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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음 기사는 “독재에 맞섰던 ‘투사 시인’ 끝내 변절 오명 벗지 못한 채…”(한겨레), “독재정권과 싸운 ‘저항 시인’, 김지하 별세, 1990년 이후엔 ‘변절’ 논란도”(경향신문) 신문 제목이 요약했듯이, ‘저항’과 ‘변절’이라는 양면성을 보인 영욕의 생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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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75] "그는 섬광과 섬망을 오고간 선지자(先知者)이자 위악자(僞惡者)였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74] 치열한 저항시와 빼어난 서정시를 함께 쓸 수 있었던 시인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73] 76세이던 2017년 초 절필을 밝히면서 그동안에 남긴 원고를 출판사에 넘겼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72] 그는 늘 심한 병환에 시달렸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71] 연구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70] 6년 여의 옥살이와 심신이 찢긴 고문의 댓가이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69] "새로운 문명의 빛, 문명의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68] 머리맡에 써 놓은 투병의 좌우명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67] 그의 과격한 발언을 놓고 인터넷에서는 찬반 논란이 뜨겁게 전개되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66] '신념에 찬 확신'이었을까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65] 노후에 들어 그가 추구한 가치는 미학이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64] 그의 여행은 관광목적이 아니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63] 그는 '붉은악마'를 '6월개벽'으로 수렴했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62] 그의 글과 그림과 관련 전문가의 평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61] 그동안의 고난과 시련에 대한 보상이었을까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60] '한 송이 꽃이 피니 세계가 모두 일어선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59] 공식적으로 그가 필화사건 관련하여 사과한 것은 1999년 여름이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 58] "언더그라운드 킴... 이 이름의 저주를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