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있었던 모든 경험이 그 (화이트) 앨범에 담겨 있습니다. 그 노래들의 대부분은 '줄리아', '블랙버드', '디어 프루던스'처럼 리시케시에서 쓰여졌습니다." (조지 해리슨)
 
조지 해리슨의 말처럼, 비틀스는 1968년 인도 리시케시에 체류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영감을 얻었던 모든 것을 음악으로 써냈다. 그룹은 리시케시에 머문 8주 동안, 어쿠스틱 기타만 가지고 총 48곡을 썼으며, 그 가운데 19곡을 '화이트 앨범', 즉 <더 비틀스> 음반에 수록했다. 이들이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곡을 쏟아낸 적은 없었다. 따라서 리시케시 체류 기간은 비틀스에게 가장 생산적인 시간이었고, '화이트 앨범'은 인도에 크게 영향 받은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인도에서 쓴 48곡 중 23곡 선별

비틀스는 영국으로 돌아온 뒤, 인도에서 쓴 48곡 중 23곡을 선별했다. 그룹의 후속 음반에 수록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다음 그 23곡과 다른 4곡을 가지고 에셔에 있는 조지 해리슨의 킨폰스 자택 홈 스튜디오에서 데모 작업을 했다. 그 결과 이 '에셔 데모' 세션 때 녹음한 어쿠스틱 트랙들은 '화이트 앨범'의 뼈대가 되어 대부분 앨범에 실렸고, 실리지 못한 곡은 보류되어 나중에 솔로 프로젝트에 쓰이거나 다른 가수에게 전달되거나 일부는 사장되었다. 

 
 순백색의 화이트 앨범 재킷.

순백색의 화이트 앨범 재킷.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리시케시에 같이 있었던 동료 가수 도노반에 따르면,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아슈람에 있을 때 어쿠스틱 기타를 한시도 손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주로 그들이 묵던 숙소 앞에 앉아 기타를 쳤지만, 어딜 가더라도 기타를 지니고 다녔다. 그러면서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노래를 만들었다.

두 사람 가운데 존 레논은 '디어 프루던스'를 비롯해 '줄리아', '아임 소 타이어드', '여 블루스', '해피니스 이스 어 웜 건', '에브리바디스 갓 섬싱 투 하이드 익셉트 미 앤 마이 멍키', '레볼루션', '크라이 베이비 크라이', '더 컨티뉴잉 스토리 오브 방갈로 빌(The Continuing Story of Bungalow Bill)', '섹시 세이디(Sexy Sadie)', 1969년 <애비 로드> 앨범에 수록되는 '민 미스터 머스터드(Mean Mr. Mustard)'와 '폴리틴 팸(Polythene Pam)', 그리고 '젤러스 가이(Jealous Guy)'로 제목이 바뀌어 1971년 솔로 앨범 <이매진>에 실리는 '차일드 오브 네이처(Child Of Nature)' 등을 작곡했다. 멤버들 중 가장 많은 노래를 작곡한 것이다. 

그중에서 '줄리아'는 '디어 프루던스'와 더불어 존 레논이 아슈람에서 도노반에게 배운 핑거스타일 기타 주법을 선보이는 곡으로,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어머니 줄리아 레논에게 바친 작품이다. 그리고 동시에 '바다의 아이' 오노 요코에 관해 언급한 노래다. 그는 1980년 <플레이보이>지와의 인터뷰에서 "이 곡은 사실 요코와 우리 어머니의 이미지가 중첩된 것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에브리바디스 갓 섬싱 투 하이드 익셉트 미 앤 마이 멍키'에서는 오노 요코를 "내 원숭이"라는 가사로 표현하고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가 명상강의 때 자주 사용하던 "컴온, 잇츠 서치 어 조이/테이크 잇 이지(Come on, it's such a joy/take it easy)" 같은 표현을 후렴구로 사용했다. 특히 이 곡은 당시 리시케시에서 존 레논이 집중했던 명상과 오노 요코의 존재, 그 둘 모두를 다룬 작품이라는 특색이 있다. 

그밖에 '에셔 데모' 트랙 가운데 '차일드 오브 네이처'라는 곡은 존 레논이 대자연에 관해 이야기하던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강연을 듣고 영감을 얻어 작곡한 어쿠스틱 넘버로, 폴 매카트니가 만든 '마더 네이처스 선'과 맥을 같이 한다. 이 곡에서 존 레논은 자연을 통해 변화되어 가는 자기 모습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리시케시로 가는 길
나는 거의 꿈을 꾸고 있었어
그리고 내가 꾼 꿈은 사실이었지
그래, 내가 꾼 꿈은 사실이었어

나는 그저 자연의 아이일 뿐이야
날 자유롭게 해 줄 많은 건 필요 없어
나는 자연의 아이일 뿐이니까
나는 자연의 아이들 중 하나니까

사막의 하늘을 바라볼 때 
네 눈에 비치는 햇빛
그리고 내 생각은 집으로 돌아가네
그래, 내 생각은 집으로 돌아가네

나는 자연의 아이일 뿐이야
날 자유롭게 해 줄 많은 건 필요 없어
나는 자연의 아이일 뿐이야
나는 자연의 아이들 중 하나야

산맥 아래
변하지 않는 바람이 있는 곳
내 영혼의 창문을 만져봐
내 영혼의 창문을 만져봐

나는 자연의 아이일 뿐이야
날 자유롭게 해 줄 많은 건 필요 없어
나는 자연의 아이일 뿐이야
나는 자연의 아이들 중 하나야


- '차일드 오브 네이처' 중에서

이 곡은 전체적으로 '화이트 앨범'의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울리지만, 아쉽게도 비틀스 음반에 실리지 못했다. 폴 매카트니가 쓴 '마더 네이처스 선'과 이미지가 다소 겹치기도 하고, 앨범에 존 레논 작품이 너무 많이 실려서 빠졌거나, 어쩌면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에 대한 존 레논의 실망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대신 '차일드 오브 네이처'는 가사가 완전히 교체되고 제목도 '젤러스 가이'로 바뀐 뒤 1971년도 존 레논의 솔로 앨범 <이매진>에 수록됐다.
 
 비틀스 화이트 앨범 50주년 기념 4LP 박스세트 재킷 이미지. 앨범 미수록곡인 ‘차일드 오브 네이처’의 데모 트랙이 담겼다.

비틀스 화이트 앨범 50주년 기념 4LP 박스세트 재킷 이미지. 앨범 미수록곡인 ‘차일드 오브 네이처’의 데모 트랙이 담겼다. ⓒ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인도에서 존 레논이 쓴 곡 중 가장 논란이 된 노래 하나는 오노 요코가 보컬리스트로 참여한 '더 컨티뉴잉 스토리 오브 방갈로 빌'이다. 언뜻 듣기에 이 노래는 쾌활한 분위기의 동요 같지만, 실상은 호랑이 사냥꾼을 날카롭게 고발하는 작품으로, 아슈람에서 비틀스 담당 책임자이자 마하리시의 보좌관이었던 낸시 쿡 드 헤레라와 그녀의 아들 릭 쿡이 벌였던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대학교 운동선수 출신으로, 멀리 미국에서 어머니를 보러 리시케시에 온 릭 쿡은 명상원 생활이 심심했는지 어느날 어머니와 함께 주변 정글로 원정 사냥을 나섰다. 그리고 총으로 호랑이를 쏴 죽인 뒤 아슈람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명상원에 들어서면서 그는 갑자기 죄책감을 느꼈고, 두려움 속에서 당시 비틀스와 함께 있었던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를 찾아가 물었다. 

"제가 나쁜 업보를 지은 건가요?"

사실 엄격히 채식을 지키는 등 자비를 강조하고 살생을 금지하는 아슈람에서 생명체 사냥이란 있을 수 없었다. 마하리시가 그에게 대답했다.

"너는 욕망이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욕망이 없는 게로구나?"

당사자인 릭 쿡과 비틀스의 다른 멤버들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이, 존 레논이 참지 못하고 개입했다. 

"그게 생명을 파괴하는 거 아닌가요?"

그러자 옆에서 릭 쿡의 어머니이자 호랑이 사냥 때 아들과 함께 있었던 낸시 쿡 드헤레라가 자신들을 방어하려고 호랑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음, 존, 호랑이가 아니면 우리가 죽을 판이었어요. 우리한테 호랑이가 뛰어들었다고요."

그러나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릭 쿡, 낸시 쿡 모자가 호랑이 사체 뒤에서 웃으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사진이 발견되었고, 이들의 이중성에 역겨움을 느낀 존 레논은 얼마 후 "이봐, 방갈로 빌, 뭘 죽였어? 방갈로 빌?"이라는 신랄한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를 썼다.

이봐, 방갈로 빌. 뭘 죽였어? 방갈로 빌?
이봐, 방갈로 빌. 너 뭘 죽인거야? 방갈로 빌?

그 남자는 총, 코끼리와 함께 호랑이 사냥을 나갔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그는 항상 자기 엄마를 데려갔어
그 남자는 미국에서 가장 고집 센 색슨족 어머니의 아들이야
모든 아이들이 노래하네

이봐, 방갈로 빌. 뭘 죽였어? 방갈로 빌?
이봐, 방갈로 빌. 너 뭘 죽인거야? 방갈로 빌?

힘쎈 호랑이가 있는 정글 속 깊은 곳에서
빌과 그 자가 데려간 코끼리는 깜짝 놀랐지
그래서 '캡틴 마블'은 그 두 눈 사이를 쏜거야
모든 아이들이 노래하네

이봐, 방갈로 빌. 뭘 죽였어? 방갈로 빌?
이봐, 방갈로 빌. 너 뭘 죽인거야? 방갈로 빌?


- '더 컨티뉴잉 스토리 오브 방갈로 빌' 중에서

이 곡에서 존 레논에게 저격당한 릭 쿡은 리처드 A. 쿡 3세라는 본명 대신에 '방갈로 빌'이라는 별명으로 영원히 박제되었다. 

폴 매카트니의 창작 활동

한편, 폴 매카트니도 아슈람에 머물면서 훌륭한 작품을 여럿 창작해냈다. 이 시기 그가 리시케시에서 쓴 곡은 '마더 네이처스 선', '백 인 더 유에스에스알.', '블랙버드', '와이 돈트 위 두 잇 인 더 로드?(Why Don't We Do It In The Road?)', '오블라디 오블라다', '로키 라쿤', 그리고 매카트니 곡으로는 유일하게 화이트 앨범에 실리지 못한 채 1970년 첫 솔로 앨범 <매카트니>에 수록되는 '정크(Junk)'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블랙버드'는 리시케시 체류 시절 폴 매카트니가 아침 시간에 검은대륙지빠귀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으로 알려져 왔으나, 최근 매카트니는 새를 염두에 두고 쓴 거라기보다는 흑인민권운동과 관련하여 어느 흑인 여성에게 보내는 노래였다고 새로 밝혔다.

그밖에 '마더 네이처스 선', '와이 돈트 위 두 잇 인 더 로드?', '로키 라쿤' 등은 모두 마하리시 마헤시 요기의 강의, 혹은 대자연의 섭리에 영감을 얻어 만든 자연 친화적 작품들이다.
덧붙이는 글 저서로는 <조지 해리슨: 리버풀에서 갠지스까지>(오픈하우스, 2011), <살림지식총서 255 비틀스>(살림출판사, 2006) 등이 있다.
화이트 앨범 THE BEATLES 리시케시 릭 쿡 방갈로 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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