 소지가 커서,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싶었다. 도시형 생태공원을 그대로 모방한 형상이었다.
 

연천 임진강 평화공원 탐조대까지 가는 길은 넓은 개활지이며, 방문객의 소음이 서식지 내 두루미들에게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 최수경

 

연천 임징강 평화습지원 탐조대, 산책로, 편의시설, 인증샷포인트 등을 갖추고 있는 생태공원은 두루미서식지 인근에 위치해 있고, 방문객의 머리 위로 강을 따라 두루미가 쉴 새 없이 날아다니는 모습을 확인했다. ⓒ 최수경

   
율무 밭 등 화전지역에는 인삼밭과 태양광 패널이 증가했다. 이미 임진강 일대는 2015년 임진강 하류 군남댐 담수로 인해 산 두루미가 좋아하는 율무 밭과 여울이 수몰되면서 두루미 개체수가 1/3로 급감한 상태다.   
 

연천의 산간 율무밭에 늘어나는 태양광 패널 민통선 초소 2km 이전에 따른 민북지역의 해제로 연천 산두루미의 먹이터인 율무밭이 점차 사라짐과 동시에, 그 자리에 빛 반사가 심한 태양광 패널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 전재경

 
올해 철원과 연천지역 탐조에서 내가 느꼈던 두루미의 행태는 지역색이 뚜렷했다. 철원지역 두루미의 경우 예년과 다르게 사람을 의식하지 않았다. 두루미들이 인간에게 경계를 풀고 적응한 듯 보였다. 고향으로의 긴 여행을 대비해 먹이경쟁이 치열해서인지 자동차가 지척에 있어도 개의치 않았다.
 

철원 양지리 민가 앞의 두루미 두루미가 민가 주변까지 다가와 천연덕스럽게 먹이활동을 하고 있다. 사람과 뭍생명이 공존하는 모습이다. ⓒ 윤순태

 
반면 연천지역의 두루미는 차만 지나도 날아갈 만큼 매우 민감했다. 차량 이동량이 많아진 것에 아직 적응이 덜 된 것일까. 저리도 앉았다 쉬었다를 반복하면 언제 배를 불릴까 염려스러울 지경이었다.
 

연천 빙애여울 주변의 두루미 율무밭에서 먹이활동을 하던 두루미가 자동차의 움직임에 놀라 날아가고 있다 (자동차에서 촬영) ⓒ 최수경

 
천연기념물 주변의 엇박자

연천 임진강 두루미 도래지가 문화재청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했다. 그러나 두루미 도래지인 빙애여울 주변에 난립한 탐조시설은 우려가 된다. 정부는 국토의 중심지역인 DMZ에 대해 통일 후 교통과 물류 중심의 중핵지대와 평화생태벨트 조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생태계 훼손에 대한 고려가 없을 뿐더러 환경적 가치를 좌시하고 있다.
 

철원 한탄강의 큰고니 두루미와 어울려 노니는 고니의 모습, 다양한 종이 서로 다투지않고 각자에게 맞는 먹이터에서 평화롭게 먹이활동하는 모습에서 지속가능한발전의 지향점을 배우게 된다. ⓒ 윤순태


민북지역 주민들과 민간단체들은 개발에 대한 입장을 표명했다. 공동성명의 골자는 첫째, 비무장지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과학적 실태조사 실시, 둘째, 비무장지대와 민북지역 전체에 대한 보전·이용 종합계획이 수립될 때까지 북상 개발 허가의 보류, 셋째,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로 생태축과 생태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협력, 넷째, 해당지역 생태계서비스 평가 조기 실시, 다섯째, 해당지역 산림과 하천생태계, 농경지 파편화 금지, 여섯째, 농업인들의 생태계서비스 유지·증진 기여에 대한 보상 확대 실시, 일곱째, 두루미들의 서식지와 이동통로 보전을 위한 녹색 생태복원, 협치 체계 구축 등이다.
 

민북지역 주민 및 단체의 민북지역 개발과 보전에 대한 공동성명 철원군 농민회 등 철원군 두루미 운영협의체와 한국 두루미 보호 협회, 연천 임진강 시민 네트워크, 자연환경 국민신탁,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한국위원회, 환경운동연합 등 주민·환경단체는 3월 25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양지리 국제두루미센터에서 공동성명서를 채택했다 ⓒ 전재경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순천만은 물새서식지로 중요성을 인정받아 행정과 시민들의 협치 덕분에 흑두루미를 비롯한 철새들의 안정적 서식기반을 확립했다. 이에 생태관광 1번지로 자리매김해 국민적 생태자원 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철원 한탄강의 겨울철새들 사람과 뭍생명이 공존하는 생명의 땅 DMZ. 한반도 핵심 생태축의 내일이 불안하다 ⓒ 최수경

 
지역이 변하기 위해 시민의 환경역량을 키우는 데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DMZ 두루미서식지를 보호하려는 지역 주민들은 이미 그 역량을 실천하는 세계시민으로 자격이 충분하다. 국민은 앞서 나가고 있는데, 개발 이익의 각축장을 조장하는 후진국형 정부야말로 반성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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