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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부터 2022년 4월까지 캐나다 밴쿠버아일랜드에서 교환학생으로 생활한 이야기를 독자와 나누고자 합니다.[기자말]
엄마, 아빠, 할머니, 형과 함께 숲에서 살던 사울. 어느 날 검은 사제복을 입은 백인들이 찾아와 자신을 끌고 어디론가 향한다. "가족들과 떨어지기 싫어요!" 사울이 아무리 외쳐도 그들은 꽉 붙들어 맨 몸을 놔주지 않는다. 도착한 곳은 작은 교회. 자신과 비슷한 생김새의 친구들만 모여 있다. 사울과 친구들은 성경에 쓰인 이름을 새로 받고, 말할 때 영어를 쓰지 않으면 사제들에게 두들겨 맞는다. 

17-18세기 '신대륙'을 발견했다며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그들의 터전을 빼앗은 유럽 백인들의 만행은 꽤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핍박의 역사가 최근까지도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교환학생으로서 보내는 첫 학기, 1학년 영어 과목을 수강했다. 수업을 듣는 동안 다양한 영문 기사와 영어 원서를 읽고 토론을 했는데, 그중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 학대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이 가장 인상 깊었다(위 첫 문단 내용). 교회 사람들에게 납치돼 강제로 '문명화'를 위한 교육을 받은 사울의 이야기는 영화<인디언 호스>(Indian Horse)에도 등장한다. 

1876년 캐나다 정부가 '인디언 조례(Indian Act)'를 발표하면서 캐나다 곳곳에 '인디언 기숙학교'가 세워졌다. 인디언 기숙학교는 캐나다 원주민 아이들을 가족들로부터 떨어뜨리고 서양 문화에 적응시키기 위한 교육 시스템의 일환이었다.

주로 교회가 기숙학교를 운영했는데, 교회 구성원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문화가 원주민들의 문화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납치해 온 아이들에게 영어식 이름을 지어주고 말할 때 영어만 사용하도록 했다. 아이들끼리 있을 때도 원주민 언어를 쓴 걸 들키면 가차 없이 체벌했다. 그밖에도 강제 노동, 성폭행, 감금 등 반인륜적인 행위를 원주민 아이들에게 저질렀다.

원주민 아이들의 '교화'를 빙자한 교회의 학대는 100년이 넘도록 지속됐다. 199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정부의 공식 사과와 학대 피해자 보호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2008년 원주민 보호를 위해 '진실과 화해 기구(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of Canada, 아래 TRC)'가 정식으로 설립됐다.

TRC의 요구에 따라 모든 공교육 기관에서는 캐나다 원주민의 역사와 문화, 기숙학교 사건 등에 관해 상세히 가르쳐야 하며, 모든 공공 기관 및 부처에서 그들을 위한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강제적인 영어 사용 때문에 잃은 토착어 복원을 위한 사업도 진행 중이다.
 
밴쿠버아일랜드대학교(VIU) 도서관에 세워진 조형물. 캐나다 원주민들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한다.
 밴쿠버아일랜드대학교(VIU) 도서관에 세워진 조형물. 캐나다 원주민들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한다.
ⓒ 이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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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들은 '인디언'이 아닌 '퍼스트 네이션스(First Nations)'로 불린다. 유럽인들이 캐나다에 들어오기 전부터 아메리카에 터전을 잡은 첫 민족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국가에게 버려진 사람들은 수 세기가 지나고 나서야 국가로부터 '진실한(truthful)' 사과와 '조화(reconciliation)'를 위한 보호 정책을 약속받을 수 있었다.

강제노역으로 고통 받는 삶, 이름과 언어를 빼앗기는 삶은 먼 나라 원주민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 한센인 강제노역을 인정하고 국가 배상 책임을 지겠다고 발표했다(대상자는 10명, 한 사람에 최대 180만 엔, 천7백만 원가량, 남은 신청자 120여 명도 심사 중, 언론보도 참고). 하지만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에 관해서는 여전히 입을 굳게 닫고 있다.

지난 5월 2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양주 할머니가 별세하면서 남은 생존자는 11명뿐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캐나다 원주민들이 국가에 요구한 내용과 다르지 않다. 일본 정부의 진정한 사과를 받는 것, 충분한 피해 보상에 대한 약속이다.

태그:#캐나다, #교환학생, #유학, #캐나다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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