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인으로 선 황예진씨 아버지는
20초 만에 울먹였다

[교제살인 두 번째 이야기 - 사람이 죽었다①]
"할아버지는 아직도 손녀의 죽음을 모른다"
법정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투는 공간이다. 피해자가 사망하면 가해자만 그 공간에 선다. 그렇게 나오는 판결문이 사건의 전모를 다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은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인 교제살인 사건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CCTV 증거 화면이 있어도 피해자는 그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왜'가 남는다. 고 황예진씨 사건에서 그 질문을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사건번호 2021고합○○○ 상해치사, 사람이 죽었다.[편집자말]

황예진씨 '교제살인' 사건 2심 5차 공판에 황씨 아버지(58)가 증인으로 채택됐다.

8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서관 302호 앞, 아버지는 5차 공판 시작 전 일찌감치 도착했다. 손에는 출력해 놓은 A4 종이 6장이 들렸다. 재판 시작 10분 전 재판정에 들어간 아버지는 준비한 증인 신문 답변을 읽고 또 읽었다. 나지막이 입으로 되뇌느라 마스크가 연신 움직였다.

오후 3시 3분, 아버지가 증인석에 섰다.


6월 8일, 서울고등법원 서관 302호에서 고 황예진씨 교제살인 사건 2심 5차 공판이 열렸다. ⓒ 이주연

본격적인 검찰 측 신문이 시작됐다. 아버지는 며칠 전부터 수차례 수정하며 답변을 준비했다고 했다. 그걸 보고 읽는데도 아버지는 자꾸 말을 멈췄다. 치밀어 오르는 울음을 삼켰다. '황예진씨와 피고인이 2021년 4월 말 이후 자주 다툰 사실을 알고 있었냐'는 검사의 질문에 아버지는 "전혀 몰랐다"며 울먹였다. 신문이 시작된 지 20여 초가 흘렀을 뿐이었다.

"딸아이 혼자(울먹)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 아비가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서 너무나 불쌍하고..."

황예진씨가 피고인으로부터 폭행 당한 상황을 묘사하며 아버지는 거의 오열하다시피 말을 이어갔다.

"두꺼운 유리벽과 단단한 벽돌단에 부딪히며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딸아이의 모습..."

사건은 2021년 7월 25일에 발생했다. 남자친구였던 피고인은 황예진씨를 4차에 걸쳐 폭행했고, 방치했다. 정신을 잃은 황씨는 병원에 후송됐고, 그 해 8월 17일 병원에서 숨졌다. 올 1월 6일 열린 1심 재판에서 피고인은 상해치사죄로 징역 7년을 선고 받은 바 있다.

"저는 우리 예진이의 죽음과 이 7년을 도저히 바꿀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6월 8일 서울 서초동 법원 전경. ⓒ 이주연

아버지의 눈물

아버지는 워낙에 외동딸을 아꼈다고 한다. 앞서 우리는 이와 관련한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예진이 초등학교 6학년 때 교회에서 해외로 한 달 정도 연수를 갔는데 아빠가 출발한 다음 날 예진이 방에 가서 베개 붙들고 울고 계셨다고 해요. 딸 사랑이 보통 아니었죠. 교회 사람들이 '누가 보면 군대 보낸 줄 알겠다' 할 정도였어요." (초등학교 4학년부터 6년 동안 황씨에게 산수·수학을 가르쳤던 공부방 선생님 인터뷰 중)

한 달 못 보는 것에도 베개를 부여잡고 울던 아버지가 딸을 보지 못한 지 295일째다.

증인석에 선 아버지는 "예진이가 입고 있던 옷가지에서 딸아이의 향기와 냄새를 맡아 보지만 한없는 그리움은 지울길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도 딸아이 죽음을 받아들이기 고통스러워 불면증을 겪고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우리 예진이와 같은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법의 엄중함을 보여주시길 간곡히 눈물로 호소드린다"며 눈물을 훔쳤다.

다음은 아버지 증인 신문 질문-답변을 정리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손녀의 죽음을 모른다"

- 피해자는 증인에게 어떤 딸이었나요.

"저희 부부에게 예진이는 사랑과 희망이었고 저희 삶의 전부였습니다. 항상 밝고 활동적이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감이 강한 딸이었으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과 큰집과 이모, 삼촌 등 가족들 모두의 사랑을 받고 자랐기에 어른에 대한 공경과 타인에 대한 배려를 몸소 실천하고 주위사람들을 챙기고 사랑할 줄 아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 증인은 피해자와 피고인이 교제하는 사실을 알고 있었나요.

"2021년 4월경, 예진이가 사귀는 사람이 OO은행 인턴동기라고 딸아이 엄마에게 말을 하였고 저는 전해들어서 거기까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해서 증인에게 말한 적이 있나요.

"피고인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들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 피해자와 피고인이 2021. 4.말경 이후 잦은 다툼으로 갈등을 빚어온 사실을 알았나요.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 딸아이 혼자(울먹) 얼마나 힘들었을지(울먹), 이 아비가 아무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서 너무나 불쌍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 증인은 이 사건의 발생 사실을 어떠한 경위로 알게 되었나요.

"2021. 7. 25. 새벽 4시40분 쯤, 경찰관으로부터 '따님이 병원에 있다. 빨리 가보셔야 된다'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경찰관으로부터 전화를 받고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설마 아니겠지, 아니겠지 그런 심정으로 여의도 성모 병원으로 향하였습니다(울먹)."

- 당시 증인의 심경은 어떠했나요.

"딸아이가 사고를 당한 작년 7월 25일부터 지금까지, 그 당시 예진이가 입고 있던 옷가지에서 딸아이의 향기와 냄새를 맡아 보지만 한없는 그리움은 지울길이 없습니다. 매주 주일 예배 후, 딸아이가 있는 묘지를 찾아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이제 모든 진실을 밝혀(울컥, 목소리 떨림) 하늘나라에 보내주겠다'는 약속과 다짐을 반복합니다.

요양병원에 계신 할아버지께서는 아직도 손녀딸이 저희의 곁을 떠났는지 모르고 계시며(목소리 떨림), 외할머니께서는 매번 법정에 나오셔서 피고인에게(울먹) 합당한 형벌이 내려지길 지켜보고 계시고, 유가족과 지인들, 친구들이 탄원서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저희 딸아이를 아껴주셨던 모든 분들에게 참으로 감사하는 마음이고, 그 분들이 건강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차디찬 부검대 위에 오른..."

6월 8일 2심 5차 공판에서 증인 심문을 마친 직후 황예진씨 아버지의 뒷모습. 그는 이날 약 15분 가량 진행된 증인 심문 내내 울먹였다. ⓒ 이주연

- 증인과 가족들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오고 있나요.

"저와 딸아이의 엄마는 CCTV 동영상에서 같은 장면을 수백번 돌려보며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고 동영상 프로그램으로 1초를 10프레임으로 쪼개어 수 없이 반복 시청하였습니다. 조카들은 5000페이지 분량의 카톡을 밤새 밑줄을 쳐가며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처형가족과 형님가족, 예진이 친구들과 지인들은 탄원서를 모으는데 동분서주하며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외삼촌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써주신 경찰관분들 그리고 검사님들이 작성해 주신 소중하고 고마운 증거기록과 자료들을 글자 한자, 한자 허투루 볼 수 없어 손수 타이핑하고 의무기록을 꼼꼼히 검토하였으며 모르는 부분을 의사선생님들에게 묻고 공부하느라 밤을 지새웠습니다. 이처럼 진실을 밝히기 위해(울먹, 목소리 떨림) 저희 유가족들은 약 10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결코, 하루하루를 헛되이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 사건의 진실을 알아가면서 증인의 심정은 어떠한가요.

"두꺼운 유리벽과 단단한 벽돌단에 부딪히며 의식을 잃고(오열) 쓰러지는 딸아이의 모습, 그럼에도 분이 안풀렸는지 엘리베이터에서 벽을 치는 피고인의 모습(목소리 격앙됨), 엘리베이터문이 열렸을 때 완전히 의식을 잃은 딸아이를 마치 짐승처럼 처참하게 이리저리 끌고다니는 피고인, 그럼에도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딸아이의 모습을 보며, 피고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울먹), 사건이 일어난 그 토요일 집들이를 하지 않고 할머니에게 약속한 첫월급 선물을 사들고 집으로 왔더라면, 부모인 우리가 그 자리에 있어서 구할 수만 있었더라면(울먹)...이제는 아무리 후회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딸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으로 하루하루 숨쉬며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럽습니다."

- 증인은 피해자의 부검감정서를 보았나요. 아버지로서 어떠한 심경을 느꼈나요.

"차디찬 부검대 위에 올라 해부된 딸아이의 처참한 부검사진을 보며, 온 몸이 비틀어지는 고통과 숨이 막히는 통증을 감내하며(울먹)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고 황예진씨 아버지가 딸에게 보냈던 편지. ⓒ 이주연

- 증인은 피고인의 행위에 대해서 어떠한 죄책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가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1차 폭력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딸아이 위에 올라타 계속하여 폭력을 행사하였고, 딸아이를(울먹) 외면한 채 돌아서는 피고인을 보며 도저히 사랑했던 연인이라고 상상할 수 없습니다. 사망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4차 폭력의 경우 그 강도가 1차 폭력과 유사하다고 피고인 스스로가 인정하였는데, 이러한 사정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을 살인죄로 의율함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 증인은 이 사건 피고인의 범행으로 피해자가 사망하면서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어 현재까지 심리치료를 받고 있지요.

"지금도 딸아이 죽음을 받아들이기 고통스럽고 딸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제 자신이 고통스러워 불면증을 겪고 있습니다."

- 증인은 앞서 진술한 내용 외에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요.

"키 170cm, 몸무게 70kg의 피고인은 수영장 안전감시요원과 수영강사로 아르바이트를 했던 이력과 수상인명구조요원 자격증을 취득할 정도로 탄탄한 몸 상태로,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하며 다부진 몸상태를 유지한 건장한 체격의 남성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예진이는 157cm, 43kg의 왜소한 체격으로, 완력의 차이가 확연하며, 피고인은 약 15분간의 짧은 시간 동안 4차례에 걸쳐 피해자의 머리와 몸이 크게 흔들리고 바닥과 벽에 부딪히는 정도의 심각한 폭력을 가하였습니다.

판사님과 검사님들은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지만, 저와 아내는 이 사건 CCTV를 수백번 돌려보면서 피고인이 예진이를 죽일 생각으로, 그것도 아니라면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폭력을 행사해 예진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예진이가 의식을 잃은 상태에서 피고인이 자신이 익히 알고 있던 응급조치를 취하지도 않고, 112신고를 하다가 중단하고, 119에 허위신고를 하고, 심지어 출동한 119 구조대원에게조차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해 거짓말을 한 피고인이 예진이를 고의로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 CCTV가 공개되었을 때 이를 본 거의 99퍼센트 이상의 국민들 역시 살인행위라고 보았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일반 국민들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피고인에게 선고된 형은 징역 7년입니다. 저는 우리 예진이의 죽음과 이 7년을 도저히 바꿀 수 없습니다.(울먹)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에게 엄벌을 내리셔서 우리 예진이와 같은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법의 엄중함을 보여주시길 간곡히 눈물로 호소드립니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2,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