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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고 전민씨 부인 박혜진씨와 박씨의 아버지이자 고인의 장인인 박용선씨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고 전민씨 부인 박혜진씨와 박씨의 아버지이자 고인의 장인인 박용선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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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아직 오빠 택배차가 그대로 서있거든요... 그 차를 보는 게 너무 힘들어요. 아이들에게 정말 바보 같이 좋은 아빠였는데. 회사에서 빨리 출퇴근 자료를 줬으면 좋겠어요. 진상을 밝히면 아이들하고 좀 더 편안하게 아빠 얘길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박혜진(41)씨는 폭우가 쏟아지던 6월 29일 오후 검은 옷을 입고 서울 서대문구 노조 사무실 기자회견장에 섰다. 남편을 "오빠"라고 부를 때마다 울먹이던 박씨의 눈은 이미 퉁퉁 부어 있었다. 중간중간 수화기 너머로 "엄마" 하고 들려오는 앳된 목소리에 박씨는 애써 밝은 목소리로 "이따가 전화할게"라고 했다. 남편을 잃은 지 13일 되는 날이었다.

박씨는 CJ대한통운 부평 삼산중앙대리점에서 택배 노동자로 일하다 지난 6월 16일 숨진 고 전민(48)씨의 배우자다. 함께 미용실을 운영하던 부부는 지난 2020년 초 코로나19 여파로 가게 문을 닫아야 했다. 남편 전씨는 곧장 택배 일에 뛰어들었다. 여느 때처럼 이른 새벽 출근 준비를 하던 전씨는 지난 6월 14일 오전 5시 30분께 집안 화장실에서 쓰러졌다.

'딸 바보' 아빠와 늘 같이 잔다는 10살짜리 둘째딸이 아빠의 비명을 가장 먼저 듣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박씨도 곧장 뛰어왔지만 남편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뇌출혈이었다. 병원으로 바로 이송됐지만 전씨는 이틀 만에 사망했다.

'과로사' 인정 안 하는 회사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고 전민씨 부인 박혜진씨와 박씨의 아버지이자 고인의 장인인 박용선씨가 근무기록을 요구하기 위해 전씨가 일한 화물터미널에 방문한 당시의 영상을 기자회견에서 보여주고 있다.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고 전민씨 부인 박혜진씨와 박씨의 아버지이자 고인의 장인인 박용선씨가 근무기록을 요구하기 위해 전씨가 일한 화물터미널에 방문한 당시의 영상을 기자회견에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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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박씨와 택배노조는 전씨가 하루 평균 12~13시간, 주 70시간 이상의 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했다.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를 막기 위해 지난해 노사가 합의했던 '분류작업 감축' 방안 역시 현장에서 잘 이행되지 않아 일명 '까대기'(택배 분류작업)도 이어졌다고 했다. 지병이 없던 전씨가 '과로사' 할 수밖에 없는 노동 환경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CJ대한통운은 전씨의 노동시간이 주 55시간 내외였다면서 과로사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전씨의 출퇴근 기록을 제공해달라는 유족들의 요구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 택배 노동자의 경우 배송 기록이 남기 때문에 그 내역이 과로사 입증과 산재 신청에 필수적인데, 회사가 '고객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 장례를 치른 지 열흘도 안 된 유족들은 이처럼 출퇴근 내역을 알려달라는 기본적인 요구를 하기 위해 기자회견까지 해야 했다. 코로나19로 오히려 역대 최대 특수를 누린 CJ대한통운은 현재 점유율 48%의 업계 1위 회사다.

기자회견 직후 근처에서 박씨를 만났다. 생계를 위해 남편이 죽은 후에도 일을 쉬지 못한다는 그는 이날도 회사에 연차를 내고 기자회견장에 왔다고 했다. 박씨는 13살 아들, 10살 딸에게 조심스러워 집 밖에서 인터뷰하고 싶어 했다. 박씨의 아버지이자 고인의 장인인 박용선(71)씨가 기자회견장부터 줄곧 말없이 딸의 옆자리를 지켰다. 고인의 부모는 몸져누워 기자회견에도 참석하지 못했다고 했다.

"사측, 장례식장까지 와서 노조와 만나지 말라고..."

- 장례식장에 CJ대한통운 직원들이 찾아왔다고 들었다.

"남편이 중환자실에 있을 때부터 두세 사람이 와 있었다. 장례식장에서도 3일 내내 이른 시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더라. 나는 처음에 '위로라도 하러 왔나 보다' 하고 음료수도 가져다 드리고 했다. 근데 그 사람들이 대뜸 하는 말이 '노조와 만나지 말라'는 거였다. 자신들이 산재 신청하게끔 해주겠다면서. 그러더니 자기들 최선은 '천(만원)에서 2천(만원)까지다'라고 하더라. 무슨 장례식장에서 다짜고짜 돈 이야기를 하는 건지... 어이 없고 화가 났다.

나중에 보니 우리가 노조와 접촉하는지 감시하려고 일찍부터 사람을 보낸 것 같더라. 심지어 우리 아버지가 장례식장에서 그들에게 나가달라고 하니 아들뻘 되는 직원 중 하나가 '어쩌라고' 하면서 아버지를 툭툭 밀치기까지 했다. 또 다른 직원은 내 동생에게 접근해서 나와 가족들 정보를 캐묻고 다니고... 장례식장까지 와서 정말 이게 사람한테 할 짓인가."

- CJ대한통운은 '유가족들이 산재 신청 시 관련 절차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문을 냈는데.

"언론 앞에선 다 해줄 것처럼 말한다. 그런데 돌아서면 다르다. 지난 토요일(6월25일)에도 아버지와 직접 현장에 가서 출퇴근 자료를 달라고 했는데도 내쫓기만 했다. 현장 소장에게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나. 무릎이라도 꿇고 빌면 자료 주시겠냐'면서 애걸복걸했다. 그런데도 덩치 큰 분들을 앞세워 우리를 쫓아냈다."

- CJ대한통운 택배 노동자들은 '운수대통'이라는 휴대전화 앱에서 본인 출퇴근 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고 들었다.

"원래 그렇다더라. 그래서 장례식 이틀째 됐을 때 노조분들이 남편 핸드폰으로 확인을 해봤는데 이미 로그인이 막혀있는 거다. 회사가 벌써 접근을 차단해놓은 거였다. 노조분들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심지어 얼마 전에 산재 신청도 아니고 국민연금 유족연금을 신청해야 해서 회사에 사업자번호를 문의했는데, 그것조차 가르쳐주지 않더라. 그걸 보고 정말... 그거 연금이라 해 봤자 월 10만 원밖에 안 된다. 하지만 그거라도 보태야 당장 애들하고 월세 내고 사니까, 제겐 꼭 필요한 건데..."

- 회사에서 사과한 적은 있나.

"없다... 한 번도 없다."

코로나19 여파... 미용실 문 닫고 시작한 택배 일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고 전민씨 부인 박혜진씨가 전산 근무기록 요구 기자회견에서 발언 하고 있다.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고 전민씨 부인 박혜진씨가 전산 근무기록 요구 기자회견에서 발언 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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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은 언제부터 택배 일을 했나.

"2020년 5월께부터다. 둘이 함께 하던 미용실이 있었는데 코로나 터지고 타격이 너무 커서 가게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이 바로 택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울 금천구에서 CJ오쇼핑 특판 택배업무를 하다가 CJ대한통운 부평 삼산지사로 옮긴 지 1년 3개월쯤 됐다. 남편 혼자서는 벅차서 저도 사무직 일을 시작했다."

- 고인은 보통 몇시에 나가서 몇시에 들어왔나.

"매일 오전 6시 반에는 출근을 했는데 한 달에 일주일 꼴로 '까대기(분류작업)' 순번이 돌아오면 그 주엔 더 일찍 6시에 나갔다. 퇴근 시간은 보통 오후 9시에서 10시 사이였다. 택배 물량이 적은 월요일은 더 일찍 오긴 했지만 택배가 엄청 몰리는 화요일엔 더 늦게 집에 왔고, 집에 와서도 갖은 항의 전화에 시달렸다. 물품에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다 택배기사 탓으로 돌리니...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했고, 일요일 하루 쉬었다."

- 체력적으로 힘들어했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픈데... 원래 남편이 내색을 잘 안 하는 스타일인데도 미용실 할 때랑 다르게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팔이나 어깨 관절은 말할 것도 없고 무릎도 절뚝거렸고.

특히 남편이 신참에 속하다 보니 구역도 가장 힘든 곳으로 배정 받았다. 구역 내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 아파트, 농수산물센터가 있어서 많이 힘들다고 했다. 터미널에서도 차량 접안이 잘 안 되는 곳에서 일해야 해서 구르마로 짐을 올렸다 내리는 게 너무 힘들다고. '까대기'만 안 해도 진짜 살 것 같다고도 했었고.

집하할 때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힘들어 하는 차량이 있으면 가서 도와주고, 토요일에도 다른 분 반송 물량 많은데 혼자 못한다면서 먼저 나서서 거들어주고 오던 사람이었는데... 올 9월이면 남편 구역에 신축 아파트가 생기는데 그거 다 짓고 나면 구역이 바뀔 수 있다면서, 그럼 좀 편해지겠다면서 그렇게 좋아라 했었는데..."

- CJ대한통운 쪽에선 '고인이 지난 3월 건강검진에서 동맥경화, 혈압 및 당뇨 의심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원래 멀쩡하던 사람이 어쩌다 그렇게 됐겠나. 남편은 키 178cm에 몸무게 85kg였다. 예전에 운동 삼아 권투를 했을 때 관장님이 아마추어 선수로 뛰어보지 않겠냐고 했을 정도로 건강했다. 택배 일 하기 전에 지병도 없었고, 이렇게 쓰러진 적도 없었다. 너무 바빠서 샌드위치랑 우유 같은 걸로 끼니를 때웠다고 했던 걸 생각하면 가슴이 무너진다.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다 골병이 든 건데..."

- 고인이 쓰러지기 전 무렵, 평소와 다르다고 느낀 점은 없었나.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요일 쉬는 날에 남편이 보통 아이들하고 같이 놀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그 전 주말에도 작은 아이가 두발 자전거를 막 배우려고 해서 그거 가르쳐주고, 큰 아이 하고는 캐치볼 하려고 마트 가서 야구 글러브도 사고, 패밀리레스토랑 가서 외식도 했고... 전혀 그런 기색은 없었다."
 
 "CJ대한통운, 빨리 남편 출퇴근 기록 줬으면 좋겠다"


- 아이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나.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애는 아들인데 아직까지 이상하다고 하고,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딸아이는 실감을 잘 못 하는 것 같다. 딸 아이가 늘 아빠랑 같이 잠을 잤다. 남편이 항상 저보다 일찍 일어나서 출근을 하니까, 배려한다고 안방을 주고 딸아이 방에서 항상 같이 잠을 잤는데. 

딸 바보였다(웃음). 어느 정도냐면 딸이 약간 천방지축인데 항상 걱정되니까 학교 끝나면 무조건 아빠한테 전화하라고. 아무리 바빠도 딸 하교 시간에 전화하고. 아들하고는 매일 같이 운동하고, 컴퓨터 게임하고 아이템 사주고. 어제 큰 애가 자기 학교에서 수학 100점 맞았다고, 그러면 아빠가 아이템 사주기로 약속했다고 하더라. 그 말이 참... 저는 게임도 모르고 아이템도 뭔지 모르니까 '엄마가 이거 다 정리되면 해줄게' 라고는 했는데. 

아이들만이라도 상처 안 받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그것밖에 없다. 혹시라도 아빠 보고 싶으면 얘기하라고 했는데, 제가 남편 사진 보려고 컴퓨터 켜면 아이들이 어느새 와서 같이 본다. 아직 옷들도 집에 그대로 있다. 내가 퇴근하고 설거지하기 너무 힘들어 남편이 한 달 전에 설치해준 식기세척기도 그대로 보이고..."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고 전민씨 부인 박혜진씨
 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고 전민씨 부인 박혜진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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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면.

"예전엔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랐던 것 같다. 요즘엔 아무 일도 없기를 바란다. 일단 CJ대한통운이 빨리 남편 출퇴근 기록을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근무 환경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택배 일 하는 사람들, 아파도 병원 한 번 제대로 못 가는 사람들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다. 남편도 그렇게 무릎 절뚝거리는데 병원을 한 번 못갔다. 병원 가려면 용차비(대체 기사 구하는 데 드는 비용) 30만 원을 내야 하니까. 하루 일당 다 날리니까. 그런 일 좀 없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터미널에서만이라도, 비올 때 비 안 맞고 일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겨울엔 너무 춥지 않게, 여름엔 너무 덥지 않게 일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남편이 일하던 작업장만 봐도 그냥 다리 밑에 아무 가림막도 없는 곳에서 택배기사들이 일하고 있다. 남편이 겨울에 춥다고 집에서 쓰는 팬히터를 가져가더라. 분류가 힘들어서 장갑은 못 낀다면서. 택배사들 돈 엄청나게 벌지 않나. 그런 것 보완하는데 그렇게 큰 돈 드는 것도 아닐 텐데.

얼마 전 뉴스에서 정부가 근로시간을 늘리려 한다는 얘기를 봤다. 황당했다. 지금 이 상황이 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사람들이 뭘 알까? 남편 일을 겪으니 정말 그런 생각이 들더라. 사람들이 얼마나 더 죽어야 하는 건지."

태그:#CJ대한통운, #택배노동자, #과로사, #노동, #노동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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