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06 12:26최종 업데이트 22.05.0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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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22일 공군에서 성추행 피해를 입었던 이예람 중사가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피해자가 죽었지만 이렇다 할 수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가해자 구속은 고사하고 압수수색도 진행되지 않았다. 담당 군 검사는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놓고 인력이 모자라다는 황당한 이유로 집행을 안 했다.

그렇게 열흘이 지난 5월 31일 사건이 언론에 폭로되었다. 다음 날인 6월 1일엔 서욱 국방부 장관이 사건 관할을 공군 군 검찰에서 국방부 검찰단으로 당겨 올렸다. 공군에 수사를 맡길 수 없다는 불신의 표현이었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난 6월 4일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이 중사 사망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사의를 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80분 만에 사의를 수용했다. 당시 청와대는 대통령이 '보고와 조치 과정을 포함해 최고 상급자까지의 지휘 라인 문제도 엄정하게 처리해 나가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참모총장 본인이 조사·수사를 받을지 모르는 사안이 겹쳐 있어 사의를 수용했다면서 당장 전역하는 것은 아니고 사표 수리에 절차가 필요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14일 오전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의 공군본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전익수 법무실장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1.10.14 ⓒ 연합뉴스

 
공군 법무실장은 왜   

다시 3일이 지난 6월 7일 이성용 총장이 국방부 감사관실에 세 장짜리 서면 확인서(진술서)를 보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최고 상급자까지 엄정히 조사하라는 대통령의 지시는 따라야겠고, 감사관실이 대장급 장성을 소환해 조사하기는 부담스러우니 서면 조사로 갈음했던 것으로 보인다. 질의서는 대부분 사건을 보고 받은 시점과 당시 상황, 이후 참모총장의 조치와 지침에 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성용 총장은 비교적 상세하게 당시의 상황을 진술했다. 유의하여 살펴봐야 할 점은 5월 24일의 행적과 관련된 진술이다. 5월 24일 주간상황 보고회의를 주재한 이성용 총장은 집무실에서 공군본부 법무실장과 군사경찰단장에게 별도 지시를 내린다. 지시의 내용은 2차 가해 포함 엄정수사, 유가족과의 원활한 소통 그리고 구속수사 검토였다.

영장 청구는 군 검찰의 관할 업무이기 때문에 구속 수사 검토는 법무실장에게 내린 지시였을 것이다. 범죄 피해자가 사망하면 압박감을 느낀 가해자의 도주, 증거인멸, 나아가 자해 등의 우려가 커질뿐더러 범죄의 중대성도 소명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가해자를 구속 수사한다. 이 때문에 이성용 총장도 이런 지시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관련기사: 군인권센터 문건 공개 "총장의 수사 지휘 무시 정황" http://omn.kr/1yksx).

구속 수사를 요청한 건 유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유가족과 국선 변호인, 피해자 소속부대였던 20비 정보통신대대장 간의 통화 내용 녹취록에 따르면 5월 24일 유가족은 피해자 생전에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자살 협박을 한 점을 고려하면 가해자의 신상을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며 국선 변호인과 대대장에게 각각 구속 수사를 요청했다. 국선 변호인과 대대장은 각각 20비 군 검사와 20비 법무실장에게 이러한 뜻을 전했고,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하겠노라는 답을 받아왔다.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종합국정감사에 출석해 국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2020.10.26 ⓒ 공동취재사진

 
그런데 가해자는 끝까지 구속되지 않았다. 5월 25일 대대장은 유가족에게 청구해봐야 발부가 안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20비 법무실장의 답변을 전했다. 가해자는 사건이 언론에 폭로되고 여론이 들끓자 국방부 검찰단으로 이첩된 직후에야 구속된다.

피해자가 유명을 달리해 사건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상황에서 군정권자인 참모총장이 직접 참모인 법무실장에게 지시하고, 유가족도 합리적 이유를 들어 강력하게 요청하였는데도 구속은커녕 영장 청구조차 하지 않았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성용 총장으로부터 가해자 구속 검토를 지시 받았던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은 지난해 국방부 검찰단으로부터 이 중사 사망 사건 관련 직무유기 혐의로 수사를 받을 때 "개별 부대에서 진행하는 사건은 일일이 포괄적으로 지휘하지 않는다"라고 진술해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최근 개인 SNS,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서도 공군본부 법무실장이 일일이 개별부대 사건을 들여다보지 않으며, 볼 수도 없다는 해명을 여러 차례 내놓고 있다. 모두 이성용 총장의 확인서가 세상에 공개되기 전에 나온 말들이다.

그러나 여러 군 관계자, 전직 군 법무관들은 공군 법무조직의 구조 상 전 실장이 개별부대 사건 지휘에 관여하기 어렵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심지어 전 실장 스스로도 2020년 6월 여러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군 검찰 수사 활동비 부정 수령 의혹에 대해 해명하며 "공군본부 법무실장은 공군 검찰 업무를 지휘·감독하고 총괄하는 직위이며 관련 업무에 직접 관여하기 때문에 당연히 군 검사 명령이 나 있다. 그에 따라 수사 활동비가 지급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결정적으로 참모총장이 개별 사건에 대한 구속 영장 청구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마당에 지시를 받은 법무실장이 계속 비슷한 해명을 내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15일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와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대위원장이 착석하자 본회의 전 박병석 국회의장이 방청석으로 올라와 인사를 하고 있다. 2022.4.15 ⓒ 공동취재사진

 
특별검사의 중요성

이 중사 사망 사건 처리에 책임을 통감한다던 이성용 참모총장은 결국 서면 진술서를 제출한 뒤 6월 10일 자로 사표가 수리되어 전역했다. 공군 법무·검찰을 총괄하며 참모총장을 보좌하는 법무실장은 총장이 바뀐 뒤에도 계속 직을 이어가며 공군 군검찰을 지휘하고 있다.

법무실장에게 구속 수사를 검토하라고 지시한 참모총장과 개별 사건 수사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모두 비껴간 법무실장, 두 사람의 엇갈리는 진술은 이 중사 사건 특검 진행의 중요한 표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 검찰단이 이성용 총장의 진술서를 갖고 있었으면서도 진상을 규명하지 않고 지나갔던 이유도 규명되어야 한다.

피해자가 용기 내 성추행을 신고했는데도 81일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사건 수사는 누구의 책임인지, 피해자가 사망한 뒤에도 계속된 가해자 봐주기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이걸 밝혀내야 제2, 제3의 이 중사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자면 특별검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국회는 현재 대한변호사협회와 법원행정처에 특별검사 후보자 추천을 의뢰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이르면 다음 주에 특별검사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적임자를 추천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임명되어선 안 될 사람들을 후보군에서 잘 가려내는 일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특검 추천 기관에서 향후 특검의 활동 범위와 수사 대상이 되어야 할 이를 면밀히 파악하여 이들과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로 후보를 추천하는 일에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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