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외동딸의 마지막 선물...
사고 3일 후 부모님 집에 온 에어컨

[교제살인 두 번째 이야기 - 사람이 죽었다④]
황예진,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법정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투는 공간이다. 피해자가 사망하면 가해자만 그 공간에 선다. 그렇게 나오는 판결문이 사건의 전모를 다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은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인 교제살인 사건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CCTV 증거 화면이 있어도 피해자는 그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왜'가 남는다. 고 황예진씨 사건에서 그 질문을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사건번호 2021고합○○○ 상해치사, 사람이 죽었다. [편집자말]

2021년 7월 28일... 사건 발생 사흘 후 고 황예진씨 부모님댁에 도착한 에어컨이 보인다. 고인이 정규직 전환 후 처음 받은 월급으로 준비했던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다. ⓒ 한승호

거실 한편, 그 에어컨이 있다. 아직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에어컨이 경기도 양주에 있는 황예진씨 부모와 외할머니가 사는 집에 배송된 날짜는 2021년 7월 28일이다. 참혹한 사건이 발생하고 사흘 후 도착했다고 했다. 교제 상대에게 폭행을 당해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던 황씨가 사건 발생 전 집으로 보낸 선물이었다. 가족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오래된 에어컨을 바꿔 할머니가 좀 더 시원하게 여름을 보냈으면 하는 생각에 몰래 준비한 황예진씨의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다. 정규직 전환 후 처음 받은 월급으로 산 것이라고 했다.

선물을 보고 깜짝 놀라는 가족들 얼굴을 황씨는 보고 싶었을 것이다. 할머니와 함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즐거운 한때를 보낼 상상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에어컨은 결국 고인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 되고 말았다.

외할머니

황예진,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어머니를 두 차례 만났다. 어렸을 때부터 옆집(사실상 한 집)에 살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외사촌 언니에게도 고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의 사춘기를 지켜봤던 공부방 선생님을 만나 왜 두 차례나 장례식장을 찾았는지 그 이유를 물었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 대학 동창 친구들도 취재에 응했다. 대학 시절 만난 친구이자 고인과 함께 맞은 편 자리에서 일했던 직장 동료에게서도 황예진씨가 어떤 사람인지 들을 수 있었다.

황예진.
1996년 2월 13일 출생.
슬기로울 예(睿), 참 진(眞).

그의 아빠와 엄마는 1993년 겨울 처음 만났다고 했다. 어느 날 엄마가 잃어버린 회사 출입카드를 아빠 회사 동료가 주웠고, 출입카드를 돌려주는 조건으로 성사된 4:4 미팅. 그 자리에서 시작된 엄마와 아빠의 연애, 이듬해 봄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그리고 두 사람의 딸이 태어났다. 맞벌이 부부의 외동딸, 철원에 사는 외할머니는 손녀가 항상 마음이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치과 치료를 위해 서울에 왔던 할머니는 손녀를 돌보는 보모가 영 미덥지 않았는지, 그 길로 아이를 데리고 철원으로 갔다고 했다. 엄마와 아빠는 금요일마다 아이를 보러 철원으로 갔고 월요일 새벽에는 차마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다시 서울로 옮겨야 했다고 한다. 황씨는 다섯 살까지 할머니와 살았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고 황예진씨는 외할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했다. 외할머니와 고인이 함께 찍은 사진들이다. ⓒ 한승호

황씨가 엄마·아빠와 다시 함께 살게 된 것은 그 다음 해부터. 부부가 빠른 년생이었던 딸의 초등학교 진학을 염두에 둬야하는 때였고, 마침 경기도 양주 한 아파트에 새로운 보금자리도 만든 터였다. 또한 바로 옆집에 황씨 이모가 살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거처를 철원에서 황씨 집으로 완전히 옮긴다. 베란다로 서로 오갈 수 있는 구조, 목재 간이벽을 떼어내고 두 집은 서로 오갔다. 반찬 하면 서로 갖다주고 그렇게 '한지붕 두 가족'으로 10년 넘게 살았다고 한다. 이모 집에는 황씨의 외사촌 자매들이 있었다. 그중 맏언니와 황씨는 나이가 같다. 황씨의 외사촌 언니 생일은 1996년 1월 1일. 그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족이자, 친구이자, 그냥 친자매죠. 그런데 저와는 많이 달랐어요. 엄마가 항상 '예진이는 너무 철든 거 같다고, 이해심이 진짜 넓다'고 얘기했는데, 진짜 어릴 때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서로 장난치고 그럴 때는 그냥 애인데, 어떨 때는 언니 같은? 조언을 많이 해줬던 친구예요. 제가 고3때 진로 문제로 부모님과 의견이 엇갈렸는데, 그때 예진이가 그러더라고요. '너는 이모가 지금까지 그렇게 너 믿고 투자해줬으면, 너도 한 번 쯤 부모님 말씀 들어볼 수 있는 거 아니냐'. 뭔가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그 때 그 말이 아직도 기억나요."

어른스러웠던 외동딸

또래보다 어른스러웠던 사람. 취재를 위해 만난 일곱 명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그 앞에 따라붙는 말도 거의 비슷했다. 외동인데, 외동으로 자랐는데, 외동이라서.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6년 동안 황씨에게 산수와 수학을 가르쳤던 공부방 선생님 기억에 그는 "외동인데도 맏이 같았던 아이"다.

"보통 아이들은 용돈 쓰기 바쁜데, 예진이는 용돈을 모아요. 그래서 가족 생일 다 챙겨줬어요. 예진이가 할머니하고 엄마, 아빠를 참 많이 생각했어요. 할머니가 자신을 길러주셨고, 부모님은 맞벌이하느라 바쁘다는 걸 다 아니까, 또래들에 비해 철이 들어 있었죠. 엄마나 아빠한테 뭐라 요구를 잘 안 하고...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려고 하는 아이였어요. 애가 속이 깊었죠. 예진이는 사춘기가 없는 아이였어요."


고 황예진씨가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똑 부러진 면모가 나타난다. 아버지에게 금연을 권하는 편지에서 그는 "저를 사랑하시는 걸 알지만, 만지는 거는 싫어한다"고 쓰기도 했다. ⓒ 이주연

어른스러움이 어른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황씨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생각이 분명한 쪽에 속했고, 자신이 보기에 '이건 아니다' 싶으면 당차게 나서기도 했다. 공부방 선생님에게 황예진씨는 '강강약약'의 면모도 있었던 아이로 기억된다. 그는 "약한 여자아이를 짓궂게 괴롭히는 남자아이들과 맞서는 모습을 볼 때는 내 딸도 저렇게 컸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저 어린 시절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대학 동창 친구들은 "예진이가 남자를 볼 때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한테 어떻게 대하는지, 그걸 참 예민하게 봤다"고 말했다. 대학교 기숙사 생활 시절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기숙사에는 통금 시간이 있잖아요. 기숙사 경비하시는 분이 70대 정도로 나이가 많으신 분이었는데, 통금 시간이라고 문을 안 열어주니까 학생들과 실랑이가 있었다고 해요. 어떤 학생이 너무 버릇없이 구니까 그걸 보고 예진이가 대신 나서 싸웠던 모양이에요. 본인이 무슨 정의의 사도라고... 나중에 기숙사에 예진이 짐 뺄 때 갔었는데, 경비하시는 분한테 그 얘기를 들었어요. '예진이 잘 키웠다'고 그러시더군요."

'어른스러움'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의 똑 부러지는 이런 면모는 주로 자신과 관련된 선택을 할 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어머니는 "학원 다니려고 여러 군데를 함께 돌아보더라도 왜 거기를 다니려고 하는 건지 이유를 밝히며 최종 선택은 항상 예진이가 했다"고 전했다. 고등학교 진학 문제를 두고서도 황씨는 공부방 선생님이나 어머니에게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켰다고 한다.

이 같은 책임감에는 '외동'이라는 황씨 상황이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친구들에게 자주 했던 말이 있다고 했다.

"시험 기간에 저희가 같이 놀자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해도 걔는 안 갔어요. 도서관 남아서 밤새 공부하고 그렇게 되게 열심히 했어요. 예진이가 만날 했던 말이 자기는 외동이라서 엄마하고 아빠 돌아가시면 진짜 나 혼자 남기 때문에 혼자서 잘 해야 한다고 그랬어요." (대학 동창 친구들)

"우리가 친해지게 된 게 둘 다 외동이라서... 예진이가 '우리는 외동이니까 부모님께 너무 기대면 안 된다'고, '내가 잘 돼야 한다'고, '빨리 자리 잡아서 엄마랑 아빠랑 이것저것 해드리고 싶고, 짐 좀 덜어드리고 싶다'고 자주 말했어요." (고등학교 동창 친구)


"진짜 혼자 남으니까... 혼자서도 잘해야 해"

고 황예진씨가 받았던 상장들. 중앙에 보이는 장학증서는 고인이 대학생 시절 기숙사 경비 할아버지에게 거친 언사를 하는 학생들과 맞선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면서 받은 것이다. ⓒ 한승호

"외동이니까 혼자서도 잘해야 돼."

'혼자' 될 미래를 그려보면 주변 사람들이 더 각별하게 다가왔을 터다. 황씨는 자신에게 곁을 내준 이들을 늘 챙기려 노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는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한없이 퍼주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의 기억에 황예진씨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어느 날 가방에서 스윽 꺼내 '이런 거 좋아하지?' 하면서 선물을 줘서 더 감동을 줬던 사람"이었다. 대학 동창 친구 A씨는 "내 고민을 얘기하면 며칠 후에 잊지 않고 '그거 잘 됐냐'고 계속 신경을 써줬던 친구"라고 말했다. 대학 시절 알게 돼서 직장 동료로 함께 지냈던 친구는 황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예진이가 첫 월급 받고 저한테 선물을 보냈더라고요. 그냥 업무 관련해서 동료로서 도움을 준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예진이가 그걸 좀 많이 고마워했던 것 같아요. 워낙 본인이 뭔가 받았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친구였어서... 본인 입으로 들어가는 게 좀 적더라도 자기한테 뭔가 해준 사람들한테는 보답을 무조건 해야 한다는 생각이 매우 강했던 친구였어요. 사무실 그 친구 자리를 정리하다가 이면지에 적은 메모가 있어서 봤더니, 취업에 도움을 줬던 사람들한테 첫 월급을 어떻게 쓸지 적혀 있더라고요."

"본인 입으로 들어가는 게 좀 적었다"는 친구의 말, 소박했다는 이야기다. 외사촌 언니는 립스틱 이야기를 꺼냈다.

"얘 진짜 수수하고 소박했어요. 한 번은 예진이 방에 놀러갔는데, 파우치 안에 오래된 립스틱이 하나 들어있더라고요. 저는 립스틱이 많거든요. 남들 눈에는 다 같은 색 같지만 그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예진이는 그런 게 없었어요. 그래서 '좀 사라, 새 걸로 좀 바꾸면 안 되겠니?'라고 그랬었죠. 예진이도 관심은 가져요. 제 거 보면서 '이거 얼마야' 그래요. 그런데 다시 만나 막상 보면 또 없어. 사 달라고 안 해. 저 같으면 외동딸이니까 사달라고 그랬을 거 같은데..."

황씨가 대학교 입학할 때 어머니는 이른바 브랜드 옷을 사주려고 했다고 한다. 돌아온 딸의 말은 "됐어, 엄마, 괜찮아". "살면서 용돈 가불 한 번 한 적 없다"는 그의 딸이 취업 후 한 일 중 하나는 "할머니가 쓰는 체크카드에 몰래 자신의 돈을 넣어드린 것"이라고 했다. 그의 방에는 생전에 마지막으로 보냈던 어버이날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가 어머니에게 보낸 카드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하루빨리 엄마의 수고를 덜 수 있는 딸이 될게. 사랑해."

고 황예진씨가 쓰던 가방들. 고인의 소박했던 성품을 보여준다. ⓒ 한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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