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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기의 뉴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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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한국의 주당 노동시간은 52시간인 건가, 92시간인 건가, 아니면 120시간도 될 수 있다는 건가?

최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주 52시간제'의 연장근로 부분을 월 단위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하자 언론에서는 '주 92시간제까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기는 했지만 후보 시절 "주 120시간까지 바짝" 일할 필요가 있다고 한 바 있어서 제도의 변화가 어느 방향으로 이뤄질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한 단락의 내용 안에 주간 노동시간의 길이가 세 가지나 등장했다. 주 52시간, 92시간, 120시간. 

셋 다 법이 정한 노동시간 기준은 아니다. 근로기준법 50조 1항에 명시된 기준은 '주 40시간'이다. 그러니까, 위와 같은 경우에는 '주 최대 52시간'과 같은 식으로 '최대'라는 말을 꼭 붙여야 한다. 

주 4일제, '와이 낫?'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왜 새삼스럽게 이 점을 강조하느냐 하면, 노동시간과 관련된 논의에서 자꾸 간과되는 것이 이 '최대'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50조 1항을 다시 가져와 보면,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돼 있다. 40시간보다 적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없다. 법은 노동시간에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최저선'을 정할 뿐이다.

이 글의 주제는 '주 4일 노동제'인데 왜 주당 노동시간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했을까? 주 4일제와 관련해서도 같은 지점을 신경 써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주 최대 52시간제'를 가지고도 이렇게 논란이 심한데 '주 4일제'가 어떻게 가능할지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대선에서 주 4일제가 대선 의제로 등장하고, 유력 후보까지 그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언론들에서 관련 기사를 쏟아내던 시기가 있었다. 토요일이 '반공일'이던 시절에는 주 40시간도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어느덧 현실이 되었고, 프랑스의 주 35시간제도 20년이 넘었고, 최근에는 국내 기업들 중에도 주 4일 근무를 시도하는 곳이 나오고 있다는 등의 기사들이었다.

이런 내용들을 읽다 보면 "와이 낫?"이라고 하고 싶어진다. 우리도 주 4일제라는 꿈을 꿀 수준에는 이르렀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앞에서 언급한 '최저선'이라는 지점이다. 
 
주 4일제를 논하기 전에 짚어야 할 것은 바로 '최저선'이다.
 주 4일제를 논하기 전에 짚어야 할 것은 바로 "최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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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최저선'

헌법 32조 2항과 3항은 국가가 노동의 최저선을 법률로 정하도록 했는데, 그 취지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선을 국가가 정하고, 그 아래로 누구도 떨어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라는 뜻이다. '법'으로 정한 것은 '어기면 처벌한다'는 의미다. 그렇게 최저선을 정한 뒤에, 그보다 높은 수준의 조건들은 각 일터의 상황에 맞게 노사대화 및 협상으로 만들어 가라는 것이 노동 3권을 보장한 헌법의 취지다.

그런 면에서 최저임금제는 임금의 최저선, 지금도 논란인 '주 최대 52시간 노동제'는 노동시간의 최저선이다. 근로기준법의 휴가, 해고 등의 여러 가지 조항들은 노동조건에 대한 최저선이다.

그런데 최저임금도, '주 최대 52시간 노동'도, 근로기준법상의 조항들도 사실상 최저선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예외가 너무 많고(특히 5인 미만 사업장), 지켜지지 않아도 제대로 처벌하지 않거나, 아예 국가(고용노동부)가 나서서 예외를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최저선의 기준들은 규모도 크고 노동조합도 있는, 소위 말하는 '좋은 일자리'에서만 잘 지켜진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양극화가 심해져 온 데다가 특수고용노동, 플랫폼 노동까지 확대되자 이제 '최저선'은 일부 노동자만 누리는 특권이라고까지 할 수 있게 됐다.

혹시 '평균선'을 떠올리고 있나?

그렇더라도 주 5일 노동제가 은행권에서 먼저 시작됐듯이 일부에 먼저 적용한 제도가 곧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면 시도는 해봄직 하다. 문제는 그런 '낙수효과'는 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때만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위쪽의 여건을 높이면 양극화가 더 심해질 수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혹시 우리는 '주 4일제'를 말하면서 '최저선'이 아니라 '평균선'을 떠올리는 게 아닐까? 마치 국가가 주거의 최저선을 지키라고 했더니 '투자 가치 있는 아파트' 공급에만 골몰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 사회의 수많은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의 최저선이 없이 살고 있다. 최저선이 뭔지, 국가가 그런 선을 지킬 의무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평균선'으로서의 '주 4일 노동제'를 말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으며, 누구에게 혜택을 주는가?

내 노동을 국가가 지켜준다는 '안정감'

만일 '주 4일제'에 대한 시대적 요청이 있다면 정부는 '일터 민주주의' 즉, 각 사업장에서 노사 협상 또는 대화를 통해서 사정에 맞는 제도를 만들도록 장려하는 편이 적절하다. '최저선 이상은 노동 3권으로 만들어 가라'는 헌법의 취지에도 부합한다.

정부가 더 주력해야 하는 것은 노동조건의 '최저선'을 확실히 긋는 것이다. 지난해 탄력근로제 도입 과정에서 법에 처음 명시된 '연속 11시간 이상 휴식'(근로기준법 51조 4항의 2)이 노동시간에서의 현실적인 최저선이다. 이런 기준이라도 기업 규모나 업종, 고용관계와 상관없이 모든 일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도록 한다면, 그리고 이 선이 지켜지도록 국가가 철저하게 관리하고 처벌한다면, 노동시간에 있어서 '최저선'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최저선이 명확해졌을 때,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그 최저선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것도 국가의 역할이다.

이와 같은 국가의 역할이 명확해질 때 비로소 우리는 내 노동이 어떤 경우에도 어느 선 위에 있도록 국가가 지켜준다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이제 우리도 선진국이라며 "와이 낫?"이라고 할 수 있으려면, 이런 안정감부터 체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 글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 저자.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2년 7-8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태그:#주 4일제,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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