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과 이정재가 75회 칸영화제에 참석했다.

배우 정우성과 이정재가 75회 칸영화제에 참석했다. ⓒ UPI

 
제75회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된 영화 <헌트>가 베일을 벗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을 누아르와 액션 장르에 녹인 일종의 픽션물이었다.
 
19일 칸의 팔레 드 페스티벌에 위치한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프리미어 상영에 일찌감치 관객들이 모여 긴 줄이 형성됐다. 공식 상영 예정 시간은 19일에서 20일로 넘어가는 자정이었지만 1시간여부터 관객들이 대거 몰린 것. 2000여 석의 좌석도 만석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풍경 중 하나다.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 자체가 주로 오락성과 상업성, 대중성을 염두에 둔 작품들 대상이기에 <헌트> 또한 공개 직전까지 새로운 한국형 액션 영화일 것이라는 추측이 주였다. 공작 스파이로 서로를 의심했던 두 사람이 모종의 사건을 통해 협력한다는 내용으로 배우 이정재의 첫 연출작, 그리고 <비트> 이후 23년 만에 정우성과 연기로 재회한다는 면에서 관심을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 직후를 배경으로

 

▲ 칸영화제 칸영화제에서 영화<헌트>가 상영된 뒤 객석에서 기립박수가 나왔다. 이에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이 관객에게 화답하고 있다. ⓒ 이선필

 
결과적으로 작품은 박정희 대통령 저격 사건 직후를 배경으로 혼돈 정국이었던 국내 정서를 원동력으로 삼는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 그리고 은밀하게 공작 정치를 주도한 중앙정보부와 국가안전기획부(아래 안기부)의 조직 생리를 배치해 놓고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하는 인물들로 긴장감을 높이는 구성이었다.
 
이정재와 정우성은 각각 안기부 해외팀장과 국내팀장을 연기했다. 조직 내 잠입한 북한 첩자를 가려내는 과정에서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데 단순히 사건만 배치해 기계적으로 반전을 주지 않고, 주변 캐릭터의 입체감을 살리는 식으로 긴장감을 느끼게 했다. 특히 이성민, 황정민, 주지훈, 김남길 등 여타 영화에선 주연으로 분할 배우들이 대거 등장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그때 그 사람들> < 1987 > <남산의 부장> 등의 작품이 직간접적으로 민주화 운동과 독재 정권을 조명해 왔다면 <헌트>는 보다 과감한 묘사가 눈에 띈다. 실명을 내세우진 않지만, 5.18 민주화 운동 대량 살상의 책임자를 전두환으로 지목하고 있고, 대규모 친인척 비리인 장영자 사건, 아웅 산 묘소 테러 사건 등을 연상케 하는 사실적 사건 묘사가 담겨 있다.
 
한국 현대사, 그중에서도 여전히 전두환 및 당시 신군부 정권에 기여한 책임자들은 명확하게 민간인 사살에 대한 명령 체계를 말하지 않고 있다. <헌트>는 작심한 듯 비슷한 소재의 다른 작품이 에둘러 언급을 피해온 그 지점을 명확하게 짚는다.

광주로 헬기를 띄워 발포 명령을 내린 주범, 적화통일을 표방한 북한을 이용해 공작을 펼쳐온 정보기관 등을 정면으로 조준하며 범인이라 공표하는 식으로 처리한다.
 
일각에선 이런 과단성을 우려할 만하지만 신인 감독 이정재 입장에서 근현대사를 집중 조명하는 시도는 충분히 패기를 부릴 수 있는 지점으로 평가할 만하다. 실제로 영화가 끝난 후 많은 관객들이 약 8분간 기립박수를 치며 호응을 보냈다.
 
한 관객은 기자에게 "정말 놀라웠다. 한국 역사를 잘 몰라도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라고 답했다. 다른 관객은 "(이정재와 정우성 중) 누가 나쁜 놈이고 누가 선한 놈인지가 헷갈렸다"라며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고 평했다. 
 
<헌트>에 이어 오는 23일과 26일 경쟁부문 진출작인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가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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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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